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문화창작공간 둠벙 이용안내
장소
충북 옥천군 옥천읍 삼금로1길 10, 1층
시간
평일 12:00~18:00, 토요일 12:00~17:00
번호
043-732-8116
링크
인스타그램 @doombung_grs
“우리 지역 청소년 갈 곳 없다.”
1989년 9월 30일 [옥천신문] 창간호 1면 기사 중 일부다. 어린이와 청소년이 우리의 미래라고 이야기하면서도 정작 이들을 위한 공간이나 활동은 담보되지 않던 시절, 이를 걱정한 지역사회의 감각이 꽤 오래전부터 벼려져 왔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이 같은 문제 제기에 그 후속 조치도 일찍이 실행됐을까? 잊을만하면 한 번씩 신문 지면에 오르내리던 청소년 문화 향유에 대한 염려 어린 기사는, 정작 그 대책은 요원했음을 보여준다.
2010년 옥천신문사에 취재기자로 입사한 필자 역시 이런 내용의 기사를 몇 번인가 써야 했고, 그 이전에도 이후에도 동료, 선후배 기자의 펜 끝에서 같은 기사가 반복됐다. 문제를 해결하려는 행동이 없는 상황에서 문제를 지적하기만 하는, 공허한 목소리가 계속 되풀이됐던 셈이다. 누군가가 실행에 나서면 좋겠다는 생각이 해를 거듭할수록 강해지던 그때, 농촌 지역의 문화를 발굴하고 새로운 문화 창달을 해보겠다고 나선 사회적기업 ‘지역문화활력소 고래실’(이하 고래실)의 결단이 있기 전까지는 말이다. 2017년 4월, 세월호 참사 추모 전시를 개관전으로 해 문을 연 지역문화창작공간 둠벙(이하 둠벙) 이야기다.
둠벙의 명물-청소년 자립카페
‘매주 토요일은 청소년 자립카페로 운영됩니다. 혹 청소년 바리스타들이 실수하더라도 격려와 응원을 보내주세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운영하는 둠벙은 평소엔 만화책을 볼 수 있는 카페이자 다양한 문화 행사가 열리는 공간이다. 소모임이나 자체적인 행사를 진행하려는 주민에게 언제든 열려있는 주민 친화 공간이기도 한데, 특히 청소년 친화 공간으로 운영되고 있다. 매주 토요일에 진행하는 ‘청소년 자립카페’가 그 대표 예다. 2020년 무렵 고래실이 둠벙 공간을 활용해 지역 청소년의 여가 선용을 도모한 것이 그 시작이다. 고래실은 둠벙에서 청소년 대상 프로그램을 꾸준히 기획하고 운영해 왔다. 당시 옥천군과 옥천교육지원청의 지원을 받아 여행모임, 웹툰, 의류 리폼, 댄스동아리, 요리교실 등을 운영했는데, 자립카페는 그중에서도 가장 반응이 좋았던 프로그램이다. 카페 문화가 널리 퍼진 지금, ‘바리스타’는 청소년이 선망하는 직업 중 하나이기도 한데 일반 카페 아르바이트 자리도 구하기가 쉽지 않다 보니 둠벙 자립카페가 그만큼 관심을 끈 것이다. 토요일 하루 동안의 자립카페 수익금은 재료비 등을 제하고 청소년 참가자들 몫으로 돌아갔으니 그 인기는 더욱 높아질 수밖에.
그렇게 청소년 바리스타들의 토요일 카페 운영은 매년 진행되며 둠벙의 명물이 됐고, 현재는 이 활동을 통해 모였던 주민들(도우미 역할을 하는 ‘길잡이 교사’)이 힘을 합쳐 사회적협동조합 ‘꿈꾸는배낭’을 창립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고래실이 기획하고 운영하던 청소년 활동은 현재 꿈꾸는배낭이 이어받아 전에 없던 새로운 내용과 형태의 활동을 만들어 가고 있다. 둠벙이라는 공간의 본래 취지를 살리고자 청소년 문화 활동을 기획하고 운영한 것이 지역 주민 역량 강화는 물론 또 다른 지역 공동체 활성화로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 청소년 바리스타
공간을 넘어 확장하는 가치
자립카페 이 외에도 의미 있는 문화 활동은 훨씬 오래전부터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코로나19 이전까지 매월 1회 자체 기획으로 열리던 문화 행사 ‘둠벙에 빠진 날’은 지역 예술인 초청 공연을 비롯해 지역 동호회 공연과 전시, 지역 청년과 청소년 집담회, 영화 감상회, 독서 동아리 낭독회 등 소소하지만 지역 공동체를 더욱 강화해 가는 프로그램으로 진행됐다. 그런가 하면 지역에서 쉽게 만날 수 없는 강연과 문화 행사를 열기도 했는데 작가 초청 북토크나 영화감독 GV, 공익성을 기반으로 한 캠페인 활동 등이 그것이다.
