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23일, 5개국 청소년들이 참가한 ‘2017 평창 아트 드림캠프’의 통합발표회가 서강대 메리홀에서 열렸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은 평창문화올림픽 ODA ‘2016 아트 드림캠프’를 통해 연극, 무용, 음악, 미술 분야의 예술가들을 콜롬비아, 말라위, 베트남, 인도네시아로 파견하여, 겨울이 없는 나라의 청소년들과 ‘겨울’ 및 ‘동계올림픽’을 주제로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2017년 2월에는 이 사업에 참여했던 현지 청소년들이 함께 모여 캠프를 즐기고 지속적인 네트워크를 해나가기 위해 동계올림픽 개최지인 평창에 방문하였다. 참가자들은 닷새간 평창에 머물면서 다양한 예술교육 프로그램을 경험하였고, 이후 서울로 이동하여 그간의 활동 및 결과를 발표하고 마무리 짓는 시간을 가졌다.
우리들의 겨울은 충분히 아름다워
2월 17일부터 일주일간 진행된 ‘2017 평창 아트 드림캠프’에서는 한국의 진부중학교 학생들이 결합하여,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5개국 청소년들이 프로그램에 함께하였다. 참가자들은 한국의 추운 겨울을 감각하고, 그동안 상상 속에만 있었던 겨울과 눈의 이미지를 예술창작에 반영하는 등 예술을 통해 교류하고 표현하는 한편, 작년에 현지에서 진행된 프로그램의 창작 작업과 결과물을 서로에게 소개하고 응원하기도 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준비한 통합발표회에서는 참가자들이 함께 만들어낸 창작 합동 공연이 ‘눈, 꽃피우다’라는 제목으로 무대에 올랐다. 또한, 공연을 앞둔 극장 로비에는 캠프 기간 동안 참가자들이 직접 촬영한 사진으로 제작한 책자와 인도네시아 참가자들이 작업한 바틱 작품 등으로 ‘우리들의 겨울은 충분히 아름다워!’ 전시를 마련하여 그간 함께 한 시간들을 담아내었다. 참가자 한 사람씩 모습이 담긴 사진에는 각자 캠프에 대한 소감들이 다양한 언어로 적혀있었다.
‘비록 소통하기 어려우나 그래도 우린 몸으로 말한다.’
‘사람들이 하나 되고, 추위는 사랑의 따듯함으로 사로잡히다.’
‘다른 생각, 이념이 경계를 무너뜨린다.’
‘자연의 성격은 인내다. 나는 그것을 본받고 싶다.’
쌓인 눈을 배경으로 하거나 눈썰매를 타는 모습으로, 또는 숙소 앞뜰에서, 자신만의 포즈를 담은 사진에는 저마다의 다양한 느낌과 생각들을 뿜어내었다. 이렇게 캠프 기간 동안 찍은 사진들은 한 권의 책자로 만들어져 참가자들 모두 자신만의 사진첩으로 잊지 못할 추억을 선물 받는다.
통합발표회 전시
상상은 바람이 되어 만나고
공연은 ‘2016 아트 드림캠프’가 진행되었던 각국의 현지 활동을 담은 영상스케치로 시작되어, 각 나라를 상징하는 이미지들을 담은 애니메이션으로 이어졌다. 콜롬비아는 태양, 말라위는 대지, 인도네시아는 바람, 베트남은 용 등으로 표현된 이미지가 영상 속에서 조우하며 각 공연을 담아내고 이끌어갔다. 달리는 오토바이에서 바라보는 베트남 곳곳의 여름 풍경을 담은 영상으로부터 베트남 참가자들이 등장, 익숙하게 오토바이를 타는 동작으로 겨울과 눈을 상상하며 본격적인 공연이 펼쳐졌다. ‘눈, 상상하다’, ‘눈, 바람이 되다’, ‘눈, 만나다’라는 부제 아래 각각의 파트에서는 콜롬비아, 말라위, 인도네시아, 베트남, 한국 참가자들이 만든 장면들이 차례로 무대에 올랐다.
통합발표회 공연 – 콜롬비아(왼쪽), 말라위
먼저 콜롬비아 몸의학교(El Colegio Del Cuerpo) 학생들로 구성된 참가자들은 처음으로 눈을 만난 생생한 감각, 그 이상하고도 낯선 경험, 처음으로 몸이 느낀 차가운 느낌 그대로를 몸짓으로 표현해내었다. 파도를 타듯 눈 위를 부유하는 모습으로, 눈 위에 첫 발자국을 내어 보는 즐거움을, 내리는 눈 속에서 옷깃을 파고드는 차가운 눈의 감각을, 아이들은 흰 파우더를 온몸에 뒤집어쓴 채 생생하게 전달해주었다. 콜롬비아의 춤 공연에 이어 말라위의 참가자들이 밴드 음악 공연을 선보였다. 말라위 카롱가(Karonga) 지역에 있는 루스빌로뮤직센터(Lusbilo Music Center)의 아이들이 참여한 ‘기타 포 아프리카’ 프로젝트가 지금의 무대 위로 이어지고 있다. ‘내가 아이였을 때 어른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들은 적 있어. 하늘에서 하얀 가루가 떨어지는 것을 본 적 있다… 나는 그게 빵이나 케이크를 만드는 밀가루일 거라고 생각했는데…’라는 자막이 펼쳐지며 그들이 만난 겨울에 대한 감수성을 자신들의 열정적인 음악 언어로 연주했다. 강렬한 춤과 음악으로 참가자들이 처음 느낀 겨울 감성이 펼쳐진 무대였다.
