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은 2013년부터 문화예술교육 공적개발원조(ODA, 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 사업의 일환으로 베트남 북동쪽에 위치한 산간지역인 라오까이성 사범대학, 사파현의 초·중학교에서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과 매개자 교육을 진행해왔다. 3년차를 맞이한 올해에는 사파현의 청소년을 초청하여 7월 22일부터 30일까지 서울과 시흥시, 시흥ABC행복학습타운에서 교류의 장을 열었다. 프로젝트의 주제는 한자문화권인 베트남에서도 같은 의미와 발음을 담고 있는 ‘다정다감(Da tinh da cam, 多情多感)’으로, 집단활동과 팀워크를 기반으로 기획부터 전시까지 청소년들이 주체적으로 참여하는 예술교육 프로그램이다. 다양한 공동작업과 협력활동을 통해 다양성과 차이를 인정하고 서로의 문화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높이자는 취지이다.
라오까이성에서 출발한지 27시간 만에 시흥에 도착한 10명의 베트남 청소년과 시흥시 다문화 및 일반 가정 청소년 20명 등 총30명은 예술가들과 함께 예술적 자극과 아이디어 교류를 통해 자연스럽게 스토리텔링을 익힐 수 있는 다양한 활동을 진행했다. 옥정호, 장근범 작가와 함께 몸과 마음의 감각을 깨우고 친해지고 관계를 형성하는 놀이 활동을 하고, 예술가 작업실 탐방, 아라아트센터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전시 관람 등을 통해 도시를 발견하고 그것을 전시로 풀어내는 다양한 방법에 대한 현장교육이 진행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각 모둠별로 주제를 정하고 로드워크에 나서면서 7월 29일 시흥ABC행복학습센터에서 개최할 전시 준비에 본격적으로 돌입했다.
신짜오 코리아! – 길 위에서 채집한 이야기들
전시를 하루 앞두고 전시장 여기저기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청소년들은 전날 다녀온 로드워크를 바탕으로 기획회의가 한창이었다. ‘풍경’ ‘한옥’ ‘시장’ ‘관계’라는 네 개의 주제로 남산타워, 청계천, 광화문, 광장시장 등을 여행했다고 한다. 한편에서는 장근범 작가가 디지털 카메라들을 도열해놓고 인덱스용 사진을 프린트하고 있다.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전시 안(案)을 그려보고 있는 양국 청소년들은 캠프에 참여하며 어느덧 친해져 있다. 이들의 실질적인 전시 기획을 돕기 위해 안소현 큐레이터가 초청되었다. 안소현 큐레이터는 서른 명의 청소년들이 채집해온 서른 개의 이야기들을 들으며, 모둠별로 전시에 대한 아이디어들을 정리해준다.
“강과 공원, 하늘, 건물이 어우러진 서울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자연의 모습이니까 나무가 꼭 들어가면 좋겠어요.”
“남산타워가 가장 좋았어요. 우리들의 추억이 가득 배인 이곳을 보여주고 싶어요.”
“한옥의 거리가 인상적이었어요. 근데, 그냥 한옥 사진만 전시하면 지루하니까, 저는 그 옆에 재밌는 사진을 걸 거예요.”
“시장을 가까운 곳과 먼 곳의 모습을 배치해 시장의 깊이를 보여주고 싶어요.”
“시장에 대문을 만들 거예요. 아래에는 청계천도 흐르면 좋겠어요.”
조금은 쑥스러워 어쩔 줄 몰라 하는 아이, 잘 설명하지 못해 끝내는 눈물을 글썽이는 아이, 멋진 스케치를 그려온 아이, 자신이 본 것을 꼼꼼하게 노트에 기록하고 전시계획을 설명하는 아이들까지, 같은 공간에서 건져 올린 이야기와 이미지가 다양했다. 베트남 청소년들은 이미 3년차 베테랑답게 전시에 대한 계획도 꼼꼼하다. 안소현 씨는 비슷한 아이템을 묶어주고 이야기를 연결시켜주며 이들이 스스로 전시 제목을 정하고 공간 디스플레이를 구상하고, 관람객에게 작품을 해설할 도슨트 스크립트 짜기까지의 과정을 상기시켜준다. 긴장해 발표를 하지 못한 청소년들까지 배려해 서로 역할을 나누고 참여할 수 있게 도와준다. 이 모든 과정에서 베트남과 한국 청소년들은 통역의 도움이 필요하다. 베트남 유학생으로 구성된 통역자들은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다독거리고 격려하며 챙겨주었고, 베트남 다문화가정 청소년들도 친구들 간에 말이 막히면 기꺼이 통역을 도와준다.
