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마음이 노동이다

인공지능 시대, 일을 대하는 마음

‘라떼는 말야’를 하고 싶을 때가 있다.
“나 때는 말야. 녹취 풀어주는 프로그램, 그런 게 어디 있어. 일일이 다 듣고 타자 쳐서 말을 받아적는 거야. 한 시간짜리 인터뷰를 반나절에 걸쳐 풀고 그랬어. 요즘은 아주 편해졌지.”
그렇다. 이 말 하는 순간 ‘꼰대 인증’이다. 입 밖으로 뱉지 않는다. 입을 다물 수 있는 건 카세트만 한 녹음기를 들고 다니던 선배들이 떠오른 덕분이다. 그들에 비한다면 나야말로 편해졌다. 더구나 ‘나 때는’이라 부를 것도 없다. 나 또한 AI 음성 인식 서비스(클로바노트 같은 것)가 생긴 후 편히(?) 녹취를 푸는 요즘의 기록자다. 덕분에 손가락도 지켰다. 자판을 두들기다 보면 손등의 힘줄이 저릿할 때가 많았다. 인공지능이 기록자 여럿의 손가락을 살렸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무언가 놓친 기분
그리고 이 또한 부정할 순 없다. 전에 비해 인터뷰이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게 됐다. AI의 힘을 빌리지 않고 손으로 직접 녹취를 풀어야 할 적에는 서너 번을 들어야 했던 인터뷰 녹음본을 이제는 한두 번 듣는다. 두 번도 많은 편이다. 나만 이러진 않을 테다. 인터뷰이와 나의 대화를 찬찬히 들으며 그의 기색을 살피고, 어긋난 질문에 괴로워하고, 침묵에서 망설임을 찾고, 서로가 하지 못한 이야기를 헤아리는 시간이 있었다. 그 시간이 작업의 대부분을 차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작 2시간 이야기 나누었을 뿐인데, 조용한 방에서 이어폰을 귀에 꽂고 그의 목소리를 몇 번이나 되돌리다 보면, 어느새 온종일 말을 건넨 사이처럼 인터뷰이가 친근하게 느껴져 그 마음을 애써 눌러야 했다. 그런 일이 많이 사라졌다.
이제는 클릭 한 번으로 인터뷰이의 말이 글이 되어 나온다. 감정을 놓을 곳이 없다. 장강명 작가의 『먼저 온 미래』에서 표현을 빌려오자면 “몸은 편해졌는데, 영혼은 시드는 것 같은”, 그 정도까진 아니어도 영혼이 시들해지긴 했다. 이래도 되나? 불안할 때가 있다. 무언가 크게 놓친 기분이다.
너무 안온한 걱정을 한 것 같다. 지금 시들함이 문제가 아니다. 세상이 급변하고 있다. 현대차 기업에서 만든 로봇 아틀라스가 텀블링하는 걸 보고 있자면, 저 기계가 몇십만 명의 일자리를 뺏으려나, 이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시간이 지나면 인공지능이 직접 인터뷰를 하고 글을 쓸 테다. 언제인지는 몰라도 멀지 않았다는 건 안다. 러다이트 운동을 하던 200년 전 노동자들과 동병상련이 된다. 아니다. 그들은 때려 부술 기계라도 있지, 프리랜서인 나는 노트북이 전부다. 이건 안 된다. 내 유일한 생산수단이다.
고맙다 고맙다 하며
세상이 아무리 속도를 내도, 인간은 하루하루 나이를 먹기에, 나의 인터뷰이들은 하루씩 한 해씩 늙어간다. 당최 살가운 면이 없는 나도 명절이 오면 고령의 인터뷰이들에게 안부 전화를 한다. 그렇다. 생존 확인이다. “건강하시죠?”라고 시작하는 인사. “희정 씨.” 나에게 꼭 존대를 건네는 어르신의 목소리가 반갑다. “어디셔요?” “일 갔다 와요.” “요즘도 공방 가세요?” “요샌 별로 일이 없어요.” 열다섯 살에 그는 식자공이었고, 아흔이 넘은 지금도 식자공이다. 글자가 새겨진 금속 조각으로 활판을 채워 인쇄기에 넣고 찍어내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게 책을 만들었다. 활판에 활자를 심는 일이라 하여 식자공이라 불렀다. 이 직업은 사실상 소멸했다. 누구도 이런 방식으로 책을 만들지 않는다.
그래도 천연기념물을 보호하듯 그에게 일할 공간을 내주는 공방이 있다. 그곳에서 달력 같은 문구를 만든다. 퉁퉁 부은 손으로 작은 금속 활자 조각을 집어 판에 올린다. 그 손길이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다. 고요하다. 그러다가도 내가 활자 인쇄 종이를 들여다보고 있을라치면, 한 마디 건넨다. “이거는 참 오래가요. 바래지도 않아.” 사라져가는 기술을 향한 애정을 그렇게 드러낸다. 나는 이제 오래 두고 보는 책 같은 건 없다고 생각한다. 표지가 화려한 책들이 빠르게 나오고 빠르게 사라진다. 그가 만드는 달력이라고 오래갈까. 길어야 한 달짜리. 스마트폰 세상에선 달력도 그저 장식품이다.
작업장의 느릿함을 견디지 못하고 그에게 물었던 적이 있다. “일하시며 무슨 생각을 하세요?” 그는 “생각이랄 게 뭐 있나요.”, 하다가 말했다. “이 일이 고맙다 고맙다 하며 하죠.” 불과 3년 전인데도, 그때의 나는 젊어서 ‘고맙다 고맙다’ 하는 마음을 모른다. 그저 듣는다. 그가 식자 기술을 익히기 위해 고무신 신은 발로 종로 한복판을 뛰어다닌 이야기, 다리가 퉁퉁 붓도록 식자대 앞에서 밤을 보낸 이야기를 듣는다. 그건 안다. 나의 분투와 비슷한 구석이 있다. 일하고 살아가는 이들이 저마다 지닌 경험과 닮았다.
자리를 지키는 이
“사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장례인들은 이런 인사를 건넸다. 책 『죽은 다음』을 쓰기 위해 장례인들의 노동 현장을 취재했다. 안치실에서 장례지도사가 염습하는 걸 지켜보고 있자면, 슬프거나 무섭기보다 마음 한 켠이 아려왔다. 그가 건네는 인사 때문이었다. “사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사람으로 사는 고생을 안다. 그러니 연민한다. 돌봄과 유대, 그리고 연대가 생전에는 본 적조차 없는 두 사람 사이에서 이뤄지는 걸 본다. 그 마음을 노동이라고 생각했다. 그리 믿게 되었다. 누군가의 노동이 우리를 살게 한다면, 이런 종류의 것일 테다.
내가 선배들의 커다란 녹음기를 떠올리며 입을 닫은 건, 그들이 앞서 겪었을 불편함 때문이 아니었다. 버튼을 힘주어 딸깍 소리가 나게 눌러 녹음하고, 테이프를 돌려 녹음된 대화를 듣고 또 들어야 했던 애씀. 그들이 애써 지키려고 했던 무언가를 생각한다. 마음이라는 거, 그건 가벼이 여길 수 없다. 그러니 입이 무거워진다.
애씀은 보답받지 못할지도 모른다. 식자공의 일처럼 나의 일도 소멸할지 모른다. 세상은 내가 천천히 활자를 고르는 걸 기다려주지 않을 테다. 그건 인공지능이나 기술 발전에 따른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시대가 앞으로 가는 것이라 믿는다면, 자리를 지키는 이는 모두 퇴보하는 셈이니까.
뒷걸음치는 길에서도 내가 하는 일에 ‘고맙다 고맙다’ 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누가 듣지 않아도 “고생하셨습니다” 인사를 건네는 사람이면 좋겠다. 그게 내가 일을 대하는 마음이었으면 좋겠다.
희정
희정
기록노동자. 견디고 살아가고 싸우는 일을 기록한다. 저서로는 『죽은 다음』 『일할 자격』 『베테랑의 몸』 『퀴어는 당신 옆에서 일하고 있다』 『노동자 쓰러지다』 등이 있다.
hihiihih@naver.com
필자 사진_표기식 촬영, 채널예스 제공
5 Comments
  • author avatar
    a 2026년 03월 10일 at 10:31 AM

