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의 길 위에 경사로 놓기

모두의 예술교육⑧ 예술교육에서의 접근성

발달장애 또는 자폐 스펙트럼, 신경다양인으로 불리는 아동, 청소년들과 경기도 북쪽 연천군에 창작공간을 마련해 함께 시각예술 작업을 하고 있다. 2025년에는 경기문화재단 지역문화 활성화 사업으로 다양성을 담는 넉넉한 예술이라는 의미의 시각예술 교육 프로그램 <넉넉>을 진행했다. <넉넉>에는 이미 자신의 그림 언어를 가지고 있는, 시각예술 분야에서 자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바가 분명한 사람과 아직 그렇지 않은, 자신만의 무엇을 발견하지 못한 또는 크게 흥미가 없어 보이는 사람이 같이 지원했다. 후자의 그룹을 관찰하게 된 이야기다.
  • 창작공간ㄴㄴ(니은니은) 외부
우재만의 가을 감각하기
우재(가명)는 초등학교 5학년이다. 프로그램이 시작되는 첫날, 부모님과 함께 프로그램이 진행될 공간 근처에 이르자 들어오기를 거부했다. 우재의 입장에서는 당연했다. 어떤 것이 튀어나올지 모를 낯선 공간과 사람들, 평소의 토요일과 다른 일정, 부모님과 내가 괜찮다며 건네는 의심스러운 말들, 어른들이 괜찮다고 했지만 괜찮지 않았던 순간들이 얼마나 많았겠는가. 다들 웃고 있지만 그것은 들어가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일뿐. 우재가 들어가기 싫은 이유는 충분했다. 나도 그의 의견에 동의했다. “그럼, 우리 들어가지 말고 다른 데 가자.” 이럴 때를 대비해 프로그램에 주강사를 두 명으로 정했다. 우재와 부모님 그리고 나는 공간의 반대편으로 산책길을 나섰다. 약간 빠른 걸음으로 30분 정도 주변을 걸었고, 우재가 땀을 흘리고 쉬고 싶을 무렵 다시 공간으로 들어가기를 제안했을 때, 그때는 들어갈 수 있었다.
그렇게 들어오긴 했지만, 프로그램과 공간, 같이 하는 멤버들에게 적응하기까지는 훨씬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우재는 프로그램 내내 소리를 지르거나 자기 손을 깨물거나 울었다. 그때마다 진정이 될 때까지 공간에서 나와야만 했고, 프로그램 내내 들락날락만 하다가 집에 가야 했다. 우리가 만난 지 3개월쯤, 16차시 프로그램의 10차시를 지나는 무렵 변화를 관찰할 수 있었던 순간이 있었다. 이 또한 산책 중에 일어났다. 그날 프로그램은 가을날을 감각하며, 주변의 자연물을 채집해 표현하는 것이었다. 2주 전부터 산책, 채집, 표현으로 이어지는 활동을 해왔다. 그때마다, 우재는 산책에서 채집으로 넘어가지 않고 ‘딴짓’을 더 많이 했다. 예를 들면, 낙엽이 쌓인 더미를 발로 뻥 차기, 바위 위에 올라가 점프하기, 동갑내기 친구를 따라다니기, 흙먼지 터는 기계로 바람을 발사하기, 물웅덩이에 돌 던지기. 우재만의 가을 감각하기를 지켜보는 것도 흥미롭고, 재밌었다. 낙엽을 차 발로 가을을 감각하는 새로운 방법을 배웠다.
  • 우재가 나뭇잎을 만지는 모습
무수히 많은 갈색과 초록색 점
이와 비슷한 시간 보내기를 3주째쯤 했을 때, 주변의 형과 누나들이 나무에서 무언가 채집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는지, ‘같이 해보자’는 말이 드디어 들리기 시작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우재는 어떤 나무 앞을 서성이고 있었다. 자신도 뭔가 해보려는 것 같았다. 그런데, 왠지 망설이고 있었다. “우재야, 왜?”라고 물었을 때, 들린 말이 아직도 놀랍다. “무서워요.” 그간의 여러 가지 어려운 행동들은 이해할 수 있었는데, 이 말은 어려웠다. 날벌레 같은 게 있는 것도 아니고, 서 있는 나무 하나 덩그러니 있는 곳에서 그는 긴장한 표정이었다. 나는 무슨 생각이었는지, 나뭇잎을 손으로 만지며 “괜찮아.”라고 말했다. 나중에 이 말이 참 후회스러웠다, “무섭구나.”라고 말해 주었으면 좋았을 것을. 거짓말 같은 괜찮다는 말밖에 모르는 어른인 게 부끄러웠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우재는 자신도 해보고 싶은 마음이 올라왔는지, 다른 곳으로 피하는 대신 자기 옷소매를 늘어뜨려 나뭇잎을 잡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산책에서 돌아오는 길에 비로소 ‘무섭다’의 의미를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다. 나무는 큰 가지에서 잔가지가 나와 이리저리 뻗어있고, 가지마다 나뭇잎이 무수히 달렸으며 색깔 또한 갖가지다. 그러한 나무의 불규칙함, 비정형적 형태감의 시각적 정보가 그에게는 자세하게 읽힐 수 있다. 우재의 눈의 감각은 적당히 시각 정보를 거르고 갈색의 기둥 위의 초록이 얹어진 큰 그림으로 전해주기보다 무수히 많은 작은 갈색과 초록의 점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살아 움직이는 거대한 존재로 뇌에 전달하고 있을지 모른다. 흔히 영화에서 나오는 외계 생물체의 진득한 액체가 흐르는 피부색이나 파충류와 비슷하게 묘사되는 괴물처럼 말이다. 그의 무섭다는 다른 누군가의 ‘어지럽다’나 ‘징그럽다’일지도 모른다. 어디까지나 짐작이다. 이 일을 통해 우재의 시각적 감각과 그가 프로그램에 동참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우재는 어느새 함께 걷는 무리와 섞여 자신도 새로운 것을 시도해 보고 싶은 마음이 생긴 것이다.