많은 아이들이 남산타워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지 않는다. 장근범 작가는, “해질녘 트인 공간의 호젓함이 주는 설렘과 함께 여행을 정리하는 장소였기 때문에 특별했던 것 같다.”고 말하며, 케이블카를 태워주지 못한 것을 못내 아쉬워한다. 이어 권용주 작가가 작품 제작과정에 필요한 기술적인 부분들을 알려주고, 전시 지원을 위해 참여한 다른 작가들과 함께 본격적인 전시 설치를 시작한다. 양철모 작가는 “전시가 어른의 시선에 맞춰 세련되거나 멋있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이들의 상상과 정성은 항상 우리의 기대를 넘어선다. 하루 만에 이뤄지는 전시지만, 아이들은 해낼 거다.”라고 말한다.
기획에서 전시까지, 이야기에 날개를 달고
7월 29일, 밤새 폭우가 쏟아졌다. 시흥ABC행복학습타운에 도착할 무렵 다행히 비는 그쳤다. 벌써 전시 설치가 끝나고 전시회 프로그램을 점검하고 도슨트 프로그램과 라운드테이블을 위한 원고 정리와 리허설이 한창이었다. 드디어 전시장이 열리자, 전시장 안팎으로 아이들의 손을 잡고 온 가족 등 관람객들이 들어와 전시장을 돌아다보며 자세히 작품들을 살펴본다. 전시는 ‘사파의 기억’ ‘다정다감’ ‘교류의 순간들’ ‘라운드 테이블’ 등 네 개의 섹션으로 구성되었는데, 한국과 베트남 청소년들의 모둠별 기획전시인 ‘다정다감’은 한눈에 시선을 끌었다. 건축 이야기가 남산을 중심으로 한 서울 이야기로 뻗어 고궁, 남산타워, 한옥과 같은 과거와 현재의 모습이 오리고 붙여져 팝업으로 구현되었다. 광장시장과 평화시장, 청계천 등을 다녀온 아이들은 대문 같기도 하고 상점 같기도 한 구조물을 세우고 시장 사람들의 다양한 표정과 좌판 위 색색의 상품을 찍은 사진으로 채웠다. 커다란 사진 나무 설치물을 만든 풍경팀은 나무 밑둥치에 동굴을 만들어 ‘숨기 좋은’ 방을 만들고, 참여자들의 사진을 하나하나 꼼꼼하게 붙인 지구본를 만들어 이번 만남을 기념했다. 관계에 대한 이야기는 여러 겹으로 레이어 된 투명셀로판지에 빼곡하게 적은 메시지로 표현했는데, 벌써부터 그리움과 헤어짐에 대한 아쉬움들이 가득하다. 도슨트를 맡은 베트남 청소년들은 전통의상인 아오자이(Ao Dai)를 입고 한국 청소년과 짝을 이뤄 전시를 설명해준다. 전시장을 돌아본 한 학부모 관객은 “한국에서 베트남의 풍경 사진과 아이들이 만든 작품들을 보니 마음이 울컥했다. 우리 아이에게 엄마의 나라를 보여줄 수 있어서 기쁘다.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며 신나하는 모습을 보니 좋다.”라며 소감을 전했다.
