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소식] 창의성과 교육의 만남-크리에이티브 파트너쉽(Creative Partnerships)


올해로 4년째를 맞고 있는 영국의 ‘크리에이티브 파트너쉽(Creative Partnerships)’프로그램을 살펴본다.

1997년 토니 블레어 노동당 정부가 들어선 이래로 영국의 문화정책의 방향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문화향유권의 저변 확산과 개발을 위하여 “문화예술”과 “교육”의 연결이 가져오는 효과에 대한 국가차원의 인식 변화는 가장 두드러진 특징 중의 하나이다. 이러한 정부의 입장과 궤를 같이하여, 1998년 문화부와 교육부는 공동으로 “문화와 창의적 교육을 위한 국가 자문위원회(National Advisory Committee on Creative and Cultural Education)”를 선임하였다. 자문위원회는 “우리들의 미래: 창의성, 문화 그리고 교육 (All Our Futures: Creativity, Culture and Education)”라는 제목의 제안서를 제출하였는데, 이에는 달라진 사회경제적 변화에 발맞추어 문화예술과 창의성의 문제를 교육과 접목시켜 정부 차원에서 어떻게 공조할 수 있을 것인가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리고 이 제안들에 대한 답변으로 ‘크리에이티브 파트너쉽(Creative Partnerships: 이하 CP)’이 고안되었다. 1-2년의 구상시기를 거쳐, 2002년부터 문화부와 교육부의 공동지원을 바탕으로 문화와 교육을 아우르는 프로그램으로서 탄생하여 올해로 4년째를 맞고 있는 CP는 현재 영국 내에서 창의성과 교육을 결합시킨 대표적인 정부정책지원 시범사업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CP의 철학과 지향, 그리고 CP의 여러 사업들

CP의 기본 철학은 기본적으로 모든 사람이 창의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이들은 다양한 문화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며 이를 통해 개개인의 창의성을 최대로 개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믿음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CP는 그 동안 단편적이고 수직적으로 흘러왔던 국정교과과정을 활성화 시키고 학생들의 학교 경험을 보다 풍부하게 하도록 하는 데에 자신들의 목적을 둔다. 보다 상세히 설명한다면, 단순히 예술과목 그 자체를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활동이라기보다는, 문화예술과 관련된 활동들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창의적인 교수법 지향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CP가 그들 프로그램의 화두로 주장하는 것은 예술 그 자체가 아니라 ‘창의성’이다. 즉, 예술에서 활용되는 창의적인 사고방식을 이끌어 내어 이를 통한 창의적 교수법을 새로운 통합교과 학습법으로 실현함으로써 학생들의 학습능력을 향상시키고 더불어 학교과정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들의 교육에 대한 관심도와 참여도를 제고하는 것이 CP의 지향하는 목표라는 얘기다.

CP의 역할은 학교와의 직접적인 컨설팅을 통해 해당 학교가 원하는 방향에 맞는 예술기관/예술인들을 연결해주는 일이다. 즉, 학교가 필요로 하는 프로그램을 직접 짜주는 역할을 하기 보다는 학교와 예술단체들이 서로 만나 해당 학교가 필요로 하는 프로그램을 자체적으로 구성해서 진행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연계기관(브로커)인 셈이다. 그리고 이외에도,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예술인/단체들과 교사들이 “예술을 통한 창의적 학습”을 보다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다양한 재교육프로그램들 (Continuing Professional Development: CPD)을 제공하고, 교사들이 직접 현장에서 진행하는 다양한 연구 작업들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끔 장려 지원하는 일 또한 CP 는 중점적으로 하고 있다.


작년 9월13일 자로 영국 일간지 ‘가디언 (Guardian)’에 특집 소개된 CP

그리고 그 외에 소속된 지방교육청 (LEAs) 등 지역사회 단체들과의 연계를 통해 CP에 참여하는 학교들 및 교사들은 물론 학부모와 지역사회 대표들이 함께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다양한 컨퍼런스와 세미나 등을 마련함으로써, 각 학교들이 CP와의 공동 작업을 바탕으로 시도해 온 창의적 교육의 기반 틀을 지역사회 내에서 자체적으로 구축할 수 있도록 자생력을 키우게끔 돕는 역할 또한 CP가 하고 있는 사업 중의 하나이다.

 

CP의 조직 구성과 운영 방식

CP는 현재 영국 ‘잉글랜드예술진흥원 (Arts Council of England: 이하 ACE)’에 총괄사무소를 두고 있으며, 각 시범지역마다 개별적으로 개설된 CP 지역사무소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각 지역 사무소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reative Director)를 중심으로 대개 3-4명의 직원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선별은 각 지역 출신 혹은 해당지역에서 예술 및 교육관련 활발한 활동을 해왔던 이들을 중심으로 지원을 받고, 이는 총괄사무소와 CP의 전체 사업을 조언하는 위원회의 최종 승인을 받아 결정된다. 또한, 학교 별로 대개는 예술교과[1]를 담당하는 교사들을 중심으로 CP 코디네이터를 지정하고, CP 코디네이터는 학교장과 더불어 CP와의 직접적인 연락과 의견교류를 담당하며 프로그램의 제반적인 진행을 돕는 일을 맡아 한다.