  • 채집한 자연물을 이용한 도예 활동
함께 밥 먹고 다시 시작
이 그룹에서 같이 참여하는 율이(가명)도 초등학교 5학년이다. 율이는 프로그램에 처음부터 크게 거부는 없었지만, 적극적으로 참여도 안 했다. 빙글빙글 주변을 맴돌거나, 착석을 요구하면 앉기는 했지만, 몸을 돌려 창밖을 쳐다봤다. 집중이 어려웠고, 자주 밖으로 나가 흔들 그네에 앉아 있다가 들어오곤 했다. 종이와 크레파스를 주면, 면을 부분부분 채색하는 모습이 있었지만, 내가 제안하는 것을 수용하거나 시도하는 모습은 없었다. 창작을 목표로 기획한 프로그램에는 동시에 창작하지 않을 자유도 있어야 했다.
또 하나 율이의 특이한 행동이 있었는데, 입에 침을 모으고 있었다. 새로운 공간에 들어온 것이 너무 긴장되어 침을 삼킬 수 없었는지, 무언가 참고 있어 그런지 입에 침이 고여 넘칠 것 같으면 화장실로 가서 뱉고 왔다. 율이도 우재 못지않게 자주 들락거렸고, 두 사람이 번갈아 몇 번 들락날락하면 프로그램을 끝낼 시간이었다. 참여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화장실로 도피하기 위해서 잔꾀를 쓰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나의 어릴 때 경험이 생각나 율이가 안쓰러웠다. 나는 택시를 타면 났던 가죽 시트 냄새, 기사님의 담배 냄새, 뭔가 골라내기 힘든 특유의 그 냄새가 불쾌했고, 침을 삼킬 때면 그 냄새를 같이 삼키는 것만 같아 침을 넘길 수가 없었다. 택시 뒷좌석에 앉아 창문이라도 열라치면 어른들은 장난치지 말라고 했고, 침이 고인 나는 아무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자동차를 많이 타면서 자연스럽게 불쾌감도 무뎌지고, 침 모으기도 없어졌다. 율이도 그때의 나처럼 숨을 쉬려고 자주 나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무엇 때문인지 이유는 모르지만,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은 짐작할 수 있었다. 다행인 것은 율이가 점심시간을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프로그램을 진행하면 할수록 좀 더 자연스럽게 공간에 길게 머무는 시간이 필요함을 느꼈고, 그러려면 먹어야 했다. 공간 창고 쪽에 마련한 간이 주방에서 밥도 짓고, 국도 끓이기 시작했다. 주객이 전도되는 것이 아닌가, 예술 프로그램인가 식당인가 하는 기우도 있었지만, 참여자들도 나도 먹는 것에 마음을 쏟는 만큼 이 프로그램에 더욱 진심이 되어감을 느낄 수 있었다. 율이는 점심 메뉴에 관심이 많았고, 같이 먹는 시간을 기다렸다. 아니, 모두가 그랬다. 놀라운 것은 율이는 밥을 먹고 나면 무언가 그림을 그리거나 만들려고 했다. 율이뿐만 아니라 여러 참여자가 그랬다. 프로그램이 끝나 점심을 먹었는데, 다시 프로그램을 시작하는 모습이었다. 오히려, 더 자유롭게. 마음이 배에 있었던 것인가 생각하기도 했다. 이후 율이는 점점 자연스럽게 다른 참여자들과 어울리며 적극적으로 시도하고 표현하게 되었다.
장애 아동의 예술교육에 대해 여전히 모르는 것투성이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을 통해 접근성으로서의 환경 조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다양성을 포용하는 너그러운 예술은 한 사람이 가진 고유성을 지지하며, 사람마다 다른 선택지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러한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다. 하지 않을 자유와 함께 달리 시도할 만한 다른 선택지가 주어져야 한다. 나는 다른 선택지에 ‘함께 걷기’와 ‘함께 먹기’를 넣었다. 또 다른 누군가를 만나면 ‘함께 두드리기’ ‘함께 땅파기’를 할지도 모르겠다. 한 사람 안에서 창작의 욕구가 일어나는 때도, 욕구가 표현에 이르는 길도 사람마다 다르다. 그 길에 경사로를 놓고 기다리는 한 사람이 되고 싶다.
  • 율이(왼쪽)와 우재(오른쪽)의 낙엽 그림
이희원
이희원
세 자녀 중 둘째의 발달장애를 알게 되면서 ‘인간의 다양성’이라는 광활함의 면면을 관찰 중이다. 장애와 예술에 대해 말하고 쓰기를 좋아한다. 연천군에 ‘창작공간ㄴㄴ’을 만들고 장애·비장애 통합 문화예술 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이음온라인 기획위원이다.
창작공간ㄴㄴ 인스타그램 @creative.space.nn
사진제공_이희원 작가·창작공간ㄴㄴ 대표
5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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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이보스 2026년 02월 23일 at 7:03 PM

