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소식]역사를 통해 살펴 본 유럽의 문화예술교육 정책

[해외소식]역사를 통해 살펴 본 유럽의 문화예술교육 정책

 

문화예술이 중시되는 유럽의 정치구조

유럽의 역사책을 펼쳐보면 특정 시기의 연대표가 예술적인 함축을 강하게 띠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로마네스크, 고딕, 르네상스, 고전주의, 낭만주의, 모더니티 등의 시대 구분은 그 시대의 도드라진 정치적 성향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건축, 음악, 문학, 미술 등을 상징하고 있다. 이런 시대구분은 유럽사회의 역사적 발전에 예술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단서가 된다. 실제 역사를 살펴보면 그 당시 통치자들은 정치적으로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국내는 물론 자신의 권위가 미치는 국외까지 광범위하게 문화적 토대를 구축해 두어야만 했다.
19세기에 나타난 민족주의의 발흥은 유럽인들에게 난제를 던져주었다. 새롭게 나타난 문화적인 하부구조는 정치인들의 성공을 위한 중요한 도구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 유럽의 문화정책에 핵심 이슈로 남아있는 민족적 정체성이라는 정치지형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 결과, 유럽에서는 문화예술교육에서 국가적 중요성이 우선시되었고 이를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문화적인 표준(canon)을 강화하는 데 집중되어왔다. 그리고 국가의 자존심을 대표하는 문화적 하부구조의 핵심 지지층은 초기교육을 받은 부르주아에서 화이트칼라 노동자로 이동해갔고, 반면 블루칼라 노동자들은 오락산업이 낳은 잡동사니의 수혜자에 그칠 수밖에 없었다.
이외에도 유럽에는 계몽주의 시대의 이상을 따르는 또 다른 문화예술교육의 성향이 존재하기도 했다. 계몽주의의 이상적인 교육정책은 모든 사람을 한 국가의 문화적 정체성 아래 두는 것이 아니라, 독립적인 개인이라는 인간상을 실현시키는 데 두고 있었다. 이때 시민사회 내부에서 미학적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개인’ 구현에 선도적인 역할을 해준 것이 바로 예술가들이었다. 오늘날 예술과 예술교육의 과제는 정치인의 주장에 의해서 제한되어서는 안 되며, 사회적인 발전에 역동성을 주고 또 느끼게 해주는 비판적인 숙고의 수단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하나의 유럽을 위한 과제

