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 미래를 여는 가능성과 실천

2018 문화예술교육 국제심포지엄 리뷰①

지난 5월 23일(수) 서울 마포구 문화비축기지에서 2018 세계문화예술교육 주간 행사의 일환으로 문화예술교육 국제심포지엄 ‘4차 산업혁명, 문화예술교육의 재발견’이 열렸다. 올해 주간 행사 주요 프로그램 중 하나인 국제심포지엄 1부는 전체 행사 주제를 반영한 듯 로봇과 인간이 함께 등장하는 퍼포먼스 <오래된 미래, 다가올 미래 : 로봇과 인간의 공생>을 시작으로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UCLA) 기계공학과 교수이자 세계적인 로봇연구의 메카 ‘로멜라(RoMeLa: Robotics & Mechanisms Laboratory)’ 연구소장 데니스 홍의 특별연설 <다르게 보기, 새롭게 연결하기>, 그리고 데니스 홍과 미디어 아티스트 이윤준의 라운드 토크로 구성되었다.

창의력의 핵심, 호기심
행사 장소인 문화비축기지는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양현미 원장이 개회선언에서 말한 것처럼 3차 산업의 핵심인 에너지 비축 공간에서 4차 산업 혁명의 원동력이 될 문화 생산의 공간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더할 수 없이 적절한 장소였다. 그런 상징성을 반영해서인지 전형적인 강연장일 것이라 생각했던 행사 장소는 공연장이었고, 데니스 홍의 연설도 강의가 아니라 한편의 퍼포먼스처럼 펼쳐졌다. 그리고 행사장에 모인 200여 명의 사람들이 때로는 관객처럼, 때로는 데니스 홍과 직접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바로바로 반응했다.
이날의 특별연설을 통해 그가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창의력의 핵심이 ‘다르게 보기, 새롭게 연결하기’라는 점이다. 이것은 바로 ‘관계없는 것들을 연결시키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동안 그가 만들어온 로봇들이 그런 능력들의 산물이다. 그가 소개한 머리카락을 땋는 모습에서 착안한 세 발 달린 로봇, 지금은 멸종한 사슴의 관절 구조를 응용한 로봇 등은 얼핏 보아서는 전혀 관계없는 것들을 연결시킴으로써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 사례들이다.
그렇다면 이런 능력은 어떻게 키워질까? 그가 창의력을 유지하는 출발점은 어린아이와 같은 호기심이다. ‘왜’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어린이의 시선, 그리고 그 질문을 습관적인 사고로 무시하지 않고 함께 진지하게 답하려는 그의 노력이 엿보였다. “이런 호기심을 키우기 위해서는 편하고 말이 통하는 사람만을 만나서는 안 된다. 나와는 다른 분야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다른 생각을 접함으로써 다르게 보기, 생각의 틀 깨기를 실천한다.”는 그의 이야기는 어쩌면 우리가 정답을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하는 숙제 같은 것이 아닐까 싶었다.

