현장

움트고 피어나는 문화예술교육 현장의 장면들을 포착합니다.

땅에서 움튼 씨앗이 깊이 뿌리내리려면

<노는예술>이 지속 가능한 변화를 찾는 여정

땅에 씨앗을 심어본 일이 있는가. 도시에서 나고 자란 나는, 지난봄 난생처음 농사에 도전했다. 땅을 고르고 이랑과 고랑을 만든 뒤 일정한 간격을 두고 구덩이를 팠다. 씨앗을 심고 나니 봄볕에 땅이 마르면 움트는 게 더디겠다 싶었다. 흙을 흠뻑 적셔줄 요량으로 물 한 동이를 길어왔다. 그 모습을 보던 선배 농군이 파안대소하며 말했다. “씨앗을 땅에 직접 심을 때는 물 주는 거 아니야.” 씨앗을 심고 물을 주지 말라니. 무슨 말인가 싶어 어리둥절한 내게, 그가 땅의 비밀을 알려주었다. 움이 튼 씨앗은 땅이 머금은 물을 빨아 먹기

무르익은 이야기는 계절도 없이

복합문화공간 창영당의 겨울나기

문화예술사업이 농사와 닮았다는 우스갯소리를 하고는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봄에 나는 공고를 시작으로 여름, 가을 동안 열심히 사업을 진행하고 겨울에야 마무리한다. 사업을 마친 겨울에서 이듬해 사업이 시작되는 봄까지의 기간은 농한기와 비슷하다. 이 사이의 시간은 문화예술단체에는 혹독한 보릿고개이지만 또 다음 한해를 지낼 힘을 비축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 사이의 시간에 더욱 바빠지는 공간이 있다. 인천광역시 동구에 있는 ‘복합문화공간 창영당’(이하 창영당)이다. 창영당의 조은숙 대표는 자신을 ‘이야기꾼’으로 부른다. 학창 시절 방송반을 시작으로 기업 방송 아나운서, 동화구연 선생님을 거쳐 지금은 연극 무대에도 서고 있는 베테랑이다.

공허와 불안이 아닌, 가능성과 열정을 채우는 시간

사회예술강사가 사이의 시간을 건너는 방법

연구와 도전의 시간 2022년 복지시설 이용자 문화예술교육 기획사업 <창작 실험 프로젝트>를 계기로 ‘창조적파쏭쏭’이라는 프로젝트 그룹을 만들었다. <창작 실험 프로젝트>는 아동·노인·장애인 대상 문화예술교육 기획사업으로 예술강사, 사회복지사 등 여러 선생님의 협업을 통해 새로운 문화예술교육을 연구하고 개발한다. 그때 마침 산본장애인주간보호시설에서 수업했던 우리는 새로운 도전과 실험이 필요했다. 이곳에 참여자들은 언어소통이 매우 힘들었다. 대화가 가능하긴 하지만 상대 말을 따라 하는 정도였고 질문에 좋고 나쁨도 간단하게 표현할 뿐이었다. 수업 중 답문이 오고 가고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는 게 쉽지 않았다. 연극 수업을 어떤 방식으로 이끌어 가야 할지

일상과 자연 사이, 도시숲과 예술이 만날 때

국립세종수목원 ‘도시숲 예술치유’

2012년 여름, ‘우락부락 창의예술캠프’(이하 우락부락 캠프)가 강원도 횡성의 숲체원에서 열렸다. 우락부락 캠프는 일상에서 벗어나 낯선 공간에서 ‘예술가와 함께 놀고, 작업하는’ 경험을 하며, 예술을 즐기고, 삶의 의미와 새로운 활력을 찾을 수 있는 2박 3일 캠프다. 우락부락 캠프를 통해 자연, 숲속이라는 공간은 자유도가 높은 유형의 예술놀이를 할 수 있는 무대이며, 이런 예술놀이를 통해 자연의 따뜻한 환대를 느끼고 더 넓은 관점에서 세상을 볼 수 있게 된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나의 그 확신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던 계기가 있었는데, 이번 ‘도시숲 예술치유’ 프로젝트를