유럽의 역사는 비단 예술과 문화의 역사만은 아니다. 정치적인 투쟁과 혁명, 전쟁이 끝없이 이어진 한편의 드라마이기도 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잔인한 전쟁 중 하나였던 제2차 세계대전을 겪고 나자, 서로 총부리를 겨누었던 유럽의 숙적들은 서로 화해하기 위해 유럽통합이라는 과정을 모색하게 되었다. 그리고 서로 교류하기 위한 정치적인 노력의 일환으로 경제 공동체의 설립이 시작되었고, 이는 각국의 교육과 문화적 이슈에 대해서는 전혀 영향력이 미치지 않도록 고안되었다. 문화와 교육적인 쟁점을 배제한 유럽연합은 현재까지 각국 경제성장에 원동력으로 작용하며 주목 받아왔다. 최근의 유럽연합은 공통된 정치적 영역은 물론 미래의 문화적 영역까지도 공동발전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2005년 프랑스와 독일 선거에서 유럽헌법이 부결된 것을 보면, 유럽인들을 하나의 문화권으로 끌어들이는 것에 상당한 노력과 설득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유럽통합이라는 지난한 과정에서 맛본 위의 실패사례는 차치하고라도, 예술과 문화교육 분야에는 두 가지 어려운 과제가 놓여있다.
첫 번째 난관은 유럽의 경제부강이라는 목적에 즉각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요소이다. 유럽의 여러 국가들은 현재 예전의 산업구조 시스템에서 지식기반 경제사회로 나아가는 변화의 과정을 겪고 있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아직도 협소하게 예전의 산업사회 구조에나 맞는 특정한 기술을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내일의 경제는 더 이상 전형적인 대량 생산 기반 체제가 아니다. 이제 지구촌에서 국제적인 경쟁력을 가지려면 학교 교육은 창의성과 혁신에 기반을 두어야 하며, 지식노동자들의 주된 경쟁력인 자기표현능력, 다문화적 행동능력, 자긍심, 이동성, 유연성 그리고 팀 지향성 등의 기본적인 리소스에 그 기반을 두어야 한다.
이런 점에 대해 지난 몇 년간 많은 연구가 있었고 그 결과 창조성이나 혁신 능력은 타고난 재능이 아니라 누구나 교육을 통해 습득할 수 있다는 점이 밝혀졌다. 그리고 새로운 교육과 학습 방향이 개개인이 갖는 소질과 특성을 개발시키고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처럼 새로운 교육방법론에서는 예술이야말로 피교육자들이 인지적인 방식뿐만 아니라 정서적이고 감성적인 방식으로 대응하게 하는 중요한 수단이 되고 있으며, 예술교육은 예전의 학습 환경에서는 보여주지 못했던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해결책을 제공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예술과 문화교육이야말로 현재 유럽의 경제공동체가 요구하는 인간상, 즉 완전한 인격체의 계발에 공헌하고 있다.
두 번째 난관은 경제논리의 시장만이 정치적으로 하나의 공동체를 구성하는 요소는 아니라는 전제와 관련되어 있다. 즉 현재 유럽통합이라는 변화의 과정에서 불안요소를 잠식시킬 만큼 강력한 대의민주주의 절차에 참여하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단지 물건을 사고파는 것을 넘어 유럽 공동의 문화적 정체성을 형성하여 유럽인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공통된 가치체계가 필요하다.
이는 서로 다른 언어, 아직도 많은 유럽인들의 가슴 속에 자리 잡고 있는 무한한 경쟁과 다툼의 잔재를 고려해 볼 때 결코 쉬운 과제가 아니다. 그리고 유럽연합의 많은 정치 지도자들은 아직까지도 그저 고답적으로 유럽 내의 다양한 차이점과 다양성 속에서 공통된 유럽 문화의 특징을 찾을 수 있다는 기본 입장만을 되풀이 하고 있을 뿐이다. 이런 지루한 말들이 실제 생명력을 갖기 위해서는 유럽인들이 서로를 알고 자신의 문화 외에 다른 국가의 문화적 전통과 개성을 똑같이 인정하도록 해야 하는데, 그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문화예술교육이라는 주장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이다.

