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여름, ‘우락부락 창의예술캠프’(이하 우락부락 캠프)가 강원도 횡성의 숲체원에서 열렸다. 우락부락 캠프는 일상에서 벗어나 낯선 공간에서 ‘예술가와 함께 놀고, 작업하는’ 경험을 하며, 예술을 즐기고, 삶의 의미와 새로운 활력을 찾을 수 있는 2박 3일 캠프다. 우락부락 캠프를 통해 자연, 숲속이라는 공간은 자유도가 높은 유형의 예술놀이를 할 수 있는 무대이며, 이런 예술놀이를 통해 자연의 따뜻한 환대를 느끼고 더 넓은 관점에서 세상을 볼 수 있게 된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나의 그 확신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던 계기가 있었는데, 이번 ‘도시숲 예술치유’ 프로젝트를 하면서이다. 도시숲 예술치유 프로젝트는 자연을 무대로 원형적 예술의 경험을 스스로 체험하며, 이를 통해 개인과 공동체가 회복탄력성을 기를 수 있도록 돕는 문화예술치유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된 프로젝트이다. 국립세종수목원에서는 안성석 미디어 작가, 송주원 안무가와 함께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종의 집
지구엔 인간만 사는 게 아니다
국립세종수목원에는 단풍나무, 야생화원 등 식물을 주제로 한 25개 주제 전시원이 구성되어 있다. 그중 ‘폴리네이터가든’은 식물의 꽃가루받이를 도와주는 곤충(Polinator)이 좋아하는 식물들로 조성된 정원이다. <종의 집>(House of species)은 폴리네이터가든을 주요 무대로 삼았다. 참여자 모두가 처음 만난 날 펜, 수첩, 작은 의자를 들고 폴리네이터가든으로 향했다. 아이들에게 각자 원하는 곳에 자리를 잡고, 되도록 느리고 천천히, 또 자세하게 관찰하도록 안내했다. 숏폼, 틱톡 등 현란한 미디어 매체에 익숙한 어린이들이 한 곳에 진득이 앉아 관찰하는 것이 얼마나 가능할까? 나의 생각은 편견이었으며, 그대로 깨졌다. 아이들은 진지하게 각자의 자리에서 기다림의 시간을 즐겼다. 각자의 수첩에는 이름을 알 수 없는 작은 곤충부터 개미, 작은멋쟁이나비, 호박벌, 무당거미 등 다양한 곤충의 정보가 하나둘 담기기 시작했다.

지후 : 개미 괴롭히지 마라.
온주 : 왜?
지후 : 밤에 너한테 복수한다, 개미가.
온주 : 개미가 어떻게 나에게 복수를 해?
지후 : 다른 개미들 몰고 와서 널 물 수도 있어.
온주 : 그럼 안 괴롭혀야겠다.
아이들 간의 대화 속에 개미와 인간의 관계에 관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오갔다. 다양한 생물 종이 함께 살아가는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한 아이는 “지구엔 인간만 사는 게 아니다.”라고 답했다. 식물과 곤충 관찰을 통해 다양한 생물의 공존과 삶의 가치에 대한 아이들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 <종의 집>을 통해 곤충과 친숙해지고 자연과의 유대감을 가지며 다감각의 경험을 쌓아 나갔다. 폴리네이터가든에서 관찰한 곤충과 식물, 그리고 더 나아가 나와 친구들, 인간에 대해 여러 방식으로 발견하는 시간을 가진 후, 각자가 관찰한 곤충과 식물에 대해 느낀 대로 그림과 조형물로 표현하고 그것을 스캔하여 디지털 폴리네이터 정원에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구현했다. 프로그램의 마지막 날, 아이들은 하고 싶은 말이 많았던 듯 적극적으로 자신이 인터뷰하겠다고 했다. 처음에는 어색해서 주저하던 아이들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은수야, 지금 나 뭘 창조했어. 정말 이상한 걸 창조한 것 같아. 끝없는 다리 같은데….”
“나비도 표현하고 꽃도 표현했어요. 친구들과 같이했으니까, 혼자 하는 것보다 재밌어요.”
“파란색이 좋아요. 파란색으로 채우면 뭔가 꽉 차는 느낌이 들고 기분이 좋아요.”
