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과 공동체가 자라는 씨앗

오늘부터 그린㊹ 관계망으로 잇는 농생태적 생활

제주에서 나는 ‘씨앗매개자’로 살아간다. 씨앗매개자란 생태적인 삶을 위해 지금 함께 지켜가야 할 유무형의 씨앗들을 여러 영역으로 연결하며, 각자 가능한 일과 삶의 방식으로 그것을 가꾸어 가는 사람들, 그 모두라고 생각한다. 씨앗이 품은 이야기, 그 기억을 이어온 사람들과 공동체적 관계망을 다음 세대에게 건네는 일. 그 일을 ‘내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계속 해 보려는 사람이다. 그 바람을 업으로 짓기에는 녹록지 않았지만 분명했던 건 세상의 기준보다는 내가 살고자 하는 방향으로 삶을 지어가겠단 결심이었다. 그 마음이 내 삶을 밀고 당기는 과정에서 ‘씨앗매개자’라는 정체성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
불안정 속에서 일궈낸 가치
조금 냉정히 말하면 농사에는 농지가 기본인 것처럼 내가 원하는 방향에 갖춰야 할 조건들은 동시에 한계가 분명했고, 씨앗을 이어받는 농(農) 그 자체로써 농사를 짓는 일은 늘 불안정했다. 안정적 농지 사용이 보장되지 않는 2~300평 남짓한 밭을 옮겨 다녀야 했다. 씨앗을 심어 가꾸고, 부엽토와 음식물 찌꺼기로 퇴비를 만들어 흙을 만들고, 토양이 좋아질 만하면 또 떠났다. 그렇게 기계 없이 두 손으로 밭을 일궈온 10여 년의 세월. 밭 상황이 어려울 때는 중산간에서 꿩마농(달래의 제주어)이나 고사리를 채집해 ‘언니네텃밭(여성농민생산자협동조합)’ 꾸러미에 담았다. 농사일에만 몰두하던 시절 가장 큰 밭은 500평 정도였지만, 제주 섬에 작은 농지의 현실은 농업보다 부동산의 시간표에 가깝게 움직였다. 노력이 무색하게 내가 원하는 속도와 방식의 삶은 늘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그 불안정한 상황의 시간 동안 가장 선명하게 남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자연의 순환과 생명의 감각’이었다. 흙을 만지고 땀을 흘리며 몸으로 체득한 경험들은 ‘예술의 언어’가 아닌 다른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웠다. 어쩌면 ‘땅을 소유하지 않아도 씨앗을 이어갈 수 있다’는 격려와 응원이 필요했다. 그렇게 씨앗에서 식탁까지 이어온 텃밭 생활을 기록해 2020년 독립책 『일상의 씨앗들』로 엮었다. 이 책은 누군가를 위한 안내서이기 전에, 나에게 보내는 위로였다. 이후 감사하게도 작은 정원이 딸린 집을 만나 텃밭정원을 가꾸며 점차 내가 어쩔 수 없었던 한계들에 대한 마음도 조금씩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리고 지역 여성농민회, 언니네텃밭, 자연그대로 농민장터 같은 농공동체에서 맡은 역할에 힘을 더하며, 더 넓은 ‘우리’의 감각을 배웠다. 이제는 내 삶만 지키는 것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같이 살아갈 가치를 넓히는 쪽으로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다.
씨앗에서 공동체로
지역과 관계 맺으면서 텃밭정원을 가꾸는 일은 개인의 취미를 넘어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해 일상생활을 생태적으로 전환해가는 과정이 될 수 있다. 오래 이어져 온 씨앗들과 직접 키운 모종을 심고, 빗물을 모아 활용하고, 음식물 찌꺼기를 퇴비로 만들고, 수분 매개자를 위한 꽃을 심는 일 등. 텃밭정원에는 거창한 선언보다 공존의 작은 기술들을 손에 익는 과정이 함께 한다. 2024년부터 나는 ‘자연그대로 농민장터’에서 오랜 인연을 맺어온 선생님을 퍼머컬처(Permaculture) 전문 강사로 모시고, ‘제주생태텃밭학교’ 교육 과정을 운영 중이다. 농지 없는 누구라도, 혹은 농지가 있더라도 흙과 관계를 다시 배우고, 스스로 먹거리 정원을 일굴 수 있도록 돕는 일은 ‘교육 프로그램’이면서 동시에 생활의 기반을 공동체적으로 설계하는 ‘함께 살아가는 연습’이다.
씨앗을 잇는다는 건 생물을 보존하는 일에 앞서, 씨앗을 둘러싼 ‘관계의 감각’을 함께 건네는 일’이다. 씨앗은 보관되었다가 다시 심어지면 되는 유전자원만이 아니라 그 씨앗을 심어온 사람들의 시간, 밥상의 기억, 공동체의 기능을 통째로 품고 있다. 그래서 씨앗을 받는 순간, 우리는 그것이 지켜온 서로 연결된 공동의 삶을 함께 이어받는다. 작년에는 농생태 관련 국제 학습 교류의 장에 일주일간 참여해 여러 나라의 풀뿌리 농생태 주체들과 만나며 확신이 더 분명해졌다. 거대한 구호 아래 시스템의 전환은 스스로 행동을 바꾸려는 의지가 모인 지역 관계망의 실천적 연결에서 시작될 수 있다. 이 확신을 더 선명하게 만든 기억이 하나 있다. 20여 년 전에 나는 세종특별자치시(당시 행복도시) 건설을 앞두고 해체될 마을 충남 연기군 종촌리에서 진행된 대규모 공공예술 프로젝트의 집행위에서 일했다. 떠나야만 하는 사람들, 철거될 집과 비어가는 마을은 몇 달 동안 ‘열린 전시장’으로 존재했다.
그때 나는 해체를 앞둔 마을에서 함께 사라지는 씨앗들에 대하여 오래 생각했다. 그물망처럼 얽힌 관계, 오래 이어져 온 지혜 등 그 모든 것이 함께 흩어지거나 사라지는 과정처럼 씨앗의 상실은 품종의 손실뿐만 아니라 문화적 감각의 단절이며, 마을공동체의 기억이 끊어지는 사건이었던 것이다. 그 경험 이후 자연스럽게 공공예술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공공예술이 공공장소에 조형물이나 벽화를 남기는 일로만 이해될 때, 우리는 자주 결과물에 집중한다. 하지만 공공예술을 ‘관계와 참여, 과정 그 자체의 예술’로 바라보면 그건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설계하는 실천’이 될 수 있고, 사람들 사이의 ‘연결을 만들어내는 장치’가 될 수 있다. 사람들이 함께 참여하고 담론을 만들며 창작 주체가 확장되는 과정은 그 자체로 예술이 된다.
공공예술로서의 농생태 정원
퍼머컬처 디자인이 돌봄과 살림을 위한 설계의 언어라면, 농생태학은 우리 사회 시스템, 커다란 구조 전환의 토대가 되어준다. 그리고 이런 사고의 전환에서 예술이라는 자유로운 영역은 구조적 이해나 새로운 세계관으로 확장을 돕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나는 유무형의 씨앗들을 잇는 공공예술적 농생태 정원을 상상한다. 제주 중산간 자락의 초지, 혹은 도심의 넓은 잔디마당을 퍼머컬처형 농지로 조성하여 토종 종자가 증식되고, 사계절 씨앗 나눔이 자연스러운 지역의 공적 기반이 갖춰진 풍경. 생산과 소비를 나누지 않고 누구나 건강한 흙을 배우며, 자연의 밥상을 나누는 공공 공간은 지금 우리 시대에 생태 위기 대응에 있어서 경쟁을 협력으로, 소비를 순환으로, 개인 성취를 공동의 회복으로 나아가는 길이라 생각한다. 농생태 공유지가 우리 모두의 놀이터처럼 펼쳐지는 제주 농생태 정원(JEJU Agroecology Garden)은 인간 중심의 분리된 사고와 기술적 해결뿐만 아니라 인간과 비인간이 어우러져 공생공락할 수 있는 이상향의 실재적이고 보다 구체적인 토양이 될 수 있다.
씨앗을 잇는 일은 곧 삶을 짓는 일이다. 그리고 삶을 가꿔가는 그 과정이야말로 내가 믿는 공공예술이다. 완성된 조형물 대신, 함께 흙을 만지는 손의 기억이 남는 예술. 결과물보다 관계와 과정이 오래 남는 예술. 우리에게 필요한 건 더 촘촘한 연결이다. 씨앗 한 줌이 관계를 열고, 관계가 가꿔갈 공동체를 만들고, 공동체가 농생태적 전환을 틈을 여는 생활의 기반이 된다. 나는 그 연결의 씨앗을 ‘제주생태텃밭학교’와 ‘자연그대로 농민장터’라는 매우 구체적이고 사소한 일상의 현장에서, 오늘도 함께 이어가고 있다.
강나루
강나루
씨앗바람연구소 대표. 자연과 사람을 연결하는 ‘씨앗매개자’로서, 농민종자(토종 종자)의 주체적 가치를 농업을 넘어 예술로 확장해왔다. 2025 제주 그린어워드 수상자·전국여성농민회 제주도연합 조천읍지회장·언니네텃밭 생태위원·자연그대로 농민장터 운영위원장으로 현재, ‘제주생태텃밭학교’를 운영 중이다. 씨앗 보전과 토양 회복 등 농의 공익적 역할을 사회문화로 확장하기 위해 토종 증식포전을 일구는 등 현장에서 꾸준히 힘쓰고 있다.
jejunalu@gmail.com
사진제공_강나루 씨앗바람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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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양남 2026년 02월 28일 at 11:12 AM

