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교육 전면화를 위한 정부 주도의 노력
1983년 프랑스 문화부와 교육부가 머리를 맞대어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논의를 시작한 지 4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1990년대, 문화예술교육이 국민의 삶과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을지에 대한 장기적 행동 지침이 등장하고 2013년과 2015년에는 문화예술교육의 사회적 역할, 실행 목표, 교육 현장에서의 적용 과정을 구체화한 법령 및 국가계획이 발표된다. 프랑스 문화부와 교육부가 공동 발표한 ‘프랑스 학교의 재건을 위한 법령’(Loi d’orientation et de programmation pour la refondation de l’école de la République) 및 ‘문화예술교육 실행을 위한 국가계획’ 정책 보고서(Plan national de formation sur le parcours d’éducation artistique et culturelle)가 바로 그것이다. 사회 불평등을 낮추고 통합을 이루며 교육과 개인의 경험을 이어주는 수단으로써 문화예술교육을 정의하는 위의 문서에서 눈여겨볼 점은 정부 주도의 최초 논의 후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 프랑스 문화예술교육 정책의 근간을 이루는 세 가지 개념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우선 문화예술교육에 참여하는 개인은 예술가와 예술작품을 직접 만날 수 있어야 한다. ‘만남’을 통해 작품을 마주하는 호기심과 즐거움, 감성이 길러질 수 있고 참여자들 간의 교류가 일어나며 이를 기반으로 지역의 문화 활동과 나를 둘러싼 환경의 다양성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다음은 ‘실행’의 단계인데 창작을 위한 구상과 예술적 표현 기술을 활용하여 실제로 행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일련의 실행 과정을 통합하고 각자의 활동을 검토해보면서 비판적 사고 능력을 기르는 동시에 다양한 예술 분야의 지식과 경험을 유기적으로 연결해 나의 것으로 만드는 ‘이해’가 필요하다. 만남, 실행, 이해의 단계를 통해 문화예술과 친밀해진 아동·청소년은 상상력과 비판적 사고력이 풍부해지고 예술과 동반 성장할 수 있기에 프랑스 정부는 문화 소외 계층, 즉 농산어촌 지역 청소년, 장애 청소년, 보호관찰을 받는 청소년도 예외 없이 모두를 위한 문화예술교육 전면화에 주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협력과 파트너십을 통한 문화예술교육 가치 확산
프랑스 문화부와 교육부는 다년간의 협업을 통해 문화예술교육 정책을 확산하고 교육 현장에서의 실효성 제고를 위해 여러 가지 전략을 펼친다. 우선 공공재정을 늘려 문화예술계 영역 발전을 이루어 시민들이 다양한 문화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장려하고 우수한 문화예술교육 콘텐츠를 발전시키며 문화예술 기관과 단체, 교육기관 등의 파트너십 증진과 협력을 통한 지역자원 교류를 확대하고자 하였다.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주무 부처의 노력이 일시적인 정책 이슈로 그치지 않고 30년 이상 꾸준한 성장을 이어가자 점차 다양한 중앙부처가 문화예술교육의 가치 확산을 위해 상호 협력하게 된다. 이에 국토통합부, 보건사회연대부, 농식품부, 고등교육연구혁신부는 문화부, 교육부와 함께 전 연령의 학생(어린이집 원아~대학생)이 제약 없이 문화예술교육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10가지 합의 내용을 담은 ‘문화예술교육 헌장(Charte pour l’éducation artistique et culturelle, 2016)’을 공동 발표한다. 이 헌장은 프랑스 문화예술교육의 철학, 가치, 방향성을 담은 문서로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모든 사람은 문화예술교육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하고 문화예술교육을 통해 예술가와 예술작품을 만나 지식을 얻으며, 대대로 전해 내려오거나 현대적이거나, 대중적이거나 혹은 학문적인 형태를 막론하고 국내외에서 풍부하고 다양하게 공유된 문화를 습득할 수 있어야 한다. 감수성, 창의성, 비판적 사고의 증진으로 시민 형성과 해방에 기여하는 문화예술교육은 청소년을 둘러싼 가정환경과 교우 관계를 반영해야 하고 청소년들에게 경험의 의미를 부여하면서 현대 사회에 대한 더 나은 이해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문화예술교육의 지속적 확산은 파트너, 즉 교육계, 문화계, 시민사회, 정부, 지방자치단체의 참여와 협력 프로젝트를 원동력으로 하며, 질적 향상, 효과성 극대화, 혁신적 방향 제시를 위한 해당 분야의 연구와 평가가 필수불가결하다.
