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내가 제일 재밌어하는 것은 도시에서 만나는 동물들에게 말을 거는 일이다. 길을 가다가 날아가는 까치에게 어디 가느냐 묻고, 참새들이 모여 있는 곳을 지나치면 무얼 먹고 있는지 묻는다. 가끔은 수풀 속에 숨어 있는 고양이와 비슷한 눈높이로 앉아 ‘뭐해?’하고 묻는다. 그리곤 귀여운 상상에 빠진다. 까악ㅡ까악ㅡ 하고 지나가는 까치는 ‘나 지금 바빠! 나중에 얘기해!’라고 말하는 것 같고, 참새들은 ‘오늘 여기 쌀알이 엄청 많아! 너는 아침 먹었어?’라고 되묻는 게 아닐까 하고 말이다. 내가 이렇게 동물과 대화를 나누는 상상을 하는 사람이 된 데에는 개인적인 생태 전환 과정이 있었다.
나의 생태 전환 여정의 출발점은 그림책이었다. 2017년부터 약 2년간의 조사와 작업 끝에 첫 그림책 『The Hummingbird has Spoken』(벌새가 말했어)이 출간됐다. 이 책은 세계시민교육 전집 중 환경 감수성 교육을 위한 그림책으로, 조사 중에 알게 된 자료들이 나의 시야를 넓혀주었다. 특히 그린벨트 운동의 창시자인 케냐의 왕가리 마타이(Wangari Muta Maathai)의 크리킨디 벌새 우화와 중국의 플라스틱 수입 법안을 개정하는 데 도화선이 된 왕 지우 리앙(Jiu-Liang Wang) 감독의 다큐멘터리 등을 보면서 기후 행동의 다양한 면모를 알게 됐다. 하지만 이때만 해도 ‘오! 이렇게 멋진 사람들이 있구나!’라고 생각했을 뿐, 내 일상에 특별한 변화는 없었다.
걷고, 그리고, 대화하며 발현되는 생태 감수성
진짜 변화는 그림책이 출간된 다음 해에 마주한 호주의 산불 장면에서 시작되었다. 붉은 불길에 휩싸인 채 울부짖는 코알라의 모습이 나의 첫 그림책의 장면과 교차하며 오랫동안 잔상을 남겼다. 게다가 비슷한 시기에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이 시작되어 수많은 질문이 떠올랐다. 질문을 따라 이 사태의 원인을 찾다 보니 두 사건 모두 인간과 지구의 관계가 틀어졌기 때문임을 알게 됐다. 무분별한 산업 활동으로 지구를 뜨겁게 하고, 야생동물의 서식지에 함부로 침입한 인간의 과오가 코알라와 나의 일상을 삼켰다는 사실이 무척 당황스러웠다.
사라지지 않는 막막함과 질문을 안고 이듬해 나는 친구들과 생태 감수성 재고를 위한 공동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의 ‘2022 한-아시아 사회참여 문화예술교육 교류 워크숍 및 공동프로젝트’ 지원을 받아 필리핀, 인도네시아, 싱가포르의 예술가들과 ‘엠팟 마타’(Empat Mata, 말레이어로 ‘네 개의 눈’이라는 뜻)라는 팀을 구성해 〈ANIMALIA〉(이하 애니멀리아) 프로젝트를 공동 기획했다. 애니멀리아 프로젝트는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사는 네 명의 예술가가 예술을 매개로 야생동물에 대한 기억, 지역사회의 환경 문제에 대한 관점을 나누고, 각 지역의 어린이, 청소년, 청년이 참여하는 교육프로그램으로 구성했다.
가장 좋았던 활동은 인도네시아 작가의 제안으로 시작한 ‘걷기 교육’(Instructional Walking)이었다. 걷기 교육은 각 참여자가 사는 지역을 산책하면서 발견한 야생동물, 자연환경 등을 관찰하여 그림으로 그린 후, 경험한 바를 이야기하는 활동이다. 걷기 교육을 하기 위해 우리는 시간을 정해 실시간 온라인 미팅으로 만났는데, 만날 때마다 비가 오던 필리핀의 농장 지역 풍경과 멸종위기 동물을 보호하는 지역에 방문한 인도네시아 작가의 그림들, 그리고 바쁜 싱가포르 도심에서 자연을 찾기 위해 노력하던 작가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나는 걷기 교육을 우리나라 아이들과 함께하는 워크숍에도 적용했다. 총 5차시 중 2차시에 아이들과 근처 생태공원으로 나가 지역 생태의 특징을 관찰하고, 까치와 곤충 등을 찾아 그렸다. 야외로 나가자 아이들은 저마다 동물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쏟아냈고, 지식을 가르치는 교수 활동이 없이도 자연을 보고, 듣고, 느끼면서 대화를 나누는 동안 진짜 학습이 일어났다.


    • 〈애니멀리아〉

  • 〈공존사전〉어린이 워크숍
공감 능력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친구
애니멀리아 프로젝트는 지역사회를 야생동물의 서식지로 보고, 사람과 동물이 공존하는 방법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워크숍이었다. 나는 여기에 몸짓을 더해 동물 입장에서 상상하는 과정을 더한다면 어떤 대화를 나눌 수 있을지 궁금했다. 그래서 야생동물 입장에서 인간에게 하고 싶은 말을 예술로 표현하는 워크숍 〈공존사전〉을 기획했다. 참여자들은 야생동물의 움직임을 흉내 내면서 서식지, 함께 놀 친구, 충분한 먹이가 있는지를 탐색해보고 새끼 낳는 시늉을 한다. 몸으로 동물의 입장에 몰입한 후에는 자신이 상상한 동물의 패턴을 그려 콜라주를 하면서 인간에게 하고 싶은 말을 떠올린다. 작품이 완성되면 그 의미를 발표하는 시간을 갖는데, 동물의 입장을 헤아리며 만든 작품 한 장 한 장에는 참여자 개개인이 동물과 맺어온 관계, 기후 위기에 대해 알고 있는바, 워크숍에 대한 감상까지 녹아있었다.
