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1863년 링컨은 그 유명한 게티즈버그 연설에서 위와 같이 말하였다. 흑인노예 해방 전쟁이었던 미국의 남북 전쟁이 지니고 있는 가치는 만인의 평등함을 주장하는 저 한마디의 연설문에 담겨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실제론 더 복잡한 사유들이 있으나 미국의 역사를 공부하는 자리가 아니니 차치하자.)
옴브라 쏨브라, 그림자로 놀자!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하 진흥원)에서 초, 중, 고 학생들의 방학 기간 중 ‘예술상상 체험대’라는 일상에서 접하기 힘든 예술적 체험의 장을 열어놓았다. 진흥원 예술강사들의 모임을 주체로 하여 경기, 강원, 인천 지역 내 문화소외지역 학교에 찾아가는 일종의 ‘찾아가는 예술 서비스’이다. 그중 김포의 대곶중학교에서 진행된 ‘색색깔깔 놀이 체험단’는 무용, 영화분야 예술강사들의 모임인 옴브라 쏨브라 팀이 진행한 프로그램이다.
무언가 주문처럼 들리는 ‘옴브라 쏨브라’라는 팀명의 뜻을 물으니 ‘그림자’라는 뜻밖의 대답을 전해주었다. 그리고 그제야 이들의 작업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팀 이름의 뜻처럼 이들의 작업 중심에는 ‘빛’이 있었다. 빛에 반사된 그림자와 빛이 움직이는 과정의 기록, 그리고 그 빛을 만들며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움직이는 학생들처럼 말이다.
이들의 작업은 총 다섯 단계로 나뉘어 있었다. 1단계는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주제를 정하고 그것들을 표현할 수 있는 몸짓을 만들어보고, 그 짧은 연극들을 차양막 뒤에서 직접 연기하며 관람객들에게 그림자로 자신들을 보여주는 방식의 ‘그림자 연극’이다. 2단계는 어둠 속에서 랜턴을 이용하여 빛의 움직임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긴 노출이라는 사진의 테크닉을 이용하여 표현해보는 일종의 ‘움직임의 기록’. 3단계 역시 어둠 속에서 빛을 담고 있는 여러 개의 공을 이용하여 뺏기와 차지하기로 연결되는 놀이와 그 놀이를 통하여 몇 가지 단어를 선택하고 그 단어에 대한 ‘몸짓 만들기’. 4단계는 블랙라이트의 방 안에서 이틀 동안 체험해보았던 행위들을 직접 설치하며 그 시간들을 되새겨보는 ‘기억의 복기’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모든 찰나의 기억들을 하나의 동영상으로 연결하여 만들어지는 ‘행위의 수집’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그림자 연극’으로 몸을 깨운 학생들이 자신들의 움직임이 어떻게 남겨질지 모르는 ‘움직임의 기록’으로 흥미를 돋운 후, 어둠 속에서 빛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 부딪치며 만들어지는 몸짓으로 에너지를 폭발시키고, 그것들을 다시 기억해내며 복기해본 후 자신들의 행위에 대한 의미를 찾아보게 되는 것이다. 아마도 이와 같은 순서들은 웜업(warm up)과 고조, 폭발과 회귀라는 강사들의 교육적 계산이 들어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기가 막히게도 학생들과 잘 매치되었다. 데면데면 하던 학생들의 얼굴에서 땀이 송골송골 배어나오고, 그저 입 꼬리를 살짝 올리던 얕은 웃음들이 땀과 뒤범벅되며 숨 가쁜 큰 웃음으로 변해가는 과정이 드라마틱하게 이어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예술이 놀이가 되고 일상이 즐거워지는 특별한 예술체험’이라는 예술상상 체험대의 취지에 이 프로그램은 정확하게, 아니 그 이상으로 부응하고 있었다.
너와 나만의 이야기에 집중하기
하지만 몇 가지 질문들이 머릿속에 맴돈다. 난 요즘 청소년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프로젝트들 대부분이 어른들의 시선으로 바라보아 가치가 평가되는 시스템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난 이것을 ‘3인칭 관찰자 시점’이라고 부르는데, 여기에는 관찰자가 바라보는 시점으로부터 시작되는 왜곡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예술교육을 기획하는 우리 자신들이 입버릇처럼 말하고 있는 ‘감동, 환희, 아름다움, 가치, 신념, 철학, 의미’ 등의 개입이 그것이다. 다수의 청소년 예술 프로젝트들이 청소년들의 행위와 언어를 예술가가 해석하고, 그 해석에 어른이라는 3인칭 관찰자가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행위의 주체였던 청소년들 자신의 이야기는 담겨있지 않은 경우가 태반이다. 실제로 이번 ‘색색깔깔 놀이 체험단’ 프로그램 속에서도 강사가 제시한 단어들의 나열을 아이들이 개별적으로 의미부여 하지 못하고 형식적으로 따라야만 하는 아주 사소한 지점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마도 강사들이 프로그램을 만든 의미를 전달하고자 했던 부분이었으리라 생각해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번 교육이 지니고 있는 의미를 보다 크게 확장시키기 위한 전형적인 ‘어른의 시선’으로도 읽혀졌다. 이 지점에서 프로그램과 학생들 사이에 잘 이어지고 있던 유기적 소통이 조금 약해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커뮤니케이션되지 못하는 지점에서 참여자가 당황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다.
바로 이 점이 예술과 예술교육이 각자 다른 목적을 지니고 나뉘어져야 하는 부분이다. 예술은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여 감정의 전이를 불러일으키는 것에 아무런 제약이 없다. 하지만 예술교육은 다르다. 예술교육에는 교육자와 참여자가 존재한다. 교육자와 참여자간의 커뮤니케이션이 예술교육의 중심에 있는 것이다. 제 3자에게 전이시키는 것이 중요한 지점이 아닌 교육자와 참여자의 사이에서 신뢰를 구축하고 무엇인가를 생산하고, 전이되는 과정을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한 지점이다.
