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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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찰하고 실천하는 시민으로 살아가기 위하여

문화예술교육과 사회적 상상력

문화예술과 문화예술교육은 단순한 개인의 취미, 여가 활동을 넘어, 사회적 가치가 전수되고, 사회 계층이 융합하며, 공동체의 정체성이 형성되는 중요한 사회적 장이다. 사실 문화예술의 긍정적인 효과, 지역과 사회의 상징성과 매력의 원천이며, 시민의 창의성, 정체성, 소속감 등을 불어넣고, 사회·경제적으로 지속 가능한 발전을 추동하는 점에 대해서는 크게 논란의 여지가 없지만, 문화예술교육의 효과에 대해서는 아직 활발한 논의가 진행 중이다. 이 글에서는 문화예술교육의 사회적 영향에 대해서 간략히 살펴본다. 문화예술교육은 단순한 기술 습득이나 일자리 창출의 도구가 아니라, 개인의 창조적 역량을 형성하고 사회적 관계 능력을 기르는 전인적 교육이다.

거울에 비친 대화, 창 너머로 던지는 질문

책으로 읽는 문화예술교육

“상상은 지식보다 중요하다. 지식은 경계에 갇히지만, 상상은 세계를 두루 품는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말은 문화예술교육이 지난 스무 해 동안 지켜온 길을 새삼 환기한다. 감각한 세계를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는 힘, 현실의 경계를 넘어 미지의 가능성을 그려보는 능력은 인류의 가장 고유한 본질이다. 지난 20년 동안 문화예술교육은 이 상상을 바탕으로 서로 다른 삶들을 이어주며, 사회의 감수성을 조금씩 바꾸어 왔다. 정책 20주년을 맞아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은 두 권의 기획도서를 펴냈다. 『미적 인간을 위한 스무 개의 대화사전』은 오래된 화두를 돌아봤고, 『미라클 퀘스천』은 앞으로 마주할 질문을 탐색했다. 한 권은

제각기 동등하게 서로를 지탱하기

‘사월의 들판’이 질문하는 관계와 공동체

“대학원을 졸업함과 동시에 결혼했는데 결혼과 함께 맞이한 한국 사회의 가부장적인 태도는 여성을 바로 하위 위치로 강등시키더군요. 뭐든지 최초의 경험은 강렬하지만 그 현상에 대한 스스로의 대처는 참 미숙합니다. 이 경험은 새로운 환경에서 겪게 되는 여러 부류의 사람들의 현실을 바라보게 했어요.” – 이선민 사월의 들판 대표·사진작가 예술단체 ‘사월의 들판’ 대표 이선민 작가는 자신의 작업 방향성이 생산되던 시기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한국이라는 사회에서 결혼은 여성에게 있어 자신이 익숙했던 가족 공동체와 떨어져 타자의 새로운 공동체로 편입됨을 뜻한다. 그와 동시에 새로운 공동체가 지닌 구조나 가치,

나무가 모여 숲을 보듯, 숲이 나무를 이해하듯

책으로 읽는 문화예술교육

‘미시사(微視史)’와 관련한 책을 추천해달라는 요청을 받은 순간, 마치 드론이 촬영하듯 나무에서 시작해 숲으로 시야가 확장되는 장면이 떠올랐다. 문화예술 분야에서 활동하는 독자들에게 현장은 곧 삶이 펼쳐지는 다양한 공간이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그들이 지나온 시간을 통해 자연스레 시대의 흐름을 감지한다. 한 사람을 들여다보는 것은 단순히 개인의 삶을 바라보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시대적 맥락 속에서 그를 해석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나무를 살피는 미시사와 숲을 바라보는 거시사(巨視史)를 함께 다루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특히 예술은 늘 인간의 경험을 포착하고 재구성하는 행위이자

