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말에 귀 기울일 때 세상은 변한다

지역과 현장을 만나야 할 이유

언제부턴가 “나”와 “너” 사이에 대한 고민이 더욱 처절해진 시간이 지속된다. 문화기획자로 활동할 때부터 절실했는데 기초문화관광재단의 대표를 맡으면서 숨이 턱턱 막히도록 절박해졌다. 간절함이 있었던 시간을 되돌아보면 바로 현장에 발을 딛고 있었을 무렵이었다. 북구문화의집에서 연간 예산 1억여 원을 가지고 수많은 프로그램을 구상하고 진행할 때 가장 최전방의 목표는 당신이 행복한가에 집중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상의 삶에 더 천착하는 방식으로 실천해 갔다. 그가 살고 있는 터전은 어떤 상황이며, 그 기반 위에서 어떻게 살아왔고 또 살아갈 것인지에 대해 날것의 말씀, 즉 ‘터무니’에 집중해 듣는 것에 주저함이 없었다.
지역보다 더 큰 국가의 문화정책도 마찬가지다. 결국 무언가를 도모하는 기획의 실체는 내가 꿈꾸던 것을 실행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이 추구하는 결핍을 새로운 방식으로 매개해 주는 것이 맞았다. 문학평론가 고영직 선생의 말처럼 “지역은 기획자의 캔버스가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어떤 프로그램을 하면서 그분들에게서 많이 배웠다고 하는 말에 선뜻 동의하지 않았다. 배워서 더 나은 단계로 성장하기 위한 수단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냥 거기에 동화되는 것이 훨씬 더 아름답다고 여겼다. 신형철 교수의 책 『느낌의 공동체』 중 손택수 시인에 관한 평론에 이런 구절이 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받침의 모서리가 닳으면 그것이 사랑일 것이다. 사각이 원이 되는 기적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말을 좀 들어야 한다. 네 말이 내 모서리를 갉아먹도록 내버려두어야 한다. 너의 사연을 먼저 수락하지 않고서는 내가 네게로 갈 수가 없는 것이다.”

