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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근대사에서 중심부 역할을 했던 중앙동 일대는 이후 사무실 밀집 지역이 되면서 밤이면 공동화가 일어나는 지역이 되었다. 요즘도 많은 밥집들이 퇴근 시간 후 한두 시간이면 문을 거의 닫고, 늦게까지 문을 여는 술집도 많지 않다. 유동인구가 조금만 있어도 밤이 되면 화려한 간판을 밤늦도록 밝혀놓는데, 중앙동 일대는 오히려 고즈넉하다 못해 스산한 느낌까지 든다. 밤늦게 대리운전을 시도했다가 실패할 확률이 높은 지역이기도 하다.
이런 중앙동에 몇 년 전부터 예술가들이 다양한 공간에 깃들어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원도심 창작공간 또따또가엔 70여 개의 공간 300명이 넘는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이 입주해 활동한다. 낡은 건물들 어딘가 사진가의 방, 독립출판 하는 이의 방, 비평가의 방, 영상이나 설치미술을 하는 이의 공간, 춤꾼들의 공간도 있고, 노래나 공연하는 이들의 방도 있다. 중앙동 전체로 치면 극히 일부일 뿐이지만 곳곳에 예술가들을 품은 공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아가 그러한 군락이 전시나 공연 등의 이벤트를 만들면서 상가 상인들, 회사원들, 그리고 또 다른 예술가 친구들의 동선을 뒤섞고 있으니 흥미롭다.
‘부산은 항구다’ (작가 장근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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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세계문화예술교육 주간행사가 바로 이곳 부산의 중앙동 일대를 중심으로 열렸다. 자의식이 강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예술가들이 모여 있는 중앙동 일대에서 세계문화예술교육 주간 행사라니 뭔가 잘 안 어울릴 것 같으면서도 이런 고민을 함께 해가기에 적절한 장소인 것 같다. 예술가는 자기만의 독특한 눈으로 세계를 보고 창조해낸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자기 고집 같은 것이 생기게 마련인데 그것이 표면적으로는 소통의 걸림돌로 보이지만 내부적으로는 창작의 동력이기도 하고 길게 보면 세계의 다층성과 다양성의 디딤돌이 되는 것이다.
문화예술교육이 강조되면서 단순히 예술의 기예를 전수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바라보고 재창조해내는 감성을 일깨우는 방향으로 나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편 고집 센 예술가들이 스스로의 세계를 구축하려는 노력들과 아동‧청소년과 그 감성을 일깨우고 감각을 공유하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뛰어난 예술가라고 해서 좋은 교육자라고 할 수 없다. 모든 영역이 마찬가지겠지만, 예술에서 교육이라는 주제가 더욱 흥미로운 것은 교육의 과정이 창작보다 더 즉각적으로 예술가의 세계를 돌아보고 반성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전시장이나 화랑, 대학, 비평 등 예술세계의 문법이 통용되지 않는 상황에서 예술이라는 주제로 아이들을 대면하게 되는 것이다. 예술가에게 그것은 당혹스런 과정이면서 동시에 그 문법들을 스스로 던져버릴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중앙동 40계단 일대를 왁자지껄하게 채운 ‘예술가와 꽃장난’이 끝나고 난 뒤 모퉁이극장에 모인 참여 예술가들과 다시 한 번 이야기꽃을 피웠다. 이들의 다양한 문화예술교육 사례들에서 문화예술교육의 지향과 가치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몇 가지 인상적이었던 모습들을 살펴보자.
왼쪽부터 고무신, 김경화, 이두원 장근범, 정만영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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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와 이야기꽃’ 첫날인 5월 27일, 고무신, 김경화, 이두원, 장근범, 정만영 작가가 무대에 나섰다. 프로그램 진행과정을 담은 사진이 슬라이드로 상영되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워크숍을 끝낸 후 피로를 무릅쓰고 시간을 내어 다른 이들과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공유했다. 덕분에 짧은 소개 글과 현장의 분위기만으로 알 수 없는 예술가의 생각과 교육자로서의 예술가, 놀이의 안내자로서의 예술가의 입장을 재구성해볼 수 있는 자리가 되었다.
