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닿지 못할지라도, 응원하기 위한 질문

책으로 읽는 문화예술교육

요즘 문화예술 현장에서 질문이 사라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될 때가 있다. 급격하게 산업이나 성과 중심으로 바뀌는 정책 환경 속에서 예산도 줄고 현장이 쪼그라들고 있어 더 그렇다. K-컬처나 관광 등 성과 추수에 대한 기대가 큰 산업은 자주 거론되지만 낮고 깊게 만나야 하는 수고로움이 동반되는 ‘지역’이나 ‘예술’, ‘교육’의 현장은 무서울 정도로 조용하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산업이나 경제는 중요해 보이고 기초 예술과 사회적 가치, 공공성의 토대를 만들어 가는 문화와 예술은 그 역할과 쓸모를 다한 것인가 허탈하기까지 하다. AI로 예고되는 급변하는 사회에 대해서도 어떻게 하면 그 기술을 도입하고 적용해 성과를 만들어 낼 것인지 단기적 성취에는 관심을 가지지만, 그로 인해 인간이 겪는 상실감을 문화와 예술이 어떻게 어루만지거나 완충지대를 만들 것인가에 관해서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
시대와 현장을 읽는 기민함이 빠져버린 매너리즘이 공공 주도의 문화정책에서 팽배해 있으니 문화예술 현장도 그 예리함을 잃어간다. 전국에서 문화예술 관련 기관과 공간은 수년째 계속 증가하고 있지만, 질문과 담론은 공공의 필요 안에서 불편하지 않을 수준으로, 흉내를 낼 만큼만 진행된다. 있는 통계조차 제대로 읽으려는 노력 없이 복사해 붙여넣는 계획이나 연구, 지역과 대상을 충분히 상상하지 않는 기획들이 싹트기 좋은 환경이다. 거창한 성과에 조바심내는 행정의 선언이 아니라, 변화하는 시대에 문화예술은 누구를 어떤 방식으로 만나야 하는지에 대한 현장의 질문과 담론이 훨씬 많아져야 한다. 여전히 질문이 필요한 시기다.
  • 『타자 이해의 사회학』
    (기시 마사히코·마루야마 사토미·이시오카 토모노리, 호밀밭, 2025)
  • 『이러려고 겨울을 견뎠나 봐』
    (몽실, 호밀밭, 2025)
현장의 질문과 맞닿는 사회학의 질적 조사
구체적인 현장과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는 그들을 상상하고 만나기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 생활사나 구술 등의 인터뷰가 문화예술 현장의 방법론으로 자주 사용되기도 하지만 사회학에서의 질적 조사는 동기나 특징, 고민에 있어서 문화예술 현장과 겹치는 부분이 많다. 질적 조사를 해온 세 명의 일본 사회학자가 쓴 『타자 이해의 사회학』은 사회학 학부생이나 질적 조사에 관심을 가진 대중을 위해 쓴 책이다. 이 책에서는 양적 조사와 다른 질적 조사의 특징들을 다루면서 구체적으로 필드워크(현장 조사), 참여 관찰, 생활사에 대해서도 그 특징과 매력, 어려움을 함께 제시하고 있다.
우선 질적 조사의 특징을 살펴보면 구체적인 수치를 통해 사회를 분석하는 양적 조사와(주로 통계조사) 달리 투입되는 예산과 인력은 적지만, 개인이나 소수의 연구그룹이 특정 대상을 집중해서 만나거나 관찰하면서 인터뷰나 기록을 만들고 분석하면서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한다. 넉넉하지 않은 자원, 긴밀하게 만날 대상이나 지역의 설정, 문화예술의 방법론을 통한 연속적인 만남, 그 과정과 결과를 갈무리해 발표하거나 기록을 만드는 일. 연구라는 구체적인 목표냐 아니냐의 차이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적은 자원을 가지고 구체적인 대상을 만나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노력을 한다는 점에서 사회학의 질적 조사와 문화예술 현장은 닮아있다. 어떤 지역의 누구를 만날 것이고, 어느 기간 동안 어떤 방법론을 쓸 것인가는 문화예술 관련 기획의 중요한 평가 기준이 되고 있음을 생각하면 질적 조사의 연구계획과도 큰 맥락은 통한다.
질적 조사의 연구 동기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아직 충분하게 데이터가 생산되어 있지 않아 해석이나 의미 부여가 되지 않는 소수자를 발굴하여 내러티브 중심의 자료를 확보하면서 종합적으로 분석한다. 기존 데이터로는 조명하기 힘든 대상을 연구하기 위해 인터뷰나 참여 및 관찰을 통해 데이터를 생산하는데 이 자체가 소수자들을 위한 응원이 될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도시 중심으로 성장하고 정보가 빠르게 변화하는 세계에서 자체 데이터의 생산이 거의 이뤄지지 않은 변두리는 여전히 많다. 여성, 이주, 비도심, 지역이라는 조건이 소수자가 될 때 이를 설명하고 해석할 구체적인 데이터가 있으면 좋겠지만 없는 경우, 그 주제를 설정하고 질적 데이터를 통해서라도 현상을 해석하고자 하는 시도 자체가 그 소수집단에 대한 응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몇 년 문화예술의 사회적 가치가 강조되면서 시도해온 노력도 투박하나마 그 응원을 사회적으로 쌓아온 과정으로 볼 수 있다.