여전히 뒷전인 문화예술교육의 현재

이 두 가지 과제를 보면, 유럽의 문화예술교육이야말로 정치적 문제해결의 우선순위로 꼽힐 것이라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실제는 그렇지 않다. 현재 문화예술교육은 그다지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유럽사회가 문화를 지원하는 것은 단순히 재정적인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문화에 대한 지원은 재정적인 지원 그 이상의 것이다. 올해와 지난 몇 년간을 돌이켜보면, 예술 혹은 문화교육을 위한 유럽 내의 단일프로그램이 단 하나도 없었다. 1999년 유럽공동체위원회 (European Commission) 산하에 두 개의 문화교육위원회가 통합되고 나서, 문화예술교육을 지원하기 위한 “커넥트(Connnect)”라 불리는 조그만 프로그램이 출범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은 불행히도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어서 한 파트는 교육부서의 방식을 따르고 나머지 다른 한 파트는 문화부서의 행정적인 지침을 따르게 되어 있었다. 그 결과 이런 방식은 피치 못할 결과를 낳았고 지원 프로그램 역시 조기에 폐지되고 말았다.
앤 뱀포드(Anne Bamford)가 전 세계에서 교육에 미치는 예술의 영향이라는 연구 자료 “The Wow-Factor”에서 예술 교육의 질적 수준은 무엇보다도 문화와 교육을 담당하는 부서간의 상호협력에 달려있다고 결론을 맺었다. 그러자 교육문화위원회(General Directorate Education and Culture)에서는 “우리는 함께 살고 있으나 또한 멀리 떨어져 사는 것과 같습니다.”라고 설명했는데, 이는 두 부서 간에 만연한 업무상 비연계성과 비협력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답변이라고 할 수 있다. 2000년부터 지금까지 문화예술교육이 예술부서의 담당업무도 아니고 문화부서의 프로그램도 아닌 채로 방치되어 왔다는 것은 하나도 놀랄 일이 아니다.
여기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2007년에 시작되어 2013년까지 지속될 새로운 세대의 EU 프로그램 역시 문화예술교육을 미래의 유럽통합 과정에 중요한 수단이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대신 예술프로그램과 교육 프로그램은 서로 다른 정책 영역으로 연결되는 데 그치고 있다. 예를 들어 평생학습에 관한 교육 프로그램의 경우 13조항 “Joint Action”에 교육 프로그램은 “지역 프로그램과 연계해서 특히 문화, 미디어, 청소년, 연구 등과 연계해서 실행될 수 있다”고 언급되어 있다. 새로운 문화 프로그램의 경우는 7항 “지역 프로그램과 연계(Complementarity with other Community Instruments)”에 “교육, 방학 내 훈련, 청소년, 스포츠, 언어, 사회적인 동화, 차별성과 연구와 연계해서 문화적 프로그램이 다른 지역 사회 프로그램과 연계된다.”고 예시하고 있다.
지난 몇 년 동안 유럽공동체위원회는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활성화시키는 데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았으며, 오히려 네덜란드, 영국, 오스트리아 같은 나라들이 공공복리 차원에서 EU가 예술과 문화 교육을 증진시키도록 이끌어왔다. 비록 EU 의장이 6개월마다 바뀐다 해도, 몇 가지 굵직한 사안은 충분히 진행할 수 있다. 2006년 봄, 그라즈(오스트리아)에서는 “유럽 문화예술교육 증진” (http://www.conference-cultural-education.at/en/)이라는 제목의 세계 회의가 열렸는데 이 회의의 주된 초점은 문화교육의 질, 혁신, 그리고 참여에 맞춰졌다. 유럽의 연구/컨설팅 기구로서 에듀컬트(Educult)는 유럽의 여러 나라별 예술 문화교육을 소개하는 사전자료 (첨부파일 확인)를 처음으로 회의 참가자들을 위해 준비하였다. 이 회의와 독일의 교육문화장관의 발의로 “culture-school.net” 이라는 공무원의 자발적 네트워크가 출범하였고 적어도 1년에 한번 전 유럽의 문화예술 행정가들이 모임을 갖는 것을 결의하였다.

문화예술교육 발전을 위한 몇 가지 제언

미래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는 문화예술교육이 전략적으로 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비단 유럽연합만이 아니다. 유럽의회는 몇 년 전부터 “문화, 창조성 그리고 청소년(Culture, Creativity and the Young)”이라는 프로그램을 활성화시킴으로써 중요한 공헌을 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유네스코와 LEA(Links to Education and Art) 역시 유럽에서 미래의 문화예술교육의 발전을 위해 많은 공헌을 하고 있다.
(http://portal.unesco.org/culture/en/ev.php-URL_ID=2916&URL_DO=DO_TOPIC&URL_SECTION=201.html)

그중에서도 특별히 주목해야 하는 것은 2006년 3월 포르투갈의 리스본에서 열린 “유네스코 예술교육 세계대회 – 21세기를 위한 창조력 배양 (World Conference on Arts Education, Building Creative Capacities for the 21st Century)”이다. 이 회의에는 전 세계 100여개 나라에서 1200여명의 사람들이 참가해 미래 세계의 번영과 발전을 위해 예술과 문화의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전 세계 참가자들에게 역설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유럽의 참가자들에게는 다른 나라와 대륙에서 온 사람들과 유대관계를 맺을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되었고 서로 귀중한 정보와 체험을 교환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 온 동료들은 2010년의 유네스코 예술교육 세계대회를 한국에서 개최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이제 첫 단계로 진입한 한국의 예술교육 정책에 대한 견해와 기대 그리고 새로운 것들은 무엇인가라는 문제에 대해 나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질문을 제기해보고 싶다.

