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할 권리, 멈출 자유, 안전한 시간

모두의 예술교육⑥ 각자의 방식을 인정하는 미술 수업

나는 장애인복지관에서 발달장애 아동 및 청년들과 미술 수업을 5년여 진행해 왔다. 나는 이 시간을 ‘가르친다’라고 표현 안 한다. 그러고 싶지 않다. 대신 함께 ‘논다’ ‘작업한다’라고 얘기한다. 수업 시간은 늘 조금 소란스럽고 예측 불가능하다. 누군가는 붓을 잡자마자 종이를 벗어나 바닥까지 물감을 흘리고, 누군가는 한 가지 색만 집요하게 반복한다. 또 누구는 가만히 머물며 다른 세상을 꿈꾸는 듯하다. 나는 이 모든 장면을 ‘지도해야 할 상황’이 아니라 흥이 오르는 순간으로 바라보려 애쓴다. 예술교육이란 결국, 잘하게 만드는 일이 아니라 자기 방식으로 존재하도록 허락하는 일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선택을 건네는 말
참여자들은 간혹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표정으로, 가만히 앉아 있는 경우가 있다. 혹은 이미 마음속에 정해둔 방식이 있어 다른 제안을 거부하는 듯 보이기도 한다. 사람들은 이를 두고 “고집이 세다”거나 “소극적이고 의욕이 없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때로는 “아무것도 몰라요” 한다. 하지만 나는 다르게 느낀다. 이들은 그동안 선택하고 주장해본 경험이 너무나 적어 오히려 선택 앞에서 멈추는 것 아닐지 생각한다. ‘선택’이라는 것이 인간의 자율적인 삶에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생각해 보자. 오늘 입을 옷, 먹을 음식, 갈 장소, 사용하는 도구, 만남 등. 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선택을 하지만 이들의 삶 속 대부분의 결정은 누군가 대신 내려준다. 그래서 나는 미술 수업에서만큼은 아주 사소한 선택이라도 직접 해보도록 유도한다. 몇 번 경험하고 나면 아주 능동적이고 주체적으로 참여하며 즐거워한다.
현장에서 함께하다 보면, 하고 싶은 것이 없어서가 아니라, 무엇을 선택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경험 자체가 부족한 상태에 가깝다는 것을 알게 된다. 스스로 결정해 본 경험이 적고, 선택한 결과를 존중받아 본 기억이 충분하지 않을 때 사람은 쉽게 멈춘다. 그렇기에 나는 이 고집을 꺾어야 할 문제로 보기보다, 확장 가능한 출발점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여긴다. 미술 활동은 이 지점에서 매우 유효한 매개가 된다. 말로 설명하기 어렵고, 선택의 책임이 부담될 때도 미술은 비교적 안전하게 ‘해도 되는 것’의 범위를 넓혀준다. 나는 이들에게 무언가를 ‘시키기’보다, 부드러운 언어와 상황 제시를 통해 선택의 가능성을 건넨다.
기다림을 두려워하지 않기.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에도 느끼면서 표현은 자라고 있다. 나는 서두르지 않는다. “어떤 걸로 해볼까요?” “이 색은 어때요?” “안 해도 괜찮아요.” 정서를 다독이는 부드러운 말과 여러 번의 제안으로 각자의 원함과 특성에 맞는 다양한 콘텐츠를 준비해 둔다. 기다리는 시간도 수업의 일부라고 믿기 때문이다. 시간은 좀 더 오래 걸리고 느리지만 자기 만족감과 성취감은 훨씬 크다. 크레파스, 색연필, 마카, 물감 등 갖가지 채색 도구와 색 하나, 붓의 크기와 굵기, 찍기·문지르기·흩뿌리기 같은 다양한 터치 방식까지. 물론 움직임의 어려움이 있는 경우에는 간간이 작업을 돕거나 어울림을 유도해 보지만 대체로 모든 과정은 정답 없이 열어둔다. 이 선택의 경험이 쌓일수록 작업은 점점 ‘과제’가 아니라 자기표현의 시간이 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
