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 사이, 얽히고설킨 든든한 사이

김중미 작가·기찻길옆작은학교 큰이모

‘공동체’는 문화예술교육 활동에서 빠질 수 없을 만큼, 오랜 기간 교육의 핵심이 되어온 키워드다. 팬데믹 이후 급속도로 파편화되어 가는 사회 속에서 함께 노는 법을 모르는 아이들, 눈을 마주치며 이야기하는 게 불편한 아이들, 스마트폰에 코를 박고 길을 걷는 아이들이 점점 늘어났다. 점점 공동체를 경험하기 어려워지고 있는 요즘, ‘동네의 공부방’이자 ‘함께 노는 놀이터’이자 ‘칙칙폭폭 인형극단’으로 활동하고 있는 인천시 만석동 ‘기찻길옆작은학교’는 요즘 세상에 만나기 어려운 ‘찐’ 공동체다.
1987년 ‘기찻길옆아가방’으로 시작해 1988년 ‘기찻길옆공부방’, 그리고 2001년 강화도에 농촌공동체를 만들며 새로운 ‘강화공부방’이 생겼고, 만석동 공부방은 ‘기찻길옆작은학교’(이하 기찻길)로 이름을 바꿔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다. ‘기찻길’은 약 40년의 세월 동안 집과 학교 사이 제3의 공간으로서 공부방 아이들의 일상과 공동체를 가꾸는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을 펼쳐 왔다. 기찻길의 첫 시작과 계기, 다양한 현재의 활동과 계획하고 있는 미래에 대해 공부방의 ‘큰이모’이자 동화 작가, 청소년 소설가로 활동하고 있는 김중미 작가를 만나 물었다.
작고 약한 존재의 곁에서

공동체의 시작
“처음에 빈민 운동을 어디에서 할까 찾아다니다가 인천 만석동과 화수동을 만났어요. 이곳은 반공 이데올로기도 굉장히 강했고, 당시 철거 투쟁 중심의 운동이 활발했어요. 선배들은 만류했지만, 만석동 동네 분위기를 보자마자 마음에 들었어요. 일본식 벽돌 연립주택, 피난민들이 지은 판잣집 등을 보며, 좁은 공간 안에서 최소한의 자원으로 서로가 삶을 지탱해 주는 형태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쯤 브라질이나 남미, 필리핀 등의 가톨릭교에서 일어난 기초 공동체 운동에 더 관심이 갔었죠. 1987년, 동네에 들어와 지역 운동을 준비하며 신문 배달을 했는데, 여기(인터뷰 공간 ‘도르리’가 위치한 화수동)가 제 구역이었어요. 지금도 동네가 정말 정겹고 예쁘지요.”
김중미 작가는 지역으로 스며들기 위한 첫 시작으로 아가방을 열었다. 운영은 쉽지 않았고, 1년이 지나자 함께 시작한 동료들은 모두 떠났다. 혼자 남아 고민이 많았던 당시, 아가방에 동생들을 보내던 초등학생들이 공부방을 먼저 제안했다. 80년대 도시빈민운동과 함께 공부방도 운동의 하나로 하나둘씩 생겨날 때였다.
“당시 공부방은 지역 운동의 한 수단으로서 주민을 만나는 매개 정도로 대부분 여겼었죠. 그런데 내가 만나는 이 아이들이 5~6년이 지나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도시 빈민이 될 텐데, 공부방이 수단이 아니라 이 아이들 자체가 목적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점점 들었어요. 그래서 1년 동안 부모회 없이 공부방만 열었어요. 관심 있는 또래 젊은이들이 많이 모였고, 경인교대와 인하대에 동아리를 만들어 자원교사를 모았죠. 88년에서 90년 사이에 지금까지 ‘이모 삼촌’으로 있는 사람들이 모였어요.”
김중미 작가는 활동을 이어갈수록 ‘공동체’가 핵심이라고 느꼈다. 그래서 자원교사 모임을 하나로 통합해 일주일에 한 번씩 ‘적당히’ 봉사하고 가는 게 아니라, 모두가 주체가 되어 함께 먹고 논의하고 결정했다. 처음부터 공동체를 목표로 한 것은 아니었지만, 공동체 공부와 이에 대한 토론도 오랜 기간 하며 예닐곱의 자원교사들은 점점 ‘공동체’로서 깊이를 더해갔다. 그렇게 남은 ‘이모 삼촌’들은 직접 사진이나 목공, 풍물 등을 배워 아이들에게 가르쳐주었고, 동네에서 함께 살며 결혼도 하고 가정도 꾸렸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특별한 존재로 다가가기보다는 이웃에 있는 흔한 사람들로 함께하는 게 중요했어요. 한편, 가난이 고인 이 지역엔 알코올중독, 도박, 가정폭력 등 온갖 문제가 집약되어 있었는데 그래도 20대 초중반의 젊은이들이 이것저것 펼치는 활동을 공부방 어머니, 아버지들은 그대로 받아주셨어요. “우린 모르니까 이모 삼촌들이 알아서 해줘 봐” 자기들의 방법으로 지켜봐 주고, 지지해 주는 어른들 또한 또 하나의 공동체였다고 생각해요.”
  • 인형극 연습
외로울 ‘틈’이 없는