두 번째 파트에서는 인도네시아 참가자들이 수레를 끌고 무대로 나와 바틱 스토리를 들려준다. 작년 인도네시아 파수루안(Pasuruan) 지역의 알람바틱센터(Alam Batik Center)에서 진행된 전통 염색기법 바틱 프로그램에 함께 했던 지역 아이들이 이번 무대에서는 바틱이 완성되기까지의 과정을 소개하고, 각자가 만든 작품소개와 자신의 소망과 꿈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잎과 꽃이 없는 나무의 모습을 처음으로 보았다’라는 말로 겨울 자연의 인상을 전하는 한 참가자의 이야기로부터, 겨울의 이미지가 담긴 바틱들을 선보였다. 아름다운 문양의 바틱을 하나하나 손으로 만들어가는 마을의 정서가 순한 바람에 실리듯 차분하게 전해온다. 세 번째 파트에서는 이번 캠프에서 처음 만난 베트남과 한국의 참가자들이 겨울을 매개로 서로 만나는 과정이 담겨있다. 늘 여름만 있는 베트남에서 온 친구들은 추운 날씨에 꽁꽁 얼어버리고, 한국의 친구들은 학원 갈 시간 때문에 겨울을 즐길 마음의 여유가 없다. 하지만 겨울에 찾아온 친구들과 함께하면 좋을 몇 가지 것들, 뜨거운 어묵과 붕어빵 먹기, 비료 포대 썰매 타기, 얼음낚시 등 한국 겨울의 일상을 소개하며 ‘춥지만 따듯한 겨울’이 오간다. 그리고 참가자들의 손에 들려있던 우산이 길고 큰 오색 용으로 변신하여 무대 위를 누비고 다니며 모든 참가자들은 다시 하나로 모인다.
통합발표회 공연 – 인도네시아(왼쪽), 베트남
마지막으로 캠프 기간 동안 어울림 프로그램으로 진행된 콜롬비아 ‘몸의학교’ 워크숍에서 발전시킨, 참가자 전원이 참여한 퍼포먼스가 무대를 달구었다. 피부색도 나이도 생김새도 모두 다른 참가자들이 무대 위에 일렬로 서서 객석을 마주하고 서서 자신을 당당하게 드러낸다. ‘다양함은 인류에게 주어진 최고의 선물’이라는 메시지를 뒤로 한 채 이들은 무대 위에 둥글게 반원을 그리고 서서 한 사람씩 원 안에 들어가 자신이 느끼는 기쁨과 흥겨움을 표현하면 나머지 사람들이 그를 따라 하며 호응한다. 이렇게 한 사람씩 돌아가며 마음껏 자신을 발산하며 폭발적인 에너지로 한바탕 놀고 나면 다시 ‘바벨 : 희망 속에 하나 되는 대지의 목소리’ 장면에서는 네 그룹으로 나누어 모인 참가자들이 각각의 모국어로, 하나, 둘, 셋 숫자세기를 하며 워크숍에서 행했던 동작들을 절도 있게 선보인다. 마치 언어는 다르지만 열기 속에 하나가 되었던 경험을 간직하려는 듯. 또는 하나가 되는 경험 속에서도 우리는 이처럼 다양하다는 것을 잊지 않으려는 듯.
‘다양함은 인류에게 주어진 최고의 선물’
따듯한 박수갈채 속에 마무리된 공연의 열기는 다음날 출국할 참가자들을 위해 마련된 환송파티로 이어졌다. 캠프 참가자들에게 이번 프로그램에 대한 소감을 물었다.
“힘들었지만 너무 재밌었다. 다양한 나라에서 온 친구들과 연습하고 공연하는 게 진짜 신기하다. 한국의 겨울은 춥지만, 너무 따듯하다. 사람의 마음 때문이다. 공연 전공이 아니라서 힘들었지만, 친구들과 선생님 덕분에 멋있는 공연을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우리 마음으로부터 만들었던 대사여서 정말 기뻤다.”