『느낌의 공동체』(신형철, 2011)
나는 이 구절을 금과옥조처럼 여기며 현장에 복무하고 있다. 그래서 귀가 서러울 때가 많다. 꼭 함께하고 싶은 일 앞에서 속수무책일 때 가장 처절하다. 네 말이 틀려서가 아니라 수많은 제약이 사업의 운영 과정에 도사리고 있음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이런 한계들을 유연하게 조정하면서 현장에 부응하는 일을 해가는 것이 경영자의 책무이다. 때문에 현장에 기반한 정책을 수립하는 과정에서부터, 예산 성립, 교부와 실행까지 군수님을 비롯해 행정과 의회와 소통에 만전을 기한다. 그럼에도 예기치 않은 상황이 발생하곤 하지만 그보다 더 곤혹스러운 것은 늘 예산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현장의 수요에 응답함이 우선인데 그것은 우열을 가리기가 힘들다. 그래서 임기 중에 꼭 해보고 싶은 일 하나가 생겼다. 신규 사업 수요 개발과 관련한 공청회를 열고 거기에서 나온 사업 품목을 가지고 다시 난상 토론을 거쳐 사업지원의 순위와 예산 순위를 결정하는 것이다. 현장에 답이 있다는 말을 맹신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문제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지역주민이든, 이장이든, 면장이든, 예술가든, 외국인 주민이든 지역문화의 항상성과 발전을 위해 함께 경청하고 숙의하여 결정을 내리는 장면은 얼마나 감동적인가. 그렇듯 지역이나 국가기관의 정책 결정 과정도 날것 그대로의 현장 이야기에 기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여기서 시의성이나 예산이나, 법률적 한계로 인해 지원받지 못한 사업은 미래의 어젠다로 남겨 두고 시시때때로 들여다보며 개시할 시간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여긴다. 이마적에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멤버들이 전국을 돌며 현장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지역과 함께하는 사업의 비전을 그리던 발품의 시간을 나는 소환하고 싶다. 다른 기관단체들은 결코 흉내 낼 수 없었던 고귀한 발걸음이었다. 그런 이들의 발걸음이 지난 4년 동안 소원해진 것이 못내 아쉽다.
돌이켜 보면 2001년 지역문화의 해를 맞아 최초로 전국 문화활동가들이 한데 모이는 행사가 대전에서 있었다. 백가쟁명의 자리가 백화제방으로 이어졌던 초유의 사건이었다. 날것 그대로의 현장감이 자리를 가득 메웠던 그런 날들이 뒤를 이어 문화활동가포럼 같은 명분으로 지역을 순회하며 이어졌다. 처음 밑자락은 문화체육관광부가 깔았고, 현장의 요구는 지역문화진흥법의 제정, 기금의 마련 등에 대한 요구로 이어지며 일선 현장의 수요와 필요성에 의해 지속되었다. 그럼에도 문화부의 지역문화 관련 부서는 물론,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나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담당자들이 함께하는 자리로 승화되었다. 전국 곳곳을 다니지 않아도 한자리에서 수많은 난관과 극복의 사례들이 거침없이 도마 위에 오르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지역문화계의 아고라가 형성되었던 그런 자리는 문화도시 사업이 본격화되면서 점차 대체된 듯 보였다. 문화도시로 지정된 지역의 재원이 뒷받침되고, 그 예산의 성격에 부합하는 전문가들이 모이기 시작하면서 백가쟁명의 장은 스르르 자취를 감춘 듯 보였다. 오직 문화도시의 시험에 정답을 제출해야 하고, 평가 기준에 부합하는 실행력을 보여주는 것이 대세였던 시절은 참 느리게 이어졌다.
이 땅의 지역문화는 문화도시로 지정된 곳의 문화와 지정되고자 열망하는 도시와 그로부터 떨어져 좌절하는 도시, 그리고 그러는지도 모르는 도시로 나뉘어져 각축 아닌 각축의 시대를 건너왔다. 특히 이전 정권은 한 도시만의 문화도시화가 아닌 인접 지역과의 연계성을 강화하고 동반성장 하는 과제를 떠밀었다. 도시를 구성하는 다양한 축들이 산개한 지역문화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순을 밟기도 전에 이미 다른 도시와의 연결과 네트워크에 힘을 소진해야 하는 지경으로 지침이 주어진 것이다. 이런 문제를 논의하고 해결할 공식적인 채널이 부재한 상황은 제대로 된 지역문화사업이라고 칭송받던 문화도시가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를 새삼 깨닫게 했다. 각 지역의 정체성을 뿌리로 하여 지역민의 문화력을 높이고, 향유자이자 생산자로서의 문화시민을 만들어가겠다는 근본 취지는 훼손되고 말았다. 불과 3년 만에. 다시 복원력을 가질지에 대한 가느다란 희망의 불씨를 지펴보자면 이제 모두가 함께 만나는 자리가 있어야 한다. 지역의 문화활동가들은 스스로 봉인했던 말씀들을 해제해야 한다. 이것을 주도했던 문화부도 이유야 어쨌든 현장과 만나러 나와야 한다. 과거 현장과 조율하러 지역 곳곳을 누비던 문화부 실과장들의 경험과 결기를 다시 습득해야 한다.