참여자들과 나눈 대화는 기후 위기에 대한 책이나 뉴스보다 오랜 잔상을 남겼다. 기후 위기 이야기를 하는 일부 책이나 학자들의 발표, 뉴스 등은 사람들을 야단치는 것 같이 느껴졌다. 아마 기후 위기의 경각심을 일깨워 주려는 의도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다그치듯 다가오는 전문가들의 목소리를 듣고 나면 두려움을 깨우는 목소리가 얼마나 효과적인지 의문이 들곤 했다. 애니멀리아와 공존사전 프로젝트는 기후 위기에 대하는 인간의 잠재력은 공감 능력과 상상력에 있음을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기후 위기에 무관심한 게 아니라, 어떻게 관심을 확장해 가야 할지 막막해할 뿐, 차근차근 대화할 수만 있다면 충분히 실천적인 방법을 찾는 힘이 있음을 보여줬다. 나는 예술이 사람들을 야단치지 않고 기후 위기에 대한 해결 방법을 찾기까지 공감 능력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친구가 될 수 있을 거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 〈공존사전〉은 ‘Artistic Language Dictionary for Coexistence’(공생을 위한 예술 언어 사전)라는 제목으로
    2022년 9월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린 ITAC 6(The 6th International Teaching Artist Conference)에서 첫선을 보였다. 이후 몇 번의 개정을 거쳐 이화여자대학교 문화예술교육원에서 3회, 대전의 어린이를 대상으로 3회 추가 진행하여 현재까지 약 100여 명이 참여하였다.
우정의 언어로 나누는 생태적 대화
나는 내가 느낀 바를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없을지 궁금했다. 그래서 지난가을부터 겨울까지 두 계절 동안 열세 편의 편지를 보내는 메일링 서비스 프로젝트 〈우정의 언어 예술〉을 진행한 후, 한 권의 책으로 묶었다. 열세 편의 편지에는 여러 나라의 예술가들과 기후 위기 시대에 예술로 공존하는 방법에 대해 나눈 대화를 담았다. 런던의 자연에서 얻은 천연물감 브랜드 ‘런던 피그먼트(London Pigment)’를 운영하는 시각 예술가 루시 메이즈(Lucy Mayes)와 100년 뒤 노르웨이 오슬로의 한 숲에 개관을 준비 중인 미래 도서관(Future Library)의 이사장 안느 비아트 호빈(Anne Beate Hovind)과의 대화는 기후 위기로 비관하기 쉬운 인류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바라보는 시각을 검토하는 시간이었다.
국제예술교육실천가대회(ITAC) 공동 설립자인 에릭 부스(Eric Booth)와는 ‘ITAC IMPACT: Climate’ 프로젝트를 소개받고, 기후 위기 시대를 살아가는 예술교육실천가의 역할에 관한 대화를 나눴다. 마지막으로 필리핀의 아티비스트 라즈 살바리타(Raz Salvarita)는 환경 감수성을 재고하기 위해 지역에서 실천한 커뮤니티 아트와 정책 입안에 이르기까지 약 20년간 활동해온 이야기를 나눠주었다. 그는 생태적 대화가 임계점을 넘어서면 실제 변화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지구를 향한 애정을 세계 곳곳에서 실천하는 예술교육실천가들의 이야기는 내가 생각했던 예술의 가능성을더 크고 강하게 보여주었다.
기후 위기는 인류가 아직 해결해 보지 못한 난제이다. 나는 기후 위기 앞에 선 인류의 상황을 떠올리면 드니 빌뇌브 감독의 영화 〈컨택트〉가 생각난다. 한 번도 마주한 적 없는 미확인 물체의 방문에 두려워하는 인류는 폐쇄적인 태도를 취한다. 하지만 주인공인 언어학자 루이즈 뱅크스 박사는 용기를 내어 방호복을 벗고 그들의 문화와 표현방식을 이해하는 방향으로 태도를 전환한다. 나는 예술이 우정의 언어라 믿기에 루이즈 뱅크스 박사처럼 오늘도 새들과 고양이, 풀과 나비에게 말을 건다. 이들이 아프지 않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공부하고, 함께 이야기를 나눌 친구와 동료를 찾는다. 그리고 더 많은 이들이 생태 전환의 계기를 얻을 수 있게 하려고 목소리를 낸다. 기후 위기의 해답은 아직 알 수는 없지만, 우리가 산업화를 이룬 시간만큼 예술로 지구에 말을 걸고, 지구의 목소리를 듣는 시간을 쌓는다면 지구와 건강하게 공존하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으리라 상상하면서 말이다.
  • 〈애니멀리아〉나라별 워크숍(한국, 필리핀,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출처] 유튜브 Yunji Gong
공윤지
공윤지
예술을 통해 경계를 넘어 친구 만들기를 좋아하는 예술교육실천가. 디자인(BA)과 미술교육(MA)을 공부하고, 어린이, 청소년 대상 예술교육을 해왔다. 그림책 『The Hummingbird has Spoken』과 에세이 『우정의 언어 예술』을 지었고, 시 그림책 『멀고도 가까운 노래들』에 해제를 썼다.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문화예술교육원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홈페이지 www.gongyunj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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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_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