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의 지방분권 흐름이 거센 와중에, 지역이 주체가 되는 문화예술교육의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다. 이러한 지역화의 흐름과 더불어 지역이 주체적으로 만들어가는 문화예술교육의 의미를 짚어보는 ‘지역이 만들어가는 문화예술교육 포럼’이 7월부터 11월까지 광역과 기초단위에서 매달 릴레이 방식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이번 포럼은 문화예술교육 사업의 지방 이양 논의가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과 17개 광역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기초문화예술교육 거점이 공동 대응의 필요성을 공감하며 마련하였다. 이 포럼의 주요 논의내용을 바탕으로 지방분권 시대 문화예술교육 지역화에 관한 주요 이슈를 짚어본다.
일상에 자리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문화예술교육의 지금, 여기
2018년, 모 기초문화재단 팀장 시절 문화 소외세대인 청소년을 위해 방학 1주일간 집중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인 ‘예술일주’를 기획하고 의욕적으로 참가자를 모집했다. 아차차…. 청소년들은 방학에도 너무나 바빴다. 막바지에는 열정 많은 우리 팀 대리가 학교 앞에서 사탕 달린 전단으로 호객행위를 했음에도 모객 실패. 어쩔 수 없이 초등학교 6학년까지 대상 연령을 낮춰서 간신히 프로그램을 이어나갔다. 2019년에는 소규모 도시재생사업의 주민참여 프로그램인 ‘마을풍류단’을 만들었다. 고령화 속도가 빠른 마을에서 어르신들과 청소년이 함께 만나는 세대공감 축제를 만들고 싶었다. 글쓰기, 드로잉, 사진, 젬베, 아프리칸 댄스까지 화려한 라인업으로 야심차게 준비했다. 하지만 역시 모객 실패. 가뜩이나 주민 수가 적은 지역인데, 활동이 가능한 주민은 고령 친화 프로그램부터 새마을금고 노래 교실, 에어로빅 교실, 마을 풍물동아리 활동 등으로 이미 일정이 꽉 찬 상태였다. 간신히 3개 프로그램만 살려서 진행했다. 역시 같은 사업으로 중학교에서도 랩 만들기, 스트릿 댄스 등 프로그램을 개설했지만, 간식이 빵빵해야 아이들이 계속 참여할 수 있다는 교육복지사의 귀띔에, 아메리카노 단가도 따지는 경영지원팀장 눈치를 보며 간식 공수하느라 진땀을 흘렸었다.
한 유튜버의 유행어 ‘철이 없었죠’라는 멘트가 절로 나오는 이불킥 기억의 소환이다. 프로그램이 좋으면 참여자들이 알아서 몰리리라 생각했던 내가 참 철이 없었다. 주민들에게 문화예술교육은 수많은 마을 행사 중 하나일 뿐이고, 빡빡한 일상을 보내는 청소년에게는 PC방 한 시간과 바꿔야 하는 또 다른 선택지일 뿐이었다. 거칠지만 아픈 실패의 기억을 꺼내놓는 것은 이 장면이 지금 여기, 끝자락에서 일어나는 문화예술교육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설계자의 의지는 거들 뿐, 시작과 완성은 참여자의 몫이었고, 주민의 일상 속에 문화예술교육이 자리 잡기 위해서는 수많은 경쟁 거리보다 더 재밌고, 더 유혹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더욱 깊어진 지역 주체들의 관계 맺기
문화예술교육의 지방 이양을 계기로 각 지역에서는 지역이 주도하는 문화예술교육을 위한 준비를 이어가고 있다. 그 일환으로 대전·충남·충북·세종시 문화재단이 함께 준비한 지역이 만들어 가는 문화예술교육 포럼 4차(중부권)의 주제는 ‘지역의 주체적인 문화예술교육을 위한 고민’으로, 지역에서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지를 함께 돌아보는 자리였다. 정민룡 광주 북구문화의집 관장은 기조발제에서 당사자성에 기초한 문화예술교육을 강조하면서 지역의 끝자락인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는 문화예술교육을 가장 중심에 두고 판이 시작되어야 한다고 했다. 문화예술교육의 주도성을 지역이 가져가야 하는 상황에서 교육의 중심을 어느 주체에 둘 것인지 새롭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충남문화예술교육 지원체계 실태조사‧연구’를 발표한 박칠순 청운대학교 교수는 충남지역의 문화예술교육 자원, 기반시설, 현황 등을 통계적으로 파악한 결과를 공유했다. 지역별 편중과 편차, 국공립과 민간의 연결 필요성, 학교문화예술교육 현장에서의 요구 등이 실태조사를 통해 수렴되었다. 토론에 참여한 이안 공감문화예술연구소 대표는 공간 등 문화예술교육자원 관련 정보 공유, 자원 활용에서 있어서 절차 개선 등을 강조했다. 민경은 여러가지연구소 대표는 ‘민간거점 중심의 문화예술교육’을 주제로 충북에서 예술단체와 재단이 참여한 다중 협력체가 문화예술교육거점을 연구하고, 이 거점에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한 과정을 발표했다. 거점이 장소적 가치를 얻으면서 새로운 꿍꿍이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화수분 같은 곳간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은 임완준 문화학교 숲 대표가 10여 년 동안 문화예술교육 활동을 통해 변화하고 더욱더 깊어진 주민과의 관계 맺음 이야기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이희진 지역문화정책연구소 소장은 ‘문화예술교육 공교육과의 연계방안 모색’을 주제로 문화예술교육의 큰 축인 학교 문화예술교육에 대전문화재단과 대전시 교육청, 교사와 예술가가 협력·협업한 ‘예술더하기’ 사업을 공유했다. 예술가들이 융합 예술교육 프로그램을 함께 개발하고, 학교에서 교사와 함께 프로그램을 보완하여 모의수업을 진행하는 등 지역 주도로 학교와 지역 문화예술(교육) 주체를 연결하려는 의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예술더하기에 참여한 박효주(한국전통민화협회) 작가는 예술더하기가 참여자와 예술가 모두에게 새로운 발견의 기회로 작동했음을 이야기했다. 이재영 한국교원대학교 교수는 세종시의 ‘지방 이양에 따른 문화예술교육사업 지원체계’를 주제로 문화예술교육 지원체계의 상향식 하향식 이분법을 극복하고 수평적이고 협력적인 지원체계를 제시했다. 토론자인 조용희(비욘드아트스튜디오) 작가도 지원체계가 변화하는 과정에서 주민에게 맞춤형으로 익숙하지 않은 낯선 경험을 제안해볼 것을 이야기했다.
