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끝자락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던 11월의 첫날 밤, 문화예술교육을 만들어가는 다양한 이들이 서울 성수동 복합문화공간 에스팩토리에 모였다. <2023 대한민국 문화예술교육 축제>와 연계한 ‘아르떼365 매거진토크’에서 [아르떼365]의 찐 독자를 자처하는 예술교육가, 기획자, 행정 담당자 등이 편집위원과 만나 서로의 실패담을 나누었다. 만남 전에 보내온 사연을 살펴보니 참여자 모집의 어려움, 예산 관리의 실패, 기대에 못 미치는 만족도 등 실패의 모양은 가지각색이었다. 각자의 실패에서 알리바이(해석과 제언)를 찾아 ‘그럼에도 불구하고’로 시작하는 훗날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기 위해 이선옥, 임상빈, 제환정 편집위원이 머리를 맞대었다.
지원사업에 떨어지면 실패인가요?
첫 번째로 이제 막 입문한 문화예술교육가의 지원사업 공모 실패담이 소개되었다. 계속되는 지원사업 낙방에도 문을 두드리겠다는 선생님의 용기에 현장의 모든 이들이 다정한 응원의 눈길을 보냈다. 입문자든 경력자든 많은 이들이 지원사업 공모에 떨어져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현장의 또 다른 사연자는 여러 선생님과 협업하며 새벽까지 기획서를 썼지만 결국 탈락의 고배를 마셔야 했던 경험을 소개하였다. 그러나 상실에 머무르지 않고 다른 기관의 공모에 지원하여 합격하였으며, 현재는 14년 동안 단체를 운영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편집위원 역시 지원사업 공모에 떨어져 본 경험을 털어놓으며 실패에 면역을 기르는 방법을 공유했다.
문화예술교육사 자격증을 따고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면접을 볼 때마다 낙방하고 심지어는 서류 심사에서 떨어지는 경우도 있었는데요. 그럴 때마다 나는 부족한 사람인가, 때가 아닌 건가, 많은 생각과 의문이 들어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첫술에 배부를 수 있냐’는 말을 되뇌며 꿈을 이루기 위해 여기저기 문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문화예술교육에 입문하는 사람을 위한 조언과 앞으로의 성장을 위한 꿀팁을 얻고 싶습니다.
– 양○○ 문화예술교육가(연극분야)
제환정
사실 저도 면접에서 많이 떨어져 봤습니다. 그러면서 실패와 쪽팔림, 가짜 실패를 구분하는 분별력이 생겼어요. 이것이 정말 실패인지, 창피함을 실패라고 착각한 것은 아닌지 구분하는 겁니다. 저는 이제 쪽팔림에는 지지 않는 근력이 생겼습니다. 저 역시 앞으로도 거절당하는 일이 많을 것입니다. 그때마다 좌절하지 말고, 쪽팔림에 지지 말자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이선옥
공공지원 영역에서 심사를 주관하는 입장에서 말씀드리자면, 정해진 레퍼토리보다는 나만의 서사를 만들어 보세요. 이전에 시도했던 것을 계속해서 의미화하고 서사를 만들어 가다 보면 분명 다른 기회가 찾아올 것입니다.
참여자가 적으면 실패인가요?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해 본 사람이라면, 수업에 아무도 오지 않을까 봐 가슴 졸이며 수시로 접수 페이지의 새로고침 버튼을 눌러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연극 분야 문화예술교육가로 활동하는 정○○ 독자 역시 신청자 수로 인한 고민을 털어놓으며 회복 요청을 보냈다.
몇 개월간 프로그램을 개발했는데 아무리 홍보해도 신청자 수가 0명일 때 너무 괴롭고 힘듭니다. 본질을 생각하며 다시금 도전하고 실행하고 있습니다. 회복될까요? – 정○○ 문화예술교육가(연극분야)
임상빈
프로그램, 작업 활동, 교육 활동을 분리하여 다 다르다고 생각하면 하나하나 다 일이 되고 신경이 쓰입니다. 이 세 가지 일이 하나라고 생각해 보세요. 일과 작업에 재미를 가지고 하다 보면 또 다른 가치와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신의 세계를 찾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정신승리가 될 것 같습니다.
