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벤트리 시의 대표적인 문화공간
반세기 동안 벨그레이드 극장은 코벤트리 시민들에게 있어 문화적 자긍심의 기치를 세워주는 주요한 문화센터이자 구심점으로서 그 위치를 공고히 해왔다. 현재 왕성하게 활동하는 배우 이안 맥캘런(Ian McKellan)이나 연출가 트레보 넌(Trevor Nunn)등, 이미 1960년대 초반부터 벨그레이드를 통해 수많은 예술가들이 양성되었고, 당시 벨그레이드는 장차 유망한 배우와 연출가들에게 있어 커리어개발의 주요한 발판이 되는 무대 중 하나로 인식되기도 했다. 고전작품보다는 새로운 작품들을 개발하여 무대에 올리는 것에 주력했던 벨그레이드는 90년대 초반 영국예술진흥원이 지원하는 예술기관 중 4번째로 많은 관객 수를 점유한 극장이라는 기록을 세우기에 이른다.
벨그레이드가 지역사회의 문화거점으로 인식되어 온 그 배경은 무엇보다 벨그레이드가 지역민들을 문화영역에 끌어드리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해왔었다는 점에 있다. 처음부터 지역시민들을 위한 문화공간(Civic Theatre)이라는 근본 취지에서 출발하였던 벨그레이드는 지역민들이 함께 참여하고 즐길 수 있는 문화프로그램들을 제공하는데 힘썼으며 1980년대 극장 내 ‘지역전담부서’(The Community Department)를 신설하여 보다 다양하고 체계적으로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데 힘써왔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지역문화사업으로 ‘Arts Alive Festival’을 들 수 있는데 코벤트리 지역에서 활동하는 소규모 극단들의 작품들을 매년 여름 소개하고 더불어 해외극단들의 공연을 함께 유치함으로써 지역사회의 문화인프라를 개발하는 데 일조를 했던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3년마다 열리는 성극(Mystery Play)축제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중세시대부터 성극(Mystery Play)을 자체적으로 공연해왔던 코벤트리 지역의 전통을 계승하는 차원으로 벨그레이드는 2차대전 독일군 폭격으로 폐허만 남은 코벤트리 성당 터에서 일종의 야외공연 형태로 된 성극공연을 올린다. 코벤트리 지역민들은 벨그레이드의 이러한 지역문화사업을 자신들의 전통 및 코벤트리 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을 확인해주는 주요한 가교로 받아들이며 애착을 갖고 있다.
페허로 남은 코벤트리 성 미카엘 성당 내부 모습
대규모 확장공사 중인 벨그레이드 극장
전쟁의 교훈을 기리기 위해서 무너진 성당 터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코벤트리 시(市)의 성 미카엘 성당은 매 여름 시민들을 위한 공연장으로 바뀌어 지역민들이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된다. 하지만 2000년대를 들어서 벨그레이드의 위상이 조금씩 약해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미 낡을 대로 낡은 건물 외관과 극장 내부시설은 더 이상 편안한 휴식공간으로서 시민들에게 다가가기에 한계점이 있었다. 2003년에는 글래스고에 위치한 던디 렙(The Dundee Rep)극장에서 예술감독으로 명성을 날린 헤미쉬 글렌(Hamish Glen)을 예술감독 겸 극장장으로 선임함으로써 벨그레이드는 예술적 새로운 도약을 시도하게 된다.
벨그레이드 극장은 현재 리모델링을 위한 공사가 한참이다.
현재 벨그레이드 극장은 총 예산 12M 파운드에 달하는 재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으며 내년으로 예정된 재개관을 준비 중에 있다. 예산의 대부분(76%)이 시정부(Coventry City Council: 29%)와 웨스트 미드란즈 지역개발진흥원(Advantage West Midlands:RDA 19%), 영국예술진흥원(ACE: 28%)에서 충당되는 이 프로젝트는 기존에 있던 866석의 극장을 새롭게 단장하고 더불어 250~300석 규모의 소극장을 새로 짓는 계획을 포함한다. 또한 인근 레스토랑 및 다양한 편의시설들을 함께 개발하여 명실공히 벨그레이드가 시민들을 위한 복합공간이자 지역문화의 거점으로 위상을 공고히 할 것을 계획하고 있다.