기찻길옆작은학교
최선을 다해 가진 것을 나누고, 함께 연대하며, 세상과 대립하지 않고 섞여 들어가는 것. 기찻길 공동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다. 기찻길은 아이들에게 회비를 걷지 않고, 개인 후원자와 여러 단체 후원금, 수익 사업, 공동체 이모 삼촌들의 공제회비 등으로 운영된다. 기찻길의 ‘칙칙폭폭 인형극단’도 공동체가 걸어가는 길 위에서 태어났다. <존엄을 외쳐요> <우리, 함께하는 친구> <야, 우리 기차에 탈래?>. 다정하게 손을 건네는 이 제목들은 칙칙폭폭 인형극단의 최근 공연이다. 대다수 공연자가 초등학생인데 올해 아시아 최대 인형극축제인 ‘춘천인형극제’에 공식 초청을 받았고, 같은 축제 아마추어 인형극 대회에서 무려 3년 연속 대상을 수상했다. 더 놀라운 건 2023년 대상 수상금을 동두천 아프리카 난민 공동체 어린이들을 위한 공연으로 쓰고, 2022년도 수상금은 전쟁을 겪고 있는 우크라이나 어린이들에게 보내자고 초등부 아이들이 제안했다는 것이다. 이 극단은 힘없고 약한 존재들이 이야기의 중심이 되고, 초등학생부터 이모 삼촌까지 공동체의 전 구성원이 참여해 공연을 만든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인형극을 만드는 몇 달 동안 아이들이 성장하는 것 같아요. 대본을 쓰는 과정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자기 모습을 객관적으로도 보고, 억눌린 감정도 해소하게 되고요. 성우, 인형 조작, 조명, 연출 등 초중고 대학생까지 모두가 결합해야 인형극이 완성되는데, 과정에서 문제도 생기고, 다치기도 하고, 예뻐하고, 혼내기도 하며 서로 되게 끈끈해져요. 소품을 직접 만들고, 이모 삼촌들이 아이들이 공연할 수 있게 최선을 다하는 과정까지 모두 공동체 활동이니까요. 팬데믹 전에는 일주일에 세 번씩 연습했고 일요일은 하루 종일 하는데, 인형극 공연이 일주일 정도 남으면, 애들이 우울해져요. 집에 보호자가 없는 아이도 있고, 일 때문에 늦게 오는 분들도 있는데 인형극을 연습하는 몇 달 동안은 애들이 외롭지 않은 거죠.”
김중미 작가가 공부방을 처음 열었던 때, 어렸을 때 좋아했던 인형 놀이를 떠올려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고 나무젓가락을 붙인 인형을 만들어 이야기를 건넸다. 평소에는 입을 안 열던 아이들이 자기 인형을 만들어 대답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인형은 이모 삼촌과 아이들 사이의 좋은 소통 도구가 되었다.
“인형극 만드는 과정을 워크숍으로 구성해서 초등학교나 청소년, 이주 배경 청소년 등과 많이 만났어요. 어딜 가든 인형극 워크숍을 싫어하는 애들을 본 적이 없어요. 난생처음 보는 애들이랑 닷새 동안 프로그램을 하고 나면 헤어질 때는 펑펑 울어요. 직접 무대에 등장하는 것과 달리, 아이들이 자신을 대신한 인형에 숨을 불어넣고 자기 목소리를 내며 움직이는 과정이 아이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던 것 같아요.”
기찻길은 초등부가 하교하는 오후 2시부터 고등부가 공부를 마치는 밤 11시까지 열려있다. 기초학습을 도와주는 것 외에도 함놀(함께하는 놀이), 인문학 수업, 개별 상담 시간과 같은 일상 교육을 매일 진행한다. 인형극과 정기공연을 매년 만드는 것과 더불어 여름 캠핑, 함께 자기, 강화공동체 농촌활동 등 공동체 교육도 중요한 활동이다.
“프로그램이 기본적으로 같지만, 해마다 만나는 아이들의 성향에 따라 계속 조금씩 바뀌어요. 팬데믹 후에는 아이들이 너무 혼자 지냈기 때문에 같이 노는 법을 모르는 아이들이 많았어요. 놀이가 일대일의 경쟁 관계가 아니라 함께 어울리는 거란 걸 알려주려고, 초등부 담당자들이 직접 프로그램을 짜고 일주일씩 놀이만 하기도 했어요. 요즘 애들이 달라졌다고 사람들은 쉽게 말하곤 하지만, 아이들 안에는 모두 인정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고, 존중받고 싶은 욕구들이 있어요. 그걸 공부방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아이들이 자각하게 하는 거죠. 그리고 시절이 변해도 절대로 바꾸지 않는 것도 있어요. 여름캠핑 프로그램과 식사 메뉴는 20년째 똑같아요. 계속 반복되어 지겹지 않을까 싶었지만, 반복이 주는 안정감이 있고, 그 속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
  • 여름캠핑
부모도 선생님도 아닌