프로그램 회차가 더해질수록 아이들은 나비, 꽃, 곤충의 표현이 점점 과감해지고 자신이 좋아하는 색을 다룰 때 행복감을 느꼈다. 자세히 제대로 볼 수 있었던 시간이 좋았다는 피드백을 받았다. <종의 집>을 기획·운영한 안성석 작가는 참여한 아이들이 또래 친구들을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솔직하고 자유로운 표현 방법으로 표현하는 것을 도와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예술이라는 것은 재미있는 느낌이에요.”
“예술은 딱히 이게 예쁘다 이게 안 이쁘다가 없고 그냥 자기 기준으로 하는 건데, 그래서 다른 사람한테는 안 예뻐 보여도 자기 기준에 예쁘면 되니까, 무지개색 같아요. 무지개처럼 마음껏 아무거나 되는 그런 게 어울리는 것 같아요.”
“자세히 제대로 볼 수 있었던 게 가장 생각이 나요.”
정원으로 가는 길
믿음직한 자연의 친구가 되어
송주원 안무가와 함께한 <정원으로 가는 길>은 정원의 나무가 되어서 걸어보고 ‘친구 나무’를 만들며 자연의 생태 감각을 즉흥 춤으로 표현하는 워크숍이다. 프로그램 제목인 ‘정원으로 가는 길’은 프랑스 원예가이자 식물학자, 곤충학자이기도 한 질 클레망(Gille Clement)이 쓴 책의 제목에서 출발했다. 질 클레망은 생태주의 정원 철학으로 ‘움직이는 정원’을 제안하며, 자연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자연에 순응하여 식물이 본연 그대로 적절한 생육환경을 찾아가도록 허용하는 야생(wild)의 가능성에 의미를 둔다. 식물을 종속적인 관점에서 바라보지 않고 거시적인 자연의 신뢰를 바탕으로 야생의 자율성을 강조한다.
<정원으로 가는 길>은 새로운 도시에 뿌리를 내린 수목원의 나무들처럼 낯선 도시에 정착한 가족의 관계를 주제로 했다. 국립세종수목원에는 몇 세대에 걸친 나무의 가족 역사를 보여주는 후계목 정원이 있다. 참여자들은 후계목 정원을 천천히 호흡하고 걸으며 내 마음을 이끄는 나무와 친구 관계를 맺고 자연과 마주하는 감각을 즉흥의 몸짓 언어로 표현해보았다. 보이지 않은 땅속과 땅 위의 움직임의 세계를 상상하며 각자의 정서적 반응을 연결해 보고, 가족과 함께 자연을 몸과 마음으로 느껴보는 시간을 가졌다.
<정원으로 가는 길>의 프로그램 참여자를 모집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다. 무용까지는 아니더라도 몸으로 표현한다는 것이 가족(특히 부모)에게는 선뜻 참여하기가 쉬운 활동은 아니었다. 특히 많은 관람객이 둘러보는 수목원이라는 공개된 장소였기에 더더욱 그러했다. 참여자의 꽤 높은 비율은 어린이였는데, 자녀가 조르기도 했고(?) 신선한 프로그램이라는 점에 이끌려 신청했다고 하였다.

“잔디 위에서 즉흥 춤을 추는 것이 쑥스럽고 어색했지만, 정원과 신체의 하나 됨을 느껴 좋았어요”
“자연 속에서 몸을 자유롭게 쓰는 감각이 새로운 경험이었어요”
“나무의 일생을 생각하게 되었어요”
자연의 원초적인 생명력과 예술이 가진 힘이 만날 때, 우리는 조금 더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면서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다. 이러한 여러 단계의 교육과정을 통해 몰입으로 진입하면서 창조적인 경험을 하게 된다. 이 특별한 경험, 예술적인 감흥이나 표출하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치유’의 경험을 하게 된다, 이처럼 예술과 자연은 치유의 원천이자 개인의 회복,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위한 매개체이다.
최지윤
최지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에서 약 14년간 근무하다 문화예술교육을 자연 속에서 실험해보고 싶어 현재는 국립세종수목원에서 활동하고 있다.
dahlmkong125@naver.com
사진제공_국립세종수목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