문화예술교육 고등위원회를 주축으로 한 구체적 행동 : 라벨 100% EAC
프랑스 정부는 문화예술교육의 지표를 제시한 헌장에 따라 프랑스 전역에서 문화예술교육의 현재를 점검하고 미래 비전과 발전 전략 제시, 지역의 사회문화·역사 자원 연결, 인적 자원 개발을 도모하는 중추 기관으로 ‘프랑스 문화예술교육 고등위원회(Le Haut Conseil pour l’éducation artistique et culturelle)’를 두고 있다. 2005년 창설되어 2023년 현재 총 6개의 중앙부처 장관(문화부·교육부·고등교육부·농업부·국토통합부·보건사회연대부)및 일부 지역 시·도 지사, 지방자치단체의 교육·문화 담당자, 학부모 대표 등 총 30명이 위원회를 구성하고 있다. 문화예술교육 고등위원회는 정부가 지향하는 문화예술교육 전면화 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2021년 12월 ‘문화예술교육 라벨 100%(Le label 100% EAC(주1))’를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문화예술교육 라벨 100%’란, 문화부의 지방문화행정 사무국(Direction Régionale des Affaires Culturelles, DRAC)(주2)에 참여 의사를 밝힌 지방자치단체 중 최종 선정된 지역 학생 100% 가 문화예술교육에 참여함을 정부가 인증하는 정책 사업이다.
LABEL 100% EAC 소개자료
[출처] 프랑스 교육부 홈페이지
본 사업 참여를 위하여 지자체장과 문화예술교육 담당자는 정책 사업 실천 전략을 바탕으로 지역의 문화·예술·역사·교육·자연 자원과 인적 자원 현황 파악, 문화예술 활동에 활용 가능한 자원의 범위와 그 적정성 분석, 학령별 문화예술교육 콘텐츠 개발, 정규 교육 과정 내·외 교육프로그램 기획, 지역 파트너들과의 협력 방안, 예산 운용과 회계, 사업에 대한 자체 평가 지표 등을 매우 세밀하게 작성 후 제출해야 한다. 특히 지역이 보유한 문화예술 자원에 대해서는 묘사에 가까울 정도의 자료 제출을 요구하는데 이는 문화예술교육 고등위원회에서 지역마다 사람·문화기반시설과 수준·재정 여건이 모두 다름을 인정하고 지역 상황에 맞추어 촘촘하고 섬세하게 사업을 지원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현황을 살펴보면, 2022년부터 2027년까지 5년간 그 자격이 유지되는 ‘문화예술교육 라벨 100%’를 인증받기 위해 전국 94개 시(市)와 지방 소도시 연합이 온라인으로 지원하였고 심의를 거쳐 최종 79개 지역이 ‘라벨 100%’의 자격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대표 지역으로 중세와 근대 건축물의 조화가 아름다운 메츠(Metz), 동북부 공업 중심지 낭시(Nancy), 세계적 와인 생산지인 보르도(Bordeaux), 남부 휴양도시 칸(Cannes), 세계문화유산 도시이자 머스타드 본산지인 디종(Dijon) 등이 있다.
칸의 문화예술교육 사례
본격적인 문화예술교육 라벨 100% 사업 시행에 앞서 고등위원회에서는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시범 사업의 일환으로 꺄호스(Carros), 갱강(Guingamp), 베쌍쿠흐(Bessancourt), 샤또 띠에리(Château-Thierry) 등 10개 지역을 선정, 3년간 사업 타당성과 방법론을 시험하게 된다. 그 중, 프랑스 남부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휴양도시 칸(Cannes)은 고등위원회에서 인증한 문화예술교육 라벨 100%의 최초 시범 운영 도시이자 선구적 사례로 손꼽힌다.
칸 시청은 시범 사업 때부터 여러 해에 걸쳐 교육부, 다수의 지역 문화예술기관, 단체 및 협회와 손잡고 학교 안과 밖 문화예술교육 저변 확대를 위해 노력하였다. 그 결과 2021-2022년 기준, 건축, 공연예술, 현대 미술과 창작, 영화(이미지), 문화(휴머니즘과 다양성), 과학기술문화, 독서, 회고와 유산 등 8개 문화예술 분야 225개 유치원 프로그램, 721개 초등학교 프로그램, 477개 중학교 프로그램, 504개 고등학교 프로그램, 70개 고등교육기관(대학 등) 프로그램에 총 17,632명의 학생이 참여하게 된다.(주3) 이 수치는 도시 전체의 85%에 해당하는 학급이 문화예술교육에 참여한 것으로 COVID-19로 심각한 공중보건 위기를 겪은 시기임을 감안하면 괄목할 만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세 번째 비둘기의 전설’ 인형극 프로젝트
[출처] 칸 문화예술교육 결과보고서 2021-2022
다음은 2021-22년 칸에서 진행된 상징적인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 중 일부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주4)
기관/단체 프로그램명 대상/내용
꼼빠니 아르케딸
(Compagnie Arketal)
세 번째 비둘기의 전설
(La légende de la
troisième colombe)
  • • 대상: 꺄프홍 중학교(Collège Capron) 재학생 25명
  • • 내용: 슈테판 츠바이크의 대표소설 ‘세 번째 비둘기의

