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화천 예술텃밭에서 진행된 『예술텃밭 예술가 레지던시-기후변화』에 참여하면서 산책을 자주 했다. 텃밭 위쪽으로 도로를 따라 걷다 보면 농장이 하나 나온다. 비탈길에 서서 농장의 축사를 내려다보는데 소들과 눈이 마주쳤다. 소들은 나의 작은 움직임에도 반응하며 시선으로 나를 쫓았다. 심지어 축사 기둥 사이로 고개를 쭉 빼더니 더 잘 보려고 애를 쓰는 듯했다. 내가 소를 보는 줄 알았는데 소들이 나를 보고 있었다. 모두가 나를 보고 있었다. 존 버거는 그의 책 『다른 방식으로 보기』에서 우리가 무언가를 볼 때 그 한 가지만 보는 것이 아니라 대상과 우리 사이의 관계를 본다고 말했다. 소의 시선과 나의 시선이 서로 닿았을 때 나는 우리의 관계가 완전히 바뀌어 버렸음을 깨달았다. 나는 늘 내가 자연을 본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그 속에 얼마나 다양한 시선이 존재하는지는 잊고 있었던 것이다. 축사에서 몸을 굽혀 나를 보는 소의 마음은 어땠을까? 텃밭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나는 그 생각뿐이었다.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을 이유로 멧돼지를 막기 위해 쳐놓은 철 펜스, 동물들에는 채 설명되지 못한 생태통로, 수많은 새가 죽음을 맞는 도로 옆 방음벽을 지나 나는 도시로 돌아왔다. 도시에는 얼마나 많은 시선이 존재할까? 지금 이 도시는 누구의 시선에서 설계되었을까? 국내에서만 연간 800만 마리 정도의 새가 창문에 부딪혀 목숨을 잃는다. 매일 약 2만 마리가 죽는 셈이다. 우리가 도시를 만들 때 새의 눈으로 건물을 지었다면 새들이 부딪쳐 죽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고라니의 눈으로 도시를 바라보았다면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도로를 내었을 것이다.
  •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교 건물에 적용된 로라 조시아 문의 창문 디자인
    [사진출처] UBC Sustainability
  •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교 조류 친화적 건물 디자인 지침서
    [사진출처] UBC Sustainability
새를 위한 창문
오늘은 함께 ‘보는’ 연습을 제안하려고 한다. 날이 더워졌지만 오늘은 평소보다 조금 낮거나 높은, 또는 기울어진 시선과 함께 산책을 해보자. 우선 앞서 이야기한 창문을 다시 보자. 새들이 창문을 보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눈이 측면에 달려있어 3차원 구조물을 잘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캐나다의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교는 캠퍼스 내 조류 충돌 사고를 줄이고자 ‘조류 친화적 예술 경연 대회’(The Bird Friendly Art Competition)를 열었다. 우승자인 로라 조시아 문(Lora Zosia Moon)은 학교에 다니며 만났던 다양한 새들의 모습을 창문 디자인에 담아 새와 사람 모두가 학교의 생태계를 함께 꾸려나가는 존재임을 강조했다. 이 디자인은 학교가 제시한 조류 친화적 건물 디자인 지침을 따르고 있다.
새들을 위한 디자인이 꼭 정교한 그림일 필요는 없다. 유리창에 5×10cm 간격으로 무늬를 넣거나 스티커를 붙이기만 해도 새들을 도울 수 있다. 아크릴 물감으로 점을 찍는 것도 괜찮다고 한다. 물감이 잘 마를만한 날을 골라 학교나 직장에서 사람들과 함께 창문에 새들을 위한 그림을 그려보는 것도 좋겠다. 쿠사마 야요이의 그림처럼 새와 사람 모두에게 즐거운 창문이 될지 누가 아는가. 하나하나 점을 찍다 보면 우리도 새들도 모두 이 우주 속 하나의 점임을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지구는 우주 속 수많은 별 사이 하나의 물방울 점일 뿐이다. 물방울무늬는 무한에 이르는 하나의 방법이다.”
– 쿠사마 야요이
  • 서울시립미술관 《기후미술관: 우리 집의 생애》
    [사진제공] 이혜원
예전에 숲이었던, 나무의 죽음
서울시립미술관 마당과 로비에 어느 날 커다란 나무들이 놓였다. 바싹 말라 껍질이 떨어져 나와 쩍쩍 갈라지고 속이 드러난 나무들. 나무가 별안간 왜 미술관에 나타난 것일까? 서울시립미술관에서 8월 8일까지 진행하는 《기후미술관: 우리 집의 생애》 전시에서 이 나무들을 만날 수 있다. 미술관은 이들을 ‘고사목’이라고 소개한다. 나무나 풀 따위가 말라 죽는 것을 ‘고사’라고 한다. 이 고사목들은 백두대간 함백산 지구 정암사 전나무 숲에서, 또 울진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에서 죽어서 왔다. 우리는 전시된 죽음을 본다. 전시장 내에는 한라산 구상나무 집단 고사 현장의 영상도 상영되고 있다. 20년간 한라산 구상나무는 기후변화로 인해 세 그루 가운데 한 그루 꼴로 고사하고 있다. 녹색연합에서 촬영한 아래 영상은 울진의 고사 현장을 담고 있다. 아마 미술관에 오게 된 금강소나무도 저 중 하나일 것이다.
나무들이 미술관에 누워있을 때 우리는 나무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너머의 관계들, 숲과 죽음을 본다. 죽어가는 지구를 본다. 페터 볼레벤은 『숲 사용 설명서』에서 ‘당신이 지금 이 책을 읽는 곳은 예전에 숲이었다.’라고 말한다. 이 도시에서 사라진 나무들을, 도로가 덮어버린 흙을 어떻게 느끼며 걸을 수 있을까? 누구의 시선으로 도시를 보아야 할까? 오늘의 산책에서 모두가 그 숲을 볼 수 있길 바란다.

이혜원
이혜원
다국적 공연예술컴퍼니 블루밍루더스의 공동예술감독으로 놀이와 오브제, 움직임을 통해 연극을 만들며 지구의 다양한 울림, 만남의 감각을 전하고자 한다. 어린이들을 위한 <벨벳토끼>, 멧돼지들을 위한 <바위가 되는 법>, 여성들을 위한 <남의 연애> 등의 작품을 만들었다. 요즘에는 기후위기 속에 태어난 아기들을 위한 소리극 <환영해>를 만들고 있다.
haeweon_yi@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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