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소식]스웨덴 코떼달라 박물관을 꾸리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사회민주정책의 산물 , 코떼달라와 인민의 집

코떼달라 지역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는 스웨덴의 사회민주정책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1950년대의 보통 사람들, 특히 예테보리 지역의 공장 및 사무실 노동자 일가족이 안정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정책적으로 배려한 ‘인민의 집’ 운동의 일환으로 지어졌다. 2차대전 전후에 지어진 신도시형 아파트이자 부모와 세 아이들로 구성된 핵가족을 위한 국민보급형 주거 공간이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냉장고, 오븐, 욕조, 텔레비젼, 스테레오 등의 가전제품과 카펫, 커튼, 전등 등 심지어 부모의 침실이자 거실에 놓인 소파침대의 배치마저 이웃과 비슷하다고 한다.


코떼달라 아파트 박물관의 주방

20세기 전후만 하더라도 스웨덴은 다른 유럽 사회에 비해 산업화가 더디게 찾아와 가난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이후 외적으로 세계 대전 당시 중립을 지키는 등, 시대적인 상황을 잘 활용하고 내적으로 사회민주당이 균형과 복지 정책을 추진하며 부강하고 안정된 나라를 만들어 갔다. 코떼달라 아파트 박물관 모임의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베트 씨도 바로 그 시기를 살아온 인물. 50년대 당시 예테보리 철도회사에서 인사담당으로 일하던 베트 씨는 50여 년을 이곳에 살며 여든 살을 넘겼다.

코떼달라에 입주한 한 가족 사진


코떼달라 아파트 박물관 모임의 회장인 베트 할아버지와 가이드인 루나 할머니

물론 그 50여 년의 세월 동안 이 지역과 아파트 단지에도 수없이 많은 변화가 있었다. 많은 주민들이 교육과 이직 등의 문제로 다른 지역을 찾아 떠났고 그 빈자리에 이민자 가족들이 하나 둘씩 입주하게 됐다. 이 지역의 인구 변화를 살펴보면 스웨덴 사회의 인구 변화를 짐작할 수 있을 정도다.

스스로 참여해 운영하는 박물관

코떼달라 아파트 박물관은 이러한 변화대신 50년대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살아 숨쉬는 곳이다. 당시의 생활방식을 그대로 보여주기 위해 아파트를 꾸민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이 자발적인 모임을 만들어 수년째 박물관을 운영 중이다. 이름이 박물관이지 순수한 자원봉사모임의 성격을 띠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원칙이 없는 것은 아니다. 모임 참가자들은 한 달에 두 번씩 정기적으로 만나 회의를 하고 월간 소식지를 만든다. 일요일 오후에는 교대로 나와 일반 방문객을 가이드한다. 그 시대를 살았던 분들에게는 추억에 얽힌 갖가지 물건이 남아있어 주로 어르신들이 많이 찾는다고 한다. 최근에는 물건 뿐 아니라 할아버지, 할머니가 들려주는 당시의 이야기가 입 소문이 나며 방문객이 많이 늘었다. 그 중에는 50년대 골동품에 관심 있는 수집가부터 TV, 영화 관계자, 50년대 주방 디자인을 취재하는 패션 잡지 기자, 사회 복지 정책을 공부하는 연구자 등 전문가들도 상당수 방문하고 있다고 한다. 모임 참가자들도 그들이 평생 가보지 못한 나라의 방문객들이 자신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스웨덴의 옛 모습에 관심을 보일 때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50년대 골동품들이 세대를 잇고, 국경을 초월해 이야기 거리를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50년대 우유병 이야기를 듣다


그 시절 음악


물건들의 사용 용도와 수집 역사를 알 수 있는 목록

토론과 열정의 근원은 ?

마침 취재를 위해 박물관을 찾은 날은 방문객 가이드를 자원한 할머니들이 모여 50년대 재즈 음악이 담긴 오디오 가이드를 연습하는 날이었다. 재즈 음악을 좋아하는 한 젊은 자원봉사자가 당시에 유행하던 음악들을 선별해서 CD에 담아 방문객들이 음악을 들으면서 박물관을 둘러 볼 수 있도록 했다. 음악은 추억을 불러 일으키는 또 다른 촉매제 역할을 한다. 가이드 할머니들은 마치 어린 소녀로 돌아간 듯 즐거워 웃음이 가득했다. 하지만 새로운 문명의 이기가 때로 이들을 부담스럽게 하기도 한다. 소형 CD 플레이어는 젊은 사람들이나 쓰는 것이지, 노인들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생겨먹지 못했다. 동작법도 좀더 간단해야 하고 버튼도 큼지막해야 한다. 젊은 자원봉사자는 할머니들이 오디오 가이드에 대해서 토론하는 것을 꼼꼼히 기록했다. 할머니들은 무엇보다 방문객에게 직접 물건을 보여주고 설명하는, 자신들이 능동적으로 무언가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끼는 것 같았다. 오디오 가이드가 방문객에게 좀더 색다른 경험을 안겨줄 수 있겠지만 CD플레이어를 다루지 못해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꺼려하는 것 같았다. 할머니들의 기우를 눈치챘는지 젊은 자원봉사자의 설명이 이어졌다. 50년대의 추억을 되짚어보는 것은 큰 매력이지만 신세대나 다른 문화권의 방문객은 스웨덴 사람들과 달리 흥미가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 흥미유발의 시작을 음악으로 풀어보자는 것이 젊은 자원봉사자의 생각이다.


