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이 들고 나는 것은 무엇일까? 고민하던 시간이 있었다. 그것은 내가 쓰고 버리는 쓰레기들을 오랜 시간 바라보게 했고, 내가 먹고 싸는 것에 몰두하게 했으며, 내가 숨 쉬며 만나고 사그라지는 것들의 관계로 다가가게 했다. 그저 살아가며 일어나는 일련의 일들이었기에 한 발짝 더 내 삶을 스스로 일구며, 내가 심고 키운 것을 취하며 살고자 했다. 그런 시간이 흘러 흘러서 만나게 된 것이 마을 텃밭이었다.
  • 강북마을텃밭 모내기
  • 수확하고 밭에 남겨진 작물들
생의 시간을 이어가는 나의 흔적들
북한산 아래 자리한〈강북마을텃밭〉은 마을의 여러 주민이 자연과 더불어 농사를 짓는 생태 텃밭으로 일구며 가꿔가고 있다. 4년째 여전히 초보 농부의 어설픈 모습이지만, 작은 텃밭을 가꾸며 체감하는 낮과 밤, 그리고 기온과 기후의 변화에 따른 작물들의 생장은 숨을 쉬고, 말을 건네고, 미소를 머금으며 이 땅에 발을 내딛는 모든 순간을 감동케 했다. 텃밭은 봄이면 시농제를 시작으로, 밭을 갈고, 씨앗을 뿌리고, 새싹을 기다린다. 모내기 날이면 다 함께 손을 모아 작은 논의 써레질을 시작으로 토종 벼를 심고, 개구리들의 울음을 들으며, 허수아비를 만들고, 새들을 쫓으며 벼가 익기를 기다린다. 여름과 가을의 무성한 수확의 계절을 지나, 추수와 가을 김장 농사까지 마치면, 텃밭의 1년의 일정은 대략 마무리된다.
겨울을 맞이한 밭은 한 생이 자라고 다음 생으로 이어가는 시간을 맞이한다. 그 귀중한 시간을 함께하기 위해 나는 땅에 떨어진 식물들을 고이 챙겨와 씻어 말리고선, 먹고 난 과일 껍질과 말려진 잎, 뿌리 등과 함께 전시장에〈땅의 별〉이라는 이름으로 걸어놓았다. 사람들은 그 별들 사이를 오가며 만져보고 맡아보고, 바스러지는 것들과 마주했다. 전시를 통해 수많은 생이 한 해 동안 하늘의 무수한 별처럼 땅에서 솟아나 주변을 반짝이며, 나와 세상을 비춰주고 있음을 확인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 〈땅의 별〉(2022, 먹고 남겨진 후 말려진 배추, 사과 껍질, 파뿌리)
생을 품은 고슬고슬 퇴비 전시
살아가며 내가 남기는 것들에 주목해보는 일이 얼마나 될까? 시선을 조금 돌려 스스로가 먹은 것을 남기는 흔적을 살펴보았다. 매일 생을 이어가기 위해 음식을 먹고, 그 음식은 내 몸을 지나 다시 밖으로 빠져나간다. 동물의 배설물 중 사람의 배설물이 가장 많은 영양분을 가지고 있어 훌륭한 퇴비가 될 수 있다는 말은, 우주의 점 하나인 내가 생을 이어가고자 먹은 것들이 다음 생을 잇는 역할을 할 수 있는 생의 또 다른 빛을 발견했다. 텃밭의 생태뒷간에 모아둔 도시농부들의 대소변은 음식물 쓰레기와 흙을 섞어 몇 달간 고온 발효를 시켜 자연 퇴비를 만든다. 잘 발효된 자연 퇴비에서는 땅을 살릴 미생물이 가득한 고슬고슬한 흙 내음이 난다. 실로 멋진 순간이다.
텃밭에서 많은 이들이 힘을 모아 만든 퇴비를 전시장 한 편에 가지고 왔다. 겨우내 움츠려 있던 곤충들은 봄의 시작을 알리며 깨어나기 시작했고, 싹이 핀 식물들은 나고 지길 반복했다. 밭에 뿌려졌으면 호박이나 콩이 되었을지 모를 식물에도, 꼼지락대며 흙을 먹는 지렁이에게도 미안한 마음을 가득 안고, 그들의 생을 잠시 빌려 함께하는 동안 하루도 게을리하지 않으려 애를 썼다. 전시를 마치고 다시금 퇴비의 역할로 돌아간 흙은 강북을 넘어 마포에 남겨져 또 다른 생들을 이어가고 있다. 다르게 말하면 내가 먹고 남긴 음식물 쓰레기와 대소변이 지역을 이동해 생의 순환을 이어가고 있다는 말이 된다.
  • 〈퇴비언덕〉(2022, 1~3년간 발효시킨 자연퇴비에서 자연적으로 자라나는 동·식물)
곧 다가올 여름에는 관리해 주지 않으면 밭에 잡초가 작물보다 훌쩍 자라 수확이 어려워지게 된다. 같은 식물이지만 먹지 못해 뽑혀 나간 ‘잡초’를 모아 동글동글 눈사람처럼 뭉쳐〈초사람〉을 만들어 보았다. 겨울이면 아이처럼 환한 마음으로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모아 눈사람을 만들 듯, 자연과 동심 어린 관계맺기는 언제든 어떻게든 가능하다.
태양을 15일간의 주기로 나눈 절기의 달력에서는 각 계절의 시작을 알리는 말로, 입춘, 입하, 입추, 입동이라 한다. 여기서 ‘입’은 ‘들 입(入)’이 아닌 ‘설 립(立)’을 쓴다. 사람이 계절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 자연의 모든 것이 함께 그 계절로 들어선다는 의미가 된다. 그렇게 계절마다 그 시간을 함께 살아가며, 다음 계절로 함께 들어서 굳건히 설 수 있도록 생을 잇는 것을 마주하고 바라보는 것이야말로 내가 자연 일부임을 잊지 않는 방법이 되어 다시금 우뚝 두 발 뻗어 세상에 설 수 있게 한다. 그 힘이 모두에게 전해져 강인하고 부드러운 드는 시간을 맞이하길 바라본다.
  • 《드는 봄》(2022, 씨알콜렉티브)
  • 〈초사람〉
고사리
고사리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고 있는 것들의 드러냄을 작업으로 진행하고 있다. 삶 곳곳에 자리한 인지하지 못한 현실의 가치들을 더듬어 살아있는 시간을 함께하며, 생의 순환과정에서 물리적이고, 정서적인 관계들이 오랜 시간 삶에 축적되어 사라지고 남아 있는 것들과 마주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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