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먹이기」
  소야,
  여게 풀 많다.
  여기서 먹어라.
  소는 그래도 안 온다.
  소는 지 마음대로 한다.
  소는 부엉이 소리가 나도
  겁도 안 나는 게다.
  사람 있는 데 안 온다.
– 안동 대곡분교 3년 김욱동, 1970년
1950년대부터 1970년대 중반에 이르는 경상북도 농촌 지역 아이들의 시를 읽는다. 간혹 관습적으로 그 당시 기성의 동시들을 흉내 내어 쓴 시들도 드물게 있지만, 대부분은 자신의 솔직한 생활 감정을 운문 형태로 쓰고 있다. 심지어 기성 동시들을 흉내 낸 시마저도 그 시절 일상의 편린을 담아내고 있다. 아이들의 시를 읽고 있으면 그들이 보인다. 그들의 가족이 보인다. 그들의 가난이 보인다. 그들의 슬픔이 보인다. 그들의 희망이 보인다. 도시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보인다. 고향에 대한 사랑도 보인다. 가족(주로 부모)에 대한 사랑과 원망이 모두 보인다. 여러 층위로 겹쳐진, 그들이 입체적으로 보인다. “시란 무엇이냐?”라는 거창한 질문을 넘어서는 시가 보인다. “가난했던 과거의 시골”이라는 상식적이지만 매우 단순한 인식 너머에 존재한 다양하게 펼쳐진 삶과 그 안의 복잡한 감정들이 가슴에 와서 꽂히기 때문이다.
위에 옮겨놓은 시도 그렇다. 소를 먹이러 나간 초등학교(당시에는 국민학교) 3학년생의 눈에 말을 안 듣는 소가 이해가 안 되고 원망스럽기도 하지만 제 마음대로 행동하는 것이 부럽기도 하다. 부엉이가 울어대는 어두운 숲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도 부럽다. 50년 가까이 흘러 이제 일하는 아이들은 소수가 되었고 이런 풍경은 시골에서도 완전히 낯선 것이 되었지만 이런 삶의 감각만큼은 여전히 생생하다.
  • 『일하는 아이들』
    (이오덕, 양철북, 2018)
  • 『메이지의 문화』
    (이로카와 다이키치, 삼천리, 2015)
날 것 그대로의 글쓰기
아동문학가이며 교육자, 교육운동가였던 고(故) 이오덕이 1978년 엮어낸 『일하는 아이들』은 선생이 시골 학교 교사로 근무하며 만나 가르치고 함께 글쓰기를 했던 아이들의 시 277편을 모아서 낸 책이다. 시가 쓰인 시기가 1952년부터 1977년으로 그야말로 한국 전쟁 이후 한국이 급속하게 산업화되던 시기이다. 근대적 산업화가 지상과제이던 그 시기에 가난한 시골은 산업화를 추진해야 할 근거이기도 했고 값싼 노동력을 제공하는 원천이기도 했다. 1940년대부터 교직에 몸담았던 이오덕은 문화예술교육이란 개념이나 이론이 제대로 소개되기 이전인 그 시절 가난한 경상북도 시골 마을의 분교를 옮겨 다니며 글짓기(글쓰기) 교육을 했다. 당시로써는 매우 파격적인 글짓기를 학생들과 함께했다. 교훈적인 미담을 교과서적인 문법에 따라 쓰는 당시의 생활문이나 동시 짓기에서 벗어나 학생들이 시골 생활에서 겪고 있는 날것 그대로의 일상을 표현하게 한 것이다. 그렇게 모인 글로 엮은 책이 바로 이 『일하는 아이들』과, 이듬해 나왔던 산문 모음인 『우리도 크면 농부가 되겠지』(1979) 이다.