리모델링 후의 벨그레이드 극장의 조감도
영국 교육연극(TIE)의 산실
영국 내 많은 교육연극 전문가들에게 벨그레이드라는 이름은 또 다른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최근 한국에서 교육연극이라는 이름 하에 활발하게 작업되고 논의되기 시작한 TIE (Theatre in Education)라는 형태가 바로 이 벨그레이드 극장에서 활동하던 예술인들에 의해서 처음 시도된 모델을 기반으로 했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흔히 벨그레이드 모델로 일컬어졌던 TIE의 초기 형태는 학교를 직접 찾아가 교실 내에서의 작업을 기본으로 삼고, 대개 두 장르(연극, 교육)에 관한 복합적인 훈련을 받은 3~4명의 액터티쳐(Actor-Teacher)로 팀을 구성했다. 우선적으로 지역사회와 관련된 사회이슈들에 관심을 가졌으며, 학교와의 긴밀한 사전 협력을 통해 프로그램 개발을 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벨그레이드 모델을 기본으로 하여 이후 발달한 대부분의 TIE 프로그램 구성은 드라마 워크숍과 본 공연, 참여토론(Follow-Up), 이렇게 세 단계로 나눠져 진행됐으나 대개 극단에 따라서 조금씩 수정된 방식을 취하기도 했다.
벨그레이드의 모델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특징이 있었다.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부터 해당학교 교사들과의 긴밀한 협력작업, 회의를 통해서 학교 및 지역사회가 맞닥뜨리고 있는 이슈를 프로그램의 주제로 결정했다는 점. 교사들의 프로그램에 대한 이해와 인식을 높이기 위해 TIE프로그램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학교 교사들에게 교육연극과 해당 프로그램에 관한 사전, 사후 워크숍 등을 제공했다는 점. 또한 학생들에게 있어서도 드라마 워크숍을 통해 아이들이 다루려는 이슈에 친근해지도록 사전에 유도하고, 본 공연을 통해서 학생들이 다시 관객, 참여자의 입장이 되어 상황을 판단하고 반추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하며 본 공연 후에는 다양한 기법을 통해 접근하는 참여토론(Follow-Up)의 시간을 가짐으로써 학생들과의 직접적인 인터액션을 이끌어내 참여자로 하여금 해당 이슈에 관한 깊이 있는 사고를 할 수 있게끔 유도했다는 점. 이런 일련의 단계들을 준비하고 진행하는 과정 통해서 무엇보다도 TIE 스텝 팀과 해당학교 및 교사들 간의 긴밀한 관계 형성을 프로그램 성패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보았다는 점 등이다.
처음에는 다소 소박하게 시작했던 벨그레이드 극장의 새로운 교육연극모델 TIE는 1960~70년대를 지나며 이른바 전 영국 내에서의 TIE운동(Theatre in Education Movement)으로 이어지는 기폭제가 되었고, 벨그레이드는 청소년들에 대한 관심을 복합적으로 펼치게 된다. 1967년에는 벨그레이드 유스씨어터를 설립하여 좀 더 다각적인 루트를 통해 지역 청소년들로 하여금 예술에 대한 참여와 인식을 제고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TIE 프로그램이 학교 내에서의 활동을 기본적 전제로 삼았던 만큼, 액터티처들은 지속적으로 학교 커리큘럼을 연구하고 이를 통해 TIE와의 연계점을 찾기 위한 노력을 했으며, 벨그레이드 TIE팀은 학생들의 연령대별 특성을 고려하여 다양한 지역사회 이슈를 다룬 TIE 대본을 개발하는 데 앞장섰다. 그러나 현재의 벨그레이드 극장의 상황을 살펴보면, 한때 TIE의 선발주자로 이름을 날렸다는 사실이 무색할 만큼 많은 아쉬움을 안겨준다. 물론 지역극장으로서 새로운 작품을 개발해 무대에 올리는 노력은 여전히 왕성하게 이뤄지고 있지만, 전통적인 의미의 TIE 활동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그나마 벨그레이드 유스씨어터 만이 남아 교육연극의 맥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Big Brum TIE 의 Under the Room 공연 – 컨퍼런스에서 발췌공연분이 공연되었다.
현재 영국 내에서 활동하는 교육연극 전문가들은 TIE가 위기상태에 봉착했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작년 11월 워릭아츠센터(Warwick Arts Center)에서 개최된 ‘TIE 40주년 기념 컨퍼런스’에 필자가 참여했을 때, 영국 내 교육연극 각계 인사들은 현재 침체되어 있는 TIE 운동을 어떻게 재부활시킬 수 있을 것인가에 활발한 논의를 벌였다.
컨퍼런스의 구성자체가 참여자들 스스로를 ‘유전학자’의 입장으로 설정하도록 유도하고 ‘멸종’ 될 위기에 봉착한 TIE 전통을 어떻게 재부활시킬 수 있을지에 관해 고민하도록 틀이 짜여져 있었다. 이 사실만으로도 참여자들의 고민이 단순히 막연한 두려움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TIE의 위상이 위축되기까지의 지난 역사를 살펴보고 그 간의 문제점을 재분석하며, 무엇보다 TIE의 부활을 위해 앞으로의 방향성을 새로이 재정립해야 한다는 급박한 위기의식을 반영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었다.
