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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 (이오덕․권정생, 양철북,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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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도 학교가 두렵다』 (엄기호, 따비, 2014)
“온 세상 다 나를 버려 /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 ‘저 맘이야’ 하고 믿어지는 /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함석헌 선생(1901-1989)의 시 「그 사람을 가졌는가」에 나오는 유명한 표현이다. 사는 일이 고되고 힘들 때면 자주 이 시를 찾아 조용히 읊조리곤 한다. 스무 살 무렵 청계천 어느 헌책방에서 이 시가 수록된 『수평선 너머』라는 시집을 구해 읽으며 나는 얼마나 기쁨의 환희에 벅찼던가. 그때 느낀 감동의 여진 때문일까. 나는 지금도 함석헌 선생의 「그 사람을 가졌는가」라는 시를 읽노라면 세상사는 일의 고단함을 이겨내게 하는 것은 동료와의 관계에서 우러나오는 관계의 힘이라는 점을 자주 생각하곤 한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그런 동료와의 재미있고 의미 있는 만남과 대화는 갈수록 희박해지고 있다. 철학자 김상봉은 지난 20세기 한국에서 가장 의미심장한 만남의 한 사례로서 다석(多夕) 유영모 선생과
함석헌의 만남을 꼽았다. 나 또한 이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그런 만남은 희박해지고 있고, 저마다 자기만의 ‘사일로(silo)’에서 칸막이를 쳐놓고 지내는 것을 당연시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곡식을 저장하는 사일로의 특징은 세상 밖으로 난 ‘창문’이 없다는 점이다. 그런 사일로효과에 맞서는 동료효과(peer effect)의 의미를 문화예술교육 현장에서 생각하고 일상적으로 구현할 때 지속가능한 교육을 할 수 있는 마음의 동력을 얻게 되지 않을까 싶다.
아동문학가 이오덕(1925-2003)과 권정생(1937-2007)의 만남을 특히 기억해야 할 필요가 있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것은 1973년 1월 18일이다. 197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인 동화 「무명 저고리와 엄마」를 읽은 평론가 이오덕이 권정생이 사는 안동시 일직면 조탑리를 찾아간 것이다. 이오덕은 마흔아홉 살이었고, 권정생은 서른일곱 살이었다. 그날의 만남 이후 권정생은 이오덕에게 “바람처럼 오셨다가 많은 가르침을 주고 가셨습니다”라고 편지를 썼다. 그리고 30년간 서신을 주고받으며 우정을 나누었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지음(知音)이었던 것이다. 두 사람이 30년간 주고받은 편지를 모은 책 『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는 고독과 우정에 관한 위대하고 시시콜콜한 기록이라고 확언할 수 있으리라.
나는 이 서간집을 보며 “우정은 시간의 선물이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오덕과 권정생, 두 사람은 같고도 달랐으며, 다르면서도 같았다. 두 사람은 동화를 사랑한다는 점에서는 같았지만, 두 사람이 처한 조건은 너무도 달랐다. 이오덕은 경북 산골의 초등학교를 전전하며 일하는 아이들과 함께하는 문학/글쓰기 교육을 현장에서 고민한 교육자였으며 중진 평론가였으나, 권정생은 스스로 소외당한 이방인이라는 의식을 평생 품으며 외롭게 병마와 싸우며 동화를 써온 작가였다. 그러나 두 사람은 어른들의 장난감이 되어버린 아이들을 걱정하는 동화작가였으며, 지금 쓰고 있는 작품에 대한 고민을 함께하고, 약값과 연탄값 그리고 원고료와 인세 같은 생계에 대한 고민 따위를 걱정하며 사는 생활인이었다는 점에서는 똑같았다. 연장자인 이오덕은 언제나 항상 권정생의 건강을 염려하고, 권정생의 작품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야 한다는 믿음에서 서울과 대구 등지를 오가며 잡지사와 출판사에 작품을 소개하는 역할을 자청했다. 그리고 권정생은 평생의 짐이 된 병마와 싸우며 외롭게 작품을 쓰는 일의 고단함과 고됨을 호소하곤 했다.
1984년 3월 19일에 쓴 권정생의 편지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선생님(이오덕)은 학교를 그만두고 싶다 하셨는데, 저도 세상을 그만두었으면 싶어질 때가 있답니다. 무엇을 성취한다기보다, 그냥 버티는 데까지 버티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겠습니다.” 권정생이 일상적으로 감내해야 했던 고통의 상황을 적은 실존의 언어가 아닐 수 없다. 그렇게 두 사람은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우정을 나누며 이른바 ‘케미의 정석’을 보여주었다. 사일로 효과에 맞서는 동료효과의 진수를 두 사람의 우정에서 눈으로 보게 된다.
사람은 변하는가.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학교 안팎의 현장에서 어떤 동료 교사가 ‘열정’을 보일 때 대부분의 교사들이 “선생님이 그런다고 되겠어요?”라고 냉소적으로 반응하는 것을 보라. 엄기호가 쓴 『교사도 학교가 두렵다』는 그런 학교 현장에 대한 우울한 보고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은 또한 ‘변하기도’ 한다. 사람의 변화 가능성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는 것은 ‘교육’의 목적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나와 우리 인생에서 가장 최악의 태도는 누구에 대해서든 더 이상 놀랄 일이 없어지는 것이라는 점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한다. 지금의 문화예술교육 현장에는 어쩔 수 없음이라는 냉소의 벽이 견고하게 서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나와 당신은 이 벽 앞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일상을 함께 나누고, 경험을 나누며, 토론과 숙의 과정을 통해 ‘우정’을 회복하며 소통의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이야말로 냉소의 벽을 넘어서는 태도가 아닐까 싶다.
스무 살 무렵에 처음 접한 함석헌의 시 「그 사람을 가졌는가」의 마지막 연은 다음과 같다.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 ‘아니’ 하며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 알뜰한 유혹 물리치게 되는 /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나와 당신은 시에 등장하는 “그 한 얼굴”을 지금 가졌는가. 그리고 누군가에게 “그 한 얼굴”이고 싶지는 않은가. 나 또한 지금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그런 “그 한 얼굴”이 되고 싶다.
- *사일로효과(organizational silos effect) : 조직의 부서들이 서로 다른 부서와 담을 쌓고 내부 이익만을 추구하는 부서 이기주의 현상
- *동료효과(peer effect) : 집단 내 동료들의 행동과 사고방식이 그 집단에 속한 개인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주는 현상
이미지 제공 _ 양철북, 따비
- 고영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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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문화예술교육 웹진 [지지봄봄] 편집위원을 역임했으며, 현재 [한겨레신문]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다.
gohyj@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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