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내게 성공의 반대말은 실패가 아니라 포기나 중단이다. 실패는 성공에 이르는 과정이자 성장이나 변화의 계기가 되기도 한다. 성공은 어느 시점에 어떤 잣대를 들이대느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수도 있으니 이 또한 절대적 기준은 아니다. 성공이 현재가 축적된 미래라면 실패는 과거다. 과거, 현재, 미래 중에 내가 어찌해 볼 수 있는 건 오직 현재뿐이다. 그래서 실패는 성공을 위한 디딤돌이기도 하다.
실패했다, 그러나
20여 년 전 서울에서의 활동을 정리하며 생면부지의 땅 평창으로 옮겨왔다. 그럴듯한 전원주택이나 근사한 사업 공간이 준비된 것도 아니고 누가 환영해 준 것도 아니다. 수중에 가진 돈은 기백만 원, 간신히 찾아낸 곳은 산골 한복판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폐교. 이렇게 평창으로 온 이유는 요즘 이야기하는 번 아웃과 가벼운 뇌경색을 동반한 비만. 그러니 일단 시작은 건강관리의 실패에서부터였다.
기본적인 환경을 만들기 위해 자비로 교실 한 칸을 원룸처럼 고치고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처음 해보는 산골 마을 생활은 모든 것이 재미있고 보람 있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도지사님이 찾아온 후, 군청이 폐교를 매입하여 위탁경영을 맡기고 훌륭한 건축가와 리모델링하게 되었다. 학교의 원형은 살리되 전체를 유리로 덮어 건물 안의 건물을 만들고 싶었다. 그러나 갑자기 생긴 예산이 크지 않았던 관계로 앞면만 달랑 씌우게 되었다. 그러니 건축적 구상은 시작부터 실패다. 그러나 이는 열악한 건물과 저예산의 난제를 극복한 창의적인 발상으로 평가받아 건축 분야의 관심을 끌고 많은 곳에서 찾아주었다.
이제 그릇을 갖추면 음식을 채워야 하는 법. 수익이냐 공익이냐의 갈림길에서 공익을 택했다. 장기적으로는 공공적 성격이 오히려 고부가 가치를 창출할 것이라는 믿음에서였다. 건물주인 군청에 내는 돈도 없지만 받는 돈도 없는 구조라서, 경상비, 사업비, 인건비, 광열비 등을 다 부담해야 하니 손익계산으로는 적자이니 경영상 실패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장부상의 적자, 차근차근 대차대조표의 자산을 늘려나가기 시작했다. 마을과의 관계에서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 거리를 유지하며 실질적인 혜택을 결과적으로 마을이 돌아가게 되도록 했다. 마을은 훨씬 더 큰 사업이나 정부 지원의 기회가 있었다. 내가 가진 자산과 역량이 발휘되었으면 했으나 공공사업의 난맥상과 의사결정 구조 그리고 주민의 동상이몽으로 인해 감자꽃스튜디오의 축적된 자산이 마을로 녹아들어 가지는 않았으니 이 또한 실패다.
그러나 이것이 나에게는 공동체의 본질을 이해하고 많은 리스크를 체감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런 경험은 교육이나 자문이라는 영역에서 현실적 조언을 하는 무기가 되어 많은 이들에게 실질적인 힘이 되었다. 로컬이나 커뮤니티 뭐라고 불리던 허울 좋은 구호나 이상적인 장밋빛 청사진이 아닌 사람의 선한 의지와 탐욕을 동시에 읽고 지역의 잠재력과 함께 한계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성공의 가능성이 높은 계획을 할 수 있게 했다.