불확실한 길 위에서 함께 걷는 법

‘움직이는 세상’이 가만히 들여다본 세상

세상은 도통 알 수가 없다. 사람의 욕심은 어째서 끝이 없는지, 마음은 왜 이토록 허무하게 변하는지, 무슨 기준으로 누구는 살고 누구는 죽는 것인지. 세상은 이해할 수 없는 것들로 가득한데 우리는 여지없이 어리석고 허약하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쉽게 답을 내리기 힘든 질문 앞에서 영화 <벌새>(김보라, 2018)의 대사를 떠올린다. “힘들고 우울할 때 손가락을 봐. 그리고 한 손가락 한 손가락 움직여. 그럼 참 신비롭게 느껴진다. 아무것도 못 할 것 같은데 손가락은 움직일 수 있어.” ‘움직이는 세상’의 시선은 천천히 움직이는 손가락 사이에 머문다. 세상을 신비롭고

경계에 구멍을 뚫고 틈을 벌리는 공동공간

책으로 읽는 문화예술교육

장소와 공간에 대해 지금보다 더 예민해진다면, 더 많은 공동공간이 있다면 우리는 더 좋은 사회에 살 수 있다. 이런 생각을 가지며 공간을 간절히 욕망하기 시작하였을 때는 10여 년 동안 살던 시골을 떠나 다시 도시로 돌아온 8년 전이다. 다시 도시에 살게 된 그때 나를 압도하는 느낌은 불행하게도 답답함과 무력감이었다. 생계를 위해 할 일이나 직장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이내 나를 사로잡는 답답함과 무력감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도시는 공간이 부족했고, 관계는 단절되어 있었고 시간은 부서져 있었다. 도시에서 내가 하고 싶은 활동을 자유롭게 할

아무것도 아닌 사이, 얽히고설킨 든든한 사이

김중미 작가·기찻길옆작은학교 큰이모

‘공동체’는 문화예술교육 활동에서 빠질 수 없을 만큼, 오랜 기간 교육의 핵심이 되어온 키워드다. 팬데믹 이후 급속도로 파편화되어 가는 사회 속에서 함께 노는 법을 모르는 아이들, 눈을 마주치며 이야기하는 게 불편한 아이들, 스마트폰에 코를 박고 길을 걷는 아이들이 점점 늘어났다. 점점 공동체를 경험하기 어려워지고 있는 요즘, ‘동네의 공부방’이자 ‘함께 노는 놀이터’이자 ‘칙칙폭폭 인형극단’으로 활동하고 있는 인천시 만석동 ‘기찻길옆작은학교’는 요즘 세상에 만나기 어려운 ‘찐’ 공동체다. 1987년 ‘기찻길옆아가방’으로 시작해 1988년 ‘기찻길옆공부방’, 그리고 2001년 강화도에 농촌공동체를 만들며 새로운 ‘강화공부방’이 생겼고, 만석동 공부방은 ‘기찻길옆작은학교’(이하 기찻길)로

공감의 공간에서 배움을 교환한다

손한샘 예술장돌뱅이 대표

예술장돌뱅이. 이효석의 단편소설 『메밀꽃 필무렵』이 떠오를 법한 이름을 지닌 이 단체는 시장, 축제, 그 밖의 행사에 가판을 차리고 장돌뱅이가 그렇듯 상인처럼 고객을 응대한다. 그러나 이 만남에서는 판매 대신 교환이 있다. 예술가 각자의 방식으로 마련한 예술적 교환이 벌어진다. 이 등가 교환은 퍽 공정해 보인다. 예술가도, 마주 만난 이들도 다들 신나 보였다. 그래서 늘 신기했고 그래서 낯설기도 했다. 지나고 보니 예술장돌뱅이가 걷고 앉은 자리에서 멀지 않게 있었다. 그래서 손한샘 예술장돌뱅이 대표에게 던진 질문들이다. Q. 외부자의 시선에서 예술장돌뱅이는 예술생태계에서 낯선 존재들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단단하고 유쾌한 모색은 끝없다

