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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보호망이 있는 세계를 지을 것인가

회복과 전환의 시작점

아무도 몰랐다. 2020년 3월 ‘사회적 거리두기’가 처음 시작되었을 때 우리가 서로에게 닿을 수 없는 시간이 이렇게 길어질 줄은. ‘한 달이면 충분할 거야’란 막연한 믿음이 두 달이 되고, 반년이 되고, 한 해가 되고, 2년이 될 것이라고는. 시간의 흐름만이 아니다. 사람 사이도 그랬다. ‘잠시 떨어져 있으면 괜찮을 거야’란 믿음은 마치 오지 않는 고도를 기다리는 일처럼 되어버렸다. 타인의 현존을 잃은 예술가 그래도 우리는 나름 훌륭했다. 그 긴 사회적 거리두기 속에서도 서로를 보살피기 위해 노력했다. 마스크가 일상이 되었고, 온라인을 통해 오프라인에서 고립되어 외로워진 사람들을

서로의 곁을 지키고 돌보는 소리와 진동

‘노래하는 옥수수’ 김주혜 음악가

구례의 겨울 아침, 맑은 공기와 밝은 볕을 품은 찻집에서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그는 별안간 커다란 배낭을 짊어지고 나타났다. 인터뷰가 끝나는 대로 3박 4일 일정으로 고창으로 향한다 했다. 농악에서 상모의 물채 끝에 새털이나 종이로 만든 장식인 부포를 달고 돌리며 펼치는 상모놀이를 배우러 간다는 거다. “다채로운 서식지에서 서로 다른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을 연결”해온 그의 예술 활동이 또 다른 길을 틔우는 듯했다. ‘노래하는 옥수수’라 스스로를 호명하는 김주혜는 “아름다운 노래, 정상적인 음악, 예술은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하며 성매매 여성과 노동자, 장애인 등의 곁을 지키며 여러 현장에서

공존을 모색하는 ‘약하고 꾸준한 연결’

책으로 읽는 문화예술교육

대부분의 현대인은 의뇌(義腦)를 가지고 있다. 손상된 신체의 연장으로서의 의수나 의족처럼 인간은 불완전한 뇌를 보완하기 위해 스마트폰이라는 의뇌를 장착하고 사이보그로 살아간다. 노화되어가는 생물학적 뇌에 비해 주기적인 신상 제품으로 교체되는 의뇌라는 신체 부속은 인간의 기억을 더욱 스마트하고 강력하게 보조해줄 것 같은 환상을 준다. 검색을 통해 뉴스를 제공하고, 소통의 네트워크를 강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상은 기억이 강화되는 게 아니라 소멸되는 경우가 많고, 소통이 아니라 알고리즘이 강화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의뇌를 통해 시대와 더 많은 경로로 접속하려 할수록 잠재적인 가능성의 관계는 상실되어 간다. 우리가 검색하는 정보는

예술은 어떻게 삶을 흔들고 갈망하게 하는가

빼뻘에서 마주한 예술의 질문

2018년 가을 한국전쟁과 기지촌을 주제로 한 작업을 지속해오던 당시 나는 고심 끝에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기지촌 여성의 몸을 소환하여 망자의 고통을 현재의 ‘나’ – 퍼포머가 입음으로써 기억해내는 영상작업 <몸, 부름, 말> 그리고 연결된 주제의 사진, 텍스트드로잉들을 조심스레 전시에 내놓았던 적이 있다. 단지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 단 한 사람의 특별한 서사가 아닌 한국 땅에 수많은 여성의 삶이라는 점, 그 고통이 현재로 연결되어 있음에도 제대로 문제해결이 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리서치와 현장 답사를 통해 인식해가면서 예술을 통해 내가 할 수 있는