오디오 가이드를 테스트하는 할머니들

장시간의 토론 끝에 좀더 사용하기에 편리한 헤드폰과 CD플레이어를 준비해 다시 가이드 연습을 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옆에서 줄곧 지켜본 결과, 우선 이 작은 지역의 공동체 박물관에서 관람객 서비스를 위해 벌어지는 활발한 토론과 그 진지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할머니들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열정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자리였다. 만약 이 박물관이 자원봉사조직이 아니라 다른 이해관계, 예를 들어 국공립 운영이라든가 개인의 소유였다면 이런 토론 분위기가 만들어질 수 있었을까. 만약 할머니들에게 담당자가 있고 그들이 모든 것을 관여한다면 지금처럼 열심히 활동할 수 있을까. 박물관 활용과 운영이 이들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긍지와 보람을 주기 때문에 그토록 애착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닐까.

박물관과 지역사회의 연계

이 박물관을 능동적으로 이용하는 그룹들은 비단 이들 할머니 , 할아버지 뿐만이 아니다. 다양한 분야에서 박물관을 창의적으로 활용하면서 전시된 물건에 얽힌 추억을 코떼달라 주변의 지역 사회와 연결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 예로는 ‘추억의 서랍’ 프로젝트와 ‘기억 테라피’ 프로젝트를 꼽을 수 있다. 전자는 예테보리 대학의 민족지학 학자 쉐스틴 군네마크(Kerstin Gunnermark)씨와 지역 도서관장 마가렛타 함멘베리(Margaretha Hammenberg)씨, 아티스트인 오사 룬드그렌(Asa Lundgren)씨의 협력으로 이루어진 프로젝트인데, 이들은 50년대의 물건들을 이동식 서랍에 넣어 쉽게 운반이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이동식 전시를 통해 도서관에서 노인들에게 옛날 책을 읽어주는 관내 프로젝트에 사용하기도 하고, 학교에 임대해 주기도 했다. 이들은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연구자나 담당자들이 기존 박물관에서처럼 사회문화사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로부터 이야기를 이끌어내며 대화의 장을 여는 것에 의미를 두고 그 과정을 기록한 책을 내기도 하였다.


추억의 서랍 프로젝트

또 하나의 프로젝트는 코떼달라와 인접한 시 중 하나인 뭴른달 시의 사회복지 노인요양 프로그램이다 . 노인요양을 담당하는 간호사들이 점차 기억을 잃어가는 노인들에게 옛물건을 만져보게 하고 물건에 얽힌 이야기를 하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들 프로젝트는 비록 박물관에서 운영하는 것은 아니지만, 지역 단체들이 이 아파트의 존재에 관심을 갖고 서로 협력하게 된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문화와 복지의 조화

이미 1990년대에 고령화에 들어선 스웨덴의 복지 정책은 종종 우리나라를 비롯해 고령화 시대를 대비하는 나라들에게 선례가 되곤 한다. 사회복지의 역사가 오래된 만큼 안전망이 잘 구축되어 있으며, 노인요양과 간호 등 서비스가 잘 갖춰져 있는 편이다. 무엇보다 코떼달라 아파트 박물관처럼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주인의식을 갖고 능동적으로 활동하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들 스스로 고령의 어르신들을 무조건 사회적 약자이자 보호의 대상으로 분류하거나 수동적인 역할을 하도록 제한하지 않았는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도 노인요양 및 복지 분야에 종사하시는 분들과 문화 종사자들이 좀더 활발하게 손을 잡아 의미로운 프로젝트를 만들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문화생활은 노인들에게 좀더 의미롭고 행복한 삶을 선물한다’는 표어 아래 최근 예테보리 시는 ‘몸과 마음’ 이라는 프로그램에 9십만 크로나(약 1억 1천6백만원)의 비용을 지원한다고 발표했다. 이 프로그램은 노인요양 서비스를 받는 노인들을 직접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서비스를 제공하는 담당자들이 어떻게 하면 노인들에게 문화 생활과 간호 서비스를 동시에 제공할 수 있는지에 대해 토론을 하고 실천모델을 만들어나가는 일종의 교육 프로그램이다. 독서, 댄스, 미술, 디자인, 뜨개질, 연극, 필름, 정원 가꾸기, 건강한 음식 맛있게 먹기 등을 응용해서 어떻게 하면 보다 인간적이고 따뜻한 교류를 나눌 수 있을까 연구하는 프로그램인데 어떻게 전개되고 어떠한 결과를 낳을지 기대되는 정책이다.

( 코떼달라 박물관www.kortedala.museu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