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들은 비가 오면 바쁘다. “찰박찰박 텀벙!” 물을 튀기기 좋은 웅덩이를 찾고 빗줄기 사이를 뛰어다니며 온몸으로 비를 맞는다. 사람마다 시기나 기간은 다르지만, 내가 아는 한 모든 어린이들은 이처럼 인생에서 비를 처음 만나고 알아가는 시간을 갖는다.
“그 첫 번째 비를 기억하나요? 가장 처음 비를 맞던 순간, 그 비를 기억하나요?”
– 아기소리극 <환영해> 중
지금 우리가 만나는 모든 존재는 비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지구가 처음 생겼을 때 지구는 들끓는 마그마로 아주 뜨거웠다. 그 위에 수증기와 이산화탄소가 쌓여 대기가 되고, 마그마가 식어가면서 수증기는 비가 되었다. 그렇게 지구에 첫 비가 왔다. 비가 엄청나게 쏟아져서 바다가 되었고, 그 바다에 이산화탄소가 녹아 칼슘과 마그네슘이 만나 탄산염 광물이 만들어졌다. 자주 내리치던 번개 때문인지 아미노산이 만들어지면서 지구에 최초의 생명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 뒤로 지구에는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비가 마르는 날도, 다시 처음처럼 마구 쏟아지던 날도 모두 지나가고, 우리가 태어난 뒤로도 많은 비가 왔다. 그 사이 비를 맞고 비를 만나던 우리의 감각은 점점 무뎌졌을 것이다.
아기소리극 <환영해> ⓒIRO COMPANY
지구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창작하는 타루’의 아기소리극 <환영해>는 이제 막 지구에 태어나 처음 비를 만나는 18개월 이하 아기 관객을 위해 창작되었다. 불안한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창작진은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아기 관객들을 만날 준비를 했다. 어린 관객들은 기후위기 시대에 태어났다. 아기가 자라는 속도 못지않게 지구는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다. 지금의 지구는 창작진이 아기였던 시절의 지구와는 확연히 다르다. 그사이 많은 식물과 동물이 이 땅에서 사라졌다. 물의 흐름도 바뀌었다. 이제 우리는 지구에 대해 어떻게 얘기해 줄 수 있을까?
<환영해>는 ‘지구의 탄생’ ‘생물의 탄생’ ‘너의 탄생’ 이렇게 세 개의 판소리 사설로 구성되어 있다. 태어남에 관한 이야기가 어린 관객들이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유일한 경험일 수 있기 때문이다.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기 전에 처음부터 하나씩 짚어가는 것이다. 그리하여 <환영해>는 “아주아주 먼 옛날” 지구가 태어나던 우주에서 시작한다. 공연을 보러 온 아기가 태어나며 많은 환영을 받았을 만큼 우리는 다른 탄생들도 함께 기리고 축하하고자 했다. 우리가 지금 딛고 있는 땅은 지구의 수많은 삶과 죽음이 켜켜이 쌓여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돼지의 아기도, 소의 아기도, 고래의 아기도, 납자루의 아기도 사람의 아기와 똑같이 쉽지 않은 여정을 통해 지구에 도착하여 특별한 탄생의 순간을 맞이했다. 숲도 바다도 지금의 모습에 이르기까지 많은 시간을 겪어냈다. 그것을 기억할 때 우리는 이 모든 만남 앞에 겸허하고 다정해지며, 지구를 대하는 태도가 많은 부분 달라진다.
아마도 첫 비를 맞던 순간에는 이 만남의 특별함을 바로 알았을 것이다. 아기소리극 <환영해>는 아기에게 극장에서의 추억을 통해 그 만남의 감각을 기억 너머 무의식에 새기고 앞으로의 모험을 응원하는 존재가 되고자 했다. 그리고 아기와 함께 온 아기의 보호자인 어른에게는 몸의 기억 깊숙한 곳에 남아있을 만남의 감각을 상기하고 아기와 함께 다시 한 번 지구를 만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그러한 감각을 통해 우리는 먼바다에서 빙하가 녹을 때 그 빙하에 담긴 첫 번째 빗물과 오래된 바람, 그리고 지구의 시간을 함께하는 수많은 삶을 다시 만나고 새로운 삶을 환영할 수 있다. 그 감각이 결국 지구를 구할 것이라고 믿는다.
아이의 시선으로 발견하는 몸의 우주
삶과 극장의 경계에서 다양한 세대를 위해 춤을 춰 온 ‘오!마이라이프 무브먼트 씨어터’ 또한 최근 영유아를 위한 무용 공연 <우주·아이·삶·춤>을 만들었다. “엄마, 나는 왜 이렇게 작아요?”라는 아이의 질문에서 시작한 이 작품은 아이 안에 반짝이는 거대한 세계와 창작자들이 바라보는 우주, 아이, 삶, 그리고 춤에 대한 마음들을 담아낸다.
작품의 유일한 오브제는 나뭇잎이다. 공연에 출연한 무용수가 매번 직접 산책을 하며 정성스럽게 나뭇잎을 주워 왔다고 한다. 무용수들은 아기 관객을 만나기 위해 지렁이나 달팽이, 애벌레와 같은 작고 섬세한 것들에 집중하며 몸을 더 낮게 움직였다. 여기에 한국의 전통 육아법 단동십훈(檀童十訓)의 움직임을 함께 녹여냈다. 단동십훈에는 아기가 자신의 몸을 탐구하고 처음 만나는 움직임이 담겨 있다. 그것은 흔들리는 몸의 균형을 찾고 근육의 굽어짐을 이해하는 과정이기도 하고 또 팔다리를 휘저을 때 생기는 몸의 공간을 발견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아기는 이처럼 자신의 몸에서 타인의 몸으로, 자신의 움직임에서 다른 삶의 움직임으로 만남을 확장해 나간다. 이 만남을 발견하기에 극장만큼 멋진 장소가 또 있을까?
<우주·아이·삶·춤> ⓒ류진욱
이전에는 초대받기 어려웠던 36개월 이하 영유아 관객이 최근 몇몇 공연을 통해 극장에서 환영받을 수 있게 되었다. 기쁜 소식이다. 적어도 오늘 소개한 이 두 공연에서는 아기가 울거나 무언가를 망가뜨릴까 봐 조마조마하지 않아도 괜찮다. 마음껏 탐험하고 소리를 내며 만남의 순간을 즐길 수 있도록 두어도 괜찮다. 코로나19 때문에 공연자들은 아직 마스크를 벗지 못했지만, 그 너머의 다정한 호흡이 잘 전해지기를 창작자들 모두가 기대하고 있다. 두 공연은 모두 ‘2022 서울 아시테지 겨울축제’에서 만나볼 수 있다.

이혜원
이혜원
다국적 공연예술컴퍼니 블루밍루더스의 공동예술감독으로 놀이와 오브제, 움직임을 통해 연극을 만들며 지구의 다양한 울림, 만남의 감각을 전하고자 한다. 어린이들을 위한 <벨벳토끼>, 멧돼지들을 위한 <바위가 되는 법>, 여성들을 위한 <남의 연애> 등의 작품을 만들었다. 최근 기후위기 속에 태어난 아기들을 위한 소리극 <환영해>를 만들었다.
haeweon_yi@hotmail.com
www.bloomingludus.com
사진제공_창작하는 타루, 오!마이라이프 무브먼트 씨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