제환정
저도 신청자가 0명이거나 당일에 참여자가 오지 않는 등 비슷한 경험을 해봤어요. 그때 저는 밖으로 나가서 참여자를 모집했습니다. 내가 열심히 만든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길에서 참여자를 모집하는 것이 부끄럽지 않았어요. 그러면서 참여자 수와 상관없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발생하더라고요. 숫자를 나의 성적표로 받아들일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문을 열고 나가 어떤 식으로든 사람을 모으고 소통하는 방법을 다르게 해보세요.
이선옥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모두 비슷한 고민을 하실 것 같아요. 저는 지금 어린이 도서관에 근무하는데, 아이들이 도서관에 오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늘 고민입니다. 어제는 회의하다가 탕후루 이야기까지 나왔어요. (웃음) 과일을 먹게 하려고 겉에 달콤한 설탕 코팅을 해야 한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홍보 타깃과 홍보 메시지를 어떻게 개발할 것인가도 굉장히 중요한 것 같습니다.
수업 거부자가 있으면 실패인가요?
한편, 참여자가 몇 년 동안 수업을 반대한다는 사연도 있었다. 노인 대상 그림 수업을 기획하였으나, 여러 이유로 그림 그리기를 거부하는 ‘반대파 할머니’가 생겼다는 웃픈(?) 사연에 여기저기 웃음이 터져 나왔다. 열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2년 동안 적극적으로 어르신들을 달랜 결과, 3년 차에는 어르신들이 조금 변화한 것 같다며 꾸준함을 정신승리 방법으로 소개했다.
어르신들의 추억을 그림과 글로 담는 수업을 기획했습니다. 막상 수업을 시작하니 어르신들이 그림을 그려본 적이 없어서 붓을 잡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글을 모르는 걸 알리고 싶지 않아 하는 등 여러 이유로 수업을 거부하였습니다. 대상을 알아가기 전에 기획했던 수업이라 첫 1년 차에는 이룰 수 없는 것이 많았습니다. 몇몇 할머니들은 3년 차까지 그림 수업을 열렬히 반대하셨습니다. 그래도 어르신들을 꾈만한 것들을 매번 들고 가서 적극적으로 달랜 결과 2년 만에 조금 달라진 것 같습니다. – 황○○ 문화예술교육 기획자
제환정
상대방이 동의하지 않았더라도, 액션과 리액션이 오갔다는 것 자체로 의미가 발생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파킨슨병 환자와 무용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예술가는 항상 참여자들에게 많은 활동을 하지 못하더라도 그냥 이곳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질문자님이 3년 동안 계속 실천하고 계셨다고 하는 것에는 이런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선옥
어르신들도 그렇지만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을 겁내는 아이들도 많습니다. 조금만 삐끗해도 망했다며 보여주지 않죠. 그럴 때마다 아이들에게 이곳은 마치 정거장과 같아서 언제든지 와서 수정할 수 있다고 말해줍니다. 시작과 끝이 정해진 일이 아니라 완료하지 않아도 괜찮다고요. 참여자와 실행자가 상호작용하면서 계속 격려하는 것입니다. 대상의 다양한 환경을 처음부터 모두 알고 계획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죠. 그래서 시행착오가 중요합니다. 사연 속 할머니께서 3년 동안 반대할 정도면 한편으로는 적극적으로 하고 싶어 하는 마음도 있었던 것이 아닐지 싶습니다. 그분들까지 울타리 안으로 초대할 수 있는 경험이 쌓이면 더 수용적인 수업을 하실 수 있을 것 같아 기대됩니다.
공공지원에 의존하면 실패인가요?
한 문화예술교육 기획자는 지역문화재단에서 근무하던 시절 사업담당자로서 겪었던 고민을 꺼내어 놓았다. 고민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지만 “이전의 실패(오롯이 실패라고 할 수 없는)가 없었다면 또 다른 대안적 걸음을 시도할 이유도 용기도 없었을 것”이라며 “정책이나 돈보다 생명과 관계를 중심으로 삶을 가꾸어 나가는 중”이라 했다.
