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 일제 강점기, 분단, 전쟁, 가난, 군사독재를 뚫고 오늘의 G7, IT 강국으로 떠오른 대한민국, BTS로 상징되는 문화강국, 그리고 촛불 민주주의의 모범국으로 부상한 대한민국을 만나고 있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대한민국은 세계 어느 곳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어두운 나라의 이미지도 갖고 있다. 이렇게 ‘극에서 극까지’ 이른 양면적·이중적 성취는 그만큼 성공 피로도와 자기 착취도가 극도에 이르렀다는 증거이다. 자살율 OECD 1위, 산업재해 사망률 1위, 사회적 갈등으로 인한 비용 지출 3-4위권, 청소년의 학업 흥미도 최하위권, 기후악당 4대국 중 하나이고, 1인당 비닐 사용량 최대, 미세먼지 농도 OECD 중 최고이며, 언론에 대한 신뢰도는 밑바닥이다.

문화강국 이미지 속 여전한 위기

그런데도 혁신을 선도하는 경쟁력이나 ‘빨리빨리병’은 여전하다. 불확실성 증대에 따른 불안이 가중되고, 말초적인 자극, 쾌락, 게임, 그 안락을 박탈당했을 때의 공포로 인해 순응적 태도를 보이는 청소년이 많아지고 있다. 연대보다는 개인적 사투,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학습된 무기력’ 증세를 보이기조차 한다. 가치의 니힐리즘 경향은 소통과 협력의 가치 상실, 도구적 합리주의, 효율성 추구, 황금만능주의 양상을 보인다. 공적 일에 대한 무관심과 방관적 태도를 보이며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자기중심주의 경향도 보인다. 각자도생으로 상호의존과 배려심이 사라지고 아노미 현상도 보이며, 무한경쟁에서의 열패감은 희생양을 만드는 혐오 현상을 부추기기도 한다. 아무리 보기 좋은 성과로 치장된 숫자라도 한국사회의 어느 구석을 가더라도, 교육은 곧 극한의 경쟁을 벌여야 하고, 이를 위한 사적 자원을 투입하는 문제로 읽히며, 이 과정에서 실패한 사람들은 곧 살만한 가치조차 잃어버린 실패자로 낙인찍힌다.

한편으로 전 세계적으로 탁월한 성과를 내면서도 국가발전에 기여해 왔다는 칭송을 듣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지속가능하지 않은 국가적 비전의 원인이 질 낮은 교육이라는 혹평을 듣는다. 이렇게 한국교육은 위험한 구렁텅이에 빠져들고 있다. 우리 사회의 교육은 한마디로 큰 위기 상황에 봉착해 있다. 아이들은 자기 삶을 박탈당한 채 지식을 머릿속에 기계적으로 욱여넣어야 하는 일방적 배움에 매달려 있다. 청년세대는 성공과 실패가 곧 성적으로 판단되는 사회적 선발 과정에서 성공한 사람은 엘리트로, 실패한 사람은 사회의 밑바닥으로 일찌감치 구분된다. 그래서 성공한 사람은 오만을, 실패한 사람은 열패감을 느끼게 한다. 누군가의 욕망을 채우는 수단으로 작동해 온 한국사회의 교육열은 소수의 잘난 엘리트들에게 경제적 특권과 정치적 권한마저 몰아주는 사회구조를 재생산하면서, 교육의 변화와 변혁을 갈망하는 뭇 시민의 교육다운 교육에 대한 희망은 반복해서 좌절을 경험하도록 한다. 이러한 조건에서 시민문화가 융성할 수 없고, 교양이 싹틀 수 없다.

문제를 치유하는 혁신적 대안

그러기에 교육의 대전환 없이는 한국사회의 미래가 어둡다고 할 수 있다. 다음 세대의 온전한 삶을 담보하기 어려운 절체절명의 도전적 문제에 직면해 있다. 이렇게 위중한 상황이기에 ‘교육 대전환’을 통해 한국사회의 거대한 전환을 이루어야 한다. 한국교육의 대전환과 대변혁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교육을 욕망의 수단이자 대상으로 삼았던 사람들에게서 나오지 않는다. 이런 목소리는, 교육이 교육다워야 한다고, 교육이 삶의 행복을 수놓는 중요한 과정이자 곧 다음에 이어질 배움의 첫 단추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로부터 나온다. 거대한 사회변혁을 위한 교육 대전환은 학교, 교과서, 교육과정, 교육제도, 교육자와 피교육자의 관계에 갇혀 있는 교육으로부터 탈피해야 한다. 불공정한 가치 배분을 해소하기 위한 공공 시스템 구축, 경제사회적 양극화, 수도권 집중, 정규직-비정규직 격차 해소, 청년 일자리 정책 확대 등 사회경제 시스템을 혁신해야 한다. 사람과 자연을 대하는 태도, 일하는 방식, 경제 시스템, 문화 생산, 정치, 복지, 지방자치, 과학기술, 공간계획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교육철학이 관통되어야 한다.