영국 TIE, 그 위기의 역사
현재 교육연극전문가들이 말하는 TIE의 위기는 하룻밤에 나타난 현상이라고 말할 수 없다. 70년대에 들어서면서 명실공히 지역문화운동(Community Movement)의 선두주자 중 하나로 인식되었던 TIE 운동은 1979년 대처 정부가 들어서면서 일대 전면적인 위기를 맞게 된다. 대처 정부가 내세웠던 경제중심정책의 결과로 예술을 위한 중앙정부 및 지방정부의 지원이 현격하게 감소되고, 각 지방교육청의 예산 역시도 현저하게 축소되자 예술계는 물론 교육계 역시도 앞으로 다가올 모종의 심상찮은 전조를 예감하게 된다.
그러나 구체적인 문제들은 1988년 대처총리가 강경하게 실행했던 교육개혁(Education Reform Act)이 도입되면서부터 더욱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모든 학교들은 정부에서 일률적으로 정한 국정교과과정(National Curriculum)을 따라야 했고, 그때까지 학교에서 주관되는 예술관련 활동을 위해 지방교육청에서 지원되던 자금의 대부분이 현저히 줄어들거나 중단되었다. 대신, 정부는 ‘효율성’이라는 미명 하에 각 학교들이 자율적인 판단을 통해 학교예산을 운영할 수 있게 했다. 물론 학교의 입장에서는 일단 정부에서 하달된 국정교과과정으로 모든 커리큘럼을 다시 재편성해야 했고 각 학년별로 정부가 정해놓은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최우선 순위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이미 극도로 축소된 교육재정지원 내에서의 학교 재정운영의 자율성이라는 것은 학교입장에서 보면 그저 보기 좋은 허울에 지나지 않았다.
그때까지 TIE활동이 지방교육청의 재정지원을 통해서 학교 측에 대부분 무상으로 제공되었던 것에 비해, 이제 학교교육의 중심이 국정교과과정의 준수와 학년별 목표를 달성하는 것으로 변화함으로써 예술관련 활동을 위한 학교차원의 지원은 현격히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또한 관심 있는 몇몇 학교에서 학생들을 위한 예술활동을 적극지원하고 싶다하더라도 학교 역시 재정난에 심각하게 허덕이고 있었던 터라 TIE극단의 공연을 살 수 있는 형편이 되지 못한 경우가 허다했다.
비단 학교 측에서 공연을 산다고 하더라도, TIE 프로그램 자체가 추구하는 교육적 이상이나 철학보다는 비용의 문제가 우선일 수밖에 없었다. 시간적 제약도 만만치 않았다. 이미 국정교과과정에 따라 빠듯하게 수업시간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TIE 프로그램을 위해 여러 번에 걸쳐 장시간을 할애하는 것은 교사들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게다가, TIE 극단들이 안고 있는 정부에 대한 반감과 사회에 대한 비판이 공연을 통해 반영되면서 조금씩 좌파 성향으로 흘러갔던 일부 TIE프로그램들은 또 하나의 부담거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당시 각 지역을 기반으로 왕성하게 활동하던 TIE 극단들도 예산 난에 허덕이기는 마찬가지였다. TIE 극단들은 어쩔 수 없이 공연을 원하는 학교에 일정금액의 공연료 받는 해결책을 만들었지만 상황이 나아지지는 않았다. 이런 상황들은 TIE 극단들로 하여금 타 지역으로의 투어공연을 선택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이로 인해 긴밀하게 유지해오던 TIE 극단과 각 학교 교사들 간의 관계도 조금씩 허물어져가게 되었으며, 결과적으로 해당 지역사회와 TIE 극단 간의 연계성은 자연적으로 무너져갈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최고 3~40명 정도의 소수인원을 대상으로 학교와 TIE극단, 교사들과 TIE 스텝(Actor-Teacher)들 간의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던 TIE 프로그램이 비용절감을 이유로 인원수를 늘리며 공연자체만을 위한 TIE 프로그램들이 우후죽순 늘어나게 되었고 프로그램당 투입되는 TIE 스텝들의 수도 덩달아 줄어들게 되었다. 비용과 인력부족의 문제들은 곧바로 TIE 프로그램의 필수요소라고 할 수 있는 워크숍이나 참여토론 파트 등을 해당학교 교사들에게 일임하는 경우를 낳게 됐고 이러한 현상은 TIE 프로그램의 질적 하락을 가져올 수밖에 없었다. 결국 TIE 극단들은 90년대를 지나면서 하나 둘씩 문을 닫거나 혹은 TIE가 아닌 유스씨어터나 아동연극 등, 다른 교육연극 모델을 추구하거나 커뮤니티씨어터 쪽으로 방향성을 바꾸게 되었다.
