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저기 가보자!” 아이 손에 이끌려 ‘예술체험 박람회’ 현수막이 펄럭이는 공간에 발을 들인 엄마는 “시윤아, 이것도 해 봐!”하며 어느새 아이보다 더 적극적이 되었다. 시종일관 ‘챠르르’ 트라이앵글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오고 ‘이건 뭐예요? 어떻게 하는 거예요?’ 질문이 끊이지 않던 한옥마을의 한 켠. <2014 세계문화예술교육 주간>의 전북 행사 ‘예술체험박람회’의 현장은 봄을 잊은 낮만큼이나 뜨거웠다.

 

세계문화예술교육 주간 전북예술체험박람회

 

전라북도에는 우리 전통을 물씬 느낄 수 있는 전주 한옥마을을 비롯해 전주국제영화제, 민속예술축제 등 다양한 프로그램과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이렇게 풍부한 문화예술의 경험과 자원으로 채워진 전북에서의 예술체험 박람회는 어떤 풍경일까. ‘어린이, 청소년은 물론 학부모와 일반시민이 참여할 수 있는 문화예술교육 체험 프로그램으로, 예술적 경험을 함께 나누는 장이 펼쳐진다’는 슬로건 아래 총 다섯 개의 체험 부스가 마련된 박람회를 찾았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세모난 바람(바람에도 소리가 있네?!」 부스였다. 트라이앵글이 빼곡하게 걸린 방에 들어가 손으로 트라이앵글을 쓸어가며 지난다. 그 속에 ‘스파이더맨’, ‘영어’, ‘여름방학’, ‘겨울왕국’, ‘양치질’ 등의 수많은 단어가 매달려 있고, 단어들과 세모난 바람의 소리가 준 느낌을 엽서에 적어 그리운 이에게 보낸다. 이일순 작가는 ‘보이지 않는 바람을 소리로 느끼며 잠재되어 있는 공상, 상상의 이미지들을 꺼내보자’는 의도로 이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체험을 마친 아이가 엄마에게 “‘루돌프’가 하늘을 달릴 때 나는 소리 같았어.”라고 한 말이 바로 작가가 꿈 꾼 예술체험이 아니었을까.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루돌프의 발걸음을 떠올릴 수 있는 것.

 

세모난 바람(바람에도 소리가 있네?!
세모난 바람(바람에도 소리가 있네?!

세모난 바람(바람에도 소리가 있네?!

 

「저희가 처리해드립니다」 부스는 사진관이다. “사진 찍을 때 사진사가 ‘웃으세요’라는 말로 그 사람의 감정을 유도하잖아요. 이 곳에서는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 느껴가는 과정을 사진으로 찍어서 전달해 줍니다. 자신이 주체가 되어 함께 작업을 완성해 가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목표입니다.” 감정을 교류하는 것만으로도 하나의 예술이 될 수 있음을, 그래서 예술이 결코 어렵고 복잡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장근범 작가는 알리고 싶다고 했다. 참여자는 인화된 OHP에 자신의 감정을 글로 적어 내걸어두는 것으로, 관객과 작품을 공유한다.

 

저희가 처리해드립니다
저희가 처리해드립니다

저희가 처리해드립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보다」 의 부스에는 참여자들이 직접 색을 칠하고 종이를 붙인 종이컵이 가득 걸려있다. 컵에는 몽글몽글한 씨앗들이 심겨 있는데, 이 씨앗들이 뿌리를 내릴 곳은 흙이 아닌 ‘폐지’다. 싹을 틔울 수 있을까?. 고보연 작가는 폐지에 씨앗을 심고, 자라는 것을 관찰하는 동안 자연의 소중함과 버려지는 것의 가치를 되새겨보고자 이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참여자는 컵에 자기 이름을 큼지막이 적는다. 씨앗의 세계를 만든 자신이 그 세계를 소중히 지켜가야 한다는 것을 아이들은 이름을 적으며 깨달았을 것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보다

 

「sacrifice 20140416 848AM」, 세월호 사고를 상징화한 임택준 작가의 작품이었다. 바닥에는 노란색 배가 그려있고, 참여자는 경건한 마음으로 1초간 묵념을 한다. 그리고 노란 종이에 애도의 마음을 담아 적고, 종이배를 접고 파란 띠에 묶어 하늘에 띄운다. 잊지 않을 것임을 다짐하고 약속하는 마음들이 엮여 작품을 이루었다. 특히 박람회장 앞에서 진행된 퍼포먼스에는 수많은 사람이 예술로 승화한 순간을 함께 했다.

