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장님은 1980년대 말 여성 노동자의 자녀를 양육하는 어린이집 운영을 시작으로, 2010년에는 청년세대 사회혁신가를 육성하는 사단법인 씨즈를 설립하여 현재까지 운영하고 있다. 씨즈는 사회적경제 생태계를 구축하는데 주력했던 조직으로 알고 있는데, 최근 은둔·고립청년에 주목하게 된 경로가 궁금하다.
씨즈는 그동안 자기 세대의 담론을 적극적으로 생성하고 해법을 실천하는 고활력 청년을 중심으로 사회혁신 생태계 조성에 힘써온 게 맞다. 그러나 팬데믹을 계기로 씨즈의 전략이 고활력 청년들의 성장 중심으로 설계되지 않았는지에 대해 성찰하게 되었다. 팬데믹으로 일상이 중단(shutdown)되면서 사회의 약한 고리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특히 응급실 이송환자 중 자해한 20대 여성이 갑자기 증가한 현상이 대표적인 예다. 비정규직 노동 형태와 서비스직 종사 비율이 높은 20대 여성이 큰 타격을 입었고, 사회 어디서도 적절한 대응이 없자 극심한 고립감에 좌절하였던 것으로 추측한다. 이러한 현상을 마주하면서, 씨즈가 지금까지 도전하는 청년을 주목했다면 앞으로는 사각지대에 존재하는 청년까지 범위를 넓히겠다는 새로운 방향성을 갖게 되었다. 마침 2021년부터 2023년까지 서울시 청년허브를 위탁 운영하며 저활력 청년에 대한 다양한 데이터 수집과 실천을 해나가며 현장경험을 축적할 수 있었다.
씨즈의 고민과 현장경험을 바탕으로 2022년에 은둔·고립 청년을 위한 공간 ‘두더집’이 문을 열었다. 두더집의 소개글 중 ‘청년 다차원적 빈곤 해결을 위한 씨앗이 되어 은둔·외톨이 및 사회적 고립 청년을 지원한다’는 설명이 인상 깊다. 빈곤을 떠올리면 돈이 없어 춥고 배고픈 장면과 같은 고정된 이미지가 떠오른다. ‘다차원적 빈곤’은 빈곤의 원인을 다양한 범위에서 접근한다고 느껴지는데, 어떠한 의미인가?
과거와 달리 현대사회는 다양한 이유로 빈곤을 경험하게 된다. 2020년 서울시의 조사에 따르면, 약 86%의 청년이 현재 자신이 빈곤한 상황이라고 응답하였다. 이는 청년세대가 겪는 빈곤이 관계, 건강, 주거, 문화, 일자리, 자본 등 다양한 원인에서 비롯됨을 증명하는 결과다. 두더집을 찾는 은둔·고립 청년 중 중산층 이상 가정에서 성장한 이들도 적지 않다. 경제력으로만 설명되지 않는 다양한 형태의 빈곤을 인식해야 은둔과 고립을 사회적 문제로 규정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전통적인 취약계층의 모습이 아니기 때문에 도움이 필요 없다고 쉽게 판단되는 위험이 있다. 사회 시스템이 빈곤을 경제적 측면에서 판단하면서 과연 어떤 사각지대를 만들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도 있다. 특히 청년세대가 문화를 경험하는 격차 또한 굉장히 크다.
빈곤으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운 인간이 있겠느냐는 질문이 든다. 그러나 각자도생하는 사회 분위기 안에서 은둔·고립 청년은 열심히 살지 않고 스스로 자신을 방치한 존재라고 단편적으로 해석됨이 안타깝다. 빈곤, 고립, 은둔을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사회에서 자신을 은둔·고립 청년으로 진단하고 도움을 요청하기까지는 어려움이 따를 거라 예상한다. 은둔·고립 청년이 두더집을 만나기까지의 과정은 어떻게 설계되었는지 궁금하다.
