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의 지방분권 흐름이 거센 와중에, 지역이 주체가 되는 문화예술교육의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다. 이러한 지역화의 흐름과 더불어 지역이 주체적으로 만들어가는 문화예술교육의 의미를 짚어보는 ‘지역이 만들어가는 문화예술교육 포럼’이 7월부터 11월까지 광역과 기초단위에서 매달 릴레이 방식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이번 포럼은 문화예술교육 사업의 지방 이양 논의가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과 17개 광역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기초문화예술교육 거점이 공동 대응의 필요성을 공감하며 마련하였다. 이 포럼의 주요 논의내용을 바탕으로 지방분권 시대 문화예술교육 지역화에 관한 주요 이슈를 짚어본다.
두려움을 떨치고 우물 밖으로 나와야 세상을 바로 보고 비로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우리는 대체로 두리뭉실한 보편적 질문을 던지고, 매번 규격화된 천편일률적 정답으로 답변한 다음, 모범답안과 문법에 걸맞은 해법도 제시하며 일사불란하게 널리 전파한다.
다시 질문해 보자. 진심, 문화예술교육을 위한, 전용공간이, 우리 지역에, 지금, 꼭, 필요할까? 이번 지역이 만들어가는 문화예술교육 포럼 3차 <영남권: 경북, 부산, 대구, 울산, 경남>을 계기로 전용공간의 당위성과 그 한계점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포럼의 주요 내용은 이 질문에 대한 영남권 광역문화재단 관계자와 문화예술단체 활동가들의 일곱 가지 삶의 이야기로 구성되었다.
실패의 경험에서 배우기
기조 발제를 맡은 이미연 전 부산문화재단 생활문화본부장은 문화예술교육 전용시설 ‘꿈꾸는 예술터’ 공모지원사업에 거점형으로 신청하여 탈락한 경험과 생활밀착형으로 재도전하여 선정되었으나 기초의회의 반대로 무산되었던 사례를 과정 중심 스토리로 재구성하여 소개했다. 광역문화재단 본부장급이면 정책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직위였으리라 감히 예측됨에도 불구하고, 그가 밝히는 실패 경험은 우리가 각자 현장에서 매번 부딪치는 소소한 장벽들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였다. 전문적인 문화기관 리더인 임원의 의지, 해당 업무 담당자의 고군분투만으로는 특정 목표를 에워싼 많은 장애 요인들을 걷어내기 벅찼으리라.
어느 문화예술 현장에서나 더 많은 아군의 도움이 절실하고, 함께 공감대를 모으고 설득과 협치의 정치를 하는 데 무수한 시간과 노력이 든다. 게다가 축적된 경험과 적절한 기회는 내 마음처럼 쉽게 오지 않는 법! 더욱이 임원의 임기는 짧고, 문화재단 직원이고 지자체 공무원이고 간에 순환보직으로 어느새 담당 업무가 달라지다보니 정성과 땀을 쏟아 밥을 잘 지어놓았나 싶다가도 밥상 뒤집히기가 한두 번이 아니다. 지역 불문, 지위고하 막론하고 망망대해 앞 외로운 섬 같은 무력감은 문화예술계에 몸담고 있는 모두가 한두 번쯤 겪어보았으리라 짐작한다. 하지만, 일시적 절망에 굴하지 않고 과감하게 사고를 전환해 보면, 뜻밖의 기회는 어딘가 도사리고 있다. 내 눈에 미처 띄지 못했을 뿐.
한편, 거액의 예산과 행정이 소요되는 중앙부처 공모사업도 매력적이겠지만, 우리 지역에 이미 조성하여 운영되고 있는 공간 중에 거점이 될 만한 공간을 물색하여 협업하는 방식을 고민해 볼 필요도 있지 않을까? 광역시 규모의 대도시에는 문화예술 활동을 펼칠 수 있는 다양한 공간이 하드웨어만 딱딱하게 세워져 말랑말랑한 소프트웨어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 곳도 여럿이다. 불철주야 연대할 파트너를 찾고, 협치와 설득의 정치로 여기저기 문을 두드려 우리 편과 현장의 동지를 더 많이 연결하는 것이 중요해 보였다.
