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쟁이와 함께 존재하기

오늘부터 그린㊷ 존재의 상호 의존성과 충족

나는 매일 아침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준 뒤, 바로 옆 공원에 산책을 간다. 벽과 나무를 타고 올라가는 덩굴 식물을 볼 때면 늘 감탄을 금치 못한다. 덩굴 식물의 덩굴손(Tendril)은 스스로 곧은줄기를 형성하지 못하고 지면을 기어가거나, 다른 물체에 자신의 몸체를 감싸 자기 몸을 지지한다. 마치 영장류의 손처럼 휘감고, 뻗어 나가고, 붙잡고, 햇빛 혹은 어딘가를 향하고 있는 모습은 동물 못지않은 움직임과 생명력이 가득 차 있다.
덩굴손과 담쟁이
‘덩굴손’이라는 명칭은 그 특징을 참 잘 포착하고 있다. 놀랍게도 덩굴손은 화학적 성분을 내뿜어 자신과 다른 종인 식물을 향해 더 뻗어가는 경향이 있다. 이를 안 순간부터 이주민-어머니-예술 노동자로서 타지에서 살고 있는 나에게 그는 삶의 스승 혹은 동지와 같은 존재가 되었다. 그는 종(Species)의 다양성 추구야말로 생존과 번성의 기회를 더 많이 준다는 것을 알고 그렇게 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모습을 보면 우리 인간도 비록 다름이 두려울지라도 더 타자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만나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많은 사람이 덩굴 식물 중 특히 담쟁이(아이비, Ivy, Hedera helix)를 기생식물로 오해하기도 한다. 담쟁이는 일 년 내내 푸른 상록수인 덕분에 겨울 동안 작은 동물과 곤충들에게 서식지를 제공한다. 다른 식물들과 달리 가을에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그 시기에 굶주리는 곤충들에게 먹이를 준다. 또 자기 뿌리와 영양 시스템을 이용하기 때문에 기대고 있는 나무의 양분을 빼앗지 않는다. 대부분의 나무는 담쟁이가 타고 올라갈 만큼 튼튼하다. 만일 담쟁이가 햇빛을 가려 죽게 되는 나무가 있다면 그는 이제 땅속 분해의 순환 속으로 돌아가 새로운 생명의 자리를 마련해 줄 차례가 된 것이다. 이처럼 담쟁이는 다른 종에 의존하여 생명력을 유지하는 동시에, 자신의 것을 베풀어 준다. 연결하고, 기대고, 모방하는 능력과 유연성을 통해 다른 종으로부터 도움받고, 또 다른 종에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떨까? “당신도 담쟁이처럼 다른 존재와 도움을 주고받고 있나요?”
  • 미국담쟁이덩굴(Parthenocissus quinquefolia)의 역동적인 모습 ©서영란
담쟁이로부터 상호 의존성 배우기
나는 담쟁이가 다른 종에게 기대고 도움을 주기도 하는 ‘상호 의존성’에 경도되어 위의 질문을 ‘담쟁이 되기(Becoming Ivy)’ 워크숍에서 참여자들에게 물은 바가 있다. ‘상호 의존성’은 담쟁이를 포함한 비인간 생물종에 국한된 것이 결코 아니다. 더 케어 콜렉티브는 『돌봄 선언』에서 인간은 상호 의존적 존재라는 것부터 인정하자고 제안한다. ‘우리의 상호 의존성을 인정하고 돌봄과 부양의 중심에 있는 보편적인 양면성을 포용해야 한다.’ 즉 인간은 모두 돌봄에 의존하는 존재이자 돌봄을 주는 존재이고 그것이 우리 공동체, 사회, 문명의 근간이라는 것이다. ‘어떤 형태로 나타나든 모든 돌봄이 가정에서뿐 아니라 친족에서부터 공동체, 국가, 지구 전체를 포함한 모든 영역에서 우선시되어야 한다’라는 돌봄 선언에 공명하며 나는 이 상호 의존성을 담쟁이로부터 다시 배울 수 있기를 기대했다.
담쟁이 되기 워크숍은 나를 포함한 여러 예술가, 기후운동가 등이 설립한 기후 운동 퍼포먼스 콜렉티브 ‘비커밍 스피시스(Becoming Species)’가 주최했다.(주1) 비커밍 스피시스 즉 ‘생물종이 되기’라는 이 기이한 이름의 그룹은 2020년부터 국제적인 환경 운동 단체 ‘익스팅션 리벨리온’(Extinction Rebellion, XR) 및 여러 환경보호단체와 연합하여 기후 및 생물다양성 시위에서 시적이고 감각적인 퍼포먼스를 해왔다. 시위 준비 과정에서 발전시킨 우리의 예술적 실천은 대중과 함께 체험할 수 있는 워크숍 활동으로 확장되었다. 올해 2025년에는 코펜하겐 이스란드 브뤼게 문화의집(Islands Brygge Kulturhuset)에 초대받아 ‘비커밍 스피시스 워크숍 시리즈’를 열었다. 매달 멤버들이 돌아가면서 자신이 특별히 애착을 가지고 일종의 친족 맺기(도나 해러웨이, 2021)를 하고 있는 특정 생물종, 예를 들어 문어, 박쥐, 나방, 버섯, 균사체 등에 인간을 투영하며 ‘되기(Becoming)’ 워크숍을 진행했다. 이 시리즈에서 나는 개인 프로젝트로 진행하던 ‘함께 짓기’와 비커밍 스피시스에서 발전시켜온 ‘담쟁이 되기’를 엮어 멤버 릭(Rik/Juniper)과 함께 워크숍을 진행했다.
