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감하고 공감하는 대화는 창의적인 문화예술교육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요소이다. 마음을 열고 아이들과 교감하고 공감을 끌어내기까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5월 가족의 달, 어린이날을 맞아 두 명의 전문가 대담을 통해 그 답을 찾아보고자 한다.
- 일시
- | 2015. 4. 21(화) 오후3시
- 장소
- | 세라피나 뉴욕
- 대담자
- · 조재경 (고무신학교 대표, 플레이 아티스트)
· 문현주 (성모마음정신과 부속 성모마음상담센터장, 아동심리학 박사)
“공감의 밀당 기술”
조재경(이하 고무신) : 오늘 대담의 주제인 마음을 여는 대화, 창의적 사고를 열어주는 대화법이라는 논제 자체가 너무 큰 주제이다. 그래서 첫 번째로 질문하고 싶은 것은 지금 아이들의 상태에 대해서이다. 문화예술교육의 중요한 이슈 중 하나가 장르 교육, 기능적 교육, 결과중심 교육이 아닌 과정중심 교육이다. 아이들과 보낸 시간이 정말 행복한가, 즐거웠는가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 한다. 지금 아이들의 삶의 문제, 상태가 어떠한지. 일반화된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문박사님이 만나는 다양한 아이들의 모습을 통해 지금 아이들에 대한 진단(?)을 해주시면 좋을 것 같다.
문현주 : 요즘 교육은 과정중심으로 방향을 틀긴 한 것 같다. 그런데 그것을 뒷받침하고 지지해주는 시스템이 아직 부족한 것 같다. 교육정책이나 학교 안에서도 아직까지 결과중심의 교육이 남아있다.
요즘 아이들의 삶의 형태에 대한 질문을 하셨는데, 저는 상담센터에 있기 때문에 보편적인 아이들의 상태를 본다고 할 수 없다. 마음의 상처가 있는 아이들을 만나기 때문에 극단적인 사례가 많다. 아이들을 보면 성과위주, 성적위주의 틀 속에 있고, 여러 매체와 SNS 등을 접하면서 정신은 21세기를 가고 있는데 교사나 교육 시스템은 구시대적이다. 그 중간이 없다. 그런대로 잘 적응하는 아이들도 있지만, ‘자유로운 영혼’을 타고난 아이들은 너무 힘들어한다. 공부도 하나의 능력이라 생각한다. 공부가 맞는 아이들은 학교에 잘 적응하고, 문화나 예술이 적성에 맞는 아이들은 도태되어 버리는 시스템으로 가고 있는 것 같다. 학교 폭력도 그런 여러 가지 상황에서 받는 극도의 스트레스에 의해 생기는 것이다.
고무신 : 견뎌내는 아이, 견딤이 약한 아이도 있다. 문박사님을 만날 수 있는 아이들이면 그나마 나은 편 아닌가. 그런 면에서 아이들과 학교, 아이들과 교사 사이에 매개가 없는 이 부분을 학교 예술강사들이 문화예술교육을 통해 숨 쉴 수 있는 틈, 발산 할 수 있는 기회이자 제도적 장치로 채워주는 셈이다. 그런데 예술강사들도 제도 속으로 들어가 또 다른 스트레스를 주는 경우도 있다. 예술강사들이 정말로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는가에 대해 우리 스스로 질문이 필요하다. 현장에서 예술강사를 만나보면 예술강사가 준비해 온 것이 너무 많아 수업의 주인공이 바뀌는 경우가 있다. 아이들의 현상을 이해하고 들어갔을 때 그들의 편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편을 들어 줄 수 있는 수업방식과 내용이 중요하다.
문현주 : 조선생님의 말씀에 동감한다. 예술강사는 예술과 교육의 균형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 오늘 주제인 공감과도 통하는 것 같다. 공감을 연애로 치면 ‘밀당(밀땅)’과 같은 것이다. 예술강사가 무엇을 주었을 때 아이의 반응을 살피고, 다시 예술강사가 반응하는 주고받음이 되어야 한다. 주고받음이 없으면 대화가 단절되고 수업이 재미없어질 수밖에 없다. 예술교육을 통해서 아이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주어야 한다.
고무신 : 우리가 알고 있던 공감은 ‘같이 느끼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봄의 싱그러움을 나와 네가 같이 느끼는 것을 공감이라고 생각해왔다. 문박사님이 말씀하신 밀당이라는 개념이 확산되었으면 좋겠다. 고무줄도 양쪽에서 당기면 끊어지는 것처럼 당기면 놓아주고, 다시 당기는 ‘공감의 밀당 기술’이 필요한 것 같다.
