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철의 여인이라고 불리는 앙겔라 메르켈은 독일을 대표하는 여성인 동시에 세계적으로도 몇 안 되는 여성지도자로 주목받고 있다. 어쩌면 독일에서 여성들을 위한 문화 예술재단은 세계 어느 국가에서보다 어울리지 않는 단체일지 모르겠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남성들에 못지않게 높고 결혼 전은 말할 것도 없고 결혼 후에도 직장을 다니는 여성들의 비중이 전체 70%를 넘는 등 국가차원에서 실시하고 있는 사회복지가 이미 안정적인 단계에 들어선 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까지는 어디까지나 낯선 외국인의 눈에 비친 현재 모습일 뿐이다. 남성의 역할을 부가시키며 여성들의 사회적 진출을 저해하는 요소들이 산재했던 것이 불과 수십 년 전만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렇게까지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진 현재 모습을 갖추기까지 지속적인 법 개정과 진보적 여성단체들의 사회운동도 큰 역할을 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여기에 수십 년 동안 연방주 곳곳에서 여성인권 신장을 위한 노력을 지속해 온 여성문화단체들의 지원도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여성문화 라이프치히(Frauenkultur e.v. Leibzig), 21년간의 기록
여성문화 라이프치히(Frauenkultur e.v. Leibzig)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1년 후인 1990년도 라이프치히에서 설립된 이후 이 지역을 대표하는 여성 문화센터(Frauenkulturzentrum)로서 여성들의 자립심을 키우고 지속적인 교육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다양한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정치적 및 사회적으로 혼란기였던 당시 정치권 상황에서 활동했던 여성 정치가들은 적극 여성인권 시장을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이러한 당시 상황 속에서 개관한 여성문화 라이프치히(Frauenkultur e.v. Leibzig)는 여성 예술가들의 활동지지는 물론, 문화예술 활동의 범위를 여성뿐만 아니라 여성이 속해 있는 가정과 사회라는 범주까지 확대해 사업범위를 매년 넓히고 있다. 현재 기관에서 진행 중인 문화예술 프로그램 카테고리는 총 9가지로 콘서트, 세미나, 워크숍, 합창단, 전시회 등 실생활에 가까운 프로그램들을 중심으로 진행 중이다.
최근 여성문화 라이프치히(Frauenkultur e.v. Leibzig)의 지원 내용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더 많은 여성과 소녀들이 사실상 남성들의 주 무대인 밴드 오디션 참여 및 밴드 결성을 독려하고 더 많은 여성 감독들이 영화제작에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하며 여성 예술가들이 더 많은 장학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등 실질적인 경제적 도움에 좀 더 초점을 맞춘 모습을 보이고 있다.
나를 위해, 그리고 가족을 위한 문화예술 프로그램
웃음소리와 우는 소리가 뒤섞여 들리자 호기심이 생긴다. 각종 소음이 들리는 방안을 슬쩍 들여다 보니 모습이 가관이다. 여기저기 기고 뛰는 아이들을 잡으러 다니는 부모들이 있지를 않나, 노래에 맞추어 열심히 율동을 따라 하는, 막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들도 보인다. 동화를 들려주니 어느새 잠이 든 아이들도 있고 강사의 몸짓, 손짓 하나를 놓치지 않겠노라며 열중하고 있는 코흘리개도 보인다. 분명히 정해진 시간대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데도 상당히 자율적인 모습이다. 같은 프로그램에 가족단위로 참여하고 있지만 같은 성취도를 목적으로 두고 있지 않은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여성문화 라이프치히(Frauenkultur e.v. Leibzig)는 5세 미만 영유아를 키우고 있는 가족들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말이 프로그램이지 아이와 부모가 함께 춤추고 노는 놀이교실인 셈인데, 육아를 개인에게만 맡기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와 국가가 함께 지원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독일에서는 ‘함께 하는 놀이가 곧 공부다’라는 원칙 아닌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때문에 비교적 남녀 간의 육아부담을 반반씩 지고 있는 독일에서 가족을 대상으로 하는 문화예술프로그램은 이 기관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의 문화단체에서도 자주 볼 수 있다.
시니어들을 위한 프로그램들도 찾는 이들이 많아 프로그램 시행확대를 고려하고 있다. 물론 다른 연령층에 비해 노년층과 그 밖의 사회소외 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문화예술 프로그램의 수가 상대적으로 적은 것이 사실인 만큼 어쩌면 이 같은 몰림 현상이 당연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단순히 이를 원인으로 확정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한국에 비해 안정된 연금정책으로 시니어들의 노후대비가 확실해진 것이 일차적인 원인이고 그 뒤를 이어 독일의 문화적 특성상 독립된 노후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이 높다는 것을 이차적 원인으로 보는 것이 더욱 타당하다. 이처럼 즐길 수 있는 노후를 큰 경제적 어려움 없이 선택할 수 있는 시니어들을 위한 운동 프로그램은 일주일에 한 번 열린다. 운동이라고 하기에는 춤 같고 춤이라고 하기에는 체조이기도 한, 사실 율동에 가까운 참가 시니어들의 몸 사위가 자못 진지하다. 최근 동일한 성격을 띠고 있는 타 지역 여성 문화예술단체에서는 동양체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미 다양한 연령층을 아우르는 요가를 비롯해 기공 등의 프로그램을 확충해 운영하고 있는 실정이다.
다른 여성 문화예술 재단과의 협력관계, 미래를 설계하다
이 밖에도 1896년에 베를린에서 설립되어 이미 1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독일 여성들의 문화예술참여와 여권시장에 앞장서 온독일 여성-문화 협회(Deutscher Verband Frau und Kultur e. V)는 독일 내 여성문화 단체 중에서 가장 전통 깊은 단체로 명성이 높다. 베를린, 브레멘, 기센 등 주요 도시를 비롯해 현재 총 29개의 지역에 단체를 두고 있으며 가입회원만 해도 35,000명을 보유하고 있다. 문화예술 프로그램과 함께 현 사회가 안고 있는 사회적 문제들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고 문화예술분야에 대한 추가 교육과 정보제공을 목적으로 하는 세미나도 함께 개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1986년에 설립된 이후 매달 새로운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있는BEGiNE (BEGiNE-Kultur-Frauen)도 2011년에 설립 25주년을 맞았다.
이처럼 저마다의 설립 역사가 말해 주듯이 현재 독일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지역 곳곳에서 짧게는 20년, 길게는 100년이 넘게 여성들을 위한 문화예술 장려에 노력해 왔던 단체들과의 연관관계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여성문화 라이프치히(Frauenkultur e.v. Leibzig)는 독일 사회에서 남녀 간의 차별이 전면적으로 없어진다면 기관이 해야 하는 업무도 함께 사라질 것이고 자신들의 현재 역할이 역설적이게도 기관을 없어지게 하는 것에 있다고 입을 모았다. 여성들을 위한 문화예술 단체가 가리키는 것 자체가 여성은 여전히 보호받아야 하는 약자라는 말의 또 다른 표현이라는 데 의견을 함께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 기관이 최종적으로 추구한다는 기관폐쇄, 왠지 기분이 유쾌해진다.
글_독일통신원 성경숙
기사가 좋았다면 눌러주세요!
코너별 기사보기
비밀번호 확인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