  • 담쟁이 되기 워크숍 ©서영란
담쟁이와 상호 의존적 지식 만들기
담쟁이 워크숍을 준비하면서 하루는 놀라운 전화를 받았다. 덴마크 오르후스에서 ‘생물종 앰배서더(Species Embassador)’ 그룹을 창시한 니나 토프트 한슨(Nina Tofte Hansen)의 전화였다(주2). 그녀는 담쟁이의 생태적 권리를 위해 목소리를 내는 대사를 자청했고, 누군가가 담쟁이 되기 워크숍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반가운 마음에 연락한 것이다. 그녀는 밝고 신이 난 목소리로 내가 어떤 연유로 담쟁이와 관계 맺게 되었는지 물었고, 내 이야기를 그녀에게 들려준 것을 시작으로 그녀는 자신의 오랜 연구와 관심으로 수집해온 담쟁이덩굴에 대한 지식을 한 아름 안겨주었다. 워크숍을 진행하면서 각자의 담쟁이에 대한 러브스토리를 공유하는 것이 집단적 지식 생성의 과정이라는 그녀의 말이 진실임을 깨달았다.
담쟁이 되기 워크숍은 참여자들에게 나의 담쟁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명상으로 시작했다. 이후 두 그룹으로 나뉘어서 각자가 떠올린 담쟁이의 이미지를 그리고, 그 이미지를 서로에게 들려주고, 경청한 상대방의 이야기를 에코잉(echoing)하는 활동(practice)을 진행했다. 놀랍게도 사람들이 떠올린 담쟁이의 이미지는 모두 달랐다. 유년 시절 종소리가 날 듯한 잎사귀를 바라보았던 기억, 높은 벽을 타고 가냘프게 올라가는 담쟁이, 할아버지 떡갈나무와 지혜를 나누고 있는 담쟁이, 나무와 포옹하고 있는 담쟁이, 또 담쟁이에 완전히 둘러싸여 아예 보이지 않게 된 신비의 나무 등. 각자의 이미지를 묘사하는 문장과 움직임을 모방하고, 서로 닮거나 공통되는 부분을 연결했다. 점차 담쟁이에 대한 이해와 이미지가 더 풍부해졌고, 생물 사이의 관계를 기생 혹은 공생으로 나누는 이분법적 사고를 넘어, 그 사이 무언가 다른 관계를 상상하게 되었다. 또한 시공간을 함께 보내고 있는 서로에 대한 이해와 연결성도 형성되어갔다. 마지막은 담쟁이를 무대 중앙에 놓고, 각자의 담쟁이 춤을 추고 그것을 모두가 돌아가며 배우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그 마지막 20분 담쟁이와의 춤에서 무언의, 최면적으로 반복되는, 얽히고설킨, 압축된 아우라를 경험했다. 말로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이것이 뭐였을까, 우리는 질문했다.
  • 담쟁이 되기 퍼포먼스 개입 ©코펜하겐 탈성장(Degrowth) 페스티벌
담쟁이 되기
담쟁이를 만나 느낀 감탄과 같은 감정은 무엇일까? 담쟁이의 움직임을 보고 따라 움직이고 싶은 충동을 느낀 것은 무엇일까? 철학자 제인 베넷은 인간과 식물 사이의 기묘한 유대와 소통에 주목한다.(제인 베넷, 2017) 서구 근대 인간 중심의 사고에서 연민 또는 공감(Sympathy)이란 ‘나’라는 주체가 ‘대상’에게 갖게 되는 우위의 감정이다(주3). 게다가 공감은 정치적 문제가 위치하는 인간 사이의 거리, 즉 세속적인 공간을 없애기 때문에 정치적 자유의 이성적 작업과 상충하는, 무관하고 무의미한 주관적인 감정으로 간주했다. 이와 다르게 베넷은 공감이란 본질적으로 주관적인 감정이나 정서가 아니라, 자연물들 사이의 비인격적인 연결고리로 본다. 존재론(Ontology)에서 온 ‘Onto’와 ‘Sympathy’를 엮은 ‘존재적 공감(Onto-Sympathy)’으로 공감의 근대적 정의를 뒤흔들고 정치적 개념으로 재평가한다.
대부분의 사람이 숲에 가거나 나무를 바라볼 때 자신의 상태가 이전과 다르게 변화된 것을 느낄 것이다. 상쾌해지거나 마음이 진정되는 등의 효과는 인간 주체 혼자서 이루는 것이 아니다. 나무와 인간 사이에서 무언가가 일어난 것이다. 내가 덩굴손을 보면서 감탄하는 그 상태는 자력으로 만든 것이 아니다. 덩굴손과 나 사이에서, 덩굴손은 나의 상태를 변화시키는 중요한 행위자이자 명백한 힘을 발휘한다. 식물과 인간을 날카롭게 구분하는 대신 그 유사성을 포착하여 연속체로 보는 것, 그 유사성으로 인한 감탄, 공감, 애정, 따라서 그 모습을 따라 하고 싶어지는 충동을 느끼는 것, 즉 나와 생물종의 존재론적 공감을 인지할 때 생물종 되기는 진행 중이다.