이모 삼촌이란 든든한 뒷배
김중미 작가는 초기 공부방을 열며 만난 부모들에게 ‘역할 분담’이란 말로 가장 많이 설명했다. 어머니, 아버지들이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노동자로 일을 하는 것처럼, 공부방의 이모 삼촌들도 아이들을 돌보며 사회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고마운 존재기보다 그냥 이웃의 ‘이모 삼촌’처럼 대해달라고 말이다. ‘이모 삼촌’은 때로는 선생님 때로는 보호자 역할을 하는 아이들의 든든한 뒷배이면서도,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하는 문제 상황에서 부모도 선생님도 아닌 애매한 사이라 힘든 날들이 있기도 했다.
“그런데 그 아무것도 아닌 사이라는 게 나에게도 아이들에게도 좋은 것 같아요. 때로는 진로부터 먹고 사는 문제까지 간섭해야 할 일이 많은 아이도 있었죠. 햇수로 36년 동안 그냥 허투루 대한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선생님 또는 엄마 아빠를 대신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도 않더라고요. 엄마 같은 존재가 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관계에 의무가 없는 게 가장 좋다고 생각했어요. 공부방에 있을 만큼 있다가 떠나도 아무런 미련이 없는 것, 그냥 오고 싶을 때 오고, 떠나고 싶을 때 떠나는 만만한 사이. 함께하는 순간에 최선을 다한 만큼, 이별의 순간이 오면 되게 아프지만.”
2016년 펴낸 김중미 작가의 에세이 『꽃은 많을수록 좋다』에는 공부방 30년 동안의 크고 작은 일화들이 알알이 맺힌 포도알처럼 빼곡히 담겨있다. ‘나는 과연’ 이란 질문을 스스로 던지며 잠잠히 성찰하게끔 이끄는 이야기들을 읽으며, 이들이 걸어온 길이 숭고하게 느껴졌다.
“밖에서 보면 대단해 보이기도 하지만, 막상 그 안에서 살 때는 그렇게 거창하지 않아요. 오히려 공동체를 통해 얻는 게 더 많았던 것 같아요. 자발적인 선택이었고, 같은 지향을 가지려 계속 노력하지만, 그 안에서 생기는 갈등은 어쩔 수 없어요. 갈등 없이 갈 수 있는 건 없잖아요. 오히려 그걸 넘고 가면서 성장하는 것 같아요. 내가 지치고 힘들 때 나한테는 공동체라는 든든한 뒷배가 있고, 나는 어떻게 살고 싶다는 게 분명하니까 어떤 어려움이 와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어요. 그래서 저는 아이들에게도 관계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돈보다 함께할 사람이 있다는 것, 각기 다른 개성들을 만나고, 한 사람이 갖고 있는 수많은 이야기를 알게 되고, 이렇게 얽히고설켜서 사람들을 살아가게 해주는 거요.”
기찻길이 벌린 틈에서