교육 대전환은 정치, 경제, 문화, 복지 등 모든 면에서 가치-자원 배분의 혁신까지 시야를 확대해야 한다. 교육재정뿐만 아니라 고용·노동, 환경, 공간 설계, 복지, 문화, 보건, 먹거리, 인권, 과학기술, 지방·주민자치 등의 가치-자원 배분은 교육적 관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가치-자원 배분은 정치의 영역이지만, 각자도생이 아닌 각자공생의 원리는 교육의 영역이기도 하다. 교육으로서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를 치유하는 혁신적 대안을 설계하고, 제도교육을 넘어서 평생 배움과 삶의 질(인권, 행복지수)이 일치하는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무한경쟁과 독점, 불공정이 아닌 협력과 공생, 정의, 민주주의가 활성화된 사회를 지향하는 것이다.

사회 대전환은 생태적 회복, 인격적 회복, 자존 회복, 관계 회복, 인간의 존엄성 회복, 인권 회복, 공동체 회복, 정의 회복, 시민성 회복, 폭력·전쟁에서 평화 회복, 빈곤 및 양극화 극복, 재난위기 극복 등 지속 가능한 사회를 지향한다. 교육 대전환은 그러한 회복과 실천을 안내하는 촉진자이자, 다양한 영역을 가로질러 관점과 철학, 전략을 구사해내는 총론이 요구된다. ‘사회 교체’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 시민과 시민, 개인과 세계의 관계 맺는 방식, 일하는 방식, 욕망을 표현·성취하는 방식, 의사결정 시스템을 바꾸는 것이며, 사회 교체 과정은 분절적, 환원주의적 사고, 단타성·단발성 정책이 아니라 통합적·융합적·총체적 문제해결을 필요로 한다.

공동체를 발달시킬 ‘문화적 진지’
이러한 입장은 제도의 민주주의를 넘어 삶의 양식을 통한 ‘공중’을 탄생시키는 민주주의를 강조한 존 듀이의 관점과 통한다. 안토니오 그람시나 파울루 프레이리가 훈련보다 ‘형성’(formation/formação/Bildung)을 강조한 것은 ‘형성적 문화’(formative culture) 없이는 민주주의가 지속될 수 없다는 강한 문제의식의 발로이다. 제도와 법이 무너지지 않게 하려면, 문화 민주주의가 공고하게 받쳐주어야 한다. 문화 혁신과 경제 혁신을 분리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이다. 삶의 양식이 형성되어야 민주주의의 문화적 토대가 튼튼해질 수 있다. 삶의 양식으로서 문화는 삶의 모든 것이다. 따라서 서로를 이해하고 소통하는 데 필수적인 ‘문화적 해득력’(literacy)을 길러주는 교육이 절실하다. 여기에서 예술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해진다. 교육 대전환의 핵심은 새로운 삶의 방식, 새로운 사회운영 시스템을 구축해가는 문화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 문화교육은 무비판적으로 수용되기 쉬운 일상의 문화를 비판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시민사회 스스로 낡은 관성, 타성, 관습까지 바꿔내야 한다. 이것은 ‘시민성’과 연동된 문제이다. 국민적이고 대중적인 집단 공동체를 발달시킬 수 있는 현장의 ‘문화적 진지’를 저변에 구축하여야 한다. 교육과 문화의 대전환을 위해 시민 스스로 삶 속에서 교육과 배움의 본질을 녹여내는 광범위한 시민 플랫폼을 형성해야 한다. 교육과 문화의 대전환은 공공 정책과 시민의 자발적 참여가 협치를 이뤄야만 성공할 수 있다.

21세기가 당면한 문명적 대전환은 회복력 있는 사회운영 시스템을 만들기 위한 사회 혁신을 통해 이뤄질 수 있으며, 단지 각개 정책을 바꾸는 것을 넘어 사람과 구조의 변화가 상호작용하여 큰 파급 효과를 낼 때 실현된다. 교육을 한낱 기능으로서만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대전환의 설계도 속에서 교육 대전환의 위상을 정확하게 가져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촛불혁명 및 코로나 팬데믹 이후를 준비하는 교육 대전환 운동은 벼랑으로 치닫고 있는 한국교육의 정상화를 위해 권력과 시민사회의 ‘이중적 민주화’를 이뤄야 내는 새로운 교육정치를 필요로 한다. 우리는 지금 한국사회의 지속 가능한 삶, 정의롭고 민주적인 삶, 그리고 대안적 삶을 위해 거대한 사회변혁과 연동된 교육 대전환을 위한 체계도를 설계하고 실천해야 하는 정치의 계절을 맞이하고 있다.

석수정
심성보
거시적·장기적 교육 전망과 현장에서 미시적·단기적 실천이 분리되지 않는 ‘실천적 이론가’와 ‘이론적 실천가’를 꿈꾸고 있다. 부산교육대학교 명예교수, 서울시교육청 민주시민교육 자문위원장, 한국교육연구네트워크 이사장, 마을교육공동체포럼 상임대표, 교육개혁전략포럼 대표 등 다양한 역할을 맡고 있다. 저서로 『코로나 시대, 마을교육공동체운동과 생태적 교육학』 『교육과정에서 지식이 왜 중요한가』 등이 있다.
sbsim@bnue.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