(주1) 비커밍 스피시스 그룹에 대한 소개는 저자가 웹진 [생태적 지혜](2022, 2023)와 부산문화재단 계간지 [공감 그리고](2023)에 기고한 바 있다.

(주2) 생물종 앰배서더는 생물다양성을 추구하며 각종 사회 정치적 장에서 생물종의 생태적 권리를 대표하여 목소리 내는 역할을 한다.

(주3) Sympathy는 동감, 공감, 연민, 동정 등으로 번역된다. 정치적으로 무의미하게 여겨온 Sympathy의 정치성을 다시 살펴본다는 제인 베넷의 취지에 맞게, ‘생각이나 의견에 일치한다’라는 의미의 ‘동감’보다는 ‘남들과 함께 똑같이 느끼는 감정’이라는 의미의 ‘공감(共感)’으로 번역했다.

[참고문헌]
· Bennett, J. (2017). Vegetal Life and Onto-Sympathy. In CATHERINE KELLER & MARY-JANE RUBENSTEIN (Eds.), Entangled Worlds (p. 89).
· 더 케어 콜렉티브. (2021) 돌봄선언: 상호의존의 정치학. (정소영 역). 니케북스 사회과학 시리즈
· 도나 해러웨이. (2021) 트러블과 함께하기: 자식이 아니라 친척을 만들자. 최유미(역). 마농지
서영란
서영란
서울과 코펜하겐에서 활동하는 안무가, 예술적 연구자이다. 한국에서는 샤머니즘, 전통춤, 여신신화, 아시아의 근대화에 대하여 인류학적 조사에 기반한 다원적인 무용공연을 만들었다. 덴마크로 이주한 뒤 기후 운동 퍼포먼스 그룹 ‘비커밍 스피시스’의 멤버로 활동하며, 복수종, 전통생태지식, 집단적 이야기 짓기에 관해 공연을 만들고 글을 쓰고 워크숍을 가이드하고 있다.
rosaria1110@gmail.com
8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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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파엘 2026년 01월 07일 at 11:19 AM

    크게 공감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 author avatar
    김양남 2026년 01월 07일 at 12:57 PM

    담쟁이와 함께 존재하기
    오늘부터 그린㊷ 존재의 상호 의존성과 충족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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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기현 2026년 01월 07일 at 1:51 PM

    담쟁이와 함께 존재하기
    오늘부터 그린㊷ 존재의 상호 의존성과 충족

    기대만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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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콩민이 2026년 01월 21일 at 1:19 PM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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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광자 2026년 01월 21일 at 2:32 PM

    식물에게도 배울점이 있다는 것이 인상 깊네요
    관찰 그리고 좋은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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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태환 2026년 01월 21일 at 9:28 PM

    담쟁이와 함께 존재하기
    많은 것을 배웁니다.
    포기하지 않은 하나의 모든 순간들이 행복한 빛나는 결실로 이어지길 응원합니다!!!

  • author avatar
    김수현 2026년 01월 28일 at 9:18 PM

    서로에게 기대며 살아가는 존재라는 사실을 다시 배우게 하는 이야기였다.
    새해에는 담쟁이처럼 잘 연결되고, 기꺼이 기대고 또 내어주는 한 해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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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꿀떡 2026년 02월 01일 at 7:58 PM

    2026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즐거운 한 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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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파엘 2026년 01월 07일 at 11:19 AM

    크게 공감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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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양남 2026년 01월 07일 at 12:57 PM

    담쟁이와 함께 존재하기
    오늘부터 그린㊷ 존재의 상호 의존성과 충족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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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기현 2026년 01월 07일 at 1:51 PM

    담쟁이와 함께 존재하기
    오늘부터 그린㊷ 존재의 상호 의존성과 충족

    기대만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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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콩민이 2026년 01월 21일 at 1:19 PM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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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광자 2026년 01월 21일 at 2:32 PM

    식물에게도 배울점이 있다는 것이 인상 깊네요
    관찰 그리고 좋은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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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태환 2026년 01월 21일 at 9:28 PM

    담쟁이와 함께 존재하기
    많은 것을 배웁니다.
    포기하지 않은 하나의 모든 순간들이 행복한 빛나는 결실로 이어지길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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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현 2026년 01월 28일 at 9:18 PM

    서로에게 기대며 살아가는 존재라는 사실을 다시 배우게 하는 이야기였다.
    새해에는 담쟁이처럼 잘 연결되고, 기꺼이 기대고 또 내어주는 한 해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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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꿀떡 2026년 02월 01일 at 7:58 PM

    2026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즐거운 한 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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