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을 질문 속에서 미래를 그리다

2018 세계문화예술교육 주간행사 문화예술교육 워크숍 ‘예술로 피크닉’

지난 5월 23일(수)부터 27일(일)까지, 상암동 문화비축기지에서 개최된 2018 세계 문화예술교육 주간행사의 문화예술교육 워크숍 현장에 다녀왔다. “오래된 미래, 다가올 미래 – 4차 산업혁명, 문화예술교육의 재발견”이라는 주제 아래, 다양한 워크숍 프로그램이 문화비축기지의 특색 있는 공간과 어우러지고 있었다. 제법 눈부신 햇살이 노곤한 봄날 오후, 프로그램 일정표를 받아 들고 워크숍 공간을 찾아다니는 느낌이 꽤나 여유로웠다. 워크숍 행사는 ‘예술로 피크닉’이라는 부제로 소개되었다. 거창한 계획이나 특별한 준비 없이도 즐길 수 있는 소풍 같이, 문화예술 또한 부담 없고 편안하게, 우리의 일상 속으로 스며들 수 있을까.

힙하게 탭!
몸으로 만드는 하모니
30여명의 학생들이 둥글게 둘러섰다. 시작!, 구호에 발을 구르고 손뼉을 치며 리듬을 맞춘다. 천장 높은 파빌리온이 쿵쿵 울린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리듬이 흐트러지고 소리가 중구난방 섞인다. 박자가 하나도 안 맞는데, 왠지 웃기다. 절대 맞을 것 같지 않던 박자가 연습을 통해 조금씩 제자리를 찾아가니, 학생들 사이에서 ‘오올~’ 환호가 새어 나온다. 이게 뭐라고 또 기쁘다. 박자는 점점 어려워진다. 손뼉을 치고, 발을 구르고, 가슴을 두드리고, 입을 치며 몸으로 다양한 소리를 만들어낸다. 기본 리듬을 바탕으로 응용 리듬을 만들어보기도 하고, 움직이며 박자를 맞추기도 하고, 짝꿍과 같이 소리를 내기도 한다. 10여분이 넘는 리듬 릴레이에 구경 하던 사람들의 몸도 절로 들썩인다.
바디 퍼커션 워크숍 <힙하게 탭!> 현장은 시종일관 들썩였다. 바디 퍼커션은 말 그대로, 타악기를 연주하듯 몸으로 소리를 내어 하나의 음악을 만들어내는 장르이다. 워크숍을 진행한 그룹 ‘녹녹’은 국악, 월드뮤직, 힙합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4명의 아티스트로 구성되어 있다. 녹녹의 멤버들은 각자의 개별 활동 중에도 바디 퍼커션 워크숍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는데, 이것이 유아부터 노인까지 즐길 수 있는 일상 속 예술이 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음악을 한다’, ‘연주를 한다’고 하면 어렵게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바디 퍼커션은 누구나 할 수 있어요. 쉬운 리듬부터 따라 하다보면 어느새 소리들이 모여 음악이 되는 걸 경험할 수 있죠. 또 내 몸이 만드는 소리에 집중해 볼 수도 있어요. 몸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사회적인 통념에 갇히기 쉽잖아요. ‘날씬한 몸이 예쁘다’, ‘8등신이 늘씬하다’, 같은 생각들이요. 바디 퍼커션이 나의 몸에 대해서 다시 바라보고, 내 몸의 소리를 듣고, 몸의 또 다른 쓰임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 송완얼 (녹녹)

힙하게 탭!
뚝딱뚝딱 함께 만드는 공간
처음 문화비축기지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곳곳에 위치한 정체 모를 돔 형태의 구조물이 눈에 띄었다. 가제트 공방의 워크숍 <뚝딱뚝딱 이상한 마을 만들기>의 결과물이었다. 대나무를 볼트‧너트로만 연결해 5평쯤 될까 싶은 원형 공간을 만들어내는 간단한 구조물이었는데, 호기심에 흔들어보니 꽤 견고했다. 부재들끼리 서로를 지지하도록 고안된 상호지지구조이기 때문이다.
참여자들의 직업과 참여 동기는 모두 다양했지만, 모두 이처럼 큰 조형작업을 경험해본 적이 없었다. 때문에 서로 다른 2개의 구조물을 만들 거라는 설명에 반신반의하는 모습이었다. 먼저 완성되어 있는 구조물을 관찰하고, 원리를 파악했다. 준비된 대나무를 볼트‧너트로 연결해 구조물의 단위를 만들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우왕좌왕하며 눈치 보느라 바빴다. 나사를 돌리기만 하면 되는 단순 작업에도 자꾸만 손이 삐끗했다. 모두가 처음 해보는 일, 그 어설프고 낯선 작업을 차곡차곡 이어가다 보니 어느새 2개의 돔이 모두 완성되었다. 구조물이 완성될 때마다 참여자들 사이에서 ‘와~’하는 탄성이 절로 났다. 자기 몫의 역할을 다하고, 함께 모여 힘의 균형을 맞추는 제작 과정 자체가 부재들이 서로를 지탱하고 서있는 상호지지구조를 닮았다.
“생각보다 힘들었는데요. 그래도 다 같이 하니까 재미있었어요. 바느질 같은 소소한 만들기는 해봤는데 이런 작업은 처음이었거든요. 사다리도 처음 올라가 봤어요.”
– 김윤정 (참여자)
<뚝딱뚝딱 이상한 마을 만들기> 워크숍을 통해 만들어진 구조물은 주말에 진행된 워크숍의 체험 부스로 사용되었다. 시민이 만들고, 시민이 이용하는 공간이 된 셈이다.
“워크숍을 하면 어떤 원리를 배울 수도 있고 기술을 배울 수도 있고, 그냥 즐거운 놀이를 하다 갈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여기서는 ‘협업’, 각자의 역할을 다하면서 같이 만들어 나가는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안전하게 진행해야 하지만 동시에, 만들어가는 과정을 많이 경험해봐야 재미있으니까 무거워도 같이 힘들여서 잡아주기도 하고, 직접 사다리에도 올라가보고. 최대한 다 같이 작업하려고 합니다.”
– 이광익 (가제트공방)