서로를 비추고 함께 이뤄가는
사회적 상상

사회참여적음악가네트워크의 동력

“제가요?” ‘사회 참여적’이라는 단어에 음악가들은 종종 손사래를 친다. 정치적이거나 사회운동을 도모해야 명명될 수 있는 수식인 것 같단다. 사회참여적음악가네트워크(Socially Engaged Musicians’ Network, 이하 SEM(샘)네트워크)는 음악가들이 사회에서 음악이 미칠 수 있는 영향과 사람들과 음악으로 관계 맺는 방법을 따로 또 같이 모색하고 실천하는 연대다. 그 시작점에는 엘 시스테마형 오케스트라가 있다. ‘삶을 변화시키는’ 아동·청소년오케스트라 프로젝트의 모델을 7~10여 년 운영하면서 각성한 음악가, 사회복지사, 기획자들이 모여 2018년도부터 느슨한 연결과 결집된 실행을 오가며 진화해 온 모임이다. <자장가 프로젝트(Lullaby Project)>(2019) ‘사회적 상상’으로 연결된 음악가들 ‘사회 참여적’이라는 단어를 굳건하게

실사구시의 마음으로 가만히 들여다보면

미술중심공간 보물섬을 움직이는 것

경북 경산시 구도심에 위치한 미술중심공간 보물섬(이하 보물섬)은 2016년 대구 미술가로 구성된 그룹 ‘썬데이페이이퍼’에서 <청년미술 페스티벌>을 위해 임시로 빌린 공간이었다. 미술그룹은 전시 이후에도 이곳을 작업실과 전시장으로 사용하기로 하면서 경산에서의 활동이 시작되었다. 썬데이페이퍼는 2018년 해산했지만, 나는 경산에 머물며 지금까지 보물섬을 운영하고 있다. 보물섬에 정착할 즈음 과도하게 편향적이며 억지스러웠던 동시대 미술과 대구의 보수적인 미술계 분위기에 몹시 지쳐있던 터라 경산처럼 작은 규모의 도시 생활이 편안했다. 대구광역시의 위성도시인 경산은 경상북도의 다른 시·군과는 다르게 인구소멸지역이 아니라 매년 인구가 증가하는 도시이다. 특히 대구 지하철 2호선 종착역인 영남대학교

비 온 뒤 무지개처럼, 넘어져도 일어나는

레인메이커협동조합의 이유 있는 실패

우리는 넘어지며 일어나는 종이다. 인간은 두 발로 걷기 위해 몸의 중심을 이동시키는 직립보행의 모험 속에서 한 발이 넘어지는 순간 다른 한발을 내디뎌 나가는 법을 익혀왔다. 그리고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모든 위대한 이야기는 길을 떠나는 여정에서 시작되지 않던가. 한 번도 넘어지지 않고 어른이 되는 아이는 없는 것처럼, 사실 헤매거나 넘어지는 부분이야말로 이야기의 가장 매혹적인 부분들을 이룬다. 누구나 경험했을 법한 기억을 건드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른이 된 아이들은 넘어지는 걸 못 견딘다. 넘어지는 건 걷기의 실패라 생각해서일까, 창피함에 얼른 일어나 홀로 쓰라림을 감내한다.

버틸 땐 버티고, 기댈 땐 기대며,
좀 더 행복하게

아르떼365 매거진토크: 실패의 알리바이

가을의 끝자락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던 11월의 첫날 밤, 문화예술교육을 만들어가는 다양한 이들이 서울 성수동 복합문화공간 에스팩토리에 모였다. <2023 대한민국 문화예술교육 축제>와 연계한 ‘아르떼365 매거진토크’에서 [아르떼365]의 찐 독자를 자처하는 예술교육가, 기획자, 행정 담당자 등이 편집위원과 만나 서로의 실패담을 나누었다. 만남 전에 보내온 사연을 살펴보니 참여자 모집의 어려움, 예산 관리의 실패, 기대에 못 미치는 만족도 등 실패의 모양은 가지각색이었다. 각자의 실패에서 알리바이(해석과 제언)를 찾아 ‘그럼에도 불구하고’로 시작하는 훗날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기 위해 이선옥, 임상빈, 제환정 편집위원이 머리를 맞대었다. 지원사업에 떨어지면 실패인가요? 첫