‘사파의 기억’은 지난 3년 동안 사파에서 진행한 작업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2년에 걸쳐 만든 걸개 마을지도는, 소수민족의 전통 직물을 바느질로 꿰매고 각자의 특별한 기억의 장소가 그림과 사진으로 채워져 있었다. 전시장 한편에 전시된 소수민족의 의상과 수공예품이 더욱 특별하게 보였다. 전시장에서 유독 눈에 들어왔던 것은 가족과 이웃을 꼼꼼하게 기록한 베트남 아이들의 포토 북이었다. 시간별로 기록한 ‘나의 하루’, 이른 새벽부터 일어나 가족을 위해 일하는 모습을 담은 ‘할머니의 아침시간’, 쌍둥이 형제의 ‘가족 이야기’, 마을에서 수공예품을 만들어 파는 소녀와 할머니, 그리고 관광객들에게 사진을 찍어주는 사진작가까지, 그들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전해온다. 처음에는 경계하고 어색해하던 이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줘 고맙다고 인사할 때가 가장 기뻤다고 한다. 한국의 예술가들과 수업하며 직접 한국이름도 지은 고등학교 1학년인 용수(부이 아잉 응웻, Bùi Ánh Nguyệt)는 <용수와 H’Mong족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소수민족인 흐몽족을 사진으로 기록했다.
“한국 선생님들이 왔을 때 저는 중학교 3학년이었어요. 수업시간에 꿈에 대해 물었을 때, 저는 망설임 없이 ‘기자’라고 이야기했어요. 어렸을 때부터 제 꿈이었으니까요. 사진을 배우면서 어떻게 사람들과 이야기할지 방법을 배우게 되었어요. 그때부터 많은 사람들을 사진 찍고 대화하며 친해졌고 글도 열심히 썼어요. 사진 찍는 방법뿐만 아니라 사진의 내용을 잘 전달하는 방법도 배운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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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할머니의 오전,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기 위해
할머니께서 추운 날씨를 대비해 아주 따뜻하게 입으신다.
할머니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점심까지 부엌에 들어가서
온 가족에게 밥을 챙겨주신다.
우리 할머니는 아주 멋진 분이시다.”
– 타오 티 푸엉 타오
Thao Thi Phurong Tha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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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은 할머니와 조카의 사랑에 대한 아주 아름다운 사진입니다.
함룽산(Ham Rong Mountain)에 가는 길에 할머니와
할머니의 조카를 만났습니다.
자세히 보시면 할머니의 손의 색이 검어요.
왜냐하면 할머니가 천 염색을 많이 하셔야 돼서 그렇게 되었습니다.
H’Mong족 사람들은 같은 집에서 여러 세대가 함께 삽니다.
부모님들은 돈을 벌러 멀리 떠나야해서
아이들은 할머니의 품에서 성장하게 됩니다.
그것으로 H’Mong족의 가족 멤버들이
아주 친밀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 용수, 부이 아잉 응웻
Bùi Ánh Nguyệt
서울에서 친구들과 시장에서 떡볶이를 먹고 시장 사람들과 이야기 나눈 것이 가장 즐거웠다는 용수는 사파로 돌아가면 여기에서 찍었던 사진들을 모아 포토 북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보여줄 거라고 한다. 한국에서 특별한 일주일을 보낸 것처럼 다음번에는 한국 친구들을 베트남으로 초청해 사파의 자연과 풍경, 도시의 일상을 보여주고 싶다는 용수의 머릿속은 이미 다음에 나눌 이야기로 가득 차 있는 듯했다.
