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쿄에서 1시간 가량 떨어진 항구도시 요코하마는 1960년대 후반부터 창조도시 사업을 통한 지역재생과 문화발전의 과제를 이루어내고 있다. 올해에는 요코하마 트리엔날레와 함께 특별 연계 프로그램들을 개최해 다양한 예술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 중 일본의 예술 NPO인 BankART1929에서 주최하는 현장인 [신·미나토 마을: 작은 미래 도시]를 중심으로 요코하마에서 이루어지는 활발한 예술현장을 소개하고자 한다.
[신·미나토 마을: 작은 미래 도시]는 어떤 프로젝트?
2011년 8월 6일부터 11월 6일까지 3개월에 걸쳐 진행된 이 대형 프로젝트는 국적과 장르를 망라하는 크리에이터들이 참여한 신기루와 같은 ‘미래 도시’ 현장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 전에 정비된 항구인 신 미나토 부두는 이곳에 남겨진 크레인들이 상징하듯, 항구로서의 기능은 거의 없어지고 새로운 세계로 향한 문을 열고자 하는 곳이다.
4,400㎡에 달하는 거대한 공간인 ‘신·미나토 마을’ 현장은 2008년부터 요코하마 트리엔날레 행사장으로 사용되었다. 올해는 이곳에 예술 NPO(비영리민간단체)인 BankART1929에서 국내·외 크리에이터팀이 작업하는 공동 스튜디오와 마을, 즉 ‘신·미나토 마을’이 조성된 것이다. ‘신·미나토 마을’의 내부 공간은 외부 공간과 잇대어 새롭게 휴먼 스케일의 거리로 조성됐다. 극장, 갤러리와 같은 공공시설이 있고 바다가 보이는 주택가와 2층 높이로 건설된 거리가 있는 이 공간은 동물원, 학교, 음식점, 상점, 이발소 등 새로운 형태의 전시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펼쳐지는 하나의 마을이다.
미술, 건축, 디자인, 패션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아트 이니셔티브 90개 팀 180명의 입주 아티스트는 3개월간의 전시기간 동안(전원 동시에 입주하는 것은 아님) ‘신·미나토 마을’의 주민이 되어 다양한 전시와 퍼포먼스, 공연, 각종 심포지엄 등을 개최했다. 이들이 펼치는 이벤트는 각자 독립적이지만 동시에 융합적이며, 서로 어우러지며 펼쳐지는 연쇄작용으로 전시장 전체를 공명시키고 있다. 지난 10월 28일부터 11월 4일까지 문화예술 사회적 기업 공공미술프리즘은 ‘신·미나토 마을’에서 전시에 참여하고 아트 이니셔티브 팀과의 토크 이벤트 참여, 관련 단체 및 아티스트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소통과 예술이 꽃피는 도시: 이케다 오사무 인터뷰
우리는 ‘신·미나토 마을’이라는 초대형 이벤트를 기획한 예술 NPO BankART1929(이하 뱅크아트) 이케다 오사무 디렉터(대표)를 만나 이번 행사의 취지와 의의를 알아 보기로 했다.
프리즘_안녕하세요! 먼저 뱅크아트가 어떤 곳인지, 대표님의 설명을 통해 듣고 싶습니다.
이케다 오사무(이하 이케다)_한 마디로 이야기하자면 뱅크아트는 ‘대안공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단체로서의 뱅크아트는 NPO 법인의 성격을 갖고 있죠. 요코하마에서도 많은 예산을 받고 있으며, 뱅크아트 자체에서도 운영을 위한 수익 창출을 하고 있습니다. 운영 주체는 민간이지만 시 지원을 받고, 도시 추진 사업이라고 하여 외부 의뢰를 받아 운영하는 사업을 맡고 있기도 합니다.
프리즘_뱅크아트에서는 어떻게 일을 하시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이케다_요코하마 시에서 ‘창조도시의 일환으로 요코하마 시를 만들어보자.’고 추진하였을 때, 2개의 건물을 운영하는 공모에 저희가 응모하면서 일을 하게 되었지요. 저는 물리화학을 전공하였고, 미술학부를 나와서 PH 스튜디오라는 팀을 만들어 활동했습니다. 저는 타다시 가타마타 씨와 함께 활동했는데, 팀을 만들고 나서 타다시 씨가 곧 미국으로 유학을 갔습니다. 하여 사무실과 멤버만 남은 상황에서 제가 대표를 맡아 팀을 이끌게 된 것입니다. 저희는 도시설계와 같은 일을 하는데, 그 안에서 도시 창조에 대해 이론적인 것보다 실질적인 실행을 하고 있습니다. 저의 경우, 도면 설계나 실제 건축 작업을 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A관에 있는 설치 공간은 제가 만든 것이지요. 처음 일을 할 때는 키타자와 프램이라는 대 프로듀서와도 함께 일했습니다. 그분이 도쿄 다이칸야마에 아트 프런트라는 갤러리를 가지고 있는데, 그곳의 디렉터로 같이 활동하기도 한 것이죠. 이렇듯 PH 스튜디오, 아트 프런트 갤러리 등에서 디렉터를 맡아 동시에 사업을 한 경험이 있어서 이것저것 일할 수 있었습니다.
