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 대륙 북서부 연안에 사는 원주민에게 겨울은 각종 의례를 행하는 축제의 계절이다. 코로나19만 아니었다면 아마 올해도 콰키우틀(Kwakiutl)이라 불리는 꽈꿔껴’왁(Kwakwaka’wakw), 틀링깃(Tlingit)과 하이다(Haida) 같은 혈족들의 마을에서는 ‘포틀래치(potlatch)’라는 이름의 의식이 대단한 규모로 개최되었을 것이다. 선물 혹은 ‘준다’라는 말에서 나온 포틀래치는 한마디로 하면 선물을 주는 잔치라고도 이야기할 수 있겠다. 노래, 춤, 가면극 등 다양한 요소로 이루어져 있으며, 결혼, 탄생, 입양, 죽음, 성년식 등 삶의 주요한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행해진다. 포틀래치라고 통칭하고 있지만, 북미 북서 연안의 다양한 혈족들은 각기 특색 있는 버전의 의례를 행한다. 이들은 포틀래치를 통해 각기 자신들이 물려받은 가면이나 노래와 춤을 포함하는 그들만의 삶의 철학과 방식을 드러내 즐기며 자랑한다. 그 과정에서 누가 땅과 재산, 사냥터나 어장에 대한 권리를 가지는지를 포함하여, 집단 내의 계급, 지위, 신분, 특권과 친족 관계 등을 확인한다. 의례의 끝은 선물을 주는 것인데 전통적으로는 모자, 담요, 구리, 가면, 가옥의 부속물 등 형태가 있는 선물뿐 아니라, 특정한 노래나 춤을 공연할 수 있는 권리나 동물 문장을 내걸 권리 등 무형의 자산을 포함하기도 했다.
독자 가운데 이런 내용을 이미 알고 있는 분들이라면, 아마도 인류학 강의에서 배웠거나 마르셀 모스의 『증여론』을 통해 배웠을 가능성이 높다. 포틀래치 같은 의례를 책으로 배우다보면, 연희적 성격이나 잔치의 성격도 강한 포틀래치를 증여와 관련된 너무 숭고하기만 한 주제로 만들어버리는 문제가 생긴다. 또 『증여론』이 발간된 1925년은 포틀래치가 행해지지 않던 시기이다 보니, 포틀래치에 대해서 아는 사람들조차 이 의례가 아직도 살아서 행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캐나다 정부는 1885년 포틀래치를 금지하면서 가면이나 예복 등 의례에 사용되는 물품을 모두 몰수하였다. 그러나 1951년 다시 허용되기 전까지도 비밀리에 행해지곤 했다. 그러다 적발되어 체포와 투옥, 몰수로 이어지기도 했지만, 명맥을 계속 이어올 수 있었고 원주민 권리 운동의 확산과 함께 포틀래치도 다시 살아났다. 적어도 북미 북서 연안 지역에서는 겨울철이면 포틀래치 소식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다른 전통문화와 마찬가지로 세대 간 전승을 걱정하고 변화된 삶과의 조화를 고민하지만, 분명 살아있는 원주민 삶의 일부분이다. 원주민도, 포틀래치도 여전히 살아있는 존재인 것이다.
‘코로나19’라는 팬데믹 사태가 일어난 올해에는 캐나다 원주민 사회에서도 유난히 질병 퇴치와 사람들의 안녕을 비는 굿판 같은 행사가 많다는 소식은 전해 듣고 있었다. 캐나다 방문이 언제나 가능해질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는 현실에 안타까워하던 중, 지난주 코로나19의 치유를 비는 포틀래치가 온라인으로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세 명이 주최로 나서서 각 신청자에게 30분씩의 시간을 주기로 하고 조직 작업을 하고 있었다. 한동안 못한 현지 조사를 할 기회다 싶어서 개최시간에 맞춰 한국 시각 새벽 4시에 접속하니, 사전 참석 신청자가 1천 명이 넘어 있었다. 나중에 주최 측 말로는 연 참석자가 1만 명에 달했다고 했다. 내가 보기엔 그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았지만, 개인별로 접속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 단위로 접속해서 대형 스크린으로 함께 보기도 하는 분위기였던 것을 보면, 1만 명이라는 말이 아주 허황된 것은 아닐 수도 있다.