고무신의 ‘꽃피우는 비막대’는 비어 있는 둥근 종이 통으로 아이들이 직접 비막대를 만들고 그 비막대로 도시의 골목을 다니면서 물을 주고 그곳에 단어나 그림을 그려 생명을 부여한다. 제목이나 설명만으로는 얼핏 이해가 가지 않지만, 긴 막대 통 안에서 천천히 가루들이 흘러내리는 소리가 비 내리는 소리와 비슷하다. 제일 중요한 것은 아이들과 선생님이 직접 비막대를 만들고 거기서 나는 청각신호를 빗소리로, 막대 통을 비가 내리게 하는 막대로 상상하자는 상호간의 약속이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아이들은 비막대를 들고 골목 이곳저곳을 누비며 비를(물을) 주고 그곳에 그림을 그리거나 단어를 쓴다. 물을 준 자리마다 상상력의 꽃이 피어난다. 전신주에도, 계단에도, 아스팔트에도, 옆에 있는 선생님의 어깨에도. 물을 주는 곳마다 분필로 ‘하트뿅뿅’이며 ‘힘내!’라는 말들이 자라기 시작한다. 주술로 비를 내리게 하고 그곳에 생명이 자란다는 기본적인 서사구조에, 청각의 유사성을 상상으로 빗소리로 치환하기, 그리고 물을 주며 분필로 그림을 그려 꽃을 피우는 낙서놀이의 성격까지 잘 맞물려 있는 인상적인 프로그램이다.
사진가 장근범의 프로그램 ‘부산은 항구(恒久)’ 또한 특이하다. 부산의 광안대교를 찍은 듯한 작가의 대형 현수막에 아이들이 그림을 그리고 승선 의식을 거쳐 그 현수막을 머리에 쓰고 다 같이 출항을 하는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사진이라는 매체 위에 드로잉이 더해지고, 거기에 다시 골목을 누비며 행진하는 퍼포먼스가 더해진 복합적인 형태이다. 사진이라는 장르를 다른 식으로 접해보면 좋겠다는 작가의 의도로 시작된 수업에 아이들은 이미지의 연쇄성을 고민하며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니라 맘대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큰 여백과 재료가 주어졌다는 게 더 중요했기 때문에 그 현수막은 삽시간에 통일성도 없고 제각각인 그림들로 가득 차버렸다. 흥미로운 점은 이후에 다 같이 그린 대형 현수막을 들고(배를 타고) 골목을(바다를) 누빈다는 사실이다. 사진가가 이 프로그램에서 사진이라는 장르를 더 적극적으로 내세우고 의도한 방향으로 아이들이 따라오기를 바랐다면 항해의 퍼포먼스는 실패했을지도 모른다. 사진과 전혀 어울리지도 않고 개연성이 없는 그림들이 마구 채워질 때 오히려 사진이라는 장르에 대해 일말의 기대를 하고 있는 예술가 스스로의 자의식을 깨는 계기로 삼지 않았을까 싶다. 아이들 중 한 명에게 선장 역할을 맡기니 편해졌다는 작가의 말을 떠올려보게 된다.
‘꽃피우는 비막대’ (작가 고무신) / ‘소리여행 스케치’ (작가 정만영)
‘상상정원도+상상야생화원도’ (작가 이두원) / ‘우리가 그린 큰 그림’ (작가 김경화)
이외에도 정만영 작가의 <소리여행 스케치>는 평소 시각 위주의 감각 사용에서 벗어나 소리에 집중해보는 시간을 가져보게 한다. 감각의 전환을 생각하게 하고 연습해보고 집중해보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연습이 될 것이다. 김경화 작가는 <우리가 그린 큰 그림>이라는 타이틀로 폐막식에 쓸 무대를 예술꽃씨앗학교인 부산 연미초등학교 아이들과 함께 제작했던 감동을 이야기했다. 폐지를 활용한 창작에서 시작된 작가의 고민은, 폐지를 주워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폐지 줍는 어르신들에게 재료를 산다는 태도로 확장된다. 폐지로 폐막식의 무대를 함께 그린 아이들이 작가의 그 고민과 태도를 느꼈으리라 짐작된다. <상상정원도+상상야생화원도>를 진행했던 이두원 화가는 자신이 가장 아끼는 비싼 캔버스까지 공수해 와서 아이들에게 재료를 선택하게 했다. 남에게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면에 귀 기울여 자신에게 맞는 것을 만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공유하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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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에서 장난스레 나온 ‘왜 날고 싶어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예술가들의 답이 문화예술교육에 대해 예술가의 입지를 정리하는 단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고무신은 중력에 대해 거부하는 것이 놀이의 정신이라 했다. 정만영 작가는 키 크려고 그러나 보다 했고, 이두원 화가는 누구나 날고 싶어 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진지하기도 하고 엉뚱하기도 한 예술가들의 모습을 보면서 좋은 예술가와 좋은 예술교육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하는 물음이 계속 떠돈다.