장기 프로젝트로는 2020년 연중 진행된 ‘길고양이 보호 캠페인’ 활동을 통해 옥천군의회에 동물보호조례안 제정을 촉구하고 가안을 전달하기도 했다. 2021년에는 기후재난 시대에 맞서는 생태공동체 만들기 활동으로 채식, 폐기물, 제로웨이스트, 로컬푸드 등을 주제로 한 다양한 강연과 주민 참여 활동을 진행했다. 이는 고래실이 발행하는 잡지 [월간 옥이네]가 지향하는 자치와 자급, 생태적 가치를 프로그램을 통해 실현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활동은 둠벙을 넘어 지역사회 안으로 더욱 깊숙이 들어가고 있다. 여성 농민 토크쇼나 토종씨앗 보전 활동 등이 이후 실제 토종씨앗 텃밭 공동 경작으로 이어지는 등 그간 진행된 활동의 가치가 공간 너머로 계속 확장하고 있다. 지역 여성의 건강한 네트워크 형성을 목표로 진행한 직조, 목공, 원두막 짓기 등 여성주의 문화 활동도 이러한 연장선상의 일이다. 여기에는 옥천뿐 아니라 서울, 대전, 울산 등 다양한 지역 여성이 참여하면서 지역 안팎, 도시와 농촌 여성의 연결을 꾀하는 자리가 되기도 했다.
다양한 문화 활동이 진행되는 둠벙은 지역 청소년 정책과 지원에도 영향을 끼쳤다. 옥천교육도서관이 청소년 문화 공간으로 리모델링되는 데 지역 주민의 목소리를 모을 수 있던 것도, 옥천군 청소년수련관에 학교밖청소년을 위한 카페 ‘에너지 충전소’가 문을 연 것도 둠벙 활동이 있었기 때문이다.
  • 시골언니프로젝트 ‘공구 실습: 직조틀 만들기’
  • 시골언니프로젝트 ‘뜨개질 수다회’
지역의 즐거움을 찾아, 변화를 만들어 가는
코로나19로 지역 문화 활동이나 이를 감당하는 공간 운영이 많이 위축된 것이 사실이다. 둠벙에서 이루어지는 활동 역시 코로나 이전의 모습을 완전히 회복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곳이 옥천 지역 주민의 일상 에서 크고 작은 문화 향유의 기반이 되는 것만은 여전하다. 오늘도 둠벙에는 세밀화 연구회, 옥천동화읽는어른모임, 여성주의 독서 모임 등 주민의 자발적인 모임이 열린다. 야생화를 세밀화로 그려내는 섬세한 손길, 동화를 읽으며 동심을 찾고 어린이와 청소년을 더욱 깊이 이해하려는 따뜻한 마음, 여성주의 독서 모임을 통해 거친 세상 속 연대를 놓지 않으려는 의지가 모인다. 그런가 하면 2022년 이 공간에서 진행한 여성 월경권 관련 강의를 계기로 고래실과 옥천제일교회가 함께 만든 옥천군 최초 공공생리대함이 이곳 화장실에 설치돼 현재까지 계속 운영되고 있기도 하다.
작고 소박한 동네 카페가 생활 문화를 기반으로 지역과 녹아들겠다는 지향을 가질 때 지역사회 안팎으로 어떤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지를 둠벙은 보여주고 있다. 여전히 수익이 나지 않고 지속가능성을 늘 고민해야 하지만 이미 그간의 발자국이 둠벙이 가야 할 방향을, 지속되어야 할 이유를 보여주고 있다. 앞으로 둠벙은 또 어떤 활동을 만들고 어떤 사람들을 모아낼까. 확실한 것은 이 공간이 지역의 고민을 담아내며 지역의 즐거움을 발굴하는 사랑방으로 계속 남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박누리
박누리
‘왜 모두 지역을 떠나고 싶어할까?’하는 막연한 의문을 안고 2010년 [옥천신문] 취재기자로 충북 옥천에서 살게 됐다. 2019년 지역문화활력소 고래실로 자리를 옮겨 지역 잡지 [월간 옥이네]를 만들고 있다. 지역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과 공동체 활동을 기반으로 지역에 사는 즐거움을 담아내는 문화 기획 활동도 함께 한다.
nuri.p.maru@gmail.com
사진제공_지역문화활력소 고래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