    편해지는 기술 속에 숨어든 마음을 놓칠 뻔했는데 오늘 다시 한 번 그 마음을 꺼내볼 수 있었습니다.
    고맙습니다.

  • author avatar
    김양남 2026년 03월 14일 at 10:36 AM

    그 마음이 노동이다
    인공지능 시대, 일을 대하는 마음
    잘 보고 갑니다

  • author avatar
    안기현 2026년 03월 14일 at 11:11 AM

    그 마음이 노동이다
    인공지능 시대, 일을 대하는 마음
    기대만점입니다

  • author avatar
    이정훈 2026년 03월 14일 at 10:20 PM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마음을 다해 움직이는 과정들이 얼마나 귀한 노동인지 되새기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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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석 2026년 04월 07일 at 9:27 AM

    마음이라는 거, 그건 가벼이 여길 수 없습니다.
    다시 한 번 귀한 노동임을 생각합니다
    잘 보고 가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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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 2026년 03월 10일 at 10:31 AM

    편해지는 기술 속에 숨어든 마음을 놓칠 뻔했는데 오늘 다시 한 번 그 마음을 꺼내볼 수 있었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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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양남 2026년 03월 14일 at 10:36 AM

    그 마음이 노동이다
    인공지능 시대, 일을 대하는 마음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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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기현 2026년 03월 14일 at 11:11 AM

    그 마음이 노동이다
    인공지능 시대, 일을 대하는 마음
    기대만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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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훈 2026년 03월 14일 at 10:20 PM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마음을 다해 움직이는 과정들이 얼마나 귀한 노동인지 되새기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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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석 2026년 04월 07일 at 9:27 AM

    마음이라는 거, 그건 가벼이 여길 수 없습니다.
    다시 한 번 귀한 노동임을 생각합니다
    잘 보고 가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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