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의 도시 말뫼, 다양한 문화가 모여 들다
버스나 기차를 타고 스웨덴 남부에서 덴마크 코펜하겐으로 이동할 때 반드시 거치게 되는 국경 도시가 있다. 공업 도시에서 IT, 의약, 환경, 물류 산업 등 지식기반산업도시로 발전하고 있는 말뫼. 스웨덴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이다. 이곳은 건축 프로젝트 ‘터닝 토르소’를 비롯해 도시 전체가 공사 중인 것처럼 분주하다. 말뫼의 건축공사는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 진행 중이다. 그리고 그러한 공사는 외관 뿐 아니라 문화내적인 면에서도 이뤄지고 있다. 말뫼 시의 27만 명 시민들이 쓰는 언어는 100여 가지. 이들의 국적은 164개나 된다. 스웨덴에서 가장 국제적인 도시인 셈이다. 과거의 말뫼는 스웨덴 남부 스코네 지방과 함께 덴마크에 속했던 탓에 문화나 전통이 스웨덴의 대도시와는 많은 부분 다른 편이다. 언어 또한 스웨덴 표준어와 차이가 많아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164개 국적의 이민자들과 함께 들어온 문화가 스웨덴이라는 국가의 틀 아래서 복잡다단하게 일상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때때로 문화에서 비롯된 내재적인 가치들이 상반되거나 충돌하는 경우가 종종 벌어지고 있다.
말뫼시의 터닝 토르소
시의 문화정책과 산하 문화기관은 이러한 사회적 변화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을까. 말뫼시의 문화부는 이러한 변화에 발맞춰 “말뫼시 문화생활에서의 다문화(M?ngfald i Malm?s kulturliv)” 프로젝트(www.malmo.se/kulture)를 진행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기존에 설립, 운영되고 있는 공공 문화 기관이 사회적 변화를 어떻게 반영하고 있는가에 대한 평가사업이다. 현재 스웨덴 문화정책의 단면과 문화 권력의 흐름을 한 눈에 짚어 볼 수 있다.
문화 평등 구호의 배경
“모든 이에게 문화를 누릴 평등한 권리를 부여하자”라는 구호는 스웨덴에서 독특하게 발전한 복지사회정책과 맥을 같이 한다. 사회가 공공재화로 개인의 삶과 질을 보장한다는 원리다. 그러나 말뫼 시처럼 시나 문화기관에서 시도하고 있는 일련의 평가 프로젝트는 문화민주화와 더불어 세금으로 운영되는 문화 기관이 운영 자금을 얻기 위해 비전을 제시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가 내포되어 있다. 세금으로 운영되는 문화 기관인 만큼 다양한 계층의 이용자에게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스웨덴의 도시와 마찬가지로 말뫼의 도서관, 박물관, 극장, 음악홀 등 문화 기관들도 유럽 모더니즘에 기반을 두면서 노동자 계층의 문화생활을 향상시킬 요량으로 사회민주정부에 의해 발전되었다. 90년대 이래 강화된 지방분권화로 시나 코뮌에 있는 문화부가 독자적으로 각 지역의 문화예산과 문화정책을 담당하고 있다. 한편 중앙정부의 문화부는 지역단위의 문화활동에 국가 차원의 지원을 더한다. 이런 상황에서 점점 증가하는 기관 간의 경쟁, 예산 획득 과정의 조건, 더 효율적인 기관으로 운영하라는 사회적인 압력 등이 문화 기관의 쇄신에 밑거름이 되고 있다. 말뫼 시의 경우, 수년 전부터 국가적으로 준비되었던 ‘2006 다문화의 해’ 프로젝트에 시가 지니고 있는 특성을 세밀하게 포착하여 접근했다. 말뫼 박물관의 경우 이미 2002년에 이민자 그룹 참여 형태의 전시 등으로 가장 다문화적인 정책을 갖고 있는 박물관으로 선정되어 문화부상을 수상한 바 있다.
말뫼 박물관 전경
“말뫼시 문화생활에서의 다문화(Mangfald i Malmos kulturliv)” 프로젝트를 담당하고 있는 로타 엘름로스씨에게 보다 자세한 내용을 들어본다.
– 말뫼 시의 문화부가 말뫼 시 소재 문화 기관의 현주소를 파악하기 위해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고 들었습니다. 프로젝트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해 주십시오. 왜 말뫼 시가 다문화 이슈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까?