CP의 전체예산을 살펴보면 문화부(DCMS) 와 교육부(DfES)의 조인트 프로젝트라고는 하지만, 예산의 대부분은 문화부(DCMS) 에서 지원된다. 처음 CP가 세워진 2002년에는 2년간(2002-2004)의 시범 기간 동안 진행될 시범 사업을 위해 문화부에서 총 예산 4천만 파운드(?40million)로 지원했고, 16개 지역들은 시범기간 첫해에 각각 7십5만 파운드(?750,000)파운드의 예산규모로 사업을 시작했다. 이어서 2003년에 정부는 문화부를 통해 7천만 파운드 (?70million)의 추가지원을 약속했고, 2005년까지 시범지역을 20개 이상 확대할 것에 관한 계획을 발표했다. 2005-2006년 현재에는 문화부를 통해 3천2백만 파운드(?32million)의 예산이 추가로 지원되었다.

이에 반해 교육부의 재정지원은 전체예산의 5% 에 머무는 수준으로, 2003년-2004년에 2백만 파운드 (?2million), 2004-2005년 및 2005-2006년에 각각 2백5십만 파운드 (?2.5million) 정도만이 산정되었을 뿐이다. 이렇게 대부분의 CP 예산이 DCMS의 재정지원에 의존하고 있는 만큼, CP와 문화부는 재정지원합의서를 교환함으로써 문화부 예산이 효율적으로 운영될 수 있게끔 도모하는 장치가 마련되어 있다.

CP에 참여하는 교사와 학생들

지역적으로 말하면 CP는 영국 내 잉글랜드 지역에 한정된 사업이다[2]. 사회?경제적으로 열악한 환경을 가진 지역들을 중점적으로 2002년 16개 지역을 선정하여 시범 사업을 진행한 것이 사업의 출발이었다. 이어 2004년에는 9개 지역, 2005년에는 11개 지역이 각각 추가됨으로써, 2006년 현재 총 36개 지역으로 사업영역이 확대되었다. 각 지역별로 CP 사무소를 두고 지역별 대략 25개의 학교기관(유치원부터 초?중?고등학교, 대략 5세부터 18세까지)의 신청을 받아 협력해 오고 있다. 현재, CP에 참여하고 있는 학교와 학생의 수는 2005년10월 CP의 자체 집계결과 36개 지역 내, 5,119개 학교와, 392,265의 학생들로 집계되고 있으나, 이는 사실상 연도별 및 프로젝트 별로 중복된 학교와 학생들을 고려하지 않은 계산이다. 따라서 이 보다는 2005년 4월 행해진 문화부의 집계가 오히려 신뢰성을 가지는데, 이에 따르면, 총 1,043개의 학교들에 소속된 학생들과 20,552명의 교사들이 CP 활동에 참여해왔으며, 이중 13,394명의 교사들이 재교육프로그램(CPD)에 참여해 왔다고 한다. 이 역시 적지 않은 수이다.  


현재 CP가 진행되고 있는 지역 

참여 학교와 학생의 요구를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

CP의 경우, 예술과 교육의 효과적 결합방식을 설명할 수 있는 특정한 통합모델을 지정하고 있기는 하지만, 전 지역에 공통적으로 이 모델을 적용하는 식의 운영은 지양한다. 왜냐하면  해당 시범지역이 당면한 특성과 참여 학교별로 다른 각각의 요구와 필요를 가장 우선시하여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것을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술을 통한 창의적인 사고방식과 접근법을 정규교과과정을 통해서 실현한다는 근본적인 아이디어가 모든 프로그램의 기조가 되고 있다는 점에서는 동일하지만, 구체적인 프로그램의 구성은 이처럼 각 학교별로 다르게 마련되는 것의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따라서 실제로 CP의 작업들이 현장에서 이뤄질 때 창의성과 학교정규교과과목의 연결이 어떻게 드러나느냐의 문제는 지역별 학교별 특성에 따라, 또한 그 지역을 맡고 있는 CP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개인적 소견과 입장에 따라 다양하고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된다.

예를 들어 어떤 지역에서는 정규교과과정 중 특정과목 자체의 학습능력을 신장하기 위해 예술을 접목시킨 창의적 기법에 무게를 두는 직접적인 프로그램이 개발?진행되기도 하고, 어떤 곳에서는 학생들이 예술 활동에 참여하고 창작하는 경험에 주안점을 두고 마련된 프로그램들이 진행되기도 한다. 후자의 경우, 굳이 필요하지 않다면 특정 교과과정과의 연결은 보다 중요하지 않게 다루어지기도 한다. 즉, ‘창의성’의 배양이라는 기본 명제아래 지역별, 학교별 특성과 요청에 따라 창의성과 교육을 결합시키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시도되고 시행되고 있는 셈이다.