예술이 꽃을 피워 알찬 열매를 맺기까지

속리초등학교 예술꽃 씨앗‧새싹학교 6년의 성과

추석을 앞두고 가을 색이 완연한 어느 날, 노란 들판을 지나 속리산 자락 법주사와 정이품송을 향해 난 길로 한참을 따라가니 작고 아담한 초등학교가 보인다. 1930년 개교하여 93년 역사를 자랑하는 속리초등학교다. 오늘은 월요일, 전교생이 다 함께 뮤지컬 수업하는 날이라 여울마루(강당)가 떠들썩하다. 속리초등학교가 만든 창작 뮤지컬 <1893.보은의 봄> 연습이 한창인데, 사또와 양반 역을 맡은 2학년 동생들이 숨바꼭질하는 동네 꼬마 역할을 하는 6학년 언니들에게 시끄럽다며 혼구녕을 낸다. 성별도 나이도 개의치 않는 젠더프리(gender-free)에 에이지프리(age-free) 캐스팅이다. 괜히 거들먹거리며 훼방을 놓는 사또와 양반들에게 동네 꼬마들은 양반이니 평민이니

이면까지 다채롭게, 빠짐없이 연결하기

온라인(비대면)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 결과 공유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은 2020년 문화예술을 경험하는 공간과 방법을 확장하는 콘텐츠 아이디어 공모 <어디서든 문화예술교육>을 시작으로 다양한 온라인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통해 ‘온라인 교육 = 영상 교육’이라는 고정 관념에서 벗어나 실시간·쌍방향 소통이 가능한 교육 방법론과 콘텐츠를 발굴해왔다. 또한, 오프라인 교육의 대안을 넘어 온라인(비대면) 교육의 강점을 살리고 교육적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다양한 방식의 콘텐츠를 발굴하고 실행하였다. 지난 3년 간 시도한 아카이빙과 결과 공유 방식을 소개한다. [출처] 2020 비대면 문화예술교육 프로젝트 온라인 아카이빙 지면의 한계를 뛰어넘는 온라인 아카이빙 사업계획을 수립할 때 ‘왜,

귀 기울이는 청년 vs 살맛 나는 노년

나이듦과 세대를 연결하는 ‘이야기청’

무더웠던 8월의 중순, 성북구 오동숲속도서관 뒤뜰에 마스크를 쓴 어르신들과 조주혜 무용작가가 모였다. 어르신 스스로 삶을 회고하고, 이야기 나눈 후 각자 10대부터 현재까지 그 시간을 함축할 한 단어를 찾고, 그 느낌을 점, 선, 그림 등으로 표현했다. 이어진 워밍업은 몸으로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도록 몸의 감각을 깨워주었다. 점과 선, 그림은 이내 어르신들의 몸짓으로 옮겨졌다. 어색하고 더딘 몸짓에, 무더위에도 쓰고 있었던 마스크 너머로 웃음이 번졌다. 어르신들은 서로의 몸짓을 보며 ‘30대는 그렇지, 40대는…’ 하며 공감의 표현을 보태었다. 수업을 참관하는 잠시였지만 지나왔던 나의 20대와 30대,

비밀한 속마음에 리듬과 스웨그를 얹어

천안시노인종합복지관 어르신과 함께한 〈천안 태평가〉

우리는 마음속에 많은 이야기를 담고 산다. 발화되지 못한 이야기까지. 어쩌면 ‘나(자아)’라는 것은 이야기의 집합체일지 모른다. 진짜 중요한 것은 말하지 못한 그 이야기일지 모른다. 누군가가 자신의 진짜 깊고, 비밀한 속마음을 살짝 비쳐 줄 때 나는 그 시공간에 ‘함께’ 있다. 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음악으로 표현될 수 있도록 코치의 자리에서 돕고 있다. 2013년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꼬마작곡가’를 시작으로, 지금은 복지기관 어르신들과 함께하고 있다. 삶에 의미 있는 경험, 그리고 개인의 일상과 삶을 표현하고 풀어내는 문화예술교육을 지향하는 복지기관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2022년 천안시노인종합복지관 어르신들과 함께했던 ‘2022