은둔·고립 청년에게 “은둔 기간에 뭐하며 지내요?”라고 물었을 때, 대부분 핸드폰이나 노트북을 들여다본다고 답했다. 은둔생활을 하면서도 핸드폰 요금을 못 내는 상황이 되면 쿠팡물류센터에서 일할 정도로 적극적인 태도를 보인다. 그래서 은둔·고립 청년을 만나려면 온라인 플랫폼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판단했고 홈페이지 ‘두더지땅굴’을 기획했다. 두더지땅굴은 고립·은둔 청년들의 공모로 선정된 명칭이다. 처음엔 너무 자조적인 표현이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땅속에서 은둔하고 있는 각자가 서로 연결되기 위해 땅굴을 파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홈페이지는 땅 안과 밖에서 존재하는 삶의 다양한 형태를 인정하고, 외로움에 고립되지 않도록 서로를 연결하자는 목표로 운영되고 있다.
사진을 공유하는 ‘사진 찍읍시다’ 챌린지와 상호소통이 가능한 게시판 등을 운영하며 홈페이지 활동을 시작했다. 은둔·고립 청년은 감정을 내면으로 쌓는 기질이 있어서 농축된 감수성을 가진 경우가 많다. 그래서 게시판이 웹툰, 문학 등 창작의 장으로 활용되며, 이들이 홈페이지의 이용자에서 생산자로 역할이 전환되기도 한다. 씨즈는 ‘두두서포터즈’란 역할로 지원하며,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있다. 은둔·고립 청년을 노동의 관점에서 보면 경력단절 상태인데, 두더지땅굴에서의 창작활동이 포트폴리오가 되고 일자리로 연결되는 사례도 있어서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두더지땅굴
온라인에서 서로 고민을 나누고 지지하며 실제로 만나고자 하는 호기심과 욕구가 오프라인 공간인 두더집까지 자연스럽게 연결된 것 같다. 온라인 플랫폼 두더지땅굴이 소통의 입구라면, 오프라인 공간 두더집은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궁금하다.
두더집은 상담프로그램, 텃밭이나 집밥 모임 등 일상회복 활동, 동아리 모임 등 서로의 연결을 더 강화하는 방향으로 운영하고 있다. 특히 올해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의 지원을 받아 운영하는 ‘모두작곡가’도 인기가 많다. 학습과 커뮤니케이션을 연계한 프로그램 ‘두두학당’에서 몸 움직임 워크숍을 운영한 적이 있다. 이 워크숍에서는 자신의 상황을 언어로 표현하기 힘든 친구들이 슬픔과 불안을 춤으로 표현하며 해방감을 느끼기도 했다. 기타 연주가 특기인 동네 어르신이 두더집에서 기타 강습을 하는데, 흥미로운 건 어르신과 청년 간에 상호 호감과 질문이 생긴다는 점이다. 그래서 교육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새롭고 안전한 관계망이 생기기도 한다.
프로그램의 목표는 기능 학습이 아닌, 자기주도적 치유와 사회적 관계회복의 과정으로서 운영하고자 한다. 자기주도성을 발휘하며 관계를 연결하는 장을 만드는 데 예술은 특별한 힘이 있다고 본다. 제주도에서 은둔·고립 청년들과 최소연 작가가 함께한 워크숍이 한 사례다. 제주도 선흘마을의 할머니와 은둔고립 청년이 모여 대화를 나누며 수박을 그리는 내용이었다. 수박이 주제가 되니 자연스럽게 할머니 댁 텃밭에 가서 수박을 따기도 하고, 대화로 이어지기도 했다. 같은 수박을 보면서 각자 다른 방식과 재료로 그림을 그리는 모습도 흥미로웠다. 한 친구는 수박을 매개로 뜻밖의 속마음을 털어놓기도 하였는데, 교통사고 치료과정에서 모르핀에 중독되어 은둔생활을 시작했지만, 수박껍질의 지그재그 모양처럼 다시 삶의 파장이 이어지기를 바란다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수박을 주제로 세대 간 대화, 자기성찰과 고백, 다양한 표현이 가능함을 확인한 놀라운 경험이었다. 두더집에서 여러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문화가 가진 치유의 힘을 믿게 되었다. 다양한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운영하고 싶지만, 복지시설이 아니어서 지원받기 어려운 아쉬움이 크다.
이사장님과 대화하며 이번 주제인 ‘사이’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본다. 사이를 잘 응시할 수 있어야 내가 무엇과 관계 맺고 있는지 성찰할 수 있지 않을까? 누구와 관계 맺고 있는지조차 상실하게 만드는 바쁜 사회에서, 각자가 맺고 있는 사이(관계)를 살펴볼 시간이 절실하다. 이사장님은 사이를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는가? 그리고 ‘사이 공간’으로서 두더집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궁금하다.
