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소식] 파리 외곽도시에서 피어나는 문화예술교육의 풍경-쥬느빌리에 시립 미술학교

파리 북부의 쥬느빌리에 시립미술학교는 지역 문화센터이자 치료의 장, 마을에 뿌리를 내린 미술학교의, 애틋하고 아름다운 풍경화.

파리는 그 이름만으로도 많은 사람들을 설레게 하는 낭만적인 도시로 유명하지만, 이 아름다운 도시의 외곽지역에 가난한 이민자들을 중심으로 한 빈민도시권이 형성되어 있다는 사실은 상대적으로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미디어에 의해 과장된 면이 없지 않으나, 작년 말 프랑스를 혼란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파리 외곽의 폭동 소요사태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어렴풋이 그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작년 KBS 스페셜 문화예술교육프로그램 촬영과 관련하여 한 미술학교를 취재하기 위해 파리 북부의 쥬느빌리에(Gennevilliers)라는 외곽도시를 처음 방문하였다. 이때는 파리 외곽의 폭동사태가 일어나기도 전이었건만, 지하철을 타고 또 버스를 갈아타고 정류장에 내려서도 약간은 더 걸어 구불구불 찾아간 이 동네는 파리 복판의 화려함이나 아기자기한 고풍스러움과는 거리가 멀었다. 낡은 주택들과 함께 도시 진입부부터 펼쳐지는 황량한 주변 풍경들은 차치하고라도, 그나마 정돈된 구역이라 할 수 있는 미술학교 앞 카페에서조차 한낮부터 술에 절어있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었으니. 파리와 가까우면서도 너무나 다른 풍경을 지닌 이 변두리 도시의 작은 미술학교에 무슨 특별한 점이 있는 걸까? 쥬느빌리에 시립미술학교의 문화매개자 제랄딘 롱그빌(Geraldine Longueville)과 실기수업담당교사 코린 필리피(Corinne Filippi)를 만나 그 얘기를 들어보았다.

가깝고도 먼 도시, 쥬느빌리에

아르떼 : 반갑습니다. 우선 쥬느빌리에 시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부탁드릴까요?

제랄딘 롱그빌 (이하 롱그빌) : 아시다시피 쥬느빌리에는 파리 북부에 위치한 외곽 도시 중 하나입니다. 산업자재들을 생산하는 공장지대가 넓게 분포하고 있으므로 주거지가 그렇게 넓지도 않고, 또 주거환경이 그렇게 좋은 도시라고는 볼 수 없죠. 또한 이곳은 1934년까지도 좌파 시장이 재임하였고, 따라서 주변의 파리외곽도시들과 함께 ‘붉은 벨트(centure rouge)’라고 불리던 도시입니다.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도시 내에 자리잡아온 사회주의적 성향과 함께 이 도시에는 아직도 민중문화(culture populaire)적 전통이 도처에 강하게 남아있다고 할 수 있어요.

아르떼 : 그렇다면 현재 문화매개자로서 몸담고 계시는 쥬느빌리에 시립미술학교는 언제 생긴 것인가요?

 

롱그빌 : 저희 쥬느빌리에 시립미술학교는 1968년 화가 그룹을 중심으로 한 전시회를 열면서 시작되었습니다. 10여년 간 이렇게 화가들을 중심으로 운영이 되다가 1978년에 도시 중심에 위치한 옛 시청 건물에 자리를 잡아 오늘에 이르게 되었죠. 이곳은 교육부의 정규교육과는 별도로 시에서 운영하는 미술학교*이구요, 어린이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등록하여 수업을 받을 수 있습니다. 등록자격에 제한은 없지만 일반적으로 지역 주민들이 학생으로 등록하여 수업을 받고 있죠. 모든 수업은 일년 단위로 운영됩니다. 따라서 중고등학교나 대학교 같은 학위가 수여되지는 않습니다.

  
쥬느빌리에 미술학교 아틀리에

현대예술창작과 지역문화예술중심지로서의 역할 수행

아르떼 : 학교 안에 갤러리가 별도로 설치되어 있는 것이 눈에 띄네요. 이름이 에두아르 마네 갤러리(Galerie Edouard Manet) 인데, 왜 이런 이름이 붙게 되었나요?

