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의 지방분권 흐름이 거센 와중에, 지역이 주체가 되는 문화예술교육의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다. 이러한 지역화의 흐름과 더불어 지역이 주체적으로 만들어가는 문화예술교육의 의미를 짚어보는 ‘지역이 만들어가는 문화예술교육 포럼’이 7월부터 11월까지 광역과 기초단위에서 매달 릴레이 방식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이번 포럼은 문화예술교육 사업의 지방 이양 논의가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과 17개 광역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기초문화예술교육 거점이 공동 대응의 필요성을 공감하며 마련하였다. 이 포럼의 주요 논의내용을 바탕으로 지방분권 시대 문화예술교육 지역화에 관한 주요 이슈를 짚어본다.
읍면동을 호출하다
내가 사는 함양읍의 인구는 2만 명 정도이다. 함양군 전체 인구 4만 명 중 나머지 2만 명이 10개 면 지역에 흩어져 살고 있다. 20대 후반까지 살았던 서울시 강서구 발산1동의 인구가 함양군 전체 인구와 비슷하다. 행정구역상으로는 기초자치단체인 함양군과 강서구가 동급이지만, 인구로 따져보면 함양군과 발산1동이 동급인 셈이다. 발산1동에 살 때 내가 동네에 대해서 고민해본 적이 있었던가? 백석동은? 부암동은? 부끄럽지만 대도시에 살 땐 내가 사는 동네에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 고민해본 적이 없다. 내가 그 변화에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해본 적은 더더욱 없다. 동네는 학교나 회사에 다녀와서 생활하는 장소였을 뿐이다. 그런데 요즘의 나는 왜 이토록 ‘함양’에 대해 고민하며 살고 있을까?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번 포럼은 광주 양산동과 삼도동에서 활동하고 있는 두 명의 활동가와 완주와 구례라는 군 지역 기초단위 문화예술교육 거점 운영 사례를 통해 가장 끄트머리 문화예술교육의 가능성에 대해 논의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함양에 와서 닥치는 대로, 필요한 대로 일하다 보니 ‘활동가’로 불리거나 ‘내가 하는 이것이 문화예술교육이 될 수 있으려나?’ 하는 생각이 들곤 했는데 비슷한 고민을 가진 이들의 이야기를 듣는다고 생각하니 기대가 되었다. 작은 단위의 문화예술교육 정책은 어떻게 달라야 할까? 지역거점은 지원사업과 관리 위주의 지원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여러 질문을 안은 상태에서 포럼이 시작되었다.

생활밀착형 문화예술교육

광주 북구 양산동 마음놀이터 김옥진 대표의 발제 <문화예술교육과 활동가 그 사이쯤에서>를 들으며 내가 이토록 지역을 의식하며 살게 된 이유가 “동네에 머물면서 바라보고 무언가를 ‘발견’하는 시간의 힘” 덕분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빈둥’이라는 공간에 머물며 사람과 풍경을 바라보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같이 놀고, 활동을 만들어 갔던 시간이 모두 ‘문화예술교육과 활동가 사이 어디쯤에서’ 이루어진 일들이구나 싶다. 한 활동가가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에서 동네로 깃들어 자신과 이웃을 이롭게 하는 과정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김옥진 대표의 경쾌한 드로잉과 함께 펼쳐졌다.