한 중증 발달장애 청년은 매번 수업이 시작되어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앉아만 있었다. 주변에서는 “흥미가 없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나는 그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대신 음악을 틀었다. 음악과 미술과 몸짓은 아주 통합적이다. 느린 리듬의 선율이 공간을 채우자 그의 손이 아주 조금, 주어진 화면 위에서 움직였다. 다가가서 슬쩍 멋지다고 칭찬하고는 무연하게 다른 참여자들에게로 갔다. 지나친 친절과 개입은 역효과를 불러온다. 처음 만난 사람인데… 알 수 있었다. 느껴졌다. 그날 그는 끝까지 한 가지 색만 사용했다. 그리고 마지막에 종이를 접었다가 펼쳤다. 나는 지켜보기만 했다. 수업이 끝난 뒤, 그는 그 종이를 꼭 쥐고 집으로 갔다. 그날 나는 깨달았다. 표현은 말보다 먼저 오기도 한다는 것. 그리고 예술적 자율성은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까지 포함한다는 것을.
어떤 청년은 크레파스로 종이 가득 글씨만 쓴다. 끝도 없이, 같은 패턴으로. 나는 그것을 멈추게 하지 않는다. 대신 이렇게 제안한다. “여기에 물감을 칠해볼까요?” “이 색 위에 다른 색을 얹으면 어떻게 보일까요?” 유성 크레파스(에 스미지 않는) 물감 속성으로 전혀 다른 시각적 느낌이 만들어진다. 순간, 그는 눈을 크게 뜨고 자신이 작업한 화면을 신기한 듯 한참 들여다본다. 화면에 단어 하나만 빼곡하게 메꾸던 그가 경험이 반복되면서 여러 단어를 표현한다. 발화는 거의 안되지만 그가 좋아하는 단어들이다.
또 어떤 이는 꽃과 시를 좋아한다. 시를 이해 못 한다고 단정하지 마라. 여러 편의 시를 아름답게 꾸며서 모니터에 띄우고 함께 읽어보자고 하면 발화가 되든 안 되든 입술을 움직인다. 참여다. 시적 정서에 참여하고 느낀다는 것을 나는 예민한 본능으로 알아챈다. 꽃을 직접 표현하는 것이 어려우면 꽃 그림을 프린트해 마음대로 찍거나 오려 붙이게 한다. 묘사가 가능하다면 자기 방식대로 표현하도록 돕는다. 중요한 것은 그림을 ‘비슷하게’ 그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 감각으로 경험하는 것이다.
이들은 미술 작업을 정말 좋아한다. 그리고 나는 안다. 느낀다. ‘화가’가 어떤 의미인지를. 완성된 결과물을 쭉 늘어놓고 “◌◌씨~ 진짜 화가예요!”라고 말하면, 표정이 달라진다. 자부심, 으쓱하는 기분, 감각. 이들도 1등을 아주 좋아한다. “오늘은 다 1등이에요! 서로 박수를 쳐 줍시다!” 공간은 금세 웃음으로 가득 찬다. 그 순간만큼은 비교도 기준도 없다. 오직 함께 즐긴 뿌듯한 경험만이 남는다.
재현을 넘는 예술
기대의 방향을 바꿔보자. 때때로 보호자나 미술에 고정화된 시각을 가진 사람들은 이들이 대상물을 ‘비슷하게’ 표현하기를 기대한다. “사과는 사과처럼 보여야지.” “꽃은 꽃답게 그려야 잘한 거지.” 그리고 비슷하게라도 재현했을 때 발전했다고 여기고 박수가 나온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작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여전히 ‘비슷함’을 기대받아야 할까. 장애인 예술교육에서 필요한 것은 기술의 완성이 아니라 표현의 존중이고 자기 존재 확인, 성취라고 생각한다.
현대예술은 더 이상 ‘얼마나 잘 그렸는가’를 묻지 않는다. 대상을 얼마나 사실적으로 재현했는지보다, 왜 그렇게 선택했는지, 어떤 경험과 감각이 그 안에 담겼는지를 본다. 현대예술에서 중요한 것은 기술의 숙련도보다 관점, 완성도보다 과정, 정답보다 선택의 맥락이다. 누구나 같은 방식으로 그려야 하는 예술은 이미 오래전에 끝났다. 현대예술은 오히려 묻는다. ‘당신은 왜 이 색을 골랐나요?’ ‘왜 이 부분에서 멈췄나요?’ ‘이 반복은 어떤 감각에서 비롯되었나요?’ 이 질문들은 말로 설명이 가능한 사람에게만 유효한 것이 아니다. 손의 움직임, 멈춤, 반복, 망설임과 고집까지도 모두 하나의 표현으로 읽힌다. 그렇기 때문에 발달장애·지적장애를 가진 이들의 작업은 현대예술의 기준과 멀지 않다. 오히려 결과보다 선택과 과정이 중요한 현대예술의 관점에서, 이들의 작업은 매우 솔직하고 본질적이다.
기준을 바꾸는 예술
