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나 소피아 미술관 이야기


미술관은 과연 침묵의 장소일까?
스페인 마드리드의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은 다른 미술관에서는 볼 수 없는 특별한 가족 프로그램을 매년 컨셉을 바꿔 다양하게 진행하고 있다. 그 중에 떼 수에나(Te suena?_소리가 들리니?) 프로그램을 소개하고자 한다.

특별한 미술 여행
미술관의 교육 프로그램 팀장인 올가 오베헤로(Olga Ovejero) 씨에 따르면, 미술관에 대한 고정된 관념을 깨고 어린이 관람객에게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새로운 교육 프로그램을 연구하던 중에 음악이나 무용을 병합한 미술 감상 프로그램이 탄생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중에 작년 10월부터 시작된 ‘떼 수에나’ 프로그램은 음악을 통해 미술 감상의 효과를 높이고, 침묵 속에서 눈으로만 감상해야 하고 이해할 수 없는 그림이 걸려 있는 어렵고 지루한 곳이라는 미술관의 이미지를 바꿔 나가고 있다.
프로그램 오프닝 시간이 가까워지자, 여기 저기서 부모님 손을 잡고 미술관 교육 데스크 앞으로 모여드는 어린이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프로그램은 1시간 30분 동안 4개의 작품을 감상하도록 짜여 있으며, 각각의 취지와 작품별 감상 이해를 돕기 위한 소책자가 부모님들한테 나누어졌다.
세 명의 음악가 및 진행자는 손가락을 튕기며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으음, 하! 으음, 하!’ 이에 어린이의 모든 시선은 한 곳으로 집중되고 어수선하고 들뜬 분위기는 가라앉았다.
“이제부터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특별한 미술 여행을 시작하겠습니다.” 라고 프로그램의 진행 리더인 파블로가 활기찬 목소리로 말했다.
소리와 음악, 침묵으로 뒤섞인 미술관
첫 감상 작품은 스페인의 초현실파 화가의 작품 ‘세계’이다. 캔버스를 꽉 채운 직육면체 안에는 작가가 상상한 세계가 펼쳐져 있고 별, 달, 구름, 천사, 피리, 하프, 기차, 배, 계단 등 작은 그림들로 가득했다. 그림 속에 그려진 소품의 소리를 들어볼 땐 아이들의 참여가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아이들이 그림 속의 소품을 외칠때 마다 그에 해당하는 소리가 즉흥적으로 연주되고 아이들은 너도 나도 그림 속을 분석하기에 바빴다.
이렇게 작가의 꿈 속으로 들어가 보니 그림 속의 꿈도 소리가 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두 번째 작품은 표현의 자유가 억제되고 침묵으로 일관해야 했던 50년대, 프랑코 독재 시대의 현실성이 표현된 추상 작품이었다.
바닥에 종이 테잎을 붙여 어린이와 부모 참가인 전원을 그 안에 가두고, 세 명의 진행자는 손을 입으로 가리고 얘기를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자 전혀 알아 듣지 못하던 말들이 조금씩 들렸다.
“난 말을 할 수가 없어. 난 노래도 할 수가 없어. 난 그림도 그릴 수가 없어” 그림 속의 문을 가리키며, “난 나가고 싶어. 난 노래 하고 싶고 그림도 그리고 싶어.” 라는 말들이 울려 퍼졌다. 어둡고 슬픈 음률이 연주되자 진행자들은 어린이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함께 그림 속의 문을 두드리고 소리를 질러 그 안에 갇힌 소리가 나오도록 한다는 것이다. 음악 소리와 함께 조금은 과장된 몸짓으로 주변에 감겼던 테잎을 뜯자 아이들도 신이 나서 동참했다.

세 번째로는 미국 표현주의파 작품 전시실 작품을 감상했다. 한 줄로 선 아이들을 뒤로 세우고 바이올리니스트가 앞장서서 작품 하나 하나에 멈춰 가며 연주를 하면서 전시실을 한 바퀴 돌았다.
전시실의 모든 작품들에서 발견할 수 있는 색깔을 이야기하고, 아이들과 부모들은 입고 간 옷의 색깔에 따라 소그룹으로 나누어졌다. 각각의 색깔은 다양한 소리와 몸짓으로 표현해야 한다. 빨강색은 펄쩍 펄쩍 뛰고, 파랑색은 손뼉을 치며, 초록색은 입으로 ‘다다다’ 소리를 내고 노랑색은 ‘우-우’하고 소리를 내며 무릎을 친다. 그리고 이 색깔 오케스트라를 지휘할 어린이 지원자 한 명이 선정되었다. 지휘자는 색깔 카드를 올리고 내리면서 연주를 시작했는데 여기 저기에서 웃음 소리가 끊이지 않고 미술관은 일시 놀이터로 변신하는 순간이었다.

네 번째 작품은 미로 Miró 의 ‘양귀비의 춤’이었다. 이 작품은 동양의 철학과 미의 영향을 받은 작품으로 단순한 색깔의 선과 점으로 이루어졌으며 캔버스에 남은 여백을 통해 침묵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작품 이해를 위해 아이들과 대화를 시도했다. 미술가가 그림을 그리려면 종이와 연필이 필요하고 음악가가 연주를 하려면 악기와 악보가 필요하다. 미술가가 백지에 그림을 그려 나가듯이, 음악가는 침묵을 토대로 작곡을 하고 연주도 하게 된다. 침묵을 시작으로 미리 나눠준 흰 종이를 흔들고 소리를 내어 침묵을 깨고, 한 명씩 앞으로 나와서 바닥에 종이를 떨어뜨리게 했다. 마지막 어린이의 종이가 바닥에 떨어지고 다시 침묵이 감돌자, 공중에 점을 찍고 선을 그어 나가며 부드럽고 따뜻한 선율의 음악이 연주되었다. 아이들도 바닥에 깔린 침묵을 캔버스로 하고 그 위로 손과 팔을 휘저으면서 자신만의 그림을 그려나갔다. 이를 마지막으로 진행자들이 작별 인사를 했고 참가자들은 ‘브라보!’를 외치며 뜨거운 박수 갈채를 보냈다.

이 가족 프로그램에 3년째 참여하고 있다는 한 가족은 7살짜리 딸 아이가 프로그램 진행 내내 얼마나 열심히 참여하고 즐겁게 보냈는지 모른다고 하면서 다음 기회를 또 기다린다고 했다. 집에 가자마자 그림부터 그리고 싶다고 말하는 아이의 모습에서 그 특별한 여행의 감동이 진하게 느껴졌다.

글.사진_스페인 통신원 홍현숙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비밀번호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