2023-2024 문화예술교육 결산과 전망③ 2024년 전망과 다짐

코로나19 비상사태가 3년 4개월 만에 해제되고 일상 회복과 함께 문화예술교육 현장도 빠르게 회복되었다. 생성형 인공지능(AI)의 등장과 보급, 기후위기와 전쟁 등 큰 사회적 변화와 문제, 사건이 연속되며 그 안에서 예술, 예술교육의 방향과 역할을 찾아가는 해이기도 했다. 예술교육가에게 겨울은 쉼 없이 달려온 한해를 돌아보며 함께한 이들과 성과를 나누고 다음을 준비하는 기간이기도 하다. 2023년을 마무리하며 올 한해 [아르떼365]가 만난 전문가들과 함께 새로운 변화에 대응하며, 고민하고 실천했던 한해를 되짚고 새해를 전망해보았다.   ① 2023년 나를 움직인 것은    ② 2023년 이슈와 평가    ③

예술이 꽃을 피워 알찬 열매를 맺기까지

속리초등학교 예술꽃 씨앗‧새싹학교 6년의 성과

추석을 앞두고 가을 색이 완연한 어느 날, 노란 들판을 지나 속리산 자락 법주사와 정이품송을 향해 난 길로 한참을 따라가니 작고 아담한 초등학교가 보인다. 1930년 개교하여 93년 역사를 자랑하는 속리초등학교다. 오늘은 월요일, 전교생이 다 함께 뮤지컬 수업하는 날이라 여울마루(강당)가 떠들썩하다. 속리초등학교가 만든 창작 뮤지컬 <1893.보은의 봄> 연습이 한창인데, 사또와 양반 역을 맡은 2학년 동생들이 숨바꼭질하는 동네 꼬마 역할을 하는 6학년 언니들에게 시끄럽다며 혼구녕을 낸다. 성별도 나이도 개의치 않는 젠더프리(gender-free)에 에이지프리(age-free) 캐스팅이다. 괜히 거들먹거리며 훼방을 놓는 사또와 양반들에게 동네 꼬마들은 양반이니 평민이니

지역 사는 즐거움에 흠뻑 빠지고 싶다면

예술로 365길④ 지역문화창작공간 둠벙

지역문화창작공간 둠벙 이용안내 충북 옥천군 옥천읍 삼금로1길 10, 1층 평일 12:00~18:00, 토요일 12:00~17:00 043-732-8116 인스타그램 @doombung_grs “우리 지역 청소년 갈 곳 없다.” 1989년 9월 30일 [옥천신문] 창간호 1면 기사 중 일부다. 어린이와 청소년이 우리의 미래라고 이야기하면서도 정작 이들을 위한 공간이나 활동은 담보되지 않던 시절, 이를 걱정한 지역사회의 감각이 꽤 오래전부터 벼려져 왔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이 같은 문제 제기에 그 후속 조치도 일찍이 실행됐을까? 잊을만하면 한 번씩 신문 지면에 오르내리던 청소년 문화 향유에 대한 염려 어린 기사는, 정작

정답 없는 질문을 품고, 살아있는 경험을 담아

예술가의 감성템⑦ 나무, 요리, 공동체

손바닥 너비의 작은 책으로부터 시작된 계기였다. 그 책은 우연히 눈앞에 나타나 예술이 주는 즐거움만을 추구하던 나에게 멈추어 생각해 볼 질문을 던져주었다. 1902년 독일, 카푸스라는 열아홉 살의 젊은 학생은 입대를 앞두고 대시인 릴케에게 자신이 쓴 시를 보내며 비평해 줄 것을, 자신의 앞날에 대한 조언을 청한다. 그리고 릴케는 답장을 보내온다. 이렇게 시작된 서신 왕래는 1908년까지 이어졌고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는 문학도들뿐 아니라 수많은 젊은이에게 영감을 주었다. 편지라는 형식은 당시 나에게 마음속 뒤편으로 미뤄두었던 답답함과 굳이 끄집어내어 고민하고 싶지 않던 현실의 상황을 살피는데