– 르엉 부 응우옛 하, 베트남, 21세
“이런 행사를 즐길 수 있어 너무 행복했고, 공연 중에 바틱을 소개하는 부분을 완벽하게 해내서 기분이 매우 좋다. 바틱이 정적이고 조용한 작업이지만 아름답게 소개할 수 있어서 나름대로는 매우 만족스럽다. 조금 지치고 힘들기는 했지만, 친구들과 모여 다 같이 춤을 추다 보니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어져서 잘 표현할 수 있었다. 다른 나라 친구들과 교류할 수 있었던 것이 가장 좋았고, 여러 나라 친구들이 더 많이 참여했다면 좋았겠다.”
– 윈다 아리스카, 인도네시아, 19세
통합발표회 공연 – 전체 퍼포먼스
참가자들이 못다 한 열정과 아쉬움을 나누는 동안 공연에 참여한 제작진들과 인터뷰를 통해 공연 제작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무엇보다 길지 않은 6박 7일의 워크숍 기간 동안 그간의 많은 내용을 한 시간 반의 공연으로 압축하여 결과를 발표하게 된 과정이 궁금했다.
“시간이 많지 않아서 공연 스텝들이 미리 모여 전체적인 구성을 준비했지만, 막상 참가자들과 만나 많은 것이 바뀌었다. 각국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해온 예술가들과 합의하면서 전체를 만들어갔다. 공연을 통해서, 그 과정 속에서 아이들이 성장하고 변한다고 생각한다. 무대 위에서 관객들과 만나면서 공연만이 줄 수 있는 성취감을 아이들이 느끼게 되는 과정이 가슴에 깊이 남는다. 특히나 공연을 전혀 해본 적 없는 아이들도 리허설 기간 동안 공연을 향해 달리면서 같이 어울리고 서로 더 끈끈해져 갔다.”
– 정성훈 연출가, 통합발표회 총연출
제작진은 이번 공연을 통해 ‘하나의 주제로 아이들의 다양한 모습들을 보여주고, 마지막에 협업을 통해 아이들의 잠재된 에너지를 보여줄 수 있기를 바랐다’며, 캠프기간 동안 공연 연습만 한 것이 아니라 사진 작업을 하면서 참가자들이 서로 소통하고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게 하고 싶었다고 전한다. 그런 바람으로 로비에서 전시중인 앨범 자체가 참여한 아이들에게 소중한 추억이 될 수 있는 결과물로 가져갈 수 있도록 했다고 한다. 아울러 이번 프로그램의 전체 진행을 함께 하면서 참여한 친구들이 자신이 속한 나라에 머물지 않고 예술을 통해 다른 나라 친구들을 만나고, 이전에 알지 못했던 다른 세계를 접하면서 좀 더 성숙한 모습들이 되었으면 한다고 입을 모았다. 과정상 어려웠던 점에 대해 정성훈 연출가는 겨울을 만나러 온 손님을 맞아야 하는 사람들이 조금 더 준비를 철저히 했다면 좋았을 것 같아 아쉽다고 했다. 이유정 평창 아트 드림캠프 예술감독은 짧은 시간 안에 타이트한 프로그램을 소화하느라 캠프 참가자들이 여유롭게 즐길 수 있는 시간을 가지지 못한 점을 꼽았다.
“이번 프로그램을 계획할 때 너무 빠듯하게 짜인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이들이 눈밭에서 더 구르고 싶어 했고 눈썰매도 더 타고 싶어 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주어진 시간 안에 극복하고 성취해가면서 성장하기도 하고, 또 편하고 부드러운 시간 속에서 성장하기도 한다. 이런 것들 사이에서 균형 잡는 일이 항상 힘든 부분이다.”
– 이유정 평창 아트 드림캠프 예술감독
이번 결과 발표는 현지 파견되었던 예술가들이 예술로 아이들과 만나기 위해 기울였던 노력의 축적과 참가자들이 자기 언어로 자신의 경험을 표현하고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도록 구조를 만든 제작진의 노력 등 참여한 예술가들이 고민해 온 흔적들이 곳곳에서 엿보였다. 통합발표회를 보기 전에는 짧은 기간 동안 무리하게 공연을 올려야 했을까 의구심이 들기도 했지만, 공연 속에 빛나던 참가자들의 모습과 공연 후 자신감에 차 있는 모습을 보며 프로그램을 준비해 온 진행자들이 고민했을 지점들을 다시 떠올리게 되는 시간이었다. 공적개발원조(ODA, 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 프로그램의 한계와 문제점으로 지적되어 온 개발도상국을 대상으로 시혜를 베푼다는 식의 일방적이고 권위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섬세한 감정적 교류와 대화를 시도하는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의 가능성과 남겨진 과제들을 점검해보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 짐작해본다.
홍은지
홍은지
다양한 공연방식을 고민하고 고안 중인 공연예술 연출가. 얼라이브아츠 코모(alivearts como, collectors of moments)에서 여러 분야의 아티스트들과 함께 순간을 채집하고 그 흔적을 담아내고자 노력하고 있다.
<팰름시스트>, <카페더로스트>, <벙어리시인> 등을 연출했다.
eufy6542@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