“말뫼시 문화생활에서의 다문화 (Mangfald i Malmos kulturliv) 프로젝트는 문화 기관들이 말뫼 시의 다문화적인 상황을 활동에 반영하고 있는가를 평가하기 위한 작업입니다. 특정 그룹의 사람들이 문화 기관을 이용하지 않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기관의 타문화에 대한 배려 부족이나 몰이해가 걸림돌이 되고 있다면 이를 파악하고 고쳐가는 노력의 일환입니다. 우선 프로젝트의 주체는 말뫼 박물관이며 수년 전 국가적으로 다문화의 해가 논의될 때, 말뫼 박물관도 적극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중앙 정부는 다문화 센터를 신설하고 사회 기관 전반의 문화 예술 프로그램에 문화 다양성이 반영되고 있는가를 연구하도록 했는데, 연구물 중 하나가 ‘다양성을 추구할 시간(Tid for Mangfald)’란 보고서였습니다. 내용은 스웨덴의 문화 정책상 현재의 사회 문화 다양성을 위해서 정부가 기존의 문화 기관 및 문화 종사자, 그리고 모든 문화 프로그램을 비판적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뫼 시는 90년대 들어서 이민자 그룹이 사회문제로 떠올랐습니다. 다른 지역에 비해 범죄율과 실업률이 높고 교육열이 낮은 데다 마약에 의지하는 청소년 그룹, 사회 복지 보호 망에서 벗어난 사람들 등이 문제시되며 시 차원에서 뭔가 잘못 운영하고 있진 않은지, 특히 문화 정책에서 이들을 소외시키고 사회적응력을 떨어뜨리는 게 아닌지 비판적인 목소리가 높아졌습니다. 말뫼시 문화부는 보고서를 숙지한 후 평가 작업의 예를 그대로 적용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중앙 정부 차원에서의 평가결과와 말뫼 시의 평가결과를 비교해 볼 수 있게 됩니다. 프로젝트의 예산은 5십만 크로네로 말뫼 시 재정에 중앙 정부 예산을 받아 진행하고 있습니다. 현재 평가 작업을 끝내고 보고서 발간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중앙 정부 보고서 “다양성을 추구할 시간(Tid for Mangfald)”
– ‘문화 민주화(Social Inclusion)’는 전 세계의 문화관련 종사자와 기관에서 여전히 토론되고 있는 단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국가와 문화배경에 따라서 개념과 범위가 다를 텐데 말뫼 시의 프로젝트는 이를 어떻게 정의 내렸습니까?
“물리적, 문화적, 경제적 방해 요인 없이 공공 문화 기관을 쉽게 이용할 수 있고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것을 문화 민주화로 정의내릴 수 있습니다. 다만 본 프로젝트는 문화 다양화 이슈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사회에는 다양한 그룹이 있습니다. 문화기관에 접근성이 떨어지는 그룹으로 노인과 어린이, 장애인 등을 꼽을 수 있겠지만, 이번 프로젝트는 다양한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공공 문화 기관을 쉽게 이용할 수 있는가하는 문제를 사안으로 삼았습니다.”
스웨덴의 축구 스타 즐라탄도 말뫼 이민자 그룹 출신이다.
-프로젝트에 포함된 평가 방법에 대해서 좀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주십시오.
“종사자, 방문한 시민, 그리고 문화기관이 제공하고 있는 프로그램에 대해서 평가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우선 문화기관의 기관장, 마케팅 담당, 문화 프로그램 책임자와 전화로 인터뷰를 했습니다. 문화 다양화 이슈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고 중요성을 두고 있는지에 집중했습니다. 두 번째, 말뫼 시가 운영하거나 재정을 보조하고 있는 문화 기관, 도서관, 박물관, 갤러리, 콘서트홀, 오페라 등 12곳에 설문지를 돌려 시민들이 직접 항목을 체크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로써 어떤 기관에 어떤 그룹의 사람들이 방문하는지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18세 이상 이민자 그룹 출신 학생들을 중심으로 문화 기관을 방문한 전, 후의 경험에 대해 토론하도록 했습니다. SFI(이민자를 위한 스웨덴어) 학교의 학생들이 참여했습니다.”
말뫼 아트 갤러리 장면
– 어떤 그룹의 사람들이 문화 기관을 찾는 것으로 밝혀졌습니까?
“부모가 스웨덴인 이고 나이는 40세 이상인 여자 그룹이 문화기관을 자주 찾는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이들은 주로 말뫼 시의 부유한 지역이나 시내에 살고 있습니다.”
– 지역 학교, 대학 등 다른 연구 단체들과의 협력은?
“지역 룬드 대학의 문화 연구과 연구진의 도움을 받았고, 포커스 그룹으로 이민자를 위한 스웨덴어 학교를 택했습니다. 그리고 평가조사 계획을 작성할 때 일선 학교 선생님들의 의견을 들었습니다. 박물관 관람자 조사 컨설턴트가 최종 통계를 정리하고,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습니다.”
– 프로젝트 담당자로서 이전 경력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 또 이 프로젝트를 담당하면서 어려운 점이 있다면?
“저는 박물관에서 일하기 전에 수년 간 시의 교육 컨설턴트로 일했습니다. 일자리를 잃거나 다른 직업을 찾는 사람들을 위해서 재교육의 기회를 제시하고 또 다른 직업에 도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회 서비스입니다. 이 일을 하면서 문화부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종종 있었습니다. 박물관 전시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면서 박물관학을 공부하고자 웁살라 대학의 박물관학 과정을 2년간 이수했습니다. 이번 프로젝트의 어려운 점이 있다면 문화 기관장과 고위직 임원 8~10명이 참여한 프로젝트 책임 운영 그룹의 갈등으로 의사 판단이 늦어지는 경우가 빈번했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더구나 이 그룹은 정치적인 결정에 민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 9월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서 혹시 이 보고서에 실리게 되는 내용이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되지 않을까 염려하고 있지요. 또한 다른 문화 기관에 협력을 구할 때 박물관장의 입을 통해야만 가능했던 일은 담당자들 간의 소통부재를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 앞으로의 계획은?
“보다 심도 있는 평가결과가 작성되고 있습니다. 이를 토대로 말뫼 시가 어떻게 문화 다양성에 관한 문화 민주화를 발전시켜 나갈 것인가 계획을 마련하고, 시 의회의 동의를 받게 되면 후속 정책과 예산이 따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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