최근 CP는 그들의 전반적 활동 및 프로그램의 성격을  ‘창의적 학습 (Creative Learning)’이라는 용어로 설명한다. 그러나 이 개념은 CP의 활동과 프로그램의 성격과 의의를 잘 전달하기에 아직은 부적한 감이 없지는 않아, 더욱 보완되어야 할 필요가 여러 곳에서 느껴진다. 그러나 최근 창의성(Creativity)과 페다고지(Pedagogy)를 접목시킨 새로운 교육/학습방법론에 관한 활발한 연구가 이뤄지고 있는 영국 교육계의 새로운 추세와 창의적인 교수방법론을 ‘창의적 학습’이라는 용어로 설명하고 이를 교육현장에 적극 응용하려는 노력을 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에서 이 개념을 이해해 볼 수는 있다. 이러한 개념적 혼란은 CP가 문화예술과 교육을 연결하는 새로운 교육적 패러다임의 한 모델로서 자리매김을 하기 까지는 조금 더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을 하게 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CP가 영국 내에서는 전례가 없는 예술 활동과 공교육을 영역을 결합시킨 획기적 프로그램이라는 점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성과가 컸던, 그러나 장기 지속 여부는 불투명한

CP의 사업과 활동들은 무엇보다 사회경제적으로 소외된 지역을 운영의 중심으로 설정함으로써, 문화예술향유의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은 학생들로 하여금 다양한 예술경험에 대한 기회를 제공하였고, 이를 통해 학생들의 학습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왔다는 점에서, 2002년 시범사업 진행 이후 지금까지 특히나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 왔다.

하지만, CP가 처음부터 지속적인 사업으로서 기획된 것이 아니라, 2002 ? 2004년 2년간의 ‘시범사업’으로 시작되었다는 점은 약점으로 평가된다. 앞서 설명한대로, 정부의 추가지원을 통해 매년 사업의 확장이 이뤄져 오고는 있지만, 현재로서는 2008년 이후의 사업 지속 여부에 대해서, 아무것도 보장된 사항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 예술계나 교육계 안팎에서는 CP가 문화부의 예술교육 정책의 하나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예견도 적잖이 나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CP 각 지역사무소마다 제작하는 프로그램 관련 AV 자료들

지난해 필자가 버밍엄 CP를 방문했을 때, 공동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뢉 엘킹턴 (Rob Elkington)은 불투명한 CP의 미래를 두고, “앞으로 CP의 창의적 교육 모델이 교육부 정책의 하나로 받아들여져 모든 교과과정 내에 적용될 수 있게 되는 것을 희망한다.”는 이야기를 전했었는데, 현재로서는 뢉의 소망이 가까운 시일 내에 실현되기에는 어려운 점이 적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1997년 이후 영국의 교육정책은 교과과정 내에서의 창의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기획되었고, 각 급 학교들이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할 것을 장려해 온 것은 사실이지만, 이 역시 학습능력의 신장을 가장 우선시 하는 교육부의 보수적인 입장으로 인해, CP의 교육모델을 공교육 전반에 도입하기에는 적지 않은 어려움이 따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 CP는 각 학교가 CP와의 협력을 통해 그 동안 쌓아온 창의적 교육의 노하우 및 파트너쉽의 모델을 중간자의 개입(CP)이 없이도 학교와 예술단체들 간의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유대관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강조하고 있으며, 이와 관련하여 그간 CP의 활동이 프로그램의 종료와 함께 유실되지 않고, 학교와 지역사회 내 자체적인 파트너쉽이 자생적으로 이어질 수 있게끔 각 지역별로 다양한 출구전략(Exit Strategy)모델을 연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전략이 마련된다고 하여도, 이제 막 선보인 교육과 창의성의 통합형 모델인 CP의 사업과 활동들이 중간자적 역할을 담당한 핵심 주체인 CP없이 얼마나 성공적으로 유지 될 수 있을지, 나아가서는 안착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창의적 학습으로서의 CP의 활동과 프로그램이 앞으로 지속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많은 교사와 학생들이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마도 이 때문일 것이다. 많은 학생과 교사들로부터, 그리고 지역사회의 시민들과 교육 관련 업계 종사자들로부터 여러 부분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CP, 그리고 교육에 있어 창의성을 핵심에 둔 예술교육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효과적으로 보여 준 좋은 실험이기도 했던 CP. CP의 활동과 프로그램이 단기적인 실험만으로 그치지 않게 되기를, 지속 가능한 새로운 모델 계발로 이어지기를 필자 역시 바라게 되는 것은 역시 이들과 다르지 않은 맥락에서일 것이다.

 

 

[1] 음악이나 미술 혹은 영어과목 이나 체육. 드라마는 영어과목 내에, 무용은 체육과목 내에 편입되어 있다.

 

 

 

 

 

 

 

 

[2] 영국은 잉글랜드, 웨일즈,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 4개의 지역으로 나뉘어져 있다. 문화관련 정책의 경우, DCMS가 영국 전체를 총괄하기는 하지만, 4개 지역 각각 문화관련 지방자치 책임기관들을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