뚝딱뚝딱 이상한 마을 만들기
내 손으로 만드는 로봇의 움직임
워크숍 장소에 들어서는 참여자들의 눈이 일제히 한 곳에 집중됐다.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제법 복잡해 보이는 로봇 구조. 네덜란드의 키네틱아트 작가 테오 얀센(Theo Yansen)의 메커니즘을 이용해서 이미 한국에서는 멸종해버린 호랑이를 로봇으로 구현해 놓은 작품이었다. 아두이노(arduino, 다양한 센서나 부품을 연결할 수 있고 입출력, 중앙처리장치가 포함되어 있는 기판-편집자주), 소형 DC모터, 초음파 센서를 이용해 이 로봇의 보행 원리를 구현해볼 수 있다고 하니, 워크숍에 대한 기대감이 더욱 커졌다.
과학과 예술을 접목하여 다양한 교육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는 ‘트레셋(TRESC3)’의 <멸종위기 동물 로봇 만들기> 워크숍 분위기는 시종일관 진지했다. 로봇의 운동 원리를 체험해볼 수 있는 키트가 참여자들 전원에게 하나씩 주어졌다. 곧 실제 실험실을 방불케 할 정도로 열띤 작업이 이어졌다. 놓친 부분이 있을까 싶어 설계도와 키트를 반복해서 들여다봤고, 이해가 잘 되지 않거나 모르는 부분은 전시된 샘플 로봇을 보고 연구했다. 참여자들이 집중해서 각각의 연결 부위들을 조립하고, 회로를 연결하는 모습이 흡사 프라모델을 조립하는 과정 같아서 어쩐지 친근하고 즐거워 보였다.
주어진 시간을 훌쩍 넘겨 우여곡절 끝에 모든 참여자가 작업을 마쳤다. 그런데 정말 놀랍게도 참여자 전원이 작동에 실패했다. 생경한 작업 과정 속에서 일어난 작은 실수들이 오작동을 일으킨 것이다. 2시간의 진행과정 내내 조용했던 워크룸이 이때부터 소란스러워졌다. 혼자서 조용히 작업하던 참여자들이 오작동의 원인을 밝히기 위해 다른 참여자들과 상의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문제를 해결한 참여자들의 탄성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시간 내에 끝내 성공하지 못한 참여자들은 추후에 계속 시도해볼 것을 다짐했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원인을 찾고 해결방법을 모색하는 과정. 워크숍의 진짜 목적이 여기에 있었다.
“물론 과정에서 예상하지 못한 일도 많았고, 뜻대로 되지 않아 아쉬운 점도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경험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럴 때 성취감도 훨씬 크고요.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이슈가 교육 시장도 흔들고 있잖아요. 코딩 교육 열풍이라든가. 저희는 이런 교육을 통해서 새로운 기술이 어렵기만 한 것은 아니구나, 이걸 하면 새로운 걸 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불어넣어주고 싶어요. 내가 꿈꾸는 것을 실현해 볼 수 있는 상상력을 불어넣는 거죠.”
– 김병욱 (트레셋)

멸종위기 동물 로봇 만들기
4차 산업혁명시대에 대한 논의가 그 어느 때보다도 활발하다. 미래에 대한 기대와 두려움이 뒤섞인 예측 또한 난무하다. 단언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새로운 시대에도 문화예술은 우리 삶을 서술하는 언어로 기능할 것이라 믿는다. 2018 세계문화예술교육 주간행사에서는 새로운 패러다임 속에서 문화예술교육이 나아가야 할 길을 제안했다. 그것은 동시에, 시대의 변화 속에서 문화예술이 붙잡아야할 삶의 의미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함께 어우러지는 순간의 즐거움, 내 손으로 뭔가를 만들어내는 뿌듯함, 한 단계 한 단계 도약해가는 성취감 같은 것들 말이다. 정답도, 끝도 없는 질문과 고민 속에서 어느덧 성큼 다가온 미래를 느낀다.
박유미
박유미_미술작가
설치를 중심으로 한 다양한 매체에 관심이 많은 미술작가. 2013년 개인전 《what a wonderful world》 외 다수의 전시에 참여했으며 2014년 아르코 퍼블릭아트 프로젝트 ‘마로니에 다방’을 기획했다. 어린이 예술교육에도 관심이 많다. 여전히 예술로 말하고 예술을 가르치는 작가 겸 강사로 목하 활동 중이다.
gomako198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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