모든 문화예술교육에 일괄적으로 적용할 수는 없지만 문화예술교육이 놀이적 형식을 취하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때때로 장르적 매력이나 흥미를 발견하기 전에 기능적이거나 기술적인 교육을 해왔던 그간의 문화예술교육의 한계를 반성하면서 새롭게 문화예술교육의 가치를 정립해갈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지점에서 예술가의 위치는 아마도 함께 놀 수 있는 사람, 지나치게 룰을 내세우지 않는 사람, 역할을 독점하지 않고 돌려주는 사람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교육에 관심을 두고 있는 예술가에게 이러한 요청은 평소에 지닌 자의식을 내려놓고 다시 더 큰 세계를 만들어내는 동력이 되지 않을까.
예술가와 이야기꽃 (5.27)
40계단을 습격한 아이들이 분필로 온통 낙서를 해대자 이발소의 주인이 나와서 던지는 말. “여기 와서 완전 엉망진창 만들고 있네.” 경상도 사투리의 이 말이 좀 살벌하게 보일 수 있지만 미소를 띤 채 하신말씀이다. 평소 아이들이 거의 다니지 않는 중앙동에서 그 날 하루 예술가들과 더불어 장난을 치며 오후의 원도심에 색깔을 입혔던 것만큼은 틀림없다.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들은 강사와 참여자 뿐 아니라 지역의 또 다른 시선들과 뒤섞이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이것이 문화예술교육의 장점이며, 세계를 끊임없이 달리 보고자 하는 예술의 특성과도 맞닿은 놀이의 힘일 것이다.
- 예술가와 꽃장난 & 예술가와 이야기꽃
- 2015 세계문화예술교육 주간을 맞아 5월 27일부터 29일까지 부산 원도심 또따또가 일대에서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과 함께 누구나 놀이처럼 즐겁게 참여할 수 있는 문화예술교육 체험 프로그램 ‘예술가의 꽃장난’을 펼쳤다. 또한 예술가들과 두런두런 이야기꽃을 피우며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5월 27일, 28일 또따또가 내 모퉁이극장에서 ‘예술가와 이야기꽃’이 진행되었다. 28일은 장근범, 서미영, 권용주, 장성진(1294SOUL) 작가가 참석하여 프로그램 의도, 소감 발표와 함께 예술작업과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나눴다.
- * 예술가와 이야기꽃 참여 예술가(가나다 순)
-
예술가와 이야기꽃 참여 에술가(가나다 순) 글목록
구분 |
예술가 |
프로그램 |
장르 |
5/27 |
고무신 |
꽃 피우는 비막대 |
놀이 |
김경화 |
우리가 그린 큰 그림 |
무대디자인 |
이두원 |
상상정원도+상상야생화원도 |
회화 |
장근범 |
부산은 항구(恒久)다. – 변하지 않고 오래 가는 마음 |
사진 |
정만영 |
소리여행 스케치 |
사운드 |
5/28 |
1294SOUL |
하루 만에 영화 만들기 완전 정복 |
영화 |
권용주 |
아이들의 목소리로 듣는 풍경 |
설치/사운드 |
서미영 엘라스 목관 5중주 |
Let’s play! 3! 4! |
음악 |
장근범 |
부산은 항구(恒久)다. – 변하지 않고 오래 가는 마음 |
사진 |
- 박진명
- 예술가와 아마추어들이 자기의 장점과 주변의 이야기로 기사를 쓰는 ‘개념미디어 바싹’을 발행하고 있다. 부산청년포럼 위원장을 맡아 지역에서 청년들이 처한 삶의 문제들을 공론화하고 정책을 제안하고 있으며, 플랜비 문화예술협동조합 문화기획팀장으로서 문화예술 관련 기획과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가끔 시도 쓴다.
페이스북 : https://www.facebook.com/motwj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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