세상이 너무나 빠르게 변화해 가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관료들이 먼저 발품을 팔아야 한다. 지금 지역은 인구 소멸이 아니라 고갈의 상태이다. AI가 인력을 대체하는 시대라 하지만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으면 모두의 식량주권이 무너지는 것은 삽시간의 일이다. 어렵고 힘든 일터에는 외국인 주민이, 계절이주노동자가 메워주기 때문에 생산라인이 가동되는 것이다. 지역의 옛적 번화가에는 젊은이들을 찾을 수 없다. 큰 바위 얼굴처럼 늘 상 그곳을 떠나지 않는 어르신들이 점유하는 자리에 얼굴 들이미는 것만으로 이미 주눅이 들고, 패배자처럼 지켜보고 있다는 아픈 마음 때문이다. 게다가 개천에서 용이 난다는 계층 상승의 사다리가 끊어져 버릴 것이란 것이 실감 나는 이즈음이다. 비수도권 부모의 소득이 하위 50%대의 고향에 남은 자녀 10명 중 8명은 여전히 소득 하위에 머문다는 「지역 간 인구이동과 세대간 경제력 대물림」(BOK 이슈노트, 2026.2.11., 한국은행) 보고서는 가히 충격적이다.
사람이 떠나고 비워진 염전이나 논밭, 심지어 집터에는 태양광 발전소가 들어서고 있다. 기후위기 시대, 지구를 돌보는 데 사용된다는 이로운 전기는 고압송전선로를 타고 도시로 전송되고 있다. 철탑 아래는 고향을 지키고 있는 부모님과 몇 안 되는 젊은이들이 살고 있다. 세상의 새로운 흐름과 소통하려 책이라도 들춰보려면 도서관은 너무 멀리 있고, 책방에는 임대 전단만 나부끼고 있다. 국가가 나서서 지역을 돌보는 여행을 하라고, 반값 여행을 장려하면 정작 제 돈은 사용하지 않고 지역사랑상품권만 쓴다. 지방비라도 써주시니 감사할 따름이어야 하는지! 그런 현실 앞에 그간 남다른 시선으로 미래세대에 집중해 온 역사를 가진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을 생각해 본다. 그 노정에는 언제나 문화예술교육가들과 함께 천착해 왔음도 사실이다. 하지만 아직 목마름을 느끼는 새로운 현장이 곳곳에 있다. 진흥원이 먼저 한 발짝 현장으로 나와주라. 학교교육이 다 하는 일을 뭐 하러 문화예술교육까지 만드느냐는 핀잔이나 장르 예술교육의 연장선이 아니냐는 아우성도 모두 극복하고 효능감을 드러내지 않았는가. 이제 급변하는 지역 현장에서 사람과 사람, 사람과 공간, 사람과 시간 사이 말씀에 경청하면 더욱 소중한 문화의 가치사슬을 구현하지 않겠는가. 간절히 청해 본다.
전고필
전고필
길 위에서 길 너머를 그리워하는 여행자. 관광을 전공하고 문화와 관광이 융합되는 판 사이를 종횡무진하다 2023년부터 영암문화관광재단의 대표를 하고 있다.
tournote1@daum.net
섬네일_함께 만들어가는 문화예술교육 정책 토론회(2017)

3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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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양남 2026년 02월 25일 at 11:20 AM

    너의 말에 귀 기울일 때 세상은 변한다
    지역과 현장을 만나야 할 이유
    잘 보고 가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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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양남 2026년 02월 25일 at 11:21 AM

    너의 말에 귀 기울일 때 세상은 변한다
    지역과 현장을 만나야 할 이유
    잘 보고 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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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기현 2026년 02월 25일 at 12:17 PM

    너의 말에 귀 기울일 때 세상은 변한다
    지역과 현장을 만나야 할 이유
    기대만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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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양남 2026년 02월 25일 at 11:20 AM

    너의 말에 귀 기울일 때 세상은 변한다
    지역과 현장을 만나야 할 이유
    잘 보고 가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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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양남 2026년 02월 25일 at 11:21 AM

    너의 말에 귀 기울일 때 세상은 변한다
    지역과 현장을 만나야 할 이유
    잘 보고 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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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기현 2026년 02월 25일 at 12:17 PM

    너의 말에 귀 기울일 때 세상은 변한다
    지역과 현장을 만나야 할 이유
    기대만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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