문현주 : 모든 인간관계가 결국은 공감이다. 공감은 인지적 공감과 정서적 공감이 되어야한다. 인지적 공감은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 보는 것이다. 그 다음에는 상대의 정서를 공유해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기까지가 공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마지막 단계가 중요하다. 상대에게 받은, 같이 공유한 정서를 내가 소화시켜서 반응으로 상대방에게 돌려주는 것까지가 공감의 한 세트이다. 마지막에 내가 소화해서 돌려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래서 밀당이다.
“진솔해지면 강해질 수 있다”
고무신 : 현장에서의 정서적 공감은 오버액션(overaction), 흔히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리액션(reaction) 정도이다. 인지적 공감인 ‘되어보기’, 이 첫 단추에서부터 문제가 있지 않나 생각한다. 문화예술교육에서 만나는 아이들의 상황과 현재의 조건 등 인지적 공감을 위해서는 정보가 필요하다. 그런 것을 위한 노력이나 살핌 없이 표면적 상태나 이야기들로는 정서적 공감의 끝이 되어버린다. 공감이라는 것이 내가 그가 되어 보아야 제대로 되는 것인데 지금 우리가 나누고 있는 이야기들이 예술강사들에게 또 공감을 드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
문현주 : 공감을 잘 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나 자신에 대해서 공감하는 것이다. 이것은 연습이 필요하다. 아이들에게 좋은 예술강사가 되기 위해서는 내가 편안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공감해야 한다. 아이들과 갈등이 있다면 아이들의 인지적‧정서적 상태를 공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이 화가 나는지 슬픈지. 자신에게 솔직해지면 진솔해진다. 진솔해지면 강해질 수 있다. 유능한 선생님이라는 것은 분노를 숨기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건설적인 방법으로, 아이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방법으로 표현할 줄 아는 것이다.
고무신 : 예술강사가 아이들과 만날 때 공감한다는 것은 솔직한 태도와 마음으로 아이들에게 다가가고, ‘이렇게 해야 한다’고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을 통해 보여주는 삶의 방식인 것 같다. 공감의 핵심이 ‘나’라고 하셨는데, 문화예술교육의 핵심도 ‘주체로서 자기를 살아낼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다. 마음속에 있는 생각을 드러내고 표현하는 것이다. 아이들의 속마음이 조금 드러나면 그 다음으로 갈수 있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예술강사를 보면서 아주 작지만 그 실마리를 통해 아이들은 자심감과 용기를 얻는다.
그런데 공감의 주체가 꼭 아이들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이 생긴다. 다 들어주어야 하는지, 주체로 자라는 아이가 아닌 끊임없이 요구하는 아이로 키우는 것은 아닌지 걱정도 있다. ‘요구’는 ‘필요하다’는 것인데, 예술강사도 필요가 있다.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받아주는 예술강사와 아이들의 수평적 관계와 공감이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까.
문현주 : 들어주고 인정하고 아이 편에서 맞추어주는 것 자체가 공감이다. ‘늘 들어주는 것’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일관성 있게’라고 해석한다면 들어주는 것이 맞다. 어른의 입장에서는 단기적으로 불공평하다고 느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밑지는 장사는 아니다.(웃음) 공감은 상대방을 이해하고 느끼는 능력이다. 공감 받지 못했을 때, 사랑받지 못했다고 생각할 때 상담을 받으러 온다. 결국 사랑받고 싶어서 오는 것이다. 사랑이 문제다. 아이의 편을 들어주고, 인정해주는 것은 곧 사랑하는 것이다. 태어나면서 아이들이 제일 먼저 만나는 사람, 부모를 통해서 사랑하는 법을 배운다. 그 달콤함, 공감에 대한 러브라인을 배우고, 살아가면서 그 러브라인을 반복하는 것이다. 부모로부터 늘 인정받고 사랑받은 아이는 누구와도 러브라인을 형성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결국 그렇게 자란 아이들은 늙은 부모에게 다시 그 러브라인을 돌려준다. 장기적으로 보면 남는 장사다.(웃음)
고무신 : 진흥원에서 초등학교 4,5,6학년을 대상으로 ‘우락부락’이라는 여름캠프를 함께한 적이 있었는데 꼭 밤마다 집에 가고 싶다는 아이들이 있다. 왜 그런지 이리저리 물어도 보고 집에 전화도 해보고 해도 결국에는 그냥 집에 가고 싶다고만 한다. 한 삼십분 그렇게 시간이 지나가면 아이는 이제 되었다며 다시 숙소로 돌아간다. 그 모습을 보면서 아이들이 어른들에게 간절히 바라는 것이 무얼까 생각하게 한다. ‘들어준다’는 것은 답답함, 궁금함, 스트레스를 나도 모르게 해소해주는 것 같다.