    전설’을 시나리오 작가와 문학 교사가 각색,

    학생들이 인형극(마리오네뜨)으로 재탄생시킨 공연예술·문학

    프로젝트
떼아뜨르 드 라 리콘
(Théâtre de la Licorne)
빛 아틀리에
(ATELIER LUMIÈRES)
  • • 대상: CM1-CM2 (한국 초등학교 4-5학년 해당)
  • • 내용: 무대기술자가 알려주는 공연예술에서의 광학,

    물리학, 미술의 이해, 공연 기술 분야 체험 프로젝트
말메종 아트센터
(La Malmaison)
바르텔레미 토고 전시
(Barthélémy Toguo)
  • • 대상: 전 연령
  • • 내용: 카메룬 출신 예술가인 바르텔레미 토고의 사진,

    판화, 조각 작품을 통해 21세기 미술을 이해하고 현대

    사회가 당면한 환경보호, 세계화, 이민, 식수와 농업

    등의 이슈에 대한 예술적 접근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미술 프로젝트
시사점: 지역의 문화예술교육을 견인하는 파트너십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공영 라디오 채널인 프랑스 퀼튀르(france culture)에 출연해 “국가의 역할은 불공정성을 타파하는 것으로, 거주 지역에 상관없이 모든 어린이와 청소년이 문화를 접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마크롱 정부는 전 연령 문화예술교육이 필수적이며 문화예술교육의 가치와 철학, 방향성 공유, 구체적 실행을 위한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이 아주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 핵심은 파트너십인데 지역이 가진 여러 자원을 한데 모으고 동반자로서 공동책임을 가지고 아동·청소년이 문화예술교육에 참여할 수 있도록 힘쓰는 모든 과정이 지역에 생명력을 불러일으킨다고 본다.
그렇다면 누가 더 적극적인 파트너가 될 것인가? 이것이 바로 지역이 고민해야 할 과제이다. 문화예술과 사람을 잇는 노력으로 지역의 문화예술교육을 견인해 줄 협력자들과 긴밀한 관계를 긴 호흡으로 유지하는 것, 모두의 미래를 위한 가치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주1) EAC: Education artistique et culturelle

(주2) DRAC: 도지사의 권한 아래 국가의 문화분야(문화유산, 박물관, 도서, 고문서, 독서, 음악, 무용, 연극, 공연, 문화기술, 조형예술, 영화, 시청각) 정책을 총괄하고 활성화하며 이를 지역사회에 실행하는 중앙부처(문화부)의 지역 담당 행정기관

(주3, 4) 출처: 칸 문화예술교육 결과보고서 2021-2022(Bilan EAC de l’année scolaire 2021-2022, Ville de Cannes)

* 이 기사가 수록된 「2023 문화예술교육 기획리포트 4호-문화예술교육과 파트너십」은 아르떼 라이브러리 연구자료실에서 전문을 내려받을 수 있다.
김은지
김은지
대학에서 프랑스 문학과 문화관광학을 전공하고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에서 학교 안과 밖 문화예술교육 정책 사업을 담당했다. 프랑스 파리 도핀대학(Université Paris Dauphine-PSL)에서 문화예술조직경영 석사학위 취득 후 문화예술교육, 문화도시, 문화정책 등을 주제로 한 다수의 연구와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