‘모두의 예술’이란 모두가 예술가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또 모두가 같은 결과를 만들어야 한다는 뜻도 아니다. 그것은 예술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가 특정한 능력이나 기준에 의해 가로막히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그동안 예술은 종종 빠르게 이해하는 사람, 말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 기술을 익힐 수 있는 사람에게만 열려 있었다. 모두의 예술은 묻는다. ‘이 사람이 표현할 수 있는 방식은 무엇인가?’ ‘이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조건은 마련되어 있는가?’ 우리의 모든 신체와 감각은 열려 있다. 누군가는 붓 대신 손으로, 발로, 입으로, 누군가는 말 대신 반복으로, 누군가는 움직임 대신 멈춤으로 자신을 드러낸다. ‘모두의 예술’이란 그 모든 방식을 예술로 인정하는 태도다.
예술교육에서 말하는 ‘모두’는 단순히 대상을 넓힌다는 의미가 아니다. 장애인, 비장애인을 한 공간에 초대하는 것만으로 ‘모두’가 되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누구에게나 선택할 수 있는 구조가 있는가, 실패해도 괜찮은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배제되지 않는가이다. 모두의 예술교육이란 누군가를 기준에 맞추는 일이 아니라, 기준 자체를 유연하게 만드는 일이다. 그리고 그 기준의 중심에는 ‘잘함’이 아니라 ‘자기 결정’이 놓여야 한다. 내가 가르치지 않는 미술 수업을 선택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가르치지 않는다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대신 선택할 수 있는 재료를 준비하고, 속도를 강요하지 않으며, 표현의 형태를 미리 정하지 않는다. 이렇게 만들어진 공간에서 예술은 특정한 사람의 소유물이 아니라, 각자의 속도로 만날 수 있는 경험이 된다. 그때 비로소 예술은 ‘누구의 것’이 아니라 모두의 것이 된다. 수십 년 그림 그린 내가 배우고 깨닫는다.
‘모두의 예술’은 예술사에 이름을 남기거나 기념비적인 창작물을 남기는 일이 아니다. 더 많은 사람이 개방적으로 문화예술을 즐기는 것이다. 장애인 예술교육에서 말하는 ‘예술적 자율성’은 거창한 창작 능력이 아니다. 선택할 수 있는 권리, 멈출 수 있는 자유, 자기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 이 세 가지가 갖춰질 때, 비로소 예술은 누군가의 삶 안으로 들어온다. 나는 오늘도 가르치기보다 함께 놀기 위해 미술 수업에 간다.
우리 사람을 비롯한 자연 자체가 ‘없음’에서 ‘있음’이 된 존재다. 존재 자체가 창의적인 예술성을 부여한다. 모두 예술이다.
발달장애인 미술 수업에 관한 이해
“아무 기준 없이 하면 의미가 없지 않나요?” – 의미는 결과물이 아니라 경험에 있다. 정돈되지 않은 결과물도 반복되는 행동도 그 사람의 언어일 수 있다.
“어디까지 도와줘야 할지 모르겠어요.” – 도움과 개입은 다르다. 도움은 선택지를 열어주는 것이고, 개입은 선택을 대신 해주는 것이다.
“이게 예술인가요?” – 예술은 잘 만든 것이 아니라, 자기 방식으로 만든 것이다.
지시하지 말고 제안하기 – “이렇게 해요.” 대신 “이건 어때요?”
결과보다 과정 바라보기 – 완성도 보다 ‘즐겁게 집중한 시간’을 기억하기
음악과 공간 활용하기 – 언어로 드러내는 자기 욕구 표현이 어려울수록 감각은 더 중요한 통로가 된다.
문은주
문은주
돌 지나 겪은 소아마비 장애로 전동휠체어를 사용한다. 삶의 중기까지는 주로 개인 창작작업에 집중하며 지냈다. 13회에 걸쳐 개인전을 열었고, 아트페어, 그룹전에 동참했다. 사회적 편의시설 인프라가 확장되면서 2000년대부터 다양하게 사회적 활동을 하고 있다. 선사랑드로잉회, (사)한국장애인미술협회, (사)대한민국휠체어합창단, 사회적 장애인식개선 강사 활동 등을 통해 내 안에 얼마나 뜨거운 열정이 잠재되어 있었는지를 깨닫는다. 예술은 개별적이면서도 통합적이라는 견해를 지니고 미술, 음악 등 여러 단체 활동을 즐겁게 하고 있다. 사회의 공정성과 장애 문제, 소수자 문제가 타인의 문제가 아닌 우리 모두의 문제, 나의 문제임을 인식하며 ‘장애인 차별철폐 운동’과 ‘인권’에 관심이 많다.
mgloria@paran.com
블로그 artmoun
7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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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선희 2025년 12월 25일 at 6:46 PM

