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자의 세계와 함께하는 예술교육

책으로 읽는 문화예술교육

2025년 1월 초, 제주 조천읍 선흘리에서 만난 할망들의 그림, 본풀이(이야기) 전시의 감동을 잊을 수가 없다. 할망들의 일상적인 삶의 공간인 창고, 소막(외양간) 등에서 펼쳐진 전시 《똘(딸의 제주어) 어멍 할망 그리고 기막힌 신들의 세계》는 11명 할망의 생애 서사가 스민 신화적 사고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장엄함이었다.
제주 할망, 칠곡 할매와의 동행
선흘볍씨마을협동조합이 2021년 지역특성화 문화예술교육 사업으로 시작한 할망들의 그림 수업은 밤새 그림을 그리는 열정으로 이어졌다. 할망들의 소막, 창고 등을 개조해 소막미술관, 그림창고, 춘자회랑, 동백미술관, 생이미술관, 우영미술관, 황금창고, 초록미술관, 인자화실 등 마을미술관을 만들었다. 할망들의 그림, 글짓기 선생님인 최소연 씨가 할망들의 그림과 이야기를 담은 『할머니들의 그림수업』을 출간하고 방송에 나오며 유명세를 치렀다. 최근에는 넷플릭스 시리즈 <폭싹 속았수다>와 관련된 그림을 그린 《폭싹 속았수다 똘도, 어멍도, 할망도》 그림전에 배우 아이유(광례똘 애순이)가 방문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경북 칠곡군에는 2006년부터 22개의 마을학당 성인문해교육을 통해 280여 명의 할매 시인이 시를 써왔으며, 207명의 할매 시인의 시 216편이 담긴 시집 1권 『시가 뭐고?』(삶창, 2015), 2권 『콩이나 쪼매 심고 놀지머』(삶창, 2016)를 냈다. 아울러 할매들의 글씨와 그림을 담은 할매 시노트 『칠곡할매, 사랑이라카이 부끄럽다』 외 2종(인문사회연구소, 2015), 『짝대기가 꼬꼬장 꼬꼬장해』(코뮤니타스, 2017)도 냈으며, 2018년에는 3집으로 시화집 『내 친구 이름은 배말남 얼구리 애뻐요』(코뮤니타스, 2018)를 냈다. 목소리에 의지하는 구술성, 삶의 언어, 지역 언어가 고스란한, 틀린 철자가 많은 칠곡 할매 시집과 시노트는 문학의 초심을 일깨우며 각종 언론을 통해 알려져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할매 시인들이 직접 쓰고 그린 시화 아카이브가 구축되었으며, 스토리 펀딩, 시 낭송 영상, 노래, 다큐멘터리, 영화 <칠곡 가시나들>(2019)이 제작되었고, 칠곡 할매들의 연극(보람할매연극단), 래퍼(수니와 칠공주) 활동 또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칠곡 할매 글꼴이 만들어지고, 뮤지컬 <오지게 재밌는 가시나들>이 제작되었으며, 칠곡 할매 시가 중1 국어 교과서(천재교육)에 수록되기도 했다.
  • 최소연, 『할머니들의 그림 수업』(김영사, 2023)
     