규칙을 넘는 유연함, 도전과 확장의 감각으로

‘지금 여기’의 예술교육을 준비하며

얼마 전 코로나에 확진되었다. 검사 결과를 보자마자 드는 생각은 ‘(심각하게) 아프면 어쩌지’가 아니라 ‘잡혀있는 모든 일정은 어떻게 하지?’였다. 경제적 손실뿐 아니라 그동안 애써온 모든 것이 단 일주일 만에 사라질 것 같은 두려움이 엄습했다. 모든 예술가, 예술교육가들이 겪는 두려움일 것이다. 실로 어마어마한 두려움이다. 기후 위기의 중심에 선 예술교육 모두가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예술교육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묻는다. 새로운 대면의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고. 그러나 나는 분명히 말하고 싶다. 여전히 코로나의 중심에 우리가 있다고. 여전히 감염과 격리와 그에 따른 손실을 두려워해야 하고 변해버린 환경에서

인식의 포문을 여는 ‘도입 장인’

아트로협동조합의 문화다양성 활동

충북 청주를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아트로협동조합(이하 아트로)은 ‘일상 속 문제를 문화예술로 해결하고자 다양한 문화예술(교육) 활동을 한다’라는 모토가 있다. 그런데 이 문장은 딴지 걸 거리가 될 수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기도 한단다. ‘뭔데 어떻게 해결을 해?’ 이런 약간의 논쟁적 뉘앙스 말이다. 그래서 그들 간에 이 모토를 두고도 치열한 토론이 있었다. 참고로 아트로 조합원들은 대표로서 각각의 역할을 동등하게 하고 있으며, 토론을 즐긴다. 아트로에 생기는 각종 이슈마다 각자 최선의 논리로 대화하고, 그 과정에서 의견의 타협과 스스로에 대한 성찰의 시간을 갖기도 한다. 누군가는 ‘해결’이라는 단어를

문화적 자부심을 넘어 세계시민으로서의 인권 감수성으로

다음 세대를 위한 문화다양성

지난 5월 21일은 UN이 정한 ‘세계 문화다양성의 날’이었다. 2002년 57차 UN 총회에서 세계 각국의 다양한 문화적 가치를 높여 전 세계 인류가 직면한 문화의 획일화, 상업화, 종속화에 대응하고 아울러 다원적 가치를 상호 존중함으로 민족 간 갈등과 대립을 극복하기 위해 제정했다. 2004년 유네스코 사무총장 마쓰우라 고이치로는 문화다양성의 날 기념 메시지에서 “기본적인 인권인 문화다양성을 증진하는 것은 편견과 문화 근본주의를 반대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2001년에 제정된 유네스코 세계 문화다양성 선언 중 “누구도 국제법으로 보장하는 인권을 침해하거나 그 영역을 제한할 수 없다”라는 구절을 언급했다. 그러면서 “문화다양성을

누가 보호망이 있는 세계를 지을 것인가

회복과 전환의 시작점

아무도 몰랐다. 2020년 3월 ‘사회적 거리두기’가 처음 시작되었을 때 우리가 서로에게 닿을 수 없는 시간이 이렇게 길어질 줄은. ‘한 달이면 충분할 거야’란 막연한 믿음이 두 달이 되고, 반년이 되고, 한 해가 되고, 2년이 될 것이라고는. 시간의 흐름만이 아니다. 사람 사이도 그랬다. ‘잠시 떨어져 있으면 괜찮을 거야’란 믿음은 마치 오지 않는 고도를 기다리는 일처럼 되어버렸다. 타인의 현존을 잃은 예술가 그래도 우리는 나름 훌륭했다. 그 긴 사회적 거리두기 속에서도 서로를 보살피기 위해 노력했다. 마스크가 일상이 되었고, 온라인을 통해 오프라인에서 고립되어 외로워진 사람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