    의미가 결과물이 아니라 경험에 있다는 말씀이 마음에 콕 박히네요. 마침 한 해를 돌아보며 내가 얻은 결과물보다 경험들을 세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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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양남 2025년 12월 28일 at 11:12 AM

    선택할 권리, 멈출 자유, 안전한 시간
    모두의 예술교육⑥ 각자의 방식을 인정하는 미술 수업
    공감이 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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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기현 2025년 12월 28일 at 12:07 PM

    선택할 권리, 멈출 자유, 안전한 시간
    모두의 예술교육⑥ 각자의 방식을 인정하는 미술 수업
    기대만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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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현 2025년 12월 30일 at 10:27 PM

    이 이야기를 통해 예술교육은 기술이나 결과를 가르치는 일이 아니라, 선택하고 머뭇거릴 권리까지 포함해 한 사람의 존재 방식을 존중하는 일임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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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민정 2026년 01월 22일 at 2:37 PM

    모두의 예술이 예술사에 이름을 남기거나 기념비적인 창작물을 남기는 일이 아니고 더 많은 사람이 개방적으로 문화예술을 즐기는 것이라는 말이 너무 와닿고 멋져요 ㅎㅎ 자기만의 방식으로 함께 놀 수 있는 새해의 예술이 되길 !! 응원할게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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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선영 2026년 02월 01일 at 9:26 PM

    새해에는 바쁘고 힘든 순간 속에서도 마음이 쉬어갈 수 있는 따뜻한 순간들이 자주 찾아오길 바랍니다 건강과 행복 가득한 한 해 되세요
    문은주 작가님 사랑듬뿍 받길 응원할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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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희 2026년 04월 15일 at 5:33 PM

    선택할 권리, 멈출 자유, 안전한 시간… 제목 참 좋아요
    각자의 방식을 인정하는 미술수업의 분위기와 격려, 이런 문화가 우리를 더욱 성장하게 하는 것이겠지요. 늘 그럴듯한 그림만을 그리도록 요구받는 과거의 수업이 아닌 나 자체를 존중하는 수업, 멋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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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선희 2025년 12월 25일 at 6:46 PM

    의미가 결과물이 아니라 경험에 있다는 말씀이 마음에 콕 박히네요. 마침 한 해를 돌아보며 내가 얻은 결과물보다 경험들을 세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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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양남 2025년 12월 28일 at 11:12 AM

    선택할 권리, 멈출 자유, 안전한 시간
    모두의 예술교육⑥ 각자의 방식을 인정하는 미술 수업
    공감이 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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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기현 2025년 12월 28일 at 12:07 PM

    선택할 권리, 멈출 자유, 안전한 시간
    모두의 예술교육⑥ 각자의 방식을 인정하는 미술 수업
    기대만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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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현 2025년 12월 30일 at 10:27 PM

    이 이야기를 통해 예술교육은 기술이나 결과를 가르치는 일이 아니라, 선택하고 머뭇거릴 권리까지 포함해 한 사람의 존재 방식을 존중하는 일임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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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민정 2026년 01월 22일 at 2:37 PM

    모두의 예술이 예술사에 이름을 남기거나 기념비적인 창작물을 남기는 일이 아니고 더 많은 사람이 개방적으로 문화예술을 즐기는 것이라는 말이 너무 와닿고 멋져요 ㅎㅎ 자기만의 방식으로 함께 놀 수 있는 새해의 예술이 되길 !! 응원할게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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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선영 2026년 02월 01일 at 9:26 PM

    새해에는 바쁘고 힘든 순간 속에서도 마음이 쉬어갈 수 있는 따뜻한 순간들이 자주 찾아오길 바랍니다 건강과 행복 가득한 한 해 되세요
    문은주 작가님 사랑듬뿍 받길 응원할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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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희 2026년 04월 15일 at 5:33 PM

    선택할 권리, 멈출 자유, 안전한 시간… 제목 참 좋아요
    각자의 방식을 인정하는 미술수업의 분위기와 격려, 이런 문화가 우리를 더욱 성장하게 하는 것이겠지요. 늘 그럴듯한 그림만을 그리도록 요구받는 과거의 수업이 아닌 나 자체를 존중하는 수업, 멋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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