롱그빌 : 인상주의 및 근대미술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작가 에두아르 마네를 아시죠? 이 작가가 바로 쥬느빌리에에 살았더랬죠. 그래서 붙게 된 이름이구요. 저희 학교에서 이 갤러리는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사실 쥬느빌리에의 시민들은 파리와 근접해서 살고 있지만 여건상 파리 중심지로 나가서 양질의 전시관람을 하기에 매우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이러한 지역적인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저희는 이 130평방미터 정도 되는 전용 전시공간에 정기적으로 수준높은 현대미술작가들의 전시를 개최하고, 이 전시들을 지역주민 및 아동들의 문화예술교육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미술관련 도서, 멀티미디어 출판물 등을 모아놓은 자료관, 다양한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컨퍼런스실을 마련해서 지역 주민의 생활 안에 자연스럽게 현대 예술이 자리잡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기도 하구요. 이를 위해서 시립무용학교, 도서관, 극장들과 연계하여 미술에서 보다 더 확장된 문화기회를 다양하게 제공하고 있어요. 많은 지역 주민들이 대부분 걸어서 올 수 있는 도시 중심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아이들 뿐 아니라 지역주민 모두의 문화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문화매개자와 전시장 안에서 수업을 하고 있는 아이들

아르떼 : 정말 여러가지 문화예술교육의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군요. 그렇다면 미술학교라기 보다는 문화센터라고 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요?

롱그빌 : 지역주민들의 문화센터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저희 기관의 기본적인 성격은 조형예술 실기를 가르치는 학교입니다. 저희 학교의 실기 수업 교사들은 일반학교 교사가 아닌 작가들이며, 이분들은 쥬느빌리에 미술학교 심의회에 의해 선발됩니다. 성인들을 위한 강좌, 아동을 위한 강좌들이 데셍, 회화, 조각, 점토, 사진, 디지털 예술, 미술사 등 다양한 분야로 나뉘어 진행되고 있죠. 아이들을 위한 강좌로는 나이대별로 수요일과 토요일에 많은 수업이 편성되어 있고, 15세부터 18세 사이를 대상으로 하는 청소년반 수업은 중고등학생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참여할 수 있게 하고 있습니다. 고등미술학교 준비반 같은 강좌도 개설하고 있구요, 시(市)의 심리의학전문상담소와 협력하여 운영되는 미술치료 특별 아틀리에도 편성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과목들 외에도 쥬느빌리에 시에 위치한 여가 센터(Centres de loisirs)들의 영유아담당 교육자들을 위한 과목이 준비되어 있는데, 이는 각 문화기관에서 관객들에게 적합한 프로그램을 짜는데 필요한 지식과 정보를 얻게하기 위한 것이죠. 올해에는 이밖에도 ‘나도 현대미술을 좋아하기로 결심했어요 (J’ai decide d’aimer l’art contemporain.).’ 라는 제목으로 8회에 걸친 현대미술 컨퍼런스를 개설하여 진행한 바 있습니다.

지역주민과 함께 하는 미술수업 ? ‘우리 마을 바라보기’

아르떼 : 쥬느빌리에 미술학교는 시에서 주관하는 학교인데, 쥬느빌리에 시민들을 위한 특별한 행사나 프로그램도 있는지요? 일반 성인 아틀리에 수업이나 컨퍼런스 강좌들 말고, 보다 적극적으로 시민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프로그램 말이예요.

롱그빌 : 일단 갤러리에서 개최되는 전시는 모든 지역 주민들에게 무료로 개방되구요, 일년에 한번은 학교개방행사를 통해 수업을 듣지 않는 주민들을 보다 적극적으로 초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하신 것처럼 이보다 적극적으로 지역주민들에게 다가가는 다양한 시민프로그램들을 연구하고 실행하고 있죠. 작년에 있었던 ‘우리 마을 바라보기(Vues sur ma ville)’ 프로젝트가 가장 최근의 예라고 하겠는데요, 이 프로그램은 ‘도시를 아름답게 하기 위한 100가지 시민 프로젝트 (100 projets citoyens pour embellir la ville)’의 일환으로 시발전담당부서(Agent de developpement du Village)의 지역생활과(Direction de la Vie des Quartiers)와 협동으로 기획, 진행되었습니다.