당사자들의 이야기로 만나는 구체적인 삶
보통의 삶이나 평균의 삶으로만 환원하던 시대를 지나 이제 구체적인 삶에도 관심을 가지고 공감이 필요하다. 현상을 단순하게 보지 않고 깊이 보려는 성숙한 태도가 더 필요한 시기다. 앞서 소개한 질적 조사처럼 소수자들을 연구로 조명하는 경우도 있지만 사회 초년생의 경험, 우울증 환자의 경험, 청소년이나 청년의 가족 돌봄 등 예전에는 귀 기울이지 않던 많은 이야기를 당사자들이 쓴 책으로 만나볼 수도 있다.
『이러려고 겨울을 견뎠나 봐』는 부산의 시설에서 살다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거나 성인이 되어 그 시설에서 나와 자립해야 했던 청년 8명이 쓴 책이다. 같은 시설 출신인 이들은 자립하면서 느꼈던 막막함과 기대,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몽실(열매를 꿈꾸다)’이라는 모임을 만들어 같은 시설 후배들의 자립을 돕는 봉사활동을 해왔다. 자립의 막막함을 줄이면서 미리 준비할 수 있도록 멘토링을 하고 밥도 사주고 고민도 들어주는 든든한 형과 언니들이 되어주기도 한다.
나아가 사회적기업가 육성 사업을 통해 ‘몽실커피’라는 카페를 만들어 자립 청년들의 경제적 기반이자 커뮤니티 거점을 마련하고자 했다. 부산의 한 대학가에서 시작한 가치와 경제적 기반을 만드는 이 시도는 치열한 카페 경쟁 속에서 독자적인 브랜드를 만드는 어려움을 경험에 새기고 문을 닫았다. 첫 시도의 경험을 바탕으로 현재는 부산 연산역 인근으로 옮겨 두 번째 카페를 이어가고 있다. 책은 8명이 어떤 과정을 거쳐 시설에 오게 되었고, 또 자립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다. 하지만 그 담담함과는 달리 가정폭력, 가난, 가출, 방황, 눈치 등의 굴곡이 압축되어 있다.
지난 삶과 자신의 아픔을 응시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막막했을 시설에서의 자립을 한 인간의 자립으로 바꿔내는 긍정도 읽을 수 있다. 녹록지 않았을 홀로서기의 어려움을 이겨낸 것도 대단하지만 독립해서 좋아하는 해외여행을 가고, 가족을 꾸리고 아이를 키우면서, 동류의 아픔과 막막함을 지닌 후배들에게 애정을 가지고 든든한 뒷배가 되어주면서 일궈낸 삶에 대한 긍정은 눈부시다. 성인이 되어서도 사랑을 갈구하고 눈치만 보던 다 큰 아이가 주변에 사랑을 나눌 줄 알고, 오히려 자신을 시설로 내몰았던 부모에 대한 이해와 용서에 이르는 과정은 감히 상상하기 힘든 삶의 경로이기도 하다.
가 닿지 못할지라도 응원하는 것의 의미
필자가 활동하는 지역의 출판사에서 낸 두 권의 책을 겹쳐 읽어보고자 했다. 지난 정부가 급조한 문화정책과 현 정부의 정책은 가시적인 성과나 산업 중심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세대, 정치, 젠더 등의 갈등은 더 심해지고 AI가 일상으로 파고들면서 청년들의 일자리가 더 줄어드는 등 인간이 겪을 상실감이 함께 예고되는 상황에서 문화예술의 역할을 경제나 산업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이 합당한지 의문이 든다. 이런 때일수록 누군가의 이야기를 잘 듣고 기록하는 응원의 감각이 필요하다.
『타자 이해의 사회학』에서는 질적 조사를 진행한다고 해서 결코 당사자의 입장이 될 수는 없지만, 연구를 통해 복합성을 읽어내려는 노력이 중요하고 그 자체가 타자를 응원하는 수단이 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이러려고 겨울을 견뎠나 봐』에서는 보육시설에 대한 편견을 가진 사람들에게 그곳은 보호가 필요했던 사람들의 안식처이며 다른 형태의 가족이 탄생하는 곳이라고 알려주고 싶다고 했다.
발화의 주체가 되기 어려웠던 사람들, 새로운 갈등이나 상처를 갖게 된 사람들을 응원하는 일에 문화예술 쓰임이 더 커질 것이다. 수월성에 기대던 그 길에서 매너리즘을 돌아볼 때, 가설을 가지고 시작하더라도 조사 이후까지 숙고해야 해석의 문이 열리는 우직한 질적 조사 방법도, 당사자들이 꾹꾹 써 내려간 이야기들도 모두 소중한 재료가 될 것이다. 가 닿지 못할 응원이라도 계속해야 하는 묵묵함이 문화예술 현장에서 되물어야 할 질문이 되고 작은 위로의 물결이 되고 파도가 되기를!
박진명
박진명
걷고 읽고 쓰면서 나와 주변의 삶에서 빈틈을 찾아 엮는 기록자이자 문화기획자, 지역을 이렇게도 보고 저렇게도 해석하는 것을 재밌어하는 연구자이다. ‘생각하는 바다’ 대표이며, 수영구문화도시지원센터 센터장을 맡았었다. 저서로 『딸아이의 언어생활탐구』, 『망치질하는 어머니들-깡깡이마을 역사 여행』이 있다.
motwjm@naver.com
사진제공_호밀밭
4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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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현 2025년 12월 30일 at 10:22 PM