거대한 전환의 설계도 속에서
문화적 진지를 구축하라

사회변혁과 교육 대전환

우리는 지금 일제 강점기, 분단, 전쟁, 가난, 군사독재를 뚫고 오늘의 G7, IT 강국으로 떠오른 대한민국, BTS로 상징되는 문화강국, 그리고 촛불 민주주의의 모범국으로 부상한 대한민국을 만나고 있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대한민국은 세계 어느 곳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어두운 나라의 이미지도 갖고 있다. 이렇게 ‘극에서 극까지’ 이른 양면적·이중적 성취는 그만큼 성공 피로도와 자기 착취도가 극도에 이르렀다는 증거이다. 자살율 OECD 1위, 산업재해 사망률 1위, 사회적 갈등으로 인한 비용 지출 3-4위권, 청소년의 학업 흥미도 최하위권, 기후악당 4대국 중 하나이고, 1인당 비닐 사용량 최대, 미세먼지

‘마을에서 일상적으로 자연스럽게’ 지속가능한 문화예술교육

기초단위 문화예술교육을 위한 확장과 연결

2020년 코로나 팬데믹이 전 세계를 덮쳤을 때 완주에서는 기초단위 문화예술교육에 관한 고민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복합문화지구 누에는 2015~2016년 문화체육관광부의 폐산업시설 문화재생 공모사업에 선정되면서 철거될 뻔했던 옛 호남 잠종장이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한 곳이다. 초창기에는 예술가 레지던시 공간으로 활용되었고 현재는 완주 문화예술교육의 거점으로 변모해 가고 있다. 목표와 방향 찾기 기초단위 문화예술교육 거점 구축 지원사업 공모를 준비하면서 스스로 던졌던 질문 – 군 단위 지역에서 문화예술교육의 자립이 가능한 일인가? 그럴만한 자원은 있는가? 기존 문화예술교육과 어떤 차별점을 둘 수 있을 것인가? – 이런 질문에 답을 찾아가는 일부터

둥글게 모여 만드는 따뜻한 결속

책으로 읽는 문화예술교육

『문화와 예술 마을을 만나다』는 마을에서 새로운 일을 하려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 봐야 할 좋은 지침서이자 따라 걷고 싶은 든든한 선배 같은 책이다. 이들이 어떻게 모여 무슨 일을 만들고 이뤄내는지 들여다보고 있으면 ‘공탁’이라는 드라마 한 편이 재생된다. 『문화와 예술, 마을을 만나다』(공유성북원탁회의, 민들레, 2020) 서로의 어미새가 되어 서울시 성북구에서 지속가능한 지역문화생태계를 만들어가는 ‘공유성북원탁회의(이하 공탁)’는 2012년 준비모임을 시작으로 2014년 자율적인 모임으로 공식화해 현재 3백여 명이 함께하는 지역 내 대표적인 민·민, 민·관 협치형 커뮤니티다. 공탁은 ‘동네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욕망으로부터 시작됐다. 처음엔 평소

골목의 일상, 그곳에서 시작되는 이야기

오픈스페이스 블록스의 시간과 경험들

2020년, 느닷없이 우리를 찾아온 거리두기의 시간은 해가 바뀌고도 여전하다. 만나지 않고 모이지 않아야 한다는 갑작스러운 시대적 요구 아래, 비대면과 언택트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문화예술교육 현장에 들이닥쳤다. 개념조차 생소했던 화상회의, 1인용 교육키트, 영상으로 제작한 프로그램과 원격교육 등 다양한 미디어를 활용한 여러 대안을 접하고 연구하며, 어떤 면에서는 문화예술교육 현장이 조금 더 다채로워졌는지도 모르겠다. 비록 그것이 우리 각자의 자유로운 선택이라기보다는 생존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수용이었을지라도 말이다. 이 과정에서 대면과 비대면, 만남과 거리두기에 대한 본질적인 고민이 대두되었다. 특히나 거점 공간을 세우고 유지하며, 대면과 만남을

함께 지구를 뒹굴며 돌보는 힘

기후 정의 창작집단 ‘콜렉티브 뒹굴’