  
우리마을 바라보기 프로젝트

바늘구멍 사진기 스테노페(Stenope)를 아시나요? 간단한 상자에 구멍을 내서 그 안에 사진 인화지를 넣어 사진 이미지를 얻는 작업입니다. 작년 3월부터 6월까지 참가자들은 사진작가 막심 투라티에(Maxim Touratier)의 지도와 함께 사진 기술의 원리들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고, 도시 곳곳을 이 신기한 상자를 들고 누비면서 공사현장 등 새롭게 변화하고 있는 우리 도시의 생생한 모습들을 담았습니다. 마지막 6월에는 전시실이 아닌 마을 곳곳에 설치된 광고 포스터판에 그동안의 작업을 2주간 전시하여 보다 적극적으로 시민들의 생활 속에 다가가는 기회를 가지기도 했죠. 사진기를 다룰 줄 모르는 사람들도 누구나 간단히 할 수 있는 작업이지만,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효과들이 일상 속에서 스쳐지나갔던 우리 마을의 모습을 다시 한번 돌아보는 계기와 재미를 만들어 주었어요. 예상치 못한 작업 결과에 흥미를 느끼면서 지역 주민들이 함께 마을의 모습을 ‘바라보는데 시간을 들이기 (prendre le temps de voir)’ 시작한 겁니다. 일상 생활에 대한 관찰에서부터 예술이 시작된다는, 어찌 보면 지극히 자연스럽지만 깨닫기 어려운 사실을 느끼게 되는 작업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의무교육기관과의 연계협력 수업

아르떼 : 도시 내의 초중고등학교 등의 정규과정학교들 및 기타 학교들과는 어떤 식으로 협력하고 계시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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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로 ‘학교’라고 번역되는 에꼴(ecole) 이라는 단어는 의무교육기관으로서의 의미보다는 광의의 의미를 가진다.

코린 필리피(Corinne Filippi, 쥬느빌리에 미술학교 실기수업담당 교사) : 말씀하신 것처럼 저희 미술학교는 지역의 일반 학교들 및 음악 학교들과 다양한 형태로 협력하고 있습니다. 특히 두드러지는 것은 일반학교의 교과과정에 정규 및 선택과목으로 편성된 미술수업과 연계하는 것이죠. 참관하셨던*기 모케(Guy Moquet) 중학교 5학년과 6학년 학생(11~12세)들의 수업 역시 선택과목으로 미술을 선택한 학생들이 기존 교과에 편성되어 있는 수업일 이외의 부가수업을 저희 학교와 연계하여 받고 있는 것입니다.   

아르떼 : 원하는 학생은 누구나 미술 부가과목을 선택할 수가 있는 건가요?

코린 필리피 : 미술 부가수업은 오로지 자발적인 동기로 미술수업을 더 받고자 하는 학생들을 위한 것입니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 즉 학생이 자발적인 동기가 있느냐를 보기 위해 학생들이 직접 작성한 학업동기서(Lettre de motivation)를 받아서 검토합니다. 이것은 수업을 충실히 받겠다는 일종의 서약서와 같은 거라고도 할 수 있겠죠. 이렇게 진정으로 열심히 참여하고자 하는 학생에게만 기회가 주어집니다.

  
학생들의 작품들 

아르떼 : 미술수업에서 사실 평가의 문제가 필요하면서도 실제적으로 애매한 부분이라고 생각되는데요, 학생평가는 어떻게 하고 계시는지요?

코린 필리피 : 분명 수업 이후의 평가(evaluation)는 매우 중요합니다. 저희 학교의 세가지 주요 평가기준은 수업 초기의 동기(motivation), 발전 정도(progress), 그리고 태도(attitude)입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절대적인 평가를 하는 경우는 없어요. 예전에 스케치북 전체를 사용하지 못하고 한 귀퉁이에만 그림을 그리던 학생이 있었죠. 공간 활용에 대한 능력이 부족했던 것인데, 결국 학기말에는 스케치북 전면을 활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런 경우는 발전적으로 평가합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표현력이 좋고 공간 활용이 좋은 학생들이라고 할지라도 점진적으로 발전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면 낮은 평가를 받게 돼요. 따라서 정교하게 그리는 기술의 숙련도 같은 것은 절대적인 평가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각 학생에 따라 출발점이 다르기 때문이죠. 결국 미술수업의 목적은 시각적 요소들을 통해 세상과 타인과의 관계를 새롭게 ‘보기’ 위한 것이 아닙니까?    