함께 자라는 공간
만석동과 강화도에 뿌리내려 만들어온 단단한 관계의 시간만큼 기찻길은 공간적으로도 계속 진화하고 있다, 바로 인천시 화수동의 문화예술창작공간 ‘도르리’, 그리고 곧 개원할 강화도의 공간 ‘산문’이다. 사람들의 힘으로 태어나 다시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는 두 공간은 기찻길이라는 큰 나무에서 뻗어가고 있는 새로운 가지다. ‘도르리’는 ‘밥을 고루 나누어 먹는다’란 뜻으로 기찻길 청년 창작집단의 이름이기도 하다. 공동체 속에서 자라고 만난 청년들이 지역에서 예술작업을 나누고, 재개발로 쇠락해 가는 아름다운 동네를 아카이빙 하는 작업도 진행 중이다. ‘산으로 들어가는 입구’란 뜻의 동네 이름 ‘산문’은 김중미 작가 가족이 20년간 살았던 집이자 옛 강화공부방이었다. 공동체 공동의 재산이기도 한 이 집은 자연 속에서 휴식할 수 있는 치유의 공간으로 운영될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김중미 작가가 문화예술교육 현장에 있는 이들과 나누고 싶은 말은 무엇인지 물었다.
“우리가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건 공간과 환경의 힘도 커요. 재개발이 되고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서 주거 환경이 달라지면 쉽지 않겠죠. 수평적인 이런 공간에서 만나는 것과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가야 하는 수직적인 갇힌 공간에 사는 것은 꽤 다른 것 같아요. 지역과 가정환경의 차이, 입시 위주의 교육 등 여러 가지 장애가 많은데, 그나마 이 벽을 허물 수 있는 건 곳곳으로 스며들어 가는 것밖에 없을 것 같아요. 한편, 예술 활동을 즐길 수 있도록 하려면 낯선 예술가의 언어를 계속 쓰기보다 만나는 사람들의 언어를 배워야 할 필요도 있겠죠. 결국 예술 운동이 시민 운동과 결합하지 않으면 아무 의미도 없을 거란 생각도 들어요. 그래야 이런 변두리 지역까지 문화를 누릴 수 있는 공간이나 플랫폼이 생기고, 지역 주민이 주체가 되고, 청소년에게까지 확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정권이 바뀔 때마다 흔들리는 정책에도, 지속시킬 수 있는 건 시민이에요. 요 근처에 100년이 넘은 창영초등학교를 새로 짓는 아파트 단지로 옮긴다는 걸 시민이 반대해 막았어요. 어렵지만 아직도 가능한 거죠.”
  • (왼쪽)만석동 공부방과 공부방 모형, 건축교실
올해 기찻길의 여름 캠핑 마지막 밤, 이모, 언니들과 한방에 누워있던 초등학생 1학년 아이가 갑자기 이모를 불렀다. “나도 이모 되고 싶어요.” 그 말을 들은 다른 아이들도 말했다. “나도 이모 될 거예요!” 고등학생 언니는 “너 중학생 돼서도 그런 말 하는지 보자.”라며 모두의 웃음을 터뜨렸다. 공부방을 열자고 처음 말했던 초등학생이 지금의 이모로 이들 곁에 누워있는 방에서, 이모들은 이 이야기를 들으며 얼마나 마음이 넘실댔을까.
이제는 ‘큰이모’가 된 그때의 청년이 조그만 다락방에서 틔운 ‘공부방’이란 작은 새싹은 36년이 지나 울창한 숲으로 성장했다. 담벼락 높이 쌓아 올린 정원이 아니라 오가는 문 없이 모두에게 열린 숲, 큰 나무들이 작은 나무를 정성껏 돌보고, 작은 나무도 이 조건 없는 사랑을 다시 나누어주기를 꿈꾸는 공동체로. 그리고 다시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 이 작은 나무들은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기다려진다. 서로서로를 지탱하며 가꾸는 일상의 힘을 믿는다. 지금도 어느 틈에서 작은 ‘새싹’을 돌보고 있을 ‘사이의 공동체’가 무럭무럭 자라나기를 응원한다. 우리는 더 많은 ‘사이’가 필요하다.
김중미
김중미