콜렉티브 뒹굴(이하 ‘뒹굴’)을 처음 만난 곳은 화성이었다. 지구 밖, 화성. 2019년 뒹굴은 화성 탐사 로버에 관한 공연을 했다. 작품은 연극축제 ‘화학작용 4:오프-스테이지 편’에서 진행된 워크숍 공연 〈화성 탐사선, 오퍼튜니티〉에서 출발하여 서울프린지페스티벌 2019 참가작 〈오퍼튜니티〉로, 또 인사미술공간 “막간극” 〈오퍼튜니티: →→ort→→〉로 나아갔다. 로버들은 멸종에 처한 지구를 떠나 화성에서 새로운 희망을 개척하는 의무를 맡고 있다. 앞서 화성에서 묵묵하게 자신의 임무를 이어갔던 스피릿과 오퍼튜니티를 떠올리며 로버가 된 인간들은 뒤늦게 화성에 도착한다. 무의미한 동작의 반복과 끝을 알 수 없는 그들의 임무 사이에서 인간이 지금껏 쌓아온

우리 집 담장 너머 이웃을 향하는

삶을 전환하는 공간

간질간질 몸이 기지개를 켤 즈음이면 어김없이 따듯한 기억이 소환된다. 햇살 가득 번지는 어느 봄날, 엄마는 방바닥에 ‘봄의 빛’을 잔뜩 늘어놓았다. 엄마의 입을 빌려 재구성되는 그림 속 주인공들은 사랑이 되고, 그리움으로 피고, 아픔으로 걸리고, 경이로움이 되었다. 자라면서 삶의 곳곳에서 다시 만난 그것들이 명화라고 불린다는 걸 알게 되었다. 클로드 모네의 <수련(구름)>, 마르크 샤갈의 <나와 마을>, 칸딘스키의 원색의 도형과 선, 조르주 쇠라의 <그랑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 등, 색채의 조화를 다룬 화가들의 작품을 나는 그렇게 만났다. 엄마는 한낱 종이에 불과했을 그것들을 추억의 장치, 기억의

거침없이, 지역 중심 생태계를 향하여

[기획포커스] 지역의 발견과 궁리②

2018년 지역협력위원회 출범 이후 실질적인 지역 기반 문화예술교육 생태계를 만들어나가는 노력이 이어졌다. 특히 작년 코로나19라는 재난의 상황 속에서 문화예술교육의 근원적 성찰, 변화의 흐름과 요구가 더욱 가속화되면서 올해는 ‘지역 중심’ ‘생활권 중심’ 문화예술교육을 실천하기 위한 노력이 좀 더 구체화될 전망이다. 올 한 해 새롭게 변화하거나 지속되어야 할 예술·정책·현장의 흐름을 ‘발견’하고 ‘궁리’하기 위해 공모사업 심의가 한창 진행 중이던 지난 3월 초 17개 광역시도 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와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글 싣는 순서 : ① 관행을 깨는 용기와 도전 ② 지역 중심‧생활권 중심 문화예술교육

예술은 더 넓게 지역은 더 좁게

억압받는 사람들의 연극공간 해(解)

사당역 5번 출구에서 나와 첫 번째 골목으로 접어들면 치킨, 코다리와 황태, 횟집, 곱창, 카페 등 길 양편으로 도열해 있는 현란한 간판이 시야를 꽉 채운다. 자극적인 음식 냄새에 홀린 듯 10분쯤 걸으면 사당동의 소문난 맛집, 산오징어집이 나타난다. 그 건물 2층에 ‘억압받는 사람들의 연극공간 해(解)’(이하 ‘극단 해’)의 복합공간이 자리 잡고 있다. 보알시민연극학교 <우리집에 왜 왔니> 연극으로 억압을 드러내고 해체하다 극단 해는 토론연극(forum theatre)과 플레이백 씨어터(playback theatre), 두 개의 축을 중심으로 개인과 공동체의 건강과 긍정적인 성장에 기여하는 ‘촉매’로서의 연극 활동을 지향하며 작업해 오고

