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의 지방분권 흐름이 거센 와중에, 지역이 주체가 되는 문화예술교육의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다. 이러한 지역화의 흐름과 더불어 지역이 주체적으로 만들어가는 문화예술교육의 의미를 짚어보는 ‘지역이 만들어가는 문화예술교육 포럼’이 7월부터 11월까지 광역과 기초단위에서 매달 릴레이 방식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이번 포럼은 문화예술교육 사업의 지방 이양 논의가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과 17개 광역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기초문화예술교육 거점이 공동 대응의 필요성을 공감하며 마련하였다. 이 포럼의 주요 논의내용을 바탕으로 지방분권 시대 문화예술교육 지역화에 관한 주요 이슈를 짚어본다.

「문화예술교육 지원법」이 제정되고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설립된 게 2005년이니 광역을 거쳐 기초단위에서 문화예술교육이 이슈화되기까지 15년 정도가 걸렸다. 그간의 성공과 실패의 경험,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 지역의 연대로 문화예술교육이 작고 작은 단위에서 더 멋지게 안착할 수 있길 바라며 글을 쓴다.
“어떻게”의 해답은 우리에게 있다
‘지역이 만들어가는 문화예술교육 포럼 4차(전주)’가 10월 29일 우리 동네 팔복예술공장에서 전주문화재단 주최로 진행됐다. 중앙에서 광역과 기초로, 공간적 범위가 좁아질수록 현장은 세밀하고 정교해지는 만큼 기초단위 문화예술교육에 앞서 전주문화재단이 안고 있는 고민의 실마리를 어떻게 풀어가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지역대학, 민간단체, 지역 내 유관기관이 함께 지역 문화예술교육의 공감대를 만들고 모두가 동의하는 지향점을 찾아가는 과정에 관한 이야기다.
예술교육을 위해 기초거점 주체인 전주문화재단이 지역대학과 어떻게 관계 맺기를 시작하고 있는지, 전주형 생활권 문화예술교육 실천을 위해 민간단체와 기관이 어떻게 협력해야 하는지, 교육도시를 표방하는 전주시 정책안에서 꿈꾸는 예술터의 문화예술교육이 어떻게 연결되어야 하는지, 마지막으로 해외 예술가와의 국제교류를 통해 예술교육 프로젝트를 실행한 일련의 과정을 발제와 사례를 통해 공유하였다. 전주문화재단이 던진 이 네 가지 “어떻게?”의 답은 우리에게 있었다. 결론은 우리가 답이다. 지역을 이루고 있는 여러 주체와 함께 머리 맞대고 시도하고 실험했던 문화예술교육이 지역의 경험으로 쌓이고 그것이 지역 문화예술교육의 정체성이 되는 것이 아닐까.
낯섦의 시작, 관계 맺음의 확장
상생, 협력, 연대, 교류, 관계. 이번 포럼에서 주요하게 나온 단어들이다. 전주문화재단은 “문화예술교육은 지역이 함께 준비하고 협력해 실천해야 하는 영역”이라는 기초거점의 핵심이슈를 지역 주체들의 경험치로 발견해가고 있었다. 정유진 전북대학교 아동학과 교수는 생활로서의 예술교육이 지역대학과 상생하는 관계를 맺음으로써 활성화될 수 있음을 시사하며 첫 번째 주제 발제를 시작하였다. “교육, 연구, 봉사”로 대학의 역할을 정의하고, 이것이 어떻게 문화재단의 문화예술교육과 연결될 수 있는지를 아동가족학 사례로 소개했다. 아동가족학은 사람들 그리고 가족들과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상호작용하고 그 상호작용을 통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게 도울 수 있을지 연구하는 실천적 학문이라는 면에서 문화예술교육이 지향하는 것과 유사점이 있다. 특히 전주문화재단이 추구하는 ‘예술놀이’라는 범주에서 놀이성, 창의성의 기획이 아동가족의 활동과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이 과정에서 학생과 예술가가 만나고 교수와 기획자의 협업으로 새로운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기초재단에서 운영하는 예술놀이 프로그램을 대학의 고유한 연구기능을 통해 분석하고 평가하는 등 효과적 데이터를 축적·활용함으로써 상생하는 관계를 맺을 수 있다면서 ‘연구를 통한 관계 맺음’을 설명하였다. 마지막으로 대학이 가진 지역 인프라가 기초 문화예술교육 거점주체와 협력할 수 있는 방안도 제안되었다. 아동·가족 정책 안에서 연결되어 있는 지역의 다수 기관이나 사업이 예술활동을 매체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대학과 문화예술교육 기초거점 주체의 관계 맺음이 확장될 수 있다는 것을 전주문화재단의 사례로 알 수 있었다. 실제 전주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예술놀이 프로그램의 현장 기록 작업에 전북대학교 아동학과 학생들과 전문가들이 참여·관찰함으로써 그 효과성을 검증하는 실험이 진행되고 있어 협력의 첫발이 시작되고 있었다.
민-관, 유연한 네트워크의 실천
전주의 대표적 민간문화시설인 우진문화공간 박영준 예술감독이 생활권 예술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실행한 생생한 현장 이야기가 이어졌다. 민-관이 어떻게 파트너십을 만들어가야 하는지, 그리고 예술교육을 위해 행정이 어떤 유연성을 발휘했는지에 관한 기획자의 경험담이자 ‘전주 문화예술교육 반상회’의 사례다. 전주 문화예술교육 반상회는 예술가의 예술교육 활동 진입 그리고 예술가 간의 협력을 통한 사전 모의프로그램 운영까지 그동안 예술교육에서 결여되어 있었다고 생각되는 조건들을 실험해보는 프로그램으로 예술가 5명과 함께 기획하였다.