    나의 삶과 공동체가 자라는 씨앗
    오늘부터 그린㊹ 관계망으로 잇는 농생태적 생활

    공감이 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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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기현 2026년 02월 28일 at 12:00 PM

    나의 삶과 공동체가 자라는 씨앗
    오늘부터 그린㊹ 관계망으로 잇는 농생태적 생활
    기대만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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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희 2026년 03월 04일 at 10:37 PM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미래는 농업전쟁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건강한 먹거리가 될 씨앗들에 대한 관리가 너무나 중요한데요, 씨앗을 매개로 한 삶의 공동체에 대해 생각해 보는 기사가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씨앗이 꽃을 피워나가듯이 우리 삶도 화려한 봄을 맞이하기, 그리고 우리 미래는 더욱 화사하길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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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양남 2026년 02월 28일 at 11:12 AM

    나의 삶과 공동체가 자라는 씨앗
    오늘부터 그린㊹ 관계망으로 잇는 농생태적 생활

    공감이 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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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기현 2026년 02월 28일 at 12:00 PM

    나의 삶과 공동체가 자라는 씨앗
    오늘부터 그린㊹ 관계망으로 잇는 농생태적 생활
    기대만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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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희 2026년 03월 04일 at 10:37 PM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미래는 농업전쟁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건강한 먹거리가 될 씨앗들에 대한 관리가 너무나 중요한데요, 씨앗을 매개로 한 삶의 공동체에 대해 생각해 보는 기사가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씨앗이 꽃을 피워나가듯이 우리 삶도 화려한 봄을 맞이하기, 그리고 우리 미래는 더욱 화사하길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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