    성과와 효율에 밀려 사라져 가는 질문들 속에서 문화예술은 여전히 ‘누구를 어떻게 만날 것인가’를 묻는 가장 느리고도 필요한 언어임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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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양남 2026년 01월 02일 at 10:21 AM

    가 닿지 못할지라도, 응원하기 위한 질문
    책으로 읽는 문화예술교육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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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기현 2026년 01월 02일 at 1:06 PM

    가 닿지 못할지라도, 응원하기 위한 질문
    책으로 읽는 문화예술교육
    기대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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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영 2026년 01월 24일 at 9:28 PM

    사회학의 질적 조사 방식에 대해서 더 생각해 볼 수 있었어요!!
    소중한 재료들이 파도처럼 다시 재구성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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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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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현 2025년 12월 30일 at 10:22 PM

    성과와 효율에 밀려 사라져 가는 질문들 속에서 문화예술은 여전히 ‘누구를 어떻게 만날 것인가’를 묻는 가장 느리고도 필요한 언어임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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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양남 2026년 01월 02일 at 10:21 AM

    가 닿지 못할지라도, 응원하기 위한 질문
    책으로 읽는 문화예술교육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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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기현 2026년 01월 02일 at 1:06 PM

    가 닿지 못할지라도, 응원하기 위한 질문
    책으로 읽는 문화예술교육
    기대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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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영 2026년 01월 24일 at 9:28 PM

    사회학의 질적 조사 방식에 대해서 더 생각해 볼 수 있었어요!!
    소중한 재료들이 파도처럼 다시 재구성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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