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하는 세상, 불안을 잠재울 방법

인간의 고유성과 변하지 않는 것들의 가치

“문득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나날을, 수십 년을, 평생을 단 한 번도 세상에 맞설 용기를 내보지 않고도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부르고 거울 앞에서 자기 모습을 마주할 수 있나?”(클레어 키건, 『이처럼 사소한 것들』)
작가는 이 작품이 “우리 가운데 살아남을 것은 사랑이다”라는 영국 시인 필립 라킨의 말에 응답하는 책이 되길 바란다고 말한다. 한 개인의 이야기에서 시작된 이 소설이 종국에는 인간의 품위에 대한 확언을 대신해 주기에 이른다.
“별과 별자리 이름을 누구보다 잘 알고, 해석까지 기가 막히게 잘하는 친구가 있다. 그런데 녀석의 말은 모두 지어낸 이야기이다. 우리도 그 사실을 알고 있지만 녀석의 이야기를 듣는 것 자체가 큰 즐거움이다. 가짜 이름 대신 진짜 이름을 안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이 있을까? 중요한 것은 밤하늘의 초롱초롱한 별들에 한층 더 친숙해지는 것이 아닐까.”(베른하르트 슐링크, 『귀향』)
이 이야기의 핵심은 별과 별자리 이름을 제대로 아는지가 아니라 우리가 끊임없이 우리를 둘러싼 우주에 대해서 호기심을 놓지 않고 있으며, 밤하늘의 별들을 보면서 무한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다는 사실을 일러준다. 우주의 작고 푸른 점 하나에 불과한 지구에 발을 딛고 선 우리는 광활한 우주를 잊은 적이 없다.
“호숫가에 선 중년의 사내가 연신 물수제비를 뜬다. 물수제비의 최적화된 입사각인 20도에 맞춰 던지려 애를 쓰지만, 사내의 손을 떠난 돌은 생각처럼 그 각도로 날아가지 않는다. 그렇다고 크게 실망할 것도 없다. 그저 던지고 또 던질 뿐이다. 어린 시절 자신을 데려와 물수제비 놀이를 가르쳐주었던, 지금은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추억하면서.”(작가 미상, 『물수제비』)
사람이 하는 사유와 행위는 얼핏 봐선 이해되지 않는 것들이 많다. 다른 이의 불행을 나와 무관한 일로 여기지 않으며 스스로 불행의 수렁으로 빠져드는 펄롱(『이처럼 사소한 것들』 작중인물)이나, 가짜 별자리 이름을 천연덕스럽게 읊어대는 소년의 치기 혹은 상상(『귀향』), 하릴없이 호수에 돌을 던져대는 중년 사내의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까지.
인공지능(AI) 기술의 발전 속도가 예사롭지 않다. 급기야 디스토피아의 미래를 우려하기에 이르렀다. 우려만 하고 있기엔 우리의 삶이 너무나도 소중하다. 우리가 간직하고 가꿔온 소중한 가치들을 되새기는 건, 그런 의미에서 생존을 위한 발버둥이기도 하다. 새삼 인간의 고유성에 대해, 급변하는 현실 속에서도 변하지 않을 것들에 대해 생각해본다.
인간 존재의 핵심은 연장성(Continuity)이다. 어제의 우리가 오늘의 우리로 이어짐으로써 우리가 인간이라는 사실을 자각할 수 있다.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죽을 때가 된 거라는 말도 있듯이 변하는 것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한 소중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를 둘러싼 현실만 변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의 몸도 변한다. 우리의 몸은 언제나 변화의 도정에 올라와 있다고 볼 수 있다. 세포는 시간당 3~4만 개가 죽는다. 매년 3.6킬로그램의 피부 세포가 떨어져 나간다. 피부만 그런 게 아니다. 창자 세포는 2~3일에 한 번씩 바뀐다. 허파 세포는 2~3주에 한 번, 적혈구 세포는 4개월, 간세포는 5개월에 한 번씩 바뀐다. 우리 몸에서 변하지 않는 건 뇌세포뿐이다. 뇌세포는 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결국 인간 존재의 핵심은 뇌에 새겨진 의식이다.
뇌에 입력된 일부의 정보는 상상력의 원천이 되어 수많은 것들을 창조해 낸다. 그 창조의 근간은 상상력이며, 상상은 종래 놀이가 되고 예술이 되며,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의식의 심연에 축적된다. 스마트폰이 세상을 바꾼 지 십수 년 만에 이제는 생성형 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자리와 사고방식, 지식을 습득하는 방식마저 근본적으로 재편하고 있다. 이러한 격변의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는 도리 없이 불안을 느낀다.
변화의 도정에서 느끼는 불안을 잠재울 방법은 변하지 않는 가치에 주목하는 것이다. 인간의 본성과 삶을 지탱하는 원리는 수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았으며, 그것은 인간 삶의 심연을 파고 드는 문학으로 환유한다. 알고리즘이 제아무리 효율을 극대화해도 우리가 느끼는 감정과 관계의 산물인 공감력에는 접근하지 못한다. 감정의 상호작용이 공감이며 키건의 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에서 펄롱이 보여주는 행동이다.
공감은 곧 관계에서 비롯된다. 관계를 통해 이루어나가는 공감력 배가의 주된 방법은 지속적인 독서와 예술 활동이다. 그것이 바로 변화에 대한 불안을 잠재울 힘의 원천이다. 타인의 시선이나 알고리즘에 포획된 취향의 흔들림은 문학의 짙은 향취를 통해 가치관을 확립하는 과정에서 극복된다. 특히, 고전은 때로 우리를 불편하게 하지만 그 불편이야말로 고전의 힘이다. 고전은 효율과 성과를 추구하는 현실에서 벗어나 근본적인 성찰의 세계로 이끌어주기 때문이다.
예술과 놀이는 인간 본연의 정체성을 이어가게 해준다. 데이터의 지배에서 벗어나 오감을 통한 신체적 경험의 소중함을 유지하는 것이 곧 예술이고 놀이이기 때문이다. 변화에의 불안을 잠재울 또 다른 힘은 질문이다. 사회과학이 ‘답을 찾는 학문(Know-How)’이라면 인문학은 ‘질문하는 학문(Know-Why)’이다. 질문을 통해야만 비로소 본질을 꿰뚫는 통찰력을 획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준영
최준영
2005년부터 노숙인을 위한 인문학 강좌에 참여했고, 20여 년 동안 지속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덕분에 ‘거리의 인문학자’라는 별명을 얻었다. 사단법인 인문공동체 책고집을 설립해 이사장을 맡고 있으며 2025년 문체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주최·주관의 디딤돌 인문학(노숙인, 재소자, 자활근로 참여자 대상 인문학 강좌)을 기획, 운영했다. 지은 책으로 『가난할 권리』 『결핍의 힘』 『동사의 삶』 『최준영의 책고집』 등이 있다.
yiyagy@naver.com
4 Comments
  • author avatar
    김양남 2026년 03월 02일 at 10:59 AM