은둔·고립 청년의 본질적인 문제는 ‘사이’, 즉 타자의 부재이다. 사이는 자신과 관계된 타자가 존재한다는 의미인데, 은둔·고립 청년들은 타자 자체를 상실해버렸기 때문에 사이를 이야기할 수 없다. 이들이 상실된 관계를 회복해야 은둔생활에서 탈출할 수 있다고 진단한다. 사이의 회복은 연결과 연대가 솔루션이라 생각한다.
사이의 회복을 위한 실천 중 하나는 씨즈와 함께 성장한 청년 기업에 은둔·고립 청년을 인턴십으로 연결하고 있다. 보다 대안적 삶을 실험하는 청년 기업을 만나며 새로운 문제의식을 접하고 안전한 연결망을 구축하고 있다. 또 다른 사례로는 얼마 전 오픈한 ‘제주두더집’이다. 서울 친구들이 두더집에서 느낀 연결의 힘을 각자도생하는 제주 은둔·고립 청년에게 전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듣고 감동받았다.
일본은 특유의 수치문화 때문에 부모가 은둔생활의 공범이 되어 자식을 사회에서 감추는데 일조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한국은 자식의 은둔생활을 해결하려 부모가 상담소를 여기저기 다니며 솔루션 쇼핑(?)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 과정에서 상처 입은 은둔·고립 청년과 부모 사이가 적대적인 경우도 많다. 지원가(상담사) 사이에도 은둔·고립의 원인을 부모 탓하며 세대갈등을 증폭시키는 태도도 없지 않다고 본다. 이런 갈등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간 은둔·고립 생태계에서 연대 감각이 부족했다고 느낀다. 세대, 성별, 지역 등 다양한 존재 상태를 넘어 서로 연결되며 함께 문제를 해결해나가야 한다.
은둔·고립의 원인은 사회적 이유가 크지만, 그 책임은 은둔·고립 당사자와 그 가족으로 축소되면서 타자의 상실이 발생하고, 심지어 대결 구도로 번지는 현상이 안타깝다. 예술가 또한 문화예술교육을 매개로 은둔·고립 청년의 소중한 타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그간 두더집에서 만난 예술가를 보며 커다란 매력을 발견했다. ‘예술가는 고립과 외로움의 긍정적인 면을 발견하고 이를 즐기고 활용할 줄 아는 사람이구나!’ 사회는 고립과 외로움을 극복해내야 하는 ‘문제’라고 정의하지만, 예술가는 외로움과 좋은 친구로 지낼 수 있는 존재임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예술가와 은둔·고립 청년이 만나면 서로 자극이 되고 긍정적인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해본다.
누구나 외로움을 잘 만나가며 살아야 하지만 우리 모두는 외로움을 대하는 방식이 아직 서툴다. 하지만 예술가는 고립과 외로움의 영역과 잘 만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을 것만 같다.(웃음) 아직 구체적인 방식은 잘 모르겠지만, 두더집에서 예술가와 자주 만나 그 과정을 함께 고민하고 싶다.
• 사단법인 씨즈
• 두더지땅굴
- 이지연
- 동대문옥상낙원DRP의 공동운영자로 2014년부터 2021년까지 활동하였다. 비교적 여백을 간직한 소도시에서 다양한 문화적 상상이 가능할 것이란 기대감을 안고 2020년 전북 고창으로 이주했다. 현재는 고창, 고흥, 서울을 오가는 다거점 문화기획자로 고군분투 중이다.
jiyeon90721@hanmail.net
인스타그램 @jiyeon_0721 - 인터뷰 사진_이재범 라무팜스튜디오 실장 andy45a@naver.com
기사가 좋았다면 눌러주세요!
댓글 남기기
코너별 기사보기
비밀번호 확인
극복할 문제에서 함께할 존재로, 사이의 회복
이은애 사단법인 씨즈 이사장
공감이 갑니다
극복할 문제에서 함께할 존재로, 사이의 회복
이은애 사단법인 씨즈 이사장
기대만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