삶에 풍미를 더하는 예술교육
문현주 : 우리는 들어주는 것을 잘 못한다. 미국에서의 경험인데, 한 학기가 끝나면 음악수업에 학부모를 초청해 공개수업처럼 한다. 그런데 아이들이 정말 못한다. 실수하면 부모들은 그냥 웃는다. 선생님이 지휘를 하다 중간에 틀리면 연주를 중단하고 ‘다시 하자’고 한다. 우리의 모습과 사뭇 다르다고 느꼈다. 그들에게는 공개수업을 위한 연습 같은 것은 없다. 그냥 수업을 보여주는 것이다. 잘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편안하게 문화를 즐기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무신 : 지금 아니면 언제 실패해 보겠나. 문화예술교육 현장에서 조금 실수하고 잘 못하는 것은 디딤판이 되는 것이다. 문화예술교육의 또 하나의 핵심은 ‘실패를 즐거워하는 것’이다.
문현주 : 실패도 즐거울 수 있다는 것, 실패도 과정중의 일부인 것이다. 잘 해야 하고, 보여줘야 하고, 실수하면 혼나는 것이 아니다. 일례로 재롱잔치를 보면 심각하다. 연습시키고 잘할 때까지 한다. 그렇게 하면 커서 문화예술을 즐길 수 있겠나. 문화와 예술은 삶의 양념과 같은 것이다. 나를 풍요롭게 해주고 내 삶의 풍미를 주는 것인데 그런 보여주기 위한 고된 연습은 아이들에게 후추 한 통을 다 붓는 것과 같다.
고무신 : 바흐처럼 연주할 것도, 고흐처럼 그릴 것도 아니다. 결국 수업에서 최고의 목표는 무엇인가를 생각해보면 ‘건강한 웃음’인 것 같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예술강사가 ‘나’의 상태를 돌아보고 생각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문현주 : 예술강사들은 예술강사 자신이 어때야 하는지 다 안다. 그럼에도 자기 스스로를 공감하지 않고, 시스템에 공감한다. 물론 나를 공감하는 것엔 용기가 필요하다. 예술강사로서의 나, 교육자로서의 나를 공감하고 그 접점을 만들어 내고 균형을 맞추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고무신 : 제 수업시간에는 금지어가 있다. ‘선생님’이다. 대신 ‘고무신’이라고 부른다. 그 말을 씀으로 해서 선생 대 제자, 어른 대 아이가 아닌 다른 관계가 형성된다. 어른은 뭐든 많이 해줘야 한다는 그런 관계를 없애고 싶었다. 사실 그것으로 득을 본 경우가 많다. (웃음)
문현주 : 사람은 여러 가지 가면을 쓰고 산다. 여러 가지 가면을 상황에 맞게 쓰는 것이 건강하다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아이들은 어른의 고정된 가면만 생각한다. 내 위에 있는 사람, 항상 명령하고, 충고하고, 조언하는 이런 식상한 관계에서 고무신과 같은 접근은 아이들에게 신선한 어른을 만나는 경험이다. 나를 알아주고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났다는 것은 ‘어른도 내 마음을 알아 줄 수 있구나’하는 경험과 기회로 굉장히 중요하다.
창의성도 연습이 필요하다
고무신: 창의적 사고를 열어주는 대화법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보자. 박사님이 생각하는 ‘창의’는 무엇인가?
문현주 : 창의성은 학자들 사이에서도 합의된 개념이 없다. 창의적이라는 것은 한 가지 기준에 얽매이지 않고 그 아이디어가 새롭고 독창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주 독특한 사람,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만이 창의성이 있다 생각하지만 누구나 자신의 노력이 있으면 창의적인 잠재력을 키워갈 수 있다. 일상생활에서 문제 해결을 독특한 자기만의 방식으로 풀어가는 것도 창의성이다. 진정한 창의성은 올드(old)한 것, 기존의 지식을 내가 어떻게 사용하는가이다. 피카소가 입체파를 갑자기 만들어낸 것은 아니다. 피카소의 초기 그림을 보면 올드한 기법들을 오랜 시간 연습한 것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은 피카소의 그런 시간을 생각하지 않고 입체파만을 생각한다. 문화예술교육도 마찬가지이다. 아이들에게 절대적인 연습량이 필요하다. 계속적인 연습은 결국 창의성을 피어오르게 한다. 예술교육에서의 창의성에 대한 재정립이 필요하다.