    아이들을 상상하며 글을 읽다보니,
    정성스런 눈길로 아이들을 따라가다보면
    아이가 할수있는 것도,시작할수있는 것도 찾을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드네요
    희망적이고 따뜻한 글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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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퓸 2026년 02월 24일 at 12:08 PM

    접근성을 환경이나 제도 차원으로만 생각해왔는데, 이 글을 통해 ‘기다려주는 사람’ 자체가 접근성일 수 있다는 걸 배웠습니다. 함께 걷고 함께 먹는 시간이 예술이 되는 장면이 인상 깊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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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pamia 2026년 02월 24일 at 12:11 PM

    우재의 ‘무섭다’는 말과 율이의 침 모으는 장면이 마음에 오래 남습니다. 우리가 쉽게 넘겨버리는 감각을 이렇게 세심하게 바라봐 주는 어른이 있다는 것이 큰 위로로 느껴졌습니다.
    표현의 길 위에 경사로를 놓는다는 말이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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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양남 2026년 02월 27일 at 1:10 PM

    표현의 길 위에 경사로 놓기
    모두의 예술교육⑧ 예술교육에서의 접근성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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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기현 2026년 02월 27일 at 2:10 PM

    표현의 길 위에 경사로 놓기
    모두의 예술교육⑧ 예술교육에서의 접근성
    기대만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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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이보스 2026년 02월 23일 at 7:03 PM

    아이들을 상상하며 글을 읽다보니,
    정성스런 눈길로 아이들을 따라가다보면
    아이가 할수있는 것도,시작할수있는 것도 찾을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드네요
    희망적이고 따뜻한 글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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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퓸 2026년 02월 24일 at 12:08 PM

    접근성을 환경이나 제도 차원으로만 생각해왔는데, 이 글을 통해 ‘기다려주는 사람’ 자체가 접근성일 수 있다는 걸 배웠습니다. 함께 걷고 함께 먹는 시간이 예술이 되는 장면이 인상 깊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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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pamia 2026년 02월 24일 at 12:11 PM

    우재의 ‘무섭다’는 말과 율이의 침 모으는 장면이 마음에 오래 남습니다. 우리가 쉽게 넘겨버리는 감각을 이렇게 세심하게 바라봐 주는 어른이 있다는 것이 큰 위로로 느껴졌습니다.
    표현의 길 위에 경사로를 놓는다는 말이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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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양남 2026년 02월 27일 at 1:10 PM

    표현의 길 위에 경사로 놓기
    모두의 예술교육⑧ 예술교육에서의 접근성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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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기현 2026년 02월 27일 at 2:10 PM

    표현의 길 위에 경사로 놓기
    모두의 예술교육⑧ 예술교육에서의 접근성
    기대만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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