아무튼 코로나19가 만들어낸 전에 없던 온라인 포틀래치는 성황리에 진행이 되었다. 포틀래치에 대한 소소한 기억을 공유하고, 좋은 공연에는 따봉을 쏘아 올리고, 함께 하지는 못하지만 각자 집에서 잔치 때 먹는 음식을 해 먹고 있는 사진을 게시물로 올리면서 온라인 포틀래치는 장장 13시간 반에 걸쳐서 진행되었다. 주로 밴쿠버와 밴쿠버 섬 인근 지역의 원주민이 주가 된 행사지만, 필자같이 주최 측이 상상조차 하지 않았을 불청객 손님도 끼어 있고, 세계 곳곳에 흩어진 원주민들도 참석하였다.
자발적 참여로 이루어진 행사다 보니 공연자마다 수준 차도 컸지만, 저마다의 춤과 노래, 이야기를 통해 코로나19 속에서 서로의 안녕을 빌고, 코로나19 희생자들을 애도하며, 병으로 가족이나 이웃을 잃은 사람들을 위로했다. 어려운 시기를 무사히 넘기고 있음에 감사하고, 살아있는 값을 하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서 노래하고 춤추고 이야기했다. 어린이 재롱잔치 수준의 공연도 끼어있었지만, 미숙함에 실망하기보다는 전통의례를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을 기쁘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듯 했다.
이 노래와 이 춤이 진짜 약이며, 내가 이 문화의 일부임이 자랑스럽다는 댓글들이 쏟아졌다. 사실 이번 포틀래치 며칠 전에는 원주민 공동체에서 신망이 높은 전통 카누 제작자의 친척이기도 한 젊은이가 감옥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있었다. 반년 전에 그의 친누이가 경찰이 쏜 총에 맞아서 사망한 사건 후에 연이어 일어난 일이다. 미국보다 형편이 낫다고 하지만 캐나다에서도 원주민들은 부당한 공권력에 노출되는 일이 잦고, 젊은이들은 차별 속에서 어려운 삶을 살아간다. 그런 구조적 폭력 속에서 자신이 원주민임을 인정하고 의례를 실천하는 행위는 원주민의 삶에 따르는 빛과 그림자를 모두 받아 안는 일이기도 하다.
온라인으로 자신들이 가진 재능으로 마음을 다해 바치는 13시간 반의 공연은 그래서 감동적이다. 노래와 춤을 나눔으로써 지금 여기 내가 살아있다는 것, 우리가 함께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며 동시에 코로나19 뿐 아니라 재난과 폭력 속에서 잃어버린 가족과 이웃을 기억하는 일이기도 하다. 정성스레 옷깃을 가다듬으며 서로를 위해 춤과 노래를 공양하여 나의 공연이 서로를 치유하는 약이 되기를 기원하던 남녀노소의 원주민들을 보니 뭉클해지면서, 지난 10월 우리나라 해남에서 만났던 코로나19 퇴치를 비는 마을굿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코로나19 속에서 서로의 안녕과 조상들의 평안을 빌던 굿판이 끝날 무렵 갑자기 반전되면서 후손이 없어 굿판에도 초대받지 못하는 ‘굶어 죽은 귀신, 빨치산 하다 죽은 귀신들’을 호명하여 위로했던 기억이 떠오른 것이다. 위로라는 것을 익숙한 사람들끼리 혹은 자격 있는 사람들끼리 사이에서만 주고 받는다면 그 의미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재난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재난의 경험 속에서 예술을 통해 이전에는 눈길을 주지 못했던 더 큰 우리를 발견하고 이어지는 귀한 경험을 하기도 한다. 코로나19를 버텨내야 하는 겨울, 그래도 여기는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세상임을 일깨워주는 예술적 경험이 많았으면 한다.
- 백영경
- 제주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저서로 『마스크가 말해주는 것들』 『배틀그라운드』 『프랑켄슈타인의 일상』(이상 공저), 역서 『유토피스틱스』 등이 있다.
paix@jeju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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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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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다가 상상하다가 괜히 뭉클해지네요. 예술적 경험이 주는 그런 감동을 글자들 속에서도 발견합니다. 마주하지는 못하지만 누군가와 함께 있고 마음을 같이 하고 있다는 경험이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곁에 있기를 , 우리가 그것을 찾기를 바래봄니다.
안녕하세요 김지연 독자님,
감동의 마음을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술의 힘이 참 대단하다는 걸 매 기사를 준비하면서 느끼는데요,
예술로 더 풍성한 내년이 되시길 바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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