    변화하는 세상, 불안을 잠재울 방법
    인간의 고유성과 변하지 않는 것들의 가치
    공감이 갑니다

  • author avatar
    안기현 2026년 03월 02일 at 1:14 PM

    변화하는 세상, 불안을 잠재울 방법
    인간의 고유성과 변하지 않는 것들의 가치
    기대만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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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희 2026년 03월 25일 at 2:13 PM

    세상은 너무나 빠르게 변하고 있는데,, 나는 뒤처지는 것 같아 불안하고 마음이 힘든 세상입니다. 이럴 수록 나를 다잡고 나의 정체성을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하겠지요

  • author avatar
    최민주 2026년 03월 31일 at 3:29 PM

    “변화의 도정 속에서도 인간의 품위를 지켜내려는 마음”이라는 문장이 오래 마음에 남습니다.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세상이 효율을 향해 달려가도, 결국 우리를 사람답게 하는 건 서로를 향한 공감과 사랑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해주네요.
    키건의 펄롱이 보여준 용기, 허공에 돌을 던지며 아버지를 떠올리는 사내의 그리움, 그리고 별이름을 지어내는 소년의 상상력…
    이 모든 장면들이 우리 안의 ‘인간다움’을 증명하는 것 같습니다.

    진정한 인문학은 이렇게 각자의 삶 속에서 서로를 향한 따뜻한 시선을 되살리는 일이라는 걸, 오늘 다시 공감하게 됩니다.
    작가님의 오랜 활동과 꾸준한 나눔에 진심으로 박수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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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양남 2026년 03월 02일 at 10:59 AM

    변화하는 세상, 불안을 잠재울 방법
    인간의 고유성과 변하지 않는 것들의 가치
    공감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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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기현 2026년 03월 02일 at 1:14 PM

    변화하는 세상, 불안을 잠재울 방법
    인간의 고유성과 변하지 않는 것들의 가치
    기대만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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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희 2026년 03월 25일 at 2:13 PM

    세상은 너무나 빠르게 변하고 있는데,, 나는 뒤처지는 것 같아 불안하고 마음이 힘든 세상입니다. 이럴 수록 나를 다잡고 나의 정체성을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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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민주 2026년 03월 31일 at 3:29 PM

    “변화의 도정 속에서도 인간의 품위를 지켜내려는 마음”이라는 문장이 오래 마음에 남습니다.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세상이 효율을 향해 달려가도, 결국 우리를 사람답게 하는 건 서로를 향한 공감과 사랑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해주네요.
    키건의 펄롱이 보여준 용기, 허공에 돌을 던지며 아버지를 떠올리는 사내의 그리움, 그리고 별이름을 지어내는 소년의 상상력…
    이 모든 장면들이 우리 안의 ‘인간다움’을 증명하는 것 같습니다.

    진정한 인문학은 이렇게 각자의 삶 속에서 서로를 향한 따뜻한 시선을 되살리는 일이라는 걸, 오늘 다시 공감하게 됩니다.
    작가님의 오랜 활동과 꾸준한 나눔에 진심으로 박수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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