이 과정에서 전주문화재단은 예술가가 행정이나 기획의 틀 안에서 제한받지 않고 자신의 고유한 창작활동과 환경을 기반으로 각자의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실행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고 행정의 유연성도 허용하였다. 그리고 예술가의 예술놀이 프로그램은 생활권 예술교육으로 실행해보는 과정을 거쳤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기초거점 주체의 역할이다. 관리나 지원의 역할을 넘어 예술가나 기획자가 시민과 연구하고 실험해보는 환경을 마련해 주는 것. 또한 정책의 틀 안에서 기관이 기획한 사업에 예술가가 참여하는 방식이 아니라 예술가가 상상하는 기획이 실천되도록 하는 지원으로 다양한 현장이 정책으로 아우러지는 것이 기초단위 문화예술교육에 있어 매우 중요한 지점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아이들을 가슴 뛰게 하는 예술을 위한 지역의 협력
마지막 주제발표는 전주시 야호학교 장경수 교장의 학교 운영 철학과 청소년기 아이들에게 있어 예술교육은 어떠해야 하고 무엇이어야 하는지, 지역사회는 어떤 일을 고민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졌다. 무용을 좋아하는 한 남자아이의 성장기를 다룬 영화 <빌리 엘리어트(Billy Elliot)>의 한 장면을 소개하면서 시작되었다. “춤을 출 때 어떤 기분이니?”라는 질문에 대한 빌리의 대답이다.
“모르겠어요. 그냥 기분이 좋아요.
조금은 어색하기도 하지만 한번 시작하면 모든 걸 잊게 되고…
그리고… 모든 게 사라져요. 사려져 버리는 것 같아요.
내 몸 전체가 변하는 기분이죠. 마치 몸에 불이라도 붙은 느낌이에요.
전 그저 한 마리의 나는 새가 되죠. 마치 전기처럼요.”
이 영화를 본 사람이면 누구나 기억하는 명대사다. 이렇듯 “아이들을 가슴 뛰게 하는 것이 바로 예술이다.”라고 장경수 교장은 말한다. 그러나 감수성이 말랑말랑한 청소년 시기의 아이들이 입시 위주의 시스템에서 술을 경험하는 기회가 적어지고 있는 게 현실이고 학교의 시공간이 이것을 해결해주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지역사회가 나서서 대안을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이 질문의 답을 찾아가는 야호학교는 지역사회와 만나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팔복예술공장과 예술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고 이렇게 시작된 기관 간의 협력망과 파트너십은 시민 네트워크를 만들고 새로운 연대를 만들어가고 있다.
문화예술교육, 현미경으로 지역을 들여다보는 것
전주가 기초단위 문화예술교육 거점을 만들어가기 위해 시도하고 있는 다양한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학교, 민간단체, 예술가라는 각각의 점은 선으로 이어지고 선과 선이 만나 교차하고 연결되면서 다양한 형태의 면을 만든다. 그것이 곧 문화예술교육이고 지역이지 않을까? 종합토론에 참석한 전주, 청주, 춘천지역의 활동가, 예술가, 기획자도 자기 현장을 통해 발견한 예술교육의 가치와 다년간의 경험을 나누었다. 허심탄회한 얘기들이 편하게 오가는 자리였다. 그중 기억에 깊게 남는 말이 있다. “문화예술교육(의 역할)이라는 게 회복할 수 있는 탄력성을 얻고 살아가는 힘을 얻는 데 있다고 했을 때 그것이 과연 예술가들만의 노력만으로 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다. 문화예술교육은 그 복잡하고 어려운 단어만큼이나 다양하고도 고유한 영역이 만난 분야다. 그러니 함께 그려가면 좋겠다. 예술가, 시민, 학계, 교육계, 민간단체 등 지역의 여러 영역과 주체의 노력 안에서 작동되는 문화예술교육. 그 관계 맺음이 필요한 때다.
문화예술교육의 지역화를 이야기할 때 나는 현미경으로 식물을 들여다보는 것을 연상하곤 한다. 초등학교 5학년 과학 시간, 나뭇잎 하나를 따와 유리판 위에 올리고 현미경 렌즈를 돌려 초점을 맞춰가며 더 자세히 보려고 애쓴 적이 있다. 웬만해선 맨눈으로 볼 수 없었던 것들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선명히 보여 신기했었다. 문화예술교육을 통해 지역을 바라보는 것도 그런 것 같다. 장소·공간으로 느껴졌던 이곳도 마을과 동네가 있고 또 여러 골목도 보인다. 집과 집이 이웃해 살아간다. 그 안에는 나와 우리의 일상과 이야기가 있다. 나와 이웃의 이야기가 모이고 이웃과 이웃으로 이어지고, 그렇게 모여 골목의 이야기로 또 동네와 지역의 이야기로 연결되는 것이 지역 문화예술교육의 시작이다.
임진아
임진아
전주에서 나고 자라 단 한 번도 전주를 떠난 적 없는 지역토박이. 가구디자인을 전공하고 큐레이터로 활동하며 30대를 보내고 문화예술교육, 지역문화사업과 함께 40대를 보냈다. 지역과 사람에 영감을 주는 것들에 관심을 가지며 50대를 시작했다. 중학생때부터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을 좌우명으로 삼고 열심히 살고자 노력하고 있다.
woodlja@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