광주 광산구 삼도동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김현미 생활문화일상 대표의 발제는 도시 외곽지역과 농촌 지역의 고민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최근 함양에서도 교육지원청을 중심으로 행복교육지구[혁신교육지구] 사업이 활성화되면서 학부모들을 중심으로 한 마을학교가 꽤 활성화되었다. 학교를 통해 지원금이 집행되다 보니 대부분의 마을학교가 ‘일시, 장소, 대상, 횟수’의 굴레에서 돌아간다. ‘모집’과 ‘수업’ 형태의 틀을 벗어나 좀 더 자치적인 일상적 배움터를 일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지 머리를 맞대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읍면동 단위의 문화예술교육은 수요자 맞춤형, 다단계 방식이 될 수밖에 없다”라는 김현미 대표의 이야기를 들으며 공감이 되었다. 경제적 효율성으로만 설명될 수 없는 지속성과 기다림이 필요하다는 말도.
자치와 순환 : 배움은 어디서 올까?
사람들은 노예가 아니라 주인으로 살고 싶어 한다. 도시에서 농촌으로 이주하는 것 또한 대부분 나의 일과 삶, 시간을 내가 꾸려가고픈 욕망에서 발현되는 일이리라. ‘읍’으로 이주한 첫해 예전 취미나 되살려볼까 하고 한국무용, 요가 등 문화원이나 사회복지관 프로그램에 참여해보았다. 하지만 ‘나라면 이렇게 할 텐데’ ‘나라면 이렇게 하지 않을 텐데’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수업에 집중하기도, 흥미를 느끼기도 어려웠다. 한 학기의 반을 발표회 준비에 할애하고 싶지도 않았다. 다행히 훌륭한 요가 선생님이 동네에 있었고, 나에게 딱 맞는 우쿨렐레 선생님은 유튜브에 있었다. 한 권의 책을 다섯이 같이 읽으면 다섯 권의 책을 읽는 것 같았고, 돗자리 깔고 맥주잔을 기울이며 동네 사람이 고른 영화를 보는 맛은 극장과는 다른 즐거움이 있었다. 투쟁이 필요할 때엔 재활용 피켓 만들기 워크숍을 열었고, 애도가 필요할 때엔 손님들과 한 달 동안 노란 나비를 접어 공동 작품을 만들었다.
우리는 뛰어난 교사나 훌륭한 강사가 없어서 배울 수 없는 걸까? 결코 그렇지 않다. 배움은 어디에나 있다. 동네 어린이와의 대화에서, 관심이 비슷한 사람들끼리의 동아리 활동을 통해서, 동네 사람들끼리 만들어가는 축제판에서 우리는 삶이 무엇인지 배우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힌트를 얻고, 함께 살아가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게다가 우리는 ‘팬데믹’ 상황에서 거대한 기획과 시스템이 얼마나 무력해지는지 눈앞에서 확인하고 있지 않은가. 어떤 변화와 위기에도 끄떡없이 더 작게, 더 단단하게 ‘자치’와 ‘순환’의 관점에서 배움이 기획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전남 구례에 있는 지리산씨협동조합 임현수 대표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로서 만나는 일”이 문화예술교육이라는 말이 든든하다. 우리는 이미 충분한 존재이고 스스로 서서 서로의 스승이 될 수 있으니 말이다.
지역이 마치 우주의 중심인 듯

언젠가부터 마을 활동가들의 활동을 엮어내고 필요한 역할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몇몇 사람에게 ‘함양작은변화네트워크’라는 모임을 제안하고 2019년부터 지역에 필요한 일을 해오고 있다. 다들 자기 일이 바쁜 활동가들이지만 시간을 내서 모임들이 어울릴 수 있는 사업을 기획해서 운영하기도 하고, 지역에 필요한 의제를 발굴하거나 공유하는 일을 해왔다. 하지만 요즘엔 각자 속한 모임의 사업이 너무 많아져서 함께 모여 일을 하기가 점점 더 어렵다. 각자 수주(?)받은 지원사업들을 진행하느라 네트워크 사업에 할애할 시간과 의지가 점점 줄어들고 있음을 느낀다. 이런 일을 꾸준히 고민하면서 지속적으로 해나가는 팀이 있다면 좋겠다.
다른 지역들보다는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최근 경남에도 광역·기초단위의 중간지원조직이 많이 늘었다. 마을만들기, 마을공동체, 사회적경제, 공익활동…. 하지만 자칫하면 무언가를 지시하는 또 하나의 행정기관이 되거나 두어 명의 일자리를 창출했다는 것 외에 큰 의미를 찾기 어려운 조직이 될 가능성도 충분히 있어 보인다. 언젠가는 (아마도) 우리 지역에도 그러한 센터와 기초단위 문화예술교육 거점이 생길지 모른다. 하지만 거점과 공간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을까? 결국 마을 곳곳에서 문화예술을, 배움터를 꽃피우는 일은 사람이 하는 일이고 우리는 지역이 마치 우주의 중심이 된 듯 서로 어울리고 서로에게 배우며 좋은 사람들과 차곡차곡 일상을 만들어 가면 될 일이다. 오늘도 애쓰고 있을 지역의 풀뿌리들에게 사랑과 연대의 마음을 보내고 싶은 날이다.

  • 문화예술교육 지역화에 따른 포럼 3차(기초 단위) ‘읍면동에서 가능한 문화예술교육’
    [출처] 지리산씨협동조합 유튜브
이은진
이은진
대학 이후 줄곧 ‘교육’과 ‘대안’이라는 키워드로 일해왔다. 아이를 낳고 ‘빈둥 엄마 되기’를 연구·실천하다 함양에 이주해 ‘빈둥’이라는 공간을 차리고 6년 동안 생활밀착형 문화예술(교육)기획, 지역연구 및 활동, 사람공부 등을 했다. 지금은 함양교육지원청에서 ‘학부모지원전문가’로 일하며 짬짬이 지역에서 필요한 일들을 따로 또 같이하고 있다.
svjin96@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