이 모든 것을 강사들이 인지하고 있다 하더라도 예술교육은 어려운 행위이다. 왜냐하면 참여자와 교육자간의 신뢰 구축은 일방적인 전달에서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나 청소년이라는 과도기적 상황에서 예술교육자의 일방적인 전달은 학생들의 교과과정 속에서 늘 벌어지고 있는 지식의 강요와 다를 바 없다. 때문에 놀이는 가장 훌륭한 청소년 예술교육의 방식이라 할 수 있다. 놀이의 다양한 룰(rule)은 그들이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주고, 같은 방식의 놀이조차도 전혀 다르게 해석시킬 수 있는 풍부한 이미지를 생산할 수 있다. 함께하는 교육자 역시도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룰(rule)을 말이다. 전혀 뜻밖의 새로운 사건들이 도출되었을 때 이를 해결하는 과정을 통하여 참여자와 교육자 사이의 수직적 관계가 허물어지고 진정한 상호작용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까? 이렇게 서로의 경험들이 수평적으로 버무려졌을 때 우리가 그토록 주지하던 가치의 저울이 수평을 유지하고, 독립적인 개개인이 평등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놀이로서의 예술교육
사소한 아쉬움이 있었다 하더라도 이번 ‘색색깔깔 놀이 체험단’ 프로그램은 기대했던 이상의 일들을 해내고 있었다. 준비된 여러 놀이들이 참여자들과 잘 버무려져 서로의 입맛에 맞는 맛있는 비빔밥을 만들어내고 있다. 무엇보다도 예술강사로서 아이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을 위하여 여러 가지 실험을 계속해서 진행해보고 있다는 점이 이들의 큰 매력으로 보인다.
다만 안타깝게 여겨졌던 부분은 프로그램을 준비하기 위해 상상 이상의 노동을 감내하고 있는 예술강사들의 모습이었다. (생각해보라. 이 더운 여름날 교실 3개에 장막을 쳐서 빛이 들어오지 않도록 만드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게다가 학교를 옮길 때마다 다시 설치해야 한다!) 그들이 더 즐거운 놀이를 개발하는데 더욱 주력할 수 있도록 이에 대한 보완 방법이 필요할 듯 하다.
공자는 ‘지지자불여호지자 호지자불여락지자(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라 하였다. ‘앎은, 또는 좋아하는 것은 그것을 즐기는 것에 미치지 못한다.’는 뜻이다. 나를 포함한 예술교육에 몸담고 있는 많은 예술가들이 귀담아 들을 말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만인의 평등을 외쳤던 게티즈버그의 연설을 차용하여 개별적 평등을 위한 놀이로서의 예술교육을 믿어보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놀이의, 놀이에 의한, 놀이를 위한 (of the play, by the play, for the play)’
하릴없이 놀아 보자. 의미 따윈 던져 버리고 말이다.
- 예술상상 체험대 지원사업
- 도서벽지 등 문화소외지역 초·중학교 학생들의 방학기간(하절기)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사업으로 2012년(예술체험 원정대)부터 추진되었다. 분야별 예술강사들이 장르를 넘나드는 통합형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직접 기획하고 실행하는 사업으로 올해는 경기, 강원, 인천지역 20개교에 예술강사 40명으로 구성된 5개 팀이 선정되어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2015년 선정된 옴브라 쏨브라 팀은 무용, 영화 분야 예술강사가 모여 무용, 영상미디어, 전시가 융합된 ‘색색깔깔 놀이 체험단’ 프로그램을 기획·실행했다. ‘때론, 예술이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 발견되듯, 교육도 놀이에서부터 시작해보자’는 취지로 기획된 ‘색색깔깔 놀이 체험단’은 2일간 4개의 방에서 빛과 색을 소재로 아이들이 상상하고 표현하고 오감으로 체험할 수 있는 놀이 프로그램이다.
사진 _ 빈흥선 (마루스튜디오)
- 양재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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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쳐커뮤니티동네’라는 명함 속에 ‘대표’라는 직함으로 적혀있지만 누가 봐도 동네 실업자인 대한민국 아티스트.
saraku30@naver.com
정말…좋은 글이네요…
“‘컬쳐커뮤니티동네’라는 명함 속에 ‘대표’라는 직함으로 적혀있지만 누가 봐도 동네 노는 형님,,,,, 임.. ㅎㅎ
ㅎㅎ 동네 노는 형님이라니요! 양재혁 대표님처럼 귀여운(?) 동네 노는 형님을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잘 읽었습니다. 색색깔깔 놀이 체험단에서 아이들은 분명히 즐겁고 신나는 새로운 경험을 했을 것입니다. ‘놀이’를 통해 ‘예술교육’의 문제점을 극복할 수 있었겠지만, 지적하신대로 ‘예술+교육’의 문제를 늘 잊지 않겠습니다. 또한 예술강사들의 땀냄새를 전달해 주신 것이 좋았습니다.
(댓글을 쓰고 보니 제가 색색깔깔 놀이에 참여한 강사같은 기분이 드네요. 그만큼 생생하게, 마음으로 좋은 기사 써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
놀이를 통해 배움을 실천할 수 있는 것, 그것이 문화예술교육이 가진 최고의 장점 아닐까요?
예술+교육의 역할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는 예술강사 분들 덕분에 문화예술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기회들이 다양해지는 것 같습니다.
김규영님 감상평을 남겨주셔서 감사해요^^
좋은글 잘봤습니다.
많은 생각을 하게되는 글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