 

sacrifice 20140416 848AM
sacrifice 20140416 848AM

sacrifice 20140416 848AM

 

마지막 부스인 이상훈 작가의 「불편함 뒤에 오는 질문?」은 참여 안내에 대뜸 ‘참여를 원하지 않는 관람객은 접근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입구는 ‘들어가던, 말던…’이라는 말로 참여자를 언짢게 했다. 통로로 들어서면 어둡고, 비좁고, 울퉁불퉁한 길이 이어진다. 겨우 밖으로 빠져나오면 변기 위에 앉은 작가가 다짜고짜 묻는다. “기분이 어때요?” 예술이 달콤하고 사랑스러운 것만은 아니며, 얼마나 많은 고민과 숱한 감정을 표현해 내는 것인지, 예술의 또 다른 면을 알게 해주고 싶은 것이 그의 의도였다. 그의 변기는 뒤샹의 ‘샘’을 패러디한 것이었다. 꼭 ‘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더라도, 예술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불편함 뒤에 오는 질문?
불편함 뒤에 오는 질문?

불편함 뒤에 오는 질문?

 

시간이 흐를수록 예술체험 박람회장을 찾는 사람들이 늘었다. 그들은 세모의 바람을 느끼기도 하고 불편한 통로를 지나기도 했다. 그 행위들은 ‘예술적’이라는 느낌보다 ‘이게 예술이라고?’하는 의아함으로 다가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국 예술의 시작이 호기심이고, 감정의 공유라는 것을 체험하며, 깨닫지 못한 사이 예술 작품을 만들고, 예술가가 된 것이다. 해가 기우는 오후까지 박람회장을 가득 메운 발걸음이 일상을 일으키는 힘, 문화예술교육의 내일을 보여주고 있었다.

 

문화예술교육의 내일을 만드는 사람들

 

예술작업이 곧 문화예술교육의 한 방법


이번 행사는 어떤 행사인가요?

구혜경 (전북 예술체험박람회 디렉터): 전북지역은 지역 규모에 비해 문화예술교육을 하는 사람이 많은 편입니다. 그런 문화적인 컨텐츠를 활용해서 예술가의 예술작업이 문화예술교육의 하나의 방법임을 보여주는 것이 목표였어요. 그래서 자신만의 작업을 오랜 기간 충실히 해왔고, 거기에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의식이 있는 작가들의 작업과 문화예술교육을 자연스럽게 연결하고자 했습니다. 최근 5~6년간 정체된 형태를 보이고 있던 문화예술교육이 오늘의 행사를 통해 새롭게 접근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기대합니다.


예술체험박람회에 참여한 작가들은 어떤 기준으로 섭외하였나요?

구혜경: 다양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설치, 회화, 사진 등 분야별로 찾아봤어요. 특히 공간을 중심으로 작업하는 작가 중심으로요. 예를 들어 고보연 작가는 본인의 작업이 그대로 문화예술교육으로 넘어온 만큼 그의 예술성을 사람들이 경험하는 것만으로도 교육과 연결 짓게 되는 거죠. 이상훈 작가의 경우 공간에 대한 감각이 있어서 그 공간의 경험을 통해 문화예술교육이 무엇인지 고민할 수 있고, 이일순 작가는 실생활에서 자주 보는 사물을 통해 향수와 추억 등을 예술과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까 질문을 던지죠. 자기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지만, 이번 계기로 작가들 스스로도 공부가 많이 되었다고 해요. 미팅을 어마어마하게 했거든요.(웃음) 재미있었어요.


왜 전주 한옥마을인가요?

구혜경: 고민을 많이 했어요. 이곳은 전라북도는 물론이고 전국적으로 유명한 도심 관광지잖아요. 이미 많은 체험과 전시 프로그램을 갖추고 있고요. 그래서 다른 곳에서 하는 것이 나을까 고민했지만 오히려 이곳만이 가지고 있는 일상, 전통예술과 결합되면 좋겠다고 생각해 결정했어요. 오목대 밑이라는 공간도 마음에 들었고요. 예술작가의 작품을 체험하는 이 박람회가 단순한 한 번의 체험이 아니라 마음에 오래 남을 수 있는 체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구혜경
임진아
장근범

구혜경, 임진아 팀장, 장근범

 

일상과 놀이로 다가가는 예술교육


이번 예술체험박람회가 참여자들에게 어떤 의미로 전달되었으면 하나요?