사파 청소년들을 인솔해 함께 캠프에 참여한 사파현 교육처의 응웬 득 남(Nguyễn Đức Nam) 교육전문관은 “이 프로그램은 매우 예술적이며, 한국의 예술교육 접근법을 잘 보게 되었다.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과 베트남 청소년들이 서로의 문화를 배우고 새로운 교육을 받을 수 있었는데, 일반적인 문화교류 프로그램이 아니라 사진예술교육을 통한 문화교류여서 더욱 특별했다. 한국 청소년들과 베트남에서 다시 만나기를 기대한다. 돌아가면 사파에서도 이번 작업의 전시회를 열 계획이다. 그리고 10월에는 라오까이성 박하현(Bắc Hà 北河)에서 새롭게 프로젝트를 진행할 예정이다. 물론, 사파에서도 지속적으로 유지, 발전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번이 첫 한국 방문이라는 그는 서울이라는 도시가 빠른 발전 속에서도 전통을 잘 유지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긴 호흡으로 함께 가기
2013년도부터 사업에 참여해왔고 이번 프로젝트를 기획한 장근범 작가는 아이들에게 과정만큼 결과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작품은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닌, 타인과 나누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단순한 기법이나 도구로서의 예술작업은 아닙니다. 아이들이 어떻게 주체적으로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끄집어내고 표현할지 사고를 확장하고 세계를 넓혀주기 위한 것이죠. 우리나라와 베트남은 교육환경이 굉장히 다릅니다. 우리나라 아이들은 제도권 교육의 긴장감이 풀어지는 데 오래 걸리는데, 오히려 베트남 청소년들은 흡수력이 높아요. 개방적이고 수평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어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서 잘 표현해요. 사파에서 문화예술교육이라는 말은 생소하지만, 이미 삶 속에서 예술을 하고 있기 때문에 저희들이 하는 것은 촉매제의 역할이었죠. 아이들이 자신을 표현하고, 이웃-사회와 잘 연결되어 자아가 넓어지고 단단해지는 것이 이 사업의 핵심이자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3년이라는 시간이 익으면서 아이들의 성장과 변화를 느낍니다.”
장근범 작가는 이러한 사업이 일회성이 아닌 지속적인 운영기반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2차년도 사업을 할 때, 새로움에 대한 강박을 버리고 동아리를 만들고 매개자교육에 좀 더 집중했던 것도 이런 이유이다.
문화예술교육 ODA는 문화예술을 통해 복지의 불균형과 편중을 해소하기 위한 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교육과 문화의 공통점은 경제 논리에 휘둘리기 쉽다는 것이다. 굳이 예술이라고, 다문화라고 부르지 않아도 삶 속에 예술이 있고 다양성과 차이를 포용하며 전 지구적으로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방법을 문화예술교육의 해법으로 남겨둔다.
- 문화예술교육 공적개발원조(ODA, 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 사업은
- 기존의 건설, 재난복구, 기초교육에 편중되어 있던 공적개발원조의 지평을 넓히고 문화존중과 쌍방향 소통에 초점을 맞춘다. 이를 통해 국제사회 내 ‘지속가능 발전 교육으로서의 문화예술 가치 확산’에 기여하고자 한다. 그 첫 사업으로 2013년부터 베트남 라오까이성에서의 활동을 시작했다. 1차년도에는 익산공공영상미디어센터와 함께 ‘우리, 사진으로 만나요’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라오까이성의 사범대학교 교수와 학생을 대상으로 한 매개자 교육과 초중등학교 학생들과 사진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2차년도에는 기존에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학생들이 중심이 된 동아리도 만들고 장르통합교육으로 확장, 매개자교육이 강화되었다. 3차년도인 2015년의 특별 프로그램으로 한국과 베트남을 잇는 창작 캠프가 진행되었고, 본 사업은 10월에 지속될 예정이다. 또한 8월부터는 박하현(Bắc Hà 北河)에서도 새롭게 시작할 예정이다. 문화예술교육 ODA사업은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중장기계획 속에서 진행되고 있다. 베트남 라오까이성 인민위원회,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KOICA 베트남 사무소가 3자간 업무협약을 체결해 유기적인 협력체계를 마련한 것이 중요한 기반이다. 또한 올해 한-베 청소년 교류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과 시흥시가 업무협약을 맺고 지역문화예술교육 기반 조성, 학교 및 사회문화예술교육 활성화, 저소득층 및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의 문화예술교육 활성화 등 다방면에서 협력사업을 진행할 계획이다.
- 최순화
- 문화예술기획과 문화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2013년부터 2015년까지 예술경영지원센터의 NEXT 사업 파견자로 주태국 한국문화원에서 일했으며, 동남아시아 교류와 네트워크에도 관심이 많다.
suna.cho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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