  
쥬느빌리에 미술학교 아틀리에 내부 모습

각 가정의 소득 수준을 고려한 수업료 책정

아르떼 : 시립학교라면 시에서 운영지원을 받으시는지요? 수업료는 어떻게 되는지, 시민들에게 특별한 혜택이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문화매개자의 가이드와 함께 전시관람을 하는 시간을 가진 뒤 관람한 전시와 관련한 이미지 혹은 개념들을 토대로 별도로 마련된 아틀리에에서 실기 수업이 진행되었다.

 

 

 

롱그빌 : 시립학교라고 해서 지원금을 전폭적으로 받거나 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희 미술학교는 드락*일드프랑스와 오-드-센(Haut-de-Seine) 데파르트망 위원회의 지원을 동시에 받고 있습니다.

쥬느빌리에 시립미술학교는 시민들에게 수업료 우대 혜택을 주는 것 이외에도 각 가정의 소득수준에 따라 다른 수업료를 적용하고 있습니다. 가족상황과 수입등의 상황들에 따라 세금부과를 달리하는(Quotient familial) 제도를 이용하는 것인데요, 세금납부 등급에 따라 제일 낮은 1, 2 등급은 연수업료 38유로, 10등급은 157유로 등으로 차이를 두고 있죠. 사실 이러한 세금납부액을 기준으로 한 사회보장혜택부여가 여러가지 논란을 낳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재정적으로 어려운 가정에게도 문화예술교육의 기회를 균등하게 부여하고자 하는 순수한 의도로 실행하고 있는 것이라고 보실 수 있겠습니다.

  
소득수준에 따른 수업료 책정

이렇게 쥬느빌리에 시립 미술학교는 미술학교로서의 1차적 역할을 충실히 하면서도 지역적 상황을 충분히 고려하고 주민의 요구에 부응하는 지역 문화원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고 있었다. 화가들의 모임에서 출발한 독특한 역사를 지녔다는 점에서, 문화예술교육의 자발적 동기와 지역적 요청이 적절하게 접목된 예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도시 내의 여러 여가 센터(centre de loisir)의 영유아담당 문화매개자들을 위한 수업을 개설하여 운영하는 것은 문화부와 교육부가 공동으로 강조하고 있는 ‘교육자들의 교육(formation des formateurs)’에 대한 요구를 반영한 것이라 하겠다. 이밖에도 이 도시뿐 아니라 프랑스의 많은 도시들이 시립미술학교 및 음악학교를 설립하여 지역 주민들에게 보다 적극적으로 문화예술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사실 문화예술의 나라로 알려진 프랑스에서도 도시와 외곽지역 사이의 격차는 생각보다 훨씬 심각한 상태이다. 외곽 지역의 경우에는 학교 내 학생들의 폭력으로 교사들이 부상을 입거나 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학교마다 전문지도교사와 심리상담사가 배치되어 있지만 문제의 근원이 가정 안에 있는 것이므로 개선이 힘든 것이 사실이다. 이런 면에서 일반 학교 이외의 문화예술기관들이 지역주민의 생활 속에 적극적으로 다가가는 시도들이 적지 않은 효과를 보고 있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특히 인터뷰 내내 제랄딘 롱그빌은 ‘소외지역’이라든지 ‘저소득층을 위한 프로그램’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 자체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었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베푼다거나 못 배운 사람들을 계몽한다거나 하는 수직적 의식 자체가 사회불평등의 괴리를 심화하는 것이라는 점을 거듭 강조하던 것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의식과 감수성의 변화가 선행되지 않는다면, 제도를 백번 고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일반학교와 예술전문학교들, 기타 다양한 문화예술기관들이 협력해가면서 제도개선과 의식변화를 동시에 이루어가야 할 것이다. 문화예술교육을 위한 새로운 기관을 만드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기관간 협력을 원활하게 하여 기존의 문화예술기관들을 잘 활용하는 지혜를 배워보는 것은 어떨까.

*2006년 6월 프랑스 특집기사 ‘찾아가는 문화부-드락’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