아무렇지 않고 특별할 것 없는 보통의 가족

새로운 고향과 보금자리를 만드는 ‘우리들의 성장이야기’

약속시간 보다 일찍 도착해서 주변을 둘러보는데, 이 동네에서 유일하게 대문이 열려있는 집이 약속한 장소다. 이곳은 서른 살 첫째부터 중학생 막내까지 열 명의 아이들과 ‘총각엄마’가 함께 사는 곳이다. 아이들 등교를 도와주고 돌아오는 길이라며 차에서 내리는 총각엄마를 만났다. 이야기를 나눌 주방의 커다란 식탁으로 안내받아 앉자마자 총각엄마는 접시에 가지런히 담은 롤 케이크와 차를 내어주었다. 에어컨과 선풍기를 내 쪽으로 틀어주며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초면의 어색함도 잠시, 예전에 친구네 집에 놀러 가서 친구 어머니를 만났을 때 같은 익숙한 안정감을 느꼈다. 그래서 이곳이 더욱 궁금해졌다. 식탁에

불안과 고립을 넘어 안전하고 조화롭게

〈돌봄과 애도연습〉으로 맺어가는 돌봄의 안전망

돌봄청년으로서의 사적인 경험담 아버지는 2016년 5월 4일, 어린이날을 하루 앞두고 한 빌딩 건축 현장에서 떨어졌다. 외상성 뇌출혈로 머리를 열어 두 차례 뇌수술을 받았고 중환자실에 한 달이 넘게 있다가 겨우 의식 정도는 돌아와 일반병실로 옮겨졌다. 어린이날이 한참이나 지나서야 깨어난 아버지는 어린이가 된 것만 같았다. 아버지를 돌볼 수 있는 다른 가족 구성원이 마땅찮아 나는 떠안듯 그를 돌봤다. ‘돌봄’의 정의, 범주, 방법을 다 설명할 순 없지만, 그의 아들로서 책임감으로, 나아가 의무라 여기고 할 수 있는 만큼 돌봤다. 이른바 ‘영 케어러(Young Carer)’, 그러니까 돌봄청년이

보이지 않는 진심을 경청하며, 리스펙트

어글리밤이 힙합으로 관계를 맺는 방식

‘힙합’ 이 두 글자를 들으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지 묻고 싶다. TV쇼, 래퍼, 스웨그, 드랍 더 비트 등 많은 해석이 가능한 문화이다. 하지만 우리는 힙합의 겉모습에 끌려 가장 중요한 핵심 하나를 놓치곤 한다. 그것은 바로 리스펙트(respect)다. 힙합 다큐멘터리 <프리스타일: 아트 오브 라임>에서는 리스펙트에 대해 이렇게 전한다. 힙합은 인종차별에서 오는 분노를 떨쳐버리기 위해 탄생했기에 프리스타일 래퍼들이 서로의 이야기를 거친 랩으로 뱉어내는 모습이 서로를 헐뜯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공동체의 유대감을 느끼며 리스펙트하게 된다는 것이다. 분명 힙합 문화는 공감과 존중의 경험이다. 문화예술교육에서 참여자와의 관계,

아직 오지 않은 선택과 관계를 연습하는 안전한 공간

‘우리들의 연결고리’가 만들어가는 만남과 수용

내 삶의 문제부터, 어린 시절의 나로부터 나에게 관계란 항상 미지의 알 수 없는 것이었다. 미로 같기만 한 소통의 골목길을 헤매다 보면 내 옆에는 깨어진 관계의 조각만 남아 있었다. 10대 20대를 지내며 내 삶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했던 극심한 감정 기복과 우울은 내 삶의 경계선을 내 안에 만들도록 했다. 타인과 만남은 늘 부담스러웠다. 외로움에 잠기지 않으려면, 차라리 아무도 만나지 않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관계를 맺어가는 방법이란 게 따로 있는 것일까?’가 항상 의문이었다. 세상은 혼자 살 수 없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