첫째, 현재 문화와 교육 영역에서 각국의 정책이 지속적으로 약화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앞으로 고도로 경제적이고 기술적으로 변모해갈 세계의 문화시장에서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공공정책의 역할은 무엇이고 또 어떠해야 하는가?
둘째, 서로 다른 나라들이 유사한 관련 정책을 개별적으로 만들 필요가 있는가?  만약 있다면 어떤 식으로 만들어야 하는가?
셋째, 예술과 문화 교육의 수준과 질을 규정할 수 있는 일반적인 도구가 있는가?  만약 있다면 어떤 것일까?
넷째, 우리가 문화예술교육의 결과를 제시할 수 있는 충분한 연구 능력을 함양하고 있는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앞으로 어떻게 그 경쟁력과 전문성을 개선시킬 수 있는가?
다섯째, 다른 정치적인 영역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문화예술교육 분야에 줄 수 있는 국제적으로 공통된 전략이 있는가?  만약 있다면 다양한 부서 간 이해와 협력을 성공적으로 실행시킬 수 있도록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리스본에서 열렸던 유네스코 세계대회는 내게 아주 멋진 경험이었다. 예전에는 몰랐던 많은 사람들, 즉 이 분야에서 활동하는 많은 사람과 친구가 될 수 있었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새로운 친구들과 파트너를 통해 앞으로도 계속 이 분야에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있었고, 귀국을 할 때가 되자 국경 안에서만 머물러서는 안 되는 이유를 얻게 되었다. 만약 이 회의가 아니었다면 나는 한국이 자국의 문화교육정책의 핵심으로 문화예술교육을 지난 몇 년 동안 성공적으로 진행시켜 오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에듀컬트>의 사명은 대중이 미래의 전망을 가질 수 있도록 사전적인 노력의 일환으로 예술·교육이 흥미로운 대중의 담론거리가 되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모인 사람들은 유럽의 문화적인 이슈가 현재나 미래보다 과거에 더 크고 중요했다는 인상을 갖고 있을 것이다. 한국이 문화교육정책에서 보여준 성공사례는 유럽인에게 많은 동기를 유발시켜주고 있으며, 과거 지리적인 경계선상에서 일어났던 역사만 보는 게 아니라 “앞으로 저 너머”까지 볼 수 있도록 해주고 있다. 이는 좋은 것은 때로 예기치 않게 외부로부터 얻어진다는 말을 떠오르게 한다. 문화예술교육과 관련된 일상의 업무뿐만 아니라 앞으로 개최될 2010년 예술교육에 세계대회를 위해서 우리의 머리와 가슴을 열어두는 것은 아주 좋은 약이 될 것이다.

마이클 윔머 주요 약력

 

– 비엔나 대학에서 음악교육 및 문화정책 전공
– 1987-2003 오스트리아 문화진흥원장
– 문화정책과 관련된 다수의 리포트 집필, 대학강의
– 유럽연합 문화정책 전문가
– “예술과 교육” 편집장
– 유럽네트워크 “artsandedcuation”의 설립멤버
– <에듀컬트> 설립멤버 겸 원장

2003년도 설립. <에듀컬트>는 창의력, 문화, 예술교육을 위한 연구단체이며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문화예술교육의 기회가 이어질 수 있는 사회를 지향한다. <에듀컬트>는 문화예술의 가치들을 발견하여 창조적이고 생산적으로 실용화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  이 기사는 아르떼진이 문화예술교육 전문가 마이클 윔머씨에게 의뢰, 번역한 기사 입니다.
*  관련자료 첨부: 기사 원문(영문)/”유럽의 문화예술교육 진흥을 위한 국제회의” 사전 자료(원문/국문) (그라즈, 오스트리아 2006. 6. 6 ~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