감자꽃스튜디오에서 만난 청소년과 후배, 주민, 청년을 위해 큰 노력을 했다. 자식이어도 이럴 수 없으리라 생각했다. 대학을 보내기도 하고, 일할 기회를 주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많은 좋은 이들과 연결하고, 창업할 때 지원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이들이 감자꽃스튜디오의 물리적 자산을 기반으로 지역에서 시즌 2를 열어가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결국 아무도 남지 않고 각자가 원하는 곳에서 독자적 길을 걸어갔으니 공간 운영의 직접적 세대교체에는 완전 실패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를 통해 지역 청년들은 독립된 창업가의 길을 걸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감자꽃스튜디오 공간은 생활문화센터로 바뀌어 보다 직접적인 주민의 일상 공간으로 변모했다. 음악, 미술, 국악, 문학, 무용 등 다양한 찐 로컬의 예술가와 주민 동아리의 둥지가 되었다. 감자꽃스튜디오는 이제 오히려 물리적 공간의 이름이 아니라 콘텐츠와 네트워크의 브랜드가 되었다. 오히려 시설의 운영과 관리의 굴레에서 벗어나 그동안 쌓은 경험과 역량을 바탕으로 더욱 미래 지향적이고 글로벌한 활동의 기반으로 거듭나고 있다.
마지막으로 내 인생 로망이었던 러시아 시베리아를 오가다 어떤 계기로 그 지역 대학의 교수가 되었다. 감자꽃스튜디오를 지역의 문화기관에 잘 이양하고, 환갑이 되기 전 50대의 마지막에 광대무변한 환경에서 마음껏 놀아보고 싶었다. 그러나 출국이 예정되었던 해 코로나로 인해 느닷없이 입국이 막혀 2년간 모든 수업은 온라인으로 대치되었다. 작년에는 ‘드디어 가나 보다’ 했더니 전쟁이 터져 더 어려워졌다. 나의 원대한 해외 진출 계획은 그야말로 최악의 실패가 된 것이다.
그 대신, 이 기간 동안 자유로워진 상황에서 국내를 더 촘촘하게 다닐 수 있게 되었다. 하루도 같은 장소가 없는 생활이 이어졌다. 특히 어느 지역에 출장 갈 때 미리 도착하여 그 지역의 산을 오르는 루틴이 생겨 누적된 정상과 봉우리가 200개가 훌쩍 넘었다. 이는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콘텐츠가 되었다. 산은 지역의 역사를 담은 이야기의 보고(寶庫)다. 지역의 이해가 더 깊어지고 내게는 로컬 콘텐츠 기획의 원천이 되었다. 덩달아 몸도 더욱 튼튼해졌다. 인생 노화의 가장 결정적 전환점이라는 환갑을 선제적으로 대처하는 결과를 낳았다.
실패는 과정이다
사업을 하는 일은 산을 오르는 일과 매우 닮아있다. 정상에 오르는 것을 성공으로 본다면, 포기가 곧 실패다. 중단하지 않고 꾸준히 묵묵히 오르다 보면 언젠가는 정상에 도달하게 되어있다. 가끔 정상에 오르지 못할 때가 있다. 날씨, 시간, 체력 등 이유는 다양하다. 그런데 절묘하게도 그런 산은 험산준령(險山峻嶺)이 아니라 야트막하고 만만한 산들이다. 쉬운 일에 더 실패가 많은 법이다. 그러니 원인을 분석하고 반드시 다시 오른다.
돌이켜보면 나에게 삶의 길목마다 다가온 “실패”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었다. 이는 성장과 도약 그리고 변화를 가능하게 했으며 현실 인식의 계기가 되었다. 성공이 어느 시점에 내리는 평가가 아니라 성실한 과정의 축적이라면, 실패는 일종의 잔근육을 만드는 일이어서 쉽게 소멸하지 않는 에너지원이 된다. 결국 내게 실패는 성공과 부등식이며 미래를 위한 풍요로운 자산인 것이다. 나는 오늘도 포기하지 않고 나의 하루를 시작한다. 또 어떤 실패가 올지 기대된다. 그래도 어쨌든 실패가 오기 전에 두려운 것은 마찬가지다.
이선철
이선철
예술경영인이자 문화기획자. 감자꽃스튜디오의 대표이며 연세대, 국민대, 경희사이버대, 야쿠츠크 북동연방대 겸임교수로도 재직 중이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6기 이사, 2기 문화예술교육 종합계획 수립 추진위원, [아르떼365] 편집위원이다.
potatostudio@naver.com
사진제공_이선철 감자꽃스튜디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