교집합을 만들고 파트너로 인식해야
이번 릴레이 포럼을 통해 그간 정책의 실행 주체로만 머물렀던 지역이 선제적으로 정책의제를 만들기 위해 여러 준비과정을 진행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역마다 진지한 고민의 장을 열고, 지방 이양이라는 아직 가보지 않은 미래에 관해 각자의 전망을 내놓고 있었다. 지역의 문화예술교육 기반과 현황은 여전히 울퉁불퉁하다. 문화예술교육이 도시재생, 복지, 학교 등 여러 영역과 교집합을 이루어 겹겹이 쌓여 있는 지역이 있는가 하면, 문화예술교육을 위한 베이스캠프조차도 부족한 지역이 있다. 이렇게 각 지역이 가지고 있는 사정이 문화예술교육을 강조할 수도, 문화예술교육을 아예 지워버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문화예술교육 정책은 늘 중앙에서 주도적으로 의제를 제시하고 그에 따른 공모 사업에 참여하면서 지역의 의제화가 이루어졌다. 하지만 지역 주도의 문화예술교육이 지속하기 위해 지금 준비해야 하는 것은, 이번 포럼에서 보여주었듯이 지역의 문화예술교육자원을 살피고, 주체와 장소들을 연결하고, 새로운 시도를 도모하며, 익숙해 보였던 문화예술교육 현장을 낯설게 바라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거점’을 기반으로 한 문화예술교육이 꽃피기 위해서는 그간 공모 사업 대상자로 인식되었던 민간 공간·단체를 파트너로 인식해야 한다. 코로나로 인해 ‘슬세권(슬리퍼와 세권(勢圈)의 합성어)’으로 불리는 근거리 생활권 활성화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는 지금, 마을의 작은 서점, 카페, 도서관 등이 문화예술교육 ‘거점’으로 단단히 뿌리내려야 한다.
배움의 무게보다 발견의 가치에
나의 문화예술교육 경험이 앞서 언급한 것 같은 이불킥으로만 점철된 것은 아니다. 춤이라고는 하나도 모르던 청소년들이 몇 주간의 워크숍을 거쳐 그들의 이야기로 훌륭한 움직임 공연을 보여주었던 풍경, 우연히 아들 친구 집에 놀러 갔더니 우리 재단에서 진행한 유아문화예술교육 도구들이 아직도 놀이도구로 활용되고 있던 기억, 말 통하지 않는 영국인 강사와 지역의 어르신들이 눈빛만으로 서로에게 몸짓으로 화답하는 놀라운 경험과 희열의 순간도 함께 고이 간직되어 있다. 이 순간들이 감응을 주는 것은 문화예술교육이 참여자의 것으로 완전히 흡수되었을 때 나올 수 있는 새로운 발견의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문화예술교육이라는 단어를 접할 때마다 느끼는 불편함은 ‘교육’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감이다. 모두가 지나왔던 학생 시절의 정서가 불러일으키는 ‘교육’의 엄격함과 무거움은 ‘문화예술’이라는 재기발랄한 단어에 무게 추를 다는 느낌이다. 사실 문화예술교육에서 우리가 지향하는 것은 낯선 경험을 통한 낯선 시선의 발견이다. 낯선 시선으로 나와 주변을 응시하고 나의 낯선 모습을 발견하는 것. 이를 통해 나의 살아있음을 다시 발견하는 것이다.
교사와 예술가가 함께하는 문화예술교육 간담회에 참여한 적이 있다. 한 예술가가 ‘자신의 수업 목적은 무언가를 배우는 경험을 주는 것이 아니라 참여자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이라는 추에 실린 무게로 인해 문화예술 본연의 역할인 ‘발견의 가치’를 잃어버리지 않는 지역 문화예술교육이 지금 여기, 현장에서 시작되기를 바란다.
원향미
원향미
문화정책을 글로 먼저 배웠다. 부산대학교 예술문화영상학과 최장기 근속 조교, 춤 기획자, 부산 민예총 정책위원장을 거쳐, 부산 금정문화재단에서 글로벌 팀장, 문화소통팀장이라는 특이한 직함을 달고 현장에서 문화정책을 배웠다. 지금은 2019년 9월 출범한 부산문화재단 정책연구센터에서 선임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늘 새롭게 시작하는 조직에서 일하다 보니 새 조직에서 새 기준을 만들어가는 것을 운명이라 생각하고 있다.
hmwon@bscf.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