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지민 작가의 <The Chain – 착취사슬>을 펼쳐 보자. 어렸을 때 『월리를 찾아라』 속에서 빨간 줄무늬 옷의 월리(Wally)를 찾던 때처럼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림에는 평범한 도시 속 사람들의 일상이 자잘하게 펼쳐져 있다. 편의점에서 비닐봉지를 한가득 채워 들고 나가는 사람, 화려한 광고 아래에서 옷을 고르는 사람들, 그릴 위에서 연기를 한껏 뿜으며 구워지고 있는 고기, 카페 테이블 위의 일회용 컵들, 동물원의 동물들, 바쁘게 움직이는 택배 노동자…. 어디서 본 듯한 여느 도시의 풍경이다. 그런데 이러한 작은 일상의 조각들이 지구와 연결된 사슬이라면 우리의 풍경은 어떻게 달라질까? 이 작품은 “나의 당연한 일상이 기후위기를 일으키고 있다면?”이라는 질문에서 시작된 구지민 작가의 디지털 드로잉 작업이다. 그림 속에 몇 개의 ‘사슬’이 숨어있는지 친구나 가족과 함께 찾고 이야기를 나눠 보자. 어렸을 때 숨은그림찾기를 하던 것처럼 지금의 우리도 삶 속에서 기후변화를 찾고 ‘잇는’ 연습이 필요하다.
북극곰을 만나는 법
기후위기에 대해 생각할 때 사람들은 흔히 녹아내리는 빙하와 북극곰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환경단체들이 시위나 캠페인에 북극곰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면서 북극곰은 기후변화를 의미하는 대표적인 이미지로 굳어져 왔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는 얼마나 수많은 북극곰을 스쳐 지나가며 외면해 왔을까? 그리고 지금 북극곰들은 우리의 삶 어디쯤에 있을까?
‘빨랫줄 동물’ 시리즈로 유명한 시각 예술가 헬가 스텐젤(Helga Stentzel)은 최근 <Hang on!>이라는 신작을 발표했다. 작가는 고향인 러시아의 겨울 풍경을 배경으로 빨랫줄 위에 새로운 동물을 탄생시켰다. 바로 북극곰이다! 헬가 스텐젤은 디자인붐(desingboom)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이 작품을 통하여 기후변화와 지속가능성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싶다고 했다. (작가는 이 작품을 하나 판매할 때마다 100그루의 나무를 심도록 하여 실질적으로 북극곰의 생존에 기여하고 있다.) 헬가 스텐젤은 빨랫줄과 같은 평범한 일상의 소재에서 영감을 발견하고 현실을 새롭게 연결하며 창작한다. 작가는 이러한 접근을 ‘집 안의 초현실주의(household surrealism)’라고 부른다. 잠시 지금 이 화면에서 눈을 떼고 주변을 둘러보자. 어디선가 또 다른 북극곰이, 기후위기의 얼굴이 우리를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뜻밖의 만남에 집중해보자. 북극곰의 삶은 생각보다 우리에게 가까이 있다.
기후위기의 새로운 이미지 상상하기
2020년은 본격적인 기상관측이 시작된 1973년 이래 가장 따뜻한 겨울로 시작되어 역대 가장 긴 장마철을 맞았다. 그리고 올해 여름은 작년보다 더 덥고 비가 더 많이 올 것이라고 예측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단순히 기온이나 강수량의 변화가 아니라 이러한 변화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기후변화는 이제 지구의 위기가 되었다. 우리는 더 이상 이 ‘위기’가 북극곰만의 것이 아님을 실감할 수 있게 되었다. 기후위기를 마주하고 그려내는 새로운 감각이 필요해진 것이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낯선 존재들을 이어볼 수도 있고 새로운 관계를 발견할 수도 있다.
과학자이자 예술가인 질 펠토(Jill Pelto)는 과학과 예술을 잇는 작업을 한다. 다양한 그래프와 데이터를 이용한 그림을 통해 기후변화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중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은 2020년 7월 미국 타임지 표지를 장식한 <Currents>이다. 바다와 숲, 빙하 등을 그린 듯한 이 수채화 작품은 사실 기후변화에 관한 다섯 가지 데이터 – 탄소 배출량과 재생 에너지 소비량, 해수면 높이와 기온, 육빙(land ice)의 변화를 담고 있다. 제목 <Currents>는 시간과 변화를 의미한다. 질 펠토의 작품은 여기서 일단 마무리되었지만, 작품 안의 그래프들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계속 이어지고 그림 너머의 그림을 바꾸어 나갈 것이다. 어떤 그림으로 이어질지는 우리에게 달려 있다.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면 좋을지에 대한 힌트는 이미 그림 안에 담겨 있다. 작가는 그림 속 데이터가 담고 있는 현실은 무서울지라도 그 안에 희망의 메시지가 들어있음을 전한다.
삶을 잇기 위한 질문들
이제 이 메시지를 안고 다시 <The Chain – 착취사슬> 속 일상으로 돌아온다. 이 그림 속에 북극곰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 안에는 분명 ‘위기’가 도사리고 있으며 이들 모두의 삶이 보이지 않는 북극곰과 맞닿아 있다. 그리고 이들의 선택이 질 펠토의 그림 속 데이터도 바꿀 것이다. 아직은 북극곰이나 그림 너머의 그래프가 조금 멀게 느껴지겠지만, 천천히 하나씩 이어보자. 시작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지구 위의 존재들이 모두 이어져 있다고 할 때, 그 연결의 지점들을 묻는 것이다. 우리의 삶은 어디에서 어디로 연결되는 것일까? 그릴 위의 고기는 고기 이전에 누구의 어떤 삶이었을까? 또 이 죽음은 어디로 가게 될까? 내가 남긴 고기는 흙으로 잘 돌아갈까? 고기를 구울 때 나온 연기는 어디로 향하게 될까? 그렇게 삶을 잇다 보면 우리는 금방 북극곰에게 도달하게 된다. 우리 모두가 조금씩 조금씩 <Currents> 속 그래프에 기여하며 지구를 움직이고 있다. 오늘은 그 연결의 감각에 집중하며 주변의 숨은 그림들을 찾아보면 어떨까?
이혜원
이혜원
다국적 공연예술컴퍼니 블루밍루더스의 공동예술감독으로 놀이와 오브제, 움직임을 통해 연극을 만들며 지구의 다양한 울림, 만남의 감각을 전하고자 한다. 어린이들을 위한 <벨벳토끼>, 멧돼지들을 위한 <바위가 되는 법>, 여성들을 위한 <남의 연애> 등의 작품을 만들었다. 요즘에는 기후위기 속에 태어난 아기들을 위한 소리극 <환영해>를 만들고 있다.
haeweon_yi@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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