임진아 팀장 (전북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박람회를 기획하며 늘 생각했던 키워드가 ‘일상’과 ‘놀이’입니다. 집에서도, 친구들과도 충분히 할 수 있는 것인데 ‘문화예술교육’이라는 말을 거치면 왠지 어렵게 느껴지지요. ‘문화’나 ‘예술’은 예술가가 하는 것이고 그것을 향유하는 것은 전문가나 특수 계층이라는 선입견이 있잖아요. 반면 ‘교육’은 보편적 입장이긴 하지만 프로그램에 돈을 내고 참여해서 체험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강하죠. 이 예술체험박람회에서는 트라이앵글이 아이들에게 어떤 감성을 일깨워주고, 배와 같은 조형적인 도구가 어떤 예술적인 작용을 하는지 느낄 수 있길 바랍니다. 아, 이것이 작가의 감성이구나, 수업시간에 썼던 것으로 어떻게 이런 감성을 담아냈을까 하는 놀라움을 가졌으면 해요. 그 감성들이 일상과 연결되어 있고,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어요.


세계문화예술교육 주간의 프로그램으로 진행된 이번 예술체험박람회는 어떤 마음으로 준비하셨나요?

임진아 팀장: 무엇보다 다섯 명의 작가와 함께 할 수 있다는 것과 이들의 작품을 시민들과 함께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이 기뻤어요. 토요문화학교나 지역특성화 작업과 같은 지원 사업이 아니더라도 작가들의 예술성을 보여주면 그것이 바로 교육과 이어질 것이라는 생각은 늘 갖고 있었는데, 이번 기회에 이루어지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박람회를 준비하면서 회의를 정말 많이 했는데요. 작가들이 자신의 프로그램이 단순한 문화향유에 그치지 않고 어떤 교육적 영향이 있을지에 대해 많이 고민했고, 저희들의 문화예술교육적인 측면을 함께 접목시켜가며 조화를 이루어가는 그 과정이 즐거웠어요. 그런 고민과 노력이 잘 전해졌으면 합니다.

 

대화하는 예술가, 감정을 교류하는 예술가, 공존하는 예술가


이번 작품의 주제는 무엇인가요?

장근범 (「저희가 처리해 드립니다」 프로그램 작가): 감정을 서로 교류하는 것이에요. 대화라는 것이 서로의 언어가 달라도 몸의 언어로 가능한 것처럼 사람의 감정을 공유해 보는 것이 어떨까. 그래서 네 가지 감정인 ‘희, 로, 애, 락’을 작은 에피소드로 나누어서 그 관계를 만들어보고 싶었습니다.

기획부터 완성까지 얼마나 걸렸나요?

장근범: 한 달 반에서 두 달 정도 지속적으로 진행해왔어요. 다른 작업에 비해 준비 기간이 길었고, 회의도 충분히 했어요. 내용에 대해 공유하고 장단점을 여과 없이 나누며 진행해왔기 때문에 무리도 없었고, 결과도 좋았던 것 같습니다.

세계문화예술교육 주간이 작가님에게는 어떤 의미인가요?

장근범: 이 날을 정해서 모두가 문화예술교육에 대해 생각할 수 있고, 고민할 수 있는 시기라고 생각해요. 문화예술교육이 잘 이루어지고 있다고 하지만, 제한된 지역의 활동일 수도 있어요. 그러나 넓은 범위에서 이런 내용을 소개함으로써 학부형들이 이 활동에 좀 더 관심을 가질 수 있고, 일반 시민이 문화예술교육의 범주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는 데에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그동안 주로 어떤 활동을 했나요?

장근범: 지역에서 가족과 관련된 다큐멘터리 사진작업을 하고 있고, 문화예술교육 활동을 하고 있어요. 저에게 문화예술교육 활동은 ‘실천’같은 거예요. 내 작업을 하는 것도 좋지만 아이들을 만나서 문화예술교육의 가치를 공유하는 것이 필요해요. 저의 경험에 비추어보면 형편이 좋지 않을수록 문화예술과의 거리가 멀어지기 때문에 센터 활동보다는 방과후교실 등에서 아이들을 만나는 편입니다. 그 친구들 중에는 분명 꿈이 있고 재능이 있는 친구들이 있을 테니, 내가 조금 더 움직이면 그 친구들을 만날 수 있고, 그런 의미에서 작업과 겸해서 교육활동을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되었습니다.

어떤 아티스트가 되고 싶으세요?

장근범: 대화하는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사회나 어떤 문제들에 대해 나의 생각은 이러한데, 당신들의 생각은 어떠한가요?’라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그리고 그런 대화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길 바라요. 예술의 힘이 세상을 아름답게 바꾼다기보다 공존하며 건강하게 살아가는 단단한 힘이라고 생각해요. 나보다는 모두가, 우리가 다 같이 살 수 있는 에너지를 줄 수 있는 그런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글_ 최민영

사진_ 김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