프리즘_대표님의 개인적인 배경에 대해 말씀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렇다면 대표님께서는 ‘신·미나토 마을’의 기획 배경과 요코하마 트리엔날레와의 차이점에 대해서 어떻게 보고 계시는지요?
*편집자주: ‘신·미나토 마을’이 개최된 현장은 요코하마의 대표적 예술행사 요코하마 트리엔날레가 열리는 현장이기도 하다. 위의 질문은 같은 공간을 이용하는 다른 컨셉트의 예술행사에 대해 묻는 것이다.
이케다_요코하마 트리엔날레는 요코하마 시에서 주최하는 행사로 약 150억 원 정도의 예산을 가지고 진행됩니다. 그리고 ‘신·미나토 마을’은 민간 NPO인 뱅크아트가 주최하는 행사지요. 물론 입장 티켓을 갖고 있으면 이 행사장, 저 행사장을 모두 관람할 수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분리되어 있습니다. 또한, 요코하마 트리엔날레의 특징은 시립미술관 및 NYK(필자주: 뱅크아트 스튜디오가 있는 건물)와 같은 제대로 된 공간에서 작품을 전시하는 것이고요. 저희는 민간 운영답게 ‘네트워크’를 장점으로 3,000여 명의 아티스트와 함께 작업을 하였습니다. 저희는 이벤트를 통해 3,000개의 팀을 소개하고 싶었으며, 지금 보시는 ‘신·미나토 마을’은 장기간 축적된 그간의 네트워크를 압축해 보여드리는 것입니다. 이곳에는 새로 만나는 아티스트보다 그간 알고 지내던 많은 팀을 불렀습니다. 그간 신뢰가 쌓인 건축가와 함께한 이 공간 설계를 보시면, 보통 보시는 전시회 같지 않아 뭘 하는지 모르실 수도 있는데요. 그것이 저희의 의도입니다. ‘마을’을 보면 일관된 모습이 아니듯 이곳 역시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있습니다. 저희는 여러 분야 사람들이 먹고 사는 공간을 연출하고 싶었고, 그 일을 정신이 건강한 사람들과 같이 하고 싶었습니다. 여기 ‘신·미나토 마을’이 있는 3개월 동안 일어나는 일을 보여주는 것뿐만 아니라 그 다음 단계를 보여주는 것이 저희의 더 큰 목표였습니다. 그렇기에 앞으로도 요코하마 시에서 쓰지 않는 건물을 계속 이용할 예정이며, 그에 걸맞은 장기적인 계획도 세우고 있습니다. 이번에 전시한 작품은 각 팀에게 돌려주지만, 공간 설치부스는 저희가 계속 사용할 예정이기도 합니다.
프리즘_말씀하신 대로, 저희가 인상적이라고 느꼈던 것은 예술가뿐 아니라 분야를 넘나드는 다양한 사람들이 ‘신·미나토 마을’에 모여 소통하고 네트워크를 맺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과정이 살아있는 곳이어서 여기에서 배울 점이 많아 보입니다. 이런 기획을 하시게 된 배경을 바탕으로, 한국에서 이러한 일을 기획하는 기관이나 단체에게 조언해 주실 것이 있다면요?
이케다_제일 중요한 것은 지속적 교류를 계속해나가는 것입니다. 지역과 시간, 분야의 경계를 두지 않고 새로운 작업을 하고 있는 팀을 많이 찾아 만나고 그들과 지속적인 만남을 갖기 위한 이벤트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올해 11월 말 한국을 방문할 예정인데요. 그때 한 번 프리즘과 만남을 갖고 싶네요. 노리단도 방문할 예정이고요. 뱅크아트와 가까운 팀 중 타악기 팀이 있어, 광범위한 만남을 갖고자 합니다. 지금 저희가 서울문화재단과 함께하는 ‘속·조선통신사’는 음악과 미술을 같이 하고 있어, 그쪽을 좀 더 키워 나갈 생각입니다. 한국의 아티스트들과 친구가 되어 일본 각지에서 열리는 트리엔날레에 초대하고, 작업도 같이 하고 싶습니다.
프리즘_1주일간 많은 것을 배워갑니다. 초대해 주셔서 감사하고요. 전시 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케다_저희 또한 이렇게 방문해 주신 점에 감사드리고요. 앞으로 한국의 여러 팀과 같이 교류하였으면 합니다.
아날로그적 감성에 접속하다: 마쓰지 우시지마 인터뷰
‘신·미나토 마을’에서 만난 여러 아티스트와의 인터뷰 중 마쓰지 우시지마 씨의 인터뷰를 소개한다. 공개된 장소에서 작품을 만드는 그의 모습은 일종의 퍼포먼스와 같았다.