올드한 것을 기반으로 새로운 것이 나오는 데 이것이 바로 유추(類推)이다. 표면적으로 관련이 없는 지식에서 유추하는 것을 ‘은유’라고 하며, 이 심리적인 과정을 통해서 예술을 할 수 있다. 시, 그림, 오페라, 발레 모두 은유이다. 은유를 키워줄 수 있는 것이 바로 예술이다. 그래서 예술과 창의성은 떼어놓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이다.
음악 하는 사람은 그림을 보면 음악이 들린다고 한다. 공감각으로 뇌세포를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그 뇌세포가 연결이 되어 새로운 것이 발생하는 것, 그것이 곧 창의성이다. 컴퓨터 세대가 되면서 창의성의 중요성은 더욱 부각되었다. 옛날에는 정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지식의 꼭대기에 있었지만 이제는 정보를 통합하고 나만의 것을 만들어내는 사람만이 지식의 진정한 소유자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창의성, 창조성을 길러내는 것이 앞으로 아이들의 교육에 가장 큰 이슈가 될 것이고 예술이라는 매개체를 통하지 않으면 결코 이루어 질 수 없다.
고무신 : 공감각을 인지영역으로만 생각해왔는데 오늘 대화를 통해 ‘공감’각이라는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예술 대가들도 자신의 작품이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나에 따라서 작품의 위대함을 이야기 한다.
창의적 사고의 핵심은 본질을 보는 눈이라고 생각한다. 즉 자기 방식의 문제해결 능력이다. 왜 예술을 통한 창의교육을 할까 생각해 보았다. 예술(藝術)의 한자를 보면 ‘갈 행(行)’이 있다. 자기 재주를 큰길로 내놓으려면 끊임없이 연습하고 단련해서 큰길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명화 하나가 나오기 위해서 끊임없는 연습이 필요한 것처럼, 창의성도 끊임없는 노력과 연습을 하다보면 저절로 얻어진다. 따라 그리기처럼 계속 모방하다 보면 자신의 색깔이 나오는 것이다. 하다보면 되는 것인데, 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자꾸 하라고 하니 답이 없는 것 아닐까.
마지막으로 예술강사들에게 당부의 말씀이 있다면 부탁한다.
문현주 : 예술가들은 완숙해지면 동심으로 돌아간다는 말이 있다. 피카소, 이중섭도 어린이 같은 그림을 그렸다. 아이의 마음이 되어서 공감을 해주는 것이 예술강사가 교육자와 예술가의 사이에서 균형을 잡을 수 있는, 예술가와 교육자가 만날 수 있는 접점이 아닌가 생각한다.
고무신 :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나오는 ‘낙타와 사자와 어린이’가 생각난다. 결국 우리는 어린이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문박사님이 스스로의 공감에서 시작하는 것과 같이 저도 예술강사들이 지금까지 살아온 힘, 경험만으로도 아이들과 나눌 수 있는 것은 충분하다고 이야기 하고 싶다. 그러니 겁먹지 말고, 실패하고, 박수치며, 웃으며 하면 된다고.
조재경(고무신)
플레이 아티스트(Play Artist). 민속놀이를 전공했다. 고무신학교에서 다양한 방법과 내용으로 어린이들과 어른이들을 만나고 있다.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에서 진행한 우락부락캠프 참여를 자랑하며 다닌다. 아이들과 잘 놀기 위해 오늘도 논다.
문현주
아동심리학 박사. 전 숙명여대 강사. 20년 넘게 심리치료사로 일해 왔으며 아동의 심리적 어려움과 부모의 자녀양육의 고충을 놀이치료, 인지행동치료, 모래놀이치료, 가족치료 등의 접근으로 도움을 주고 있다. 현재 성모마음정신과 부속 성모마음 상담센터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는 『인지행동놀이치료』 『놀이치료의 실제』, 『나는 말하고 싶어요』 등이 있다.
사진 _ 장영주 (마루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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