이 오래된 책을 다시 읽으니 새삼스럽게 새롭다. 시간이 한참 흘렀어도 (지금은 노년이 되어있을) 시골 아이들의 눈에 비친 세상의 명암은, 비록 그 형태는 복잡해졌지만 여전하다. 빈곤과 빈곤이 만드는 생의 무수한 상처들. 그런데 거기 그 자리에 상처투성이의 삶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 안에서도 세상을 관찰하고 타자를 연민하고 존재를 발견하는 과정이 담겨있다. 문화 교육이 지역의 일상, 그 내면으로 돌아가서 만들어내는 복잡다단한 것들, 그것을 단지 가치나 선한 영향력 같은 단어로 개념화했을 때 놓치게 되는 것들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민중의 역동성과 잠재력
1925년생으로, 이오덕과 동갑인 일본의 역사학자 이로카와 다이키치가 쓴 『메이지의 문화』(2015)는, 일본의 근대 사상사를 기존의 관점과 다르게 접근하여 해석한 책이다. 이 책은 일본 근대 사상사의 주류라고 할 수 있는 마루야마 마사오의 관점, 거칠게 요약해서 헤겔의 역사발전론에 근거하여 일본에서의 근대의 좌절 과정에 대한 해석을 비판하고 있다. 그렇다고 그가 마루야마의 주장을 모두 반박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천황제를 중심으로 하는 일본의 근대가 민주주의적 근대로 나아가는 일본인의 정신을 억압하고 있다는 전제에서는 오히려 마루야마와 유사한 측면이 있다. 다만 이로카와가 비판하고 있는 것은 마루야마 학파가 현실의 민중 일상을 관찰하지 않은 채 아카데미즘의 틀 안에서 외면적인 관찰만으로 논리를 만들었고, 그 때문에 지배 이데올로기에 일방적으로 포획되지 않는 민중의 역동성을 놓치고 있다는 것이다.
이로카와는 일본의 민중 정신사에는 단순히 천황제로 귀결되어 구속되지 않는 풍부한 가능성이 있다고 본 것이다. 이를 위해 그는 메이지 시대 이전부터 이후까지 다양하게 일본 민중의 절대다수가 살았던 촌락에서 벌어진 민권운동과 자치 운동, 문화적 활동을 관찰하며 그 활동들이 어떻게 좌절되었고 이후에 어떤 다른 영향력을 만들었는가를 고찰하고 있다. 문학을 전공한 대학생이었지만 태평양전쟁에 재학 중 장교로 참전했고 패전 이후 구두닦이, 농사일 등에 종사하며 말 그대로 풀뿌리 민중으로 지내다가 뒤늦게 시골 학교 교사를 거쳐 정치 운동에 참여했던 이로카와의 이력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1925년생 동갑들인 이오덕과 이로카와는 “근대의 실패”를 보여준 세계대전(태평양전쟁) 시기에 성년이 되었고 전쟁이 끝나자 근대의 성찬이 벌어지는 곳이 아닌, 그늘진 이면인 주변부의 삶으로 투신해 들어갔다. 그들은 거기서 중심이 아닌 주변의 사람들이 가진 역동성과 잠재력을 발견했고 신뢰했다. 그리고 그것이 지배집단에 의해 일방적으로 강조되는 발전과 성장의 논리를 대체하는 희망의 자리라고 여겼으며 삶의 저변에 존재하는 문화의 역동성이라고 본 것이다. 역병과 위기의 시대를 지나야 하는 이 시점에도 다시 한번 돌아봐야 하는 희망의 자리이다. 문화 교육과 지역 일상의 관계에 대한 고민에 봉착할 때마다 “역사의 지하수로서 흘러가는”(이로카와 다이키치) 저변의 문화를 찾아 다시 삶의 누추한 저잣거리를 기웃거릴 수밖에 없게 되는 이유이다.
염신규
염신규
(사)한국문화정책연구소 소장. 연구소에서는 문화정책 연구와 비평을 하고 있으며 한두 군데 대학원에서 문화정책에 관한 강의를 하고 있다. 20세기 말 창작자로 시작해 문화운동가 생활을 하다가 연구자가 되었으나 하는 일이 크게 변화하지는 않았다. 현실에 뿌리내린 문화연구를 정책 담론으로 전환하는 것에 관해 수년째 고심 중이다. 페이스북을 주로 쓰지만 진지한 얘기는 잘 쓰지 않는다.
axel3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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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제공_삼천리, 양철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