공간의 존재 방식
두 번째로 발표한 김수진 울산 북구예술창작소 대표는 지역문화재단에서 가장 대표할만한 문화사업 이력을 갖춘 유능한 예술가이자 기획자의 성장기를 보여주었다. 다양한 공모지원사업에 두루 선정되고 활동도 열정적으로 하는 만큼, 그 결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사업이 이어졌다. 언뜻 봐도 자가발전하고 있는, 꽤 잘 나가는 문화예술단체이다. 그러나 그의 활동 면면을 보면, 그런 좋은 사례가 되려고 노력했다기보다, 그저 끊임없이 자기 사명을 찾아 부지런히, 더 열심히 분투하여 충실한 삶을 살아내었을 것으로 느껴졌다. 예술가 → 문화예술교육가 → 레지던시 운영자 → 마을협동조합원까지, 지금껏 이어진 여러 활동은 꽤나 치열한 자기 노력의 결과이자 삶 그 자체다. 보따리장사처럼 시작하고, 전세살이처럼 남의 집에 잠시 빌려 들어가 살아보기도 하고, 한마디로 좌충우돌 생존기였다. 이 이야기에서 주목할 만한 지점은 그때그때 옷을 달리 갈아입고 있지만, 그 사람은 여러 상황 변화와 더불어 그 자리에서 자기 삶을 살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런 경우, 물리적인 공간의 존재 여부보다는 바로 그 인물이 지속해서 존재하고 주변으로 영향력을 전파하고 있다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세 번째 이야기는 전남문화관광재단의 군 단위 지역 4곳을 문화예술교육 거점화하는 ‘문화지소’ 사업으로 도시와 농촌 지역 간 문화 격차 해소를 내걸어 농어촌 문화예술교육을 활성화한 대표사례이다. 군 단위 기초지자체와 예산 매칭을 넘어 관련 조례제정의 법제화를 통해 전략적 지원 근거를 만들었고, 광역문화재단의 담당 팀장은 22개 기초 시군을 돌며 사업브랜드 ‘문화지소’ 홍보 영업을 열심히 하러 다녔다고 한다. 그리고 마침내, 2021년 중앙부처에서 주관하는 ‘꿈꾸는 예술터’ 공모사업에 선정되어 예산확보의 안정적 구조까지 마련해 내었다. 문화예술교육 지역화 대응을 위한 실행계획 주요 과제인 문화예술교육 지원 관련 조례제정, 지역별 이슈 맵 도출, 지자체-광역-기초 협력망 구축, 지역 차별화 전략 등 광역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광역문화재단) 역할을 지역에 맞게 잘 살렸다는 평가가 주효했다.
모범답안은 없다
‘전용공간’이라는 주제를 둘러싼 부산문화재단의 정책 주도과정, 울산 민간단체의 여러 활동, 그리고 전라남도의 광역-기초의 협업사례, 이 세 가지만 보아도 각자가 처한 상황과 해법은 실제로 참 다양하였다. <공간>이라는 주제로 2부 토론에 참여한 경남(전오미 극단 초콜릿나무 기획자), 대구(정세용 B커뮤니케이션 대표), 경북(유지은 진짜재미있는 공연제작소 기획자), 부산(김영수 책과아이들 대표) 등 네 지역의 활동가들 역시 4인 4색의 천차만별 경험을 공유하였다. 결론적으로 이번 포럼에 소개된 사례는 개별화된 군상과도 같았고, 모두가 원하는 쉬운 정답처럼 하나의 기준과 잣대로 정의하고 규정할 수 없었다. 이번 3차 포럼의 다양한 사례를 종합하여 최초의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 그럴듯하게 정리해보면, “각자가 의미를 형성하는 활동으로 추종자의 인정을 받아 성공하여 본받을 만한 모델화에 도달하면, 우리가 그토록 외치는 ‘지속 가능성’이 보장될 거야.”라는 정도의 결론일 것 같다.
남과 나를 비교하지 말고, 어제의 나와 내일의 나를 비교해야 한다. 현재의 우리가 어디 즈음에 있는지를 인식한 다음 구체적 실행계획으로 실천한다. 다른 누군가와 경쟁하지 말고, 나의 상황을 객관화하여 인식하고 스스로 정한 목표를 향해 단계적으로 나아가는 것 외엔 달리 방도가 없음을 깨닫게 해주는 시간이었다. 어느 위치 어느 지역에서건 우리가 다 함께 무엇을 하기 위해 만나고 있는지를 다시 되짚어 보면 좋겠다. 모범 답안지는 거짓이다. 정답도 없다.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로 인해 갑자기 활동공간에 위기가 닥쳤다. 그렇지만, 공간의 변화는 새로운 활동의 실험적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항구적 공간이 절대적이지만은 않다는 사실도 동시에 깨닫게 되었다.”
“개인이나 민간단체 자력으로 운영하는 공간보다는 모두가 접근 가능한 공공공간이 있다면, 그 거점을 중심으로 지속적인 연대와 시민 네트워크를 희망한다.”
“공공정책의 실행은 개인플레이가 아닌, 집단 경기다. 고정불변의 행정 문법에 기대지 말고 상황에 따른 유연함과 어색하고 작위적이더라도 환대의 제스처로 연대하자.”
여러 사람의 다양한 제언을 곱씹고, 다시 질문에 질문으로 해답을 어림해 보며 이 글을 마무리하련다.
진심 …… 현장의 충분한 의견수렴과 연대가 되었는지?
문화예술교육을 위한 …… 장르융합의 시대, 사업 범위를 좀 더 광범위하게 넓히면??
전용공간이 …… 문화예술복합공간도 다양한데 함께 협력할 파트너는?
우리 지역에 …… 없다고? 인접한 옆 동네는?
지금 …… 당장? 혹은 이다음?
꼭 …… 굳이 없어도 다른 대안은?
필요할까? …… 유지관리를 위한 예산과 운영인력은 충분할까?
  • 문화예술교육 지역화에 따른 포럼 3차 (영남권) ‘지속 가능한 지역 문화예술교육 공간’
    [출처] 경북문화재단 유튜브

김진희
김진희
경기문화재단 지역문화실장(前 예술교육팀장). 서양현대미술사와 박물관학을 전공하였고, 일할 때 강점 테마는 ‘책임-배움-지적사고’라는 진단 테스트 결과가 나왔다. 최근 10여 년간 서울을 품고 있는 경기도의 문화, 예술, 교육, 정책에 대한 쉼 없는 현장학습으로 배움을 실천하고 있다.
jecfa1@ggcf.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