90년대 예술재정 회복과 TIE
힘겨운 90년대를 거치면서 TIE 극단들이 보다 다각적인 변모기회를 갖게 됨에 따라 결과적으로 전체적인 교육연극 담론에 일종의 다원주의를 이끌어냈다고 긍정적인 평을 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그러나 이 역시도 당시 네오-리버럴리즘을 앞세운 정치경제적 담론과 이를 실현하려는 정부정책의 거대한 틀 속에서 TIE 극단들이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결과였음은 결코 간과될 수 없을 것이다.
90년대 후반, 토니 블레어가 이끄는 노동당 정부가 들어서면서 전반적인 예술계의 재정상황은 크게 호전 되었다. 노동당 정부의 ‘소수가 아닌 다수의 사람들이 양질의 예술을 즐기게 해야 한다’는 문화정책적 입장과 이를 위해 예술교육프로그램에 대한 정부지원이 활성화 되는 현상을 보면서 많은 예술인들과 예술교육계 전문가들은 희망을 갖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교육연극 전문가들은 TIE가 다시 예전의 전통적인 이념과 모델로 되돌아가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이전 보다 재정지원을 받기가 상대적으로 쉬워졌다고 하더라도 이제는 TIE의 예술적 자율성이라는 이슈가 또 하나의 문제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삼고 그 지역사회가 현재 안고 있는 사회적 이슈들을 연구하며 적극적으로 고민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기존 TIE의 전통적인 이념이자 모델이었다면, 이제는 재정지원을 받기 위해서 정부가 ‘쉽게 지원할 만한’ 이슈들을 다뤄야 한다는 것이 TIE 작업의 우선적 고려사항으로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 동안 지역사회를 활동거점으로 삼아 아래에서부터 소박하고도 자유롭게 작업을 시작했던 TIE는 이제 위에서 정해주는 이슈에 맞추어 제한된 작업을 해야 하는, 패러다임자체의 전환을 요구 받게 된 셈이다.
또한 국정교과과정 자체의 틀이 바뀌지 않아 학교와 교사들이 시간적 혹은 심리적인 부담이 적은 예술교육 프로그램들을 선호하게 되는 경향은 여전히 극복해야 할 난제로 남아 있다.
교실 내에서의 작업을 중시하고 어린 학생들에게 지역사회와 연관된 다양한 사회이슈를 고민,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사회가 보다 나은 방향으로 변화할 수 있다는 꿈을 실현하려했던 TIE는 그간의 정치, 경제적 상황으로 인해 그 위상이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현재의 TIE는 대부분 유스씨어터 혹은 주로 사회소외계층과 관련된 커뮤니티 이슈들을 반영하는 프로그램들을 개발해 함께 진행하고 있는 것이 일반적 추세다. 그 대표적인 극단 중 버밍엄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Big Brum TIE Company’와 웨일즈 지역에서 활동하는 ‘Theatre Powys’ 등을 들 수 있다.
벨그레이드의 교훈
비록 현재 TIE 중심주자로서의 위치를 거의 상실하기는 했지만 벨그레이드에서 TIE가 시작되었다는 사실은 지역사회와 연계한 문화예술사업을 정부정책의 일환으로 추진하려는 우리에게 많은 점을 시사하고 있다. 무엇보다 최초의 시립극장(Civic Theatre)으로서 지역사회의 이슈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TIE를 비롯한 다양한 커뮤니티 프로그램 등을 통해서 이를 적극적으로 반영하려고 했었다는 점은 탄탄한 지역사회와의 연계의식을 초석으로 삼았던 당시 벨그레이드 스스로의 미션이 확고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오랜 세월 동안 코벤트리 지역민들에게 있어 문화적 구심점이자 파트너로서의 역할을 해왔던 벨그레이드는 최근 진행되는 천이백만 파운드의 대규모 재개발 프로젝트를 통해서 다시 한번 재도약 할 것을 꿈꾸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러한 재도약은 벨그레이드가 지역을 대표하는 극장으로서 인종적 문화적 사회적으로 다변화되어 가는 코벤트리 지역사회의 변화와 이슈들을 예술이라는 매개를 통해서 반영할 때 비로소 완성될 수 있음을 잊지 않고 있다. 일단 지역 내 소외계층들을 위한 프로그램 개발(흑인, 소수인종그룹, 장기실업자, 노인계층, 이주망명자)을 구상하고 있지만 보다 확고하고 구체적인 새로운 좌표를 찾기 위한 벨그레이드의 고민은 현재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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