프리즘_마쓰지 씨를 보니 기술을 가진 장인과 같다는 느낌을 먼저 받게 되네요.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마쓰지 우시지마(이하 마쓰지)_제가 주로 하는 작업은 메커니즘을 이용한 예술창조활동입니다. 시간과 공간적 제공 하에서 철저하게 계획에 따라 움직이는 작업을 합니다. 예전에는 원초적인 조형물 작업을 했는데, 이론적이나 개념적으로도 재미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공작소년’이었던 어린 시절을 떠올려서 하고 싶었던 작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시작이 80년대 중반이고요. 처음에는 돌멩이 고유의 특성을 살리는 공작 작업을 시작했는데요. 그런 것들을 하다 보니 파고 들어 기계를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원래 예술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인데, 공작소에 가보니 내 작품이 꼭 쓸모가 있는 것은 아니라 해도 어떠한 부분에서 인정받는 것에 대해 희열이 있었습니다. 그런 단계에서 창조에 대한 기쁨보다는 만드는 과정에 기쁨을 느꼈고, 이런 과정이 분명 사회적 의의가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프리즘_기계 혹은 기술을 다룬다 해도 아날로그적 감성이 기반되어 있고, 그것에 공감하여 인터뷰를 하고 싶었습니다. 마쓰지 씨가 보시기에, 기술과 예술, 그리고 장인과 예술가는 현대 사회에 어떤 메시지를 전한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리고 마쓰지 씨가 생각하는 예술만의 영역은 무엇인지요?
마쓰지_가치의 다양성, 아닐까요? ‘No.1’도 중요하지만, 그런 것은 다른 사람이 정해 주는 것이잖아요. 자신이 정하는 최고, 그리고 다양한 표현방식이 있음을 주목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모든 사람이 합리성을 추구하는 현대 사회를 살면서, 다양성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가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예술만의 영역’이라……. 한때 저는 그 부분을 명료하게 정의 내릴 수 있는지 생각한 적이 있죠. 그러나 지금은 그 답을 찾기보다는 오히려 예술에 특별한 영역이라는 것이 존재하는지, 있다면 그것은 무너져도 괜찮은 것인지를 항상 생각하며 작업합니다.
프리즘_현재 하고 계신 작업은 뭔가를 만드는 공정입니다. 어떤 것을 만드시는지 궁금하고요. 그리고 제작 과정을 공개적인 장소에서 보여주는 것을 일종의 퍼포먼스로 해석해도 되는지도 궁금합니다.
마쓰지_인간은 뭐든지 움직이게 할 수 있고, 뭐든지 만들 수 있으며, 그렇게 만들어진 동력은 또 다시 사람을 움직이게 합니다. 즉, 사람의 가능성을 이용해 결국은 타인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작업이지요. 저는 전시회에 완성된 작품을 출품하는 것에 한계를 느꼈고, 아예 공방을 ‘신·미나토 마을’로 옮기자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만드는 것은 타고 움직이는 것인데요. 자전거 형태의 작품을 만들게 된 것은, 미술에 대한 개념을 탈피하고 일반인에게 가깝게 다가오는 소재를 채택하고자 해서입니다. 그리고 과정을 보여주는 것은 퍼포먼스이기보단 말 그대로 과정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퍼포먼스는 일종의 연기를 하는 것이지만, 제가 하는 것은 일상이기 때문에 사람들과의 커뮤니케이션, 소통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침착하게 현실을 받아들이고,
철저하게 미래를 준비하다
‘신·미나토 마을’의 기획 배경이나 전시된 작품, 공연, 퍼포먼스에는 올 3월 동일본지진과 원전사고에 대한 주제가 많이 언급되고 있었다. 거의 매일 저녁 개최된 심포지엄을 통해서는 보다 이성적이고 대안이 될 수 있는 해결 방법과 미래에 대한 고민을 공유했다.
여기서 다뤄진 주제를 살펴보면, ‘재해에 대한 행동으로는 무엇이 가능한가? 희망 가득한 마을 건설을 위하여’, ‘아웃 오브 프레임_ 재난영화의 현실’, ‘앞으로의 건축가 교육을 생각하자_이토 토요 건축 아카데미’ 등 다양한 것을 알 수 있었다. 자연재해를 겪은 후, 일본인은 그들이 가고 있는 길이 과연 옳았던 것인지 고민하고 있으며, 사회에 조금 더 보탬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전시장을 벗어나 거리에서 볼 수 있는 시민과 풍경에선 자연재해의 흔적이나 고민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침착하고 평온했지만, 매일 저녁 열띤 토론의 장이 열리던 ‘신·미나토 마을’에서는 미래를 준비하는 철저한 모습과 사고에 대한 이성적인 분석이 있었다.
요코하마는 과거 개항시대부터 일본 내에서 가장 먼저 서구 문물을 받아들인 곳이다. 이처럼 이곳은 언제나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열리는 이러한 이벤트는 물론 시 차원에서 정책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기도 하지만, 사람들의 참여로 예술의 다양한 영역을 실험해 보고 함께 나눌 수 있는 열린 장이 펼쳐진 것이기도 하다. 이 모든 모습이 요코하마 시의 역사와 닮은, 이곳의 숙명은 아닐지 생각해 본다.
기획.진행.취재.원고.사진_ 공공미술프리즘 유다희·구수현·유한나
통역_ 구인모(요코하마 국립대학교 대학원)
기사가 좋았다면 눌러주세요!
코너별 기사보기
비밀번호 확인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