동화‧청소년소설 작가. 1963년 인천에서 태어났다. 1987년부터 인천 만석동에서 ‘기차길옆공부방’을 꾸려 왔으며, 2001년 강화 양도면으로 이사해 ‘기찻길옆작은학교’의 농촌 공동체를 꾸려 가고 있다. 동화 『괭이부리말 아이들』 『꽃섬 고양이』, 청소년소설 『조커와 나』 『모두 깜언』 『그날, 고양이가 내게로 왔다』 『곁에 있다는 것』 『너를 위한 증언』 『느티나무 수호대』, 에세이 『꽃은 많을수록 좋다』, 강연집 『존재, 감』 등을 썼다.
• 기찻길옆작은학교 홈페이지
• 기차길옆작은학교 페이스북
손소영
손소영
무용단체 ‘쿨레칸’의 프로듀서로 10년째 일하고 있다. 인생은 알 수 없는 수수께끼로 이뤄져 있다. 우연히 참여한 댄스 워크숍을 계기로 ‘춤알못’에서 점차 춤에 매료되었다. 춤추는 걸 좋아했지만 춤추며 살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었는데 어느덧 ‘춤’이란 굵직한 챕터가 인생에 자리 잡았다. 춤 웹진 [몿진]과 인터뷰집 『춤과 땡땡』을 기획·편집했다.
producer.libre@gmail.com
쿨레칸 www.koulekan.net
몿진 www.mottzine.com
인터뷰 장소_문화예술 창작공간 도르리 https://doreuri.creatorlink.net/
인터뷰 사진_이재범 라무팜스튜디오 실장 andy45a@naver.com
프로그램 사진 제공_기찻길옆작은학교
3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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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양남 2024년 10월 02일 at 2:07 PM

    아무것도 아닌 사이, 얽히고설킨 든든한 사이
    김중미 작가·기찻길옆작은학교 큰이모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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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기현 2024년 10월 02일 at 3:00 PM

    아무것도 아닌 사이, 얽히고설킨 든든한 사이
    김중미 작가·기찻길옆작은학교 큰이모
    기대만점입니다

  • author avatar
    권순례 2024년 10월 03일 at 11:54 AM

    그냥 오고 싶을 때 오고, 떠나고 싶을 때 떠나는 만만한 사이,라는 표현이 마음에 오래 남네요.엄마를 대신하고, 아빠를 대신하는 존재가 아니라 아이들에겐 이모와 삼촌과 같은 존재도 필요하죠. 그리고 그게 공동체의 힘이고요. 느슨하지만 안전한 사이, 참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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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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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양남 2024년 10월 02일 at 2:07 PM

    아무것도 아닌 사이, 얽히고설킨 든든한 사이
    김중미 작가·기찻길옆작은학교 큰이모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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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기현 2024년 10월 02일 at 3:00 PM

    아무것도 아닌 사이, 얽히고설킨 든든한 사이
    김중미 작가·기찻길옆작은학교 큰이모
    기대만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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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순례 2024년 10월 03일 at 11:54 AM

    그냥 오고 싶을 때 오고, 떠나고 싶을 때 떠나는 만만한 사이,라는 표현이 마음에 오래 남네요.엄마를 대신하고, 아빠를 대신하는 존재가 아니라 아이들에겐 이모와 삼촌과 같은 존재도 필요하죠. 그리고 그게 공동체의 힘이고요. 느슨하지만 안전한 사이, 참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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