데니스 홍, STriDER
짐작할 수 없는 미래를 위한 시도
사실 창의력을 키우는 법에 대한 데니스 홍의 대답 자체는 그다지 새롭지 않다. 문제는 창의성을 키우기 위한 방법마저도 창의적이지 못하고, 다른 이가 했던 방식만을 답습하는 우리가 아닐까. ‘창의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마저도 어딘가에서 배우고 기억했던 정답을 끄집어내는 그런 습관, 관성들이 우리의 창의성을 가로막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단순히 데니스 홍의 연설이 여기에서 그쳤다면 결국은 뛰어넘을 수 없는 장벽을 목표로 제시받은 사람처럼 막막하기만 했을지 모른다. 그런데 더욱 흥미로운 대목은 그 다음이었다. ‘창의력은 왜 키워야 하는가’라는 새삼스러운 질문이었다.
2000년대 초반 이창동 장관 시절 문화관광부에서 미국의 ‘크리에이티브 아메리카’를 본 따 ‘창의한국’을 발표했을 때 문화예술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하는 것 같은 신선함을 느낀 적이 있다. 그 후로 창의는 문화예술분야뿐만이 아니라 과학, 인문학의 학문 분야, 혹은 산업 영역 어디서나 필요한 것이 되었다. 하지만 창의력은 왜 필요한가? 사실은 데니스 홍의 발표 첫 부분에 이미 그 답이 나와 있다. ‘관계없는 것들을 연결시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것’ 이때 만들어지는 새로운 것들은 당장의 목적을 위한 것이 아니지만, 우리가 지금은 짐작하지 못하는 미래가 요구하는 어떤 것일지 모른다. 바로 그 가능성이 우리가 창의에 주목하는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지금 당장 활용 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미래에 실현될지도 모르는 가치라는 점에서 그가 하는 작업들과 예술가의 일은 닮아 있다. 어떤 일은 사회에서 인정받을 수 있지만, 어떤 일은 그렇지 못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패를 딛고 미래를 위한 작업을 지속해 나가야 한다는 점에서 기술과 예술이 일치한다.
현명한 실패의 가치
데니스 홍의 특별 강연에 이어서 미디어 아티스트 이윤준과 나눈 라운드 토크는 그래서인지 예술과 기술의 공통점에 대한 질문이 주를 이루었다. 현재의 가치로만 판단할 수 없다는 점에서 예술은 어쩌면 미래의 기술과 유사하다. 그러나 사회가 이런 가치를 얼마나 인정하고 포용하는가는 차이가 있고, 미래가 요구하는 창의를 받아들여 줄 필요가 있다는 것이 두 사람의 생각이었다. 데니스 홍은 이를 위해서는 실패를 허용하는 분위기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현명하게 실패할 수 있도록 훈련하는 것이 학생들을 가르칠 때 그가 집중하는 지점이다. 이윤준은 예술가들의 작업은 구체적인 결과물을 내고 사회에서 인정받기까지, 그간의 과정이 가치 있는 것으로 인정 되지 않는다는 점을 환기시켰다.
기술과 예술은 모두 ‘지금, 당장’ 실현하는 가치가 아니라, ‘미래에, 어딘가’에서 실현될 가치를 향한다. 하지만 그런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어쩌면 실패할) 시간은 기술과 예술이 모두 스스로 마련할 수 없는 조건이다. 사회가 이 시간을 제공하기를 거절한다면 불가능한 조건이다. 이런 생각 끝에 몇 가지 질문이 떠올랐다. 지금 당장에는 사회적 가치로 환원할 수 있다고 생각되지 않는 것조차도 먼 미래에는 그 가치를 발현하게 될지 모르며, 그것이 우리가 창의를 키우려고 노력하는 목표가 아닐까? 그렇다면 예술의 창의는 창의 그 자체만으로 가치를 인정받아야 하지 않은가? 그 가치를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시도하면서 기다리는 것, 말하자면 시간을 주는 것이 아닐까?

이윤준, 데니스 홍
데니스 홍은 가능한지 아닌지를 모르고 도전하는 것이 ‘연구’라고 말했다. 그 말을 예술가에게 적용한다면, 사회적으로 가치가 있는지 아닌지 모르지만 시도하는 것이 예술가들의 소명이 아닐까 싶다. 이날 데니스 홍이 전달한 메시지는 로봇 공학자로서라기보다 창의성을 실천하는 한 사람으로서 경험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 때문에 로봇 공학자인 그가 세계문화예술교육 주간의 연설을 맡을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열정과 즐거움이 어우러진 그의 연설을 듣고 (아마도, 창의의 힘으로) 세상을 바꾸는 사람을 키우고 싶다는 그의 소망이 이루어지길, 문화예술이 바로 그 창의를 키우는 힘이 될 것이라 희망해본다.
오은영
오은영
(사)문화다움의 협력 연구위원이며, 현재는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대학에서 평화학을 공부하면서 평화와 문화의 접점을 찾고 있다. 문화를 매개로 한 평화 구현에 관심을 가지고 활동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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