문화재단에서 근무하며 ‘시민주도’ ‘자생력 강화’를 목표로 사업을 운영했었습니다. 그러나 1년 단위의 공모사업, 수익사업 금지, 형식적 역량강화 교육과 네트워크 등으로 인하여 오히려 예술교육단체의 재정적 의존도를 높이고 성과를 가로챘던 기억이 있습니다. 예술교육도 공공재원의 의존도가 높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이 문제는 아직도 풀지 못한 숙제로 남아있습니다. 비슷한 고민을 하셨거나 좋은 대안이나 사례를 알고 계시면 나눠주세요. – 박○○ 문화예술교육 기획자
이선옥
저는 공공영역에서 20년 넘게 일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질문자님과 비슷하게 내가 하는 일이 정말 현장에 의미 있고 효과가 있는지 끊임없이 고민했습니다. 저는 현장에 방문하여 예술교육의 성과와 영향력을 직접 경험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공공영역에 있더라도 늘 그 감각을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공공조직에서 일하다 보면 외로운 순간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동료들도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을 거예요. 동료들과 고민을 나누면서 작게라도 구멍을 뚫을 방법을 찾아보세요.
나만의 돌파구를 찾아서
초등학교 교사인 양○○ 독자는 힘들 때 기댈 수 있고, 때로는 용기를 얻을 수 있는 돌파구로 여행을 꼽았다. 누적된 업무 스트레스로 휴식기를 가지고자 떠난 여행길에서 접한 문화예술이 큰 힘이 되었다며, “일상에서 더 가깝게 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미래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실패의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선 일단 잘 회복해야 한다. 숨 쉴 구멍 마련하기, 나와 동료를 잘 돌보기, 관철의 기술 익히기 등 건강하게 문화예술교육을 이어갈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오갔다.
이선옥
공공지원 조직은 실패를 막아주는 아주 촘촘한 제도와 규제가 많아서 사실 저는 크게 실패한 적이 없습니다. 아주 혁신적인 걸 하기도 쉽지 않고 완전 폭망하기도 쉽지 않아요. 뭔가 해보려고 했다가 좌절하기도 하고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생각이 들어 지칠 때도 많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의 비빌 구석은 도서관이었어요. 스티브 킹의 글 중에 ‘모든 방법이 실패하면 포기하고 도서관에 갈 것’이라는 말이 있거든요. 여러분도 나만의 비빌 구석을 만들어 보셨으면 좋겠어요.
제환정
우리 사회는 예술가가 자신을 가혹하게 다루는 것을 매우 당연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쇼가 계속되려면 넘어져서도, 흔들려서도 안 돼’ 이런 생각이 우리에게 내면화되어 있어요. 하지만 끝없는 경쟁이나 노력을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매번 기대치에 부응하려 애쓰기보다 자신을 조금 덜 착취하면서 예술 하면 좋겠습니다. 행복한 예술교육가가 좋은 예술교육을 하고, 그래야 진정한 예술교육의 의미가 공유되고 확산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 자신에게 덜 가혹하고 동료에게 더 관대해지면 어떨까요?
임상빈
우리가 키워야 할 역량 중의 하나는 ‘싸움의 기술’이라고 생각합니다. 싸움의 기술 중에는 버티기도 있지만, 나를 가시처럼 뾰족하게 만드는 것도 있습니다. 나의 의지를 조금이라도 관철하기 위해선 결국 목소리를 내야 하고 불편한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나아갈 의지나 용기가 없으면 수동적으로 되는 것 같아요. 조금은 못돼지기를 바랍니다. (웃음)
누군가의 실패에 나의 과거를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이다가, 누군가의 실패에는 약간의 유머가 느껴져 저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온다. 모두가 고군분투하며 처절히 실패하고 있음에 마음 한구석이 어쩐지 든든하기도 하다. 씁쓸한 실패담이 달콤한 성공담보다 마음을 울리는 이유는 모두가 비슷한 실패의 경험을 공유하고 있어서가 아닐까. 때론 나의 실패(어쩌면 실패가 아닌)에 공감하고 연대하는 이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위안을 얻는다. ‘아르떼365 매거진토크’가 그런 위로와 용기를 주는 자리가 되었길 바란다.
위로가 되는 문구들이 몇몇 있네요 좋은 취지의 행사가 열리고 또 그 내용을 전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실패를 주제로 하나의 성장 이야기를 풀어가는 시간이 참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기획 자체가 넘 좋네요 ㅎ
실패가 있다면 그다음은 성공이 기다리고 있겠지요. 공감 되는 글이 많은 거 같아서 감사합니다 .
버틸 땐 버티고, 기댈 땐 기대며, 좀 더 행복하게
아르떼365 매거진토크: 실패의 알리바이
공감이 갑니다
버틸 땐 버티고, 기댈 땐 기대며, 좀 더 행복하게
아르떼365 매거진토크: 실패의 알리바이
기대만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