그래도 여기는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세상

코로나19를 치유하는 공동체 예술

아메리카 대륙 북서부 연안에 사는 원주민에게 겨울은 각종 의례를 행하는 축제의 계절이다. 코로나19만 아니었다면 아마 올해도 콰키우틀(Kwakiutl)이라 불리는 꽈꿔껴’왁(Kwakwaka’wakw), 틀링깃(Tlingit)과 하이다(Haida) 같은 혈족들의 마을에서는 ‘포틀래치(potlatch)’라는 이름의 의식이 대단한 규모로 개최되었을 것이다. 선물 혹은 ‘준다’라는 말에서 나온 포틀래치는 한마디로 하면 선물을 주는 잔치라고도 이야기할 수 있겠다. 노래, 춤, 가면극 등 다양한 요소로 이루어져 있으며, 결혼, 탄생, 입양, 죽음, 성년식 등 삶의 주요한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행해진다. 포틀래치라고 통칭하고 있지만, 북미 북서 연안의 다양한 혈족들은 각기 특색 있는 버전의 의례를 행한다. 이들은

민주주의와 공동체성을 위한,
발현하는 마을아카이브

예술교육과 기록

요즘은 ‘아카이브’라는 말이 일상적으로 쓰이고 있다. 대체로 유용한 자료, 문서, 사진, 영상, 파일 등과 같은 기록을 모아서 정리하고 활용하는 의미로 쓰이는 것 같다. 기록을 활용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아카이브를 기록물의 차원으로만 좁혀서 이해하면, 아카이브가 19세기 이래 민주주의를 위한 사회적 장치로 발달해왔다는 사실을 놓치기 쉽다. 국가아카이브에는 다음과 같은 스토리가 들어 있다. ‘정부는 기록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 모든 공공기관에 아카이브를 만들어 업무수행의 과정과 결과를 말이 아니라 기록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 공적 업무를 수행하는 공직자에게 행위의 증거는 기록이다. 이것이 우리 사회에 아카이브가

더 깊어지고 진해지는 감정의 교류

마당극패 우금치의 비대면 시대 생존기

명칭의 힘이었을까? 무거운 이름값은 그들이 섣불리 후퇴하지 않고 끝까지 ‘항전’하게 했는지도 모른다. ‘우금치’, 우리나라 연극, 마당극 계의 결코 작은 이름이 아니다. ‘우금치’는 공주에서 부여를 넘어가는 고개 이름으로 1894년 동학농민혁명 당시 농민군과 친일 관군이 최대 격전을 벌인 역사적인 곳이다. 마지막까지 항전하다 죽었던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을 이어받아 민족문화로 꽃을 피우자는 그 사명과 가치는 마당극패 ‘우금치’를 여전히 충청도에 묶어두고 있는지도 몰랐다. 30년, 적지 않은 세월이다.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끼기’ 딱 좋은 시간이다. 서울의 ‘자장’이 예술판에도 강력하게 작동되었을 테고, 문화예술의 불모지인 지역에서 무언가를 일군다는 것은

누구도 남겨두지 않도록,
재난에서 회복으로

리슨투더시티 ‘장애포괄 재난 관리 프로젝트’

“재난은 우리 사회에 평상시에 있던 문제가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뿐이지 새로운 문제를 보여주지는 않는다.” 리슨투더시티의 프로젝트 ‘누구도 남겨두지 않는다’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 2016년 구마모토 지진, 2017년 포항 지진을 겪은 장애인 그리고 2019년 고성, 속초 산불을 겪은 노인, 2020년 코로나19를 겪은 사람들과 이에 대응해온 NGO 활동가들을 인터뷰하고 재난에 대해 사고하는 프로젝트이다. 구마모토의 한 인터뷰이는 위와 같이 말하며 재난이란 전혀 특별하지 않고, 그저 일상의 문제가 잘 보이는 것뿐이라고 이야기했다. 이 말은 재난의 두 가지 속성을 내포하고 있다. 첫째는 주위의 소외되고 몫이 없는 사람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