  • 권연이 외 91명, 『내 친구 이름은 배말남 얼구리
    애뻐요』(코뮤니타스. 2018)
두 지역의 공통적인 특성은 예술교육가가 전형적인 그림 그리기 혹은 글짓기 교육에서 벗어나 서툴고 거칠고 투박한 표현을 존중하고 공감함으로써 참여자들의 삶의 서사와 미학이 드러나도록 했다는 점이다. 할머니들이 품고 있는 공간과 시간, 지역적 삶을 존중하고, 일상의 고단함이나 삶의 누추함마저도 함께 나누었으며, 교육자와 피교육자가 아니라, 마을이라는 일상적인 삶의 자리에서 정서적으로 교감하고 동행하는 관계였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할머니들의 작품 속에는 몸에, 마음에 깃든 무늬, 삶의 주름, 수많은 이들(사람, 짐승, 식물 등)의 거처가 생생하고, 이웃이, 마을이, 지역이 한 몸에 들어앉아 살고 있었다. 아울러 할머니들의 투박하고도 따스한 작품 속에 생태적 감수성과 인간이 지녀야 할 윤리적 태도, 감사와 연대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참여자의 감각이 힘을 잃지 않도록
예술교육가는 참여자의 삶을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인가, 아니면 그 삶을 ‘함께 해석하고 연결하는’ 동료인가?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보다 ‘어떻게 함께 할 것인가’를 질문해야 한다. 참여자의 삶을 실천적 지혜와 기억의 저장소로 이해할 때 예술교육의 시작점은 바뀐다. 예술교육가는 참여자들이 주체로 발화하고 자신의 언어로 삶을 재해석하도록 하는 협력자여야 한다. 이를 위해선 예술교육가의 시선과 태도가 전환되어야 한다.
문화예술교육 현장에서 ‘참여자 중심’이라는 말은 익숙하게 쓰이지만, 실제 현장을 보면 많은 경우 전문가나 예술교육가의 지식과 기술이 중심을 차지하고, 참여자의 언어와 감각은 ‘부족한 것’으로 취급될 때가 많다. 이반 일리치(철학자)는 『전문가들의 사회』(사월의 책, 2015)에서 현대사회가 어떻게 전문가 중심으로 구조화되었는지 비판적으로 살핀다. 전문가들은 모든 문제를 자신의 전문 언어로 재정의하여 일반 시민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빼앗는다. 전문가적 지식이 중심이 될수록 참여자들은 스스로 생각하고 말할 힘을 잃어간다. 참여자 중심 문화예술교육은 이 구조를 바꾸려는 시도다. 참여자가 스스로 자기 삶을 표현하고, 해석하고, 드러내도록 돕는 것이어야 한다. 심보선(시인, 사회학자) 또한 『그을린 예술』(민음사, 2013)에서 “예술가는 자기 삶을 감당하며, 누군가의 말에 응답하는 사람”이며, 예술교육가는 참여자의 말에 조용히 귀 기울이는 사람, 그 말이 비틀리거나 불완전하거나 어눌해도 그 속에서 진동하는 감정을 함께 느끼는 사람이어야 함을 강조한다.
예술교육가는 ‘교육 제공자’ ‘지식 전달자’가 아니라, ‘관계 조율자’ ‘촉진자’이자 ‘협력자’ ‘참여자와 함께 배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예술교육가 중심의 일방적 수업, 평가와 성과 중심의 프로그램 설계, 참여자의 표현을 ‘지도’하고 ‘완성’하려는 접근은 참여자의 감각과 세계를 무력화할 수 있다.
토박이의 지혜, 참여자가 지닌 세계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인류학자)는 『야생의 사고』(한길사, 1996)에서 참여자의 삶과 지혜를 재평가할 수 있는 중요한 관점을 제공한다. 그는 서구 중심의 ‘과학적, 이성적’ 사고와 달리, 원주민이나 비서구권에서 발견되는 구체적이고 감각적이며 삶과 밀착된 사고방식을 ‘야생의 사고’라고 명명한다. 야생의 사고는 문명화된 사고보다 덜 논리적인 것이 아니다. 단지 ‘다른 방식으로 세계를 조직’할 뿐이다. 서구의 과학적 사고가 추상화, 일반화, 분류를 통해 체계를 만든다면, 야생의 사고는 구체적 사물, 경험, 감각, 관계를 통해 세계를 조직한다. 즉, 야생의 사고는 삶과 밀착된 구체성, 상징, 이야기, 감각 중심의 인식, 비선형적, 관계적, 맥락적 사고를 특징으로 한다.
따라서 문화예술교육 참여자의 언어, 지역적 감수성, 일상의 경험, 비문자적 표현 방식 등은 열등하거나 미숙한 것이 아니라, 그 나름의 구조와 논리를 가진 소중한 삶의 언어이자 지혜라는 관점이 필요하다. 즉, 참여자의 지식은 ‘부족한 것’이 아니라 존중하고 경청해야 할 그 자체로 충분한 세계이다. 문화예술교육 현장에서 참여자의 언어, 감각, 경험은 종종 ‘비전문적’ 혹은 ‘수준이 낮다’는 이유로 배제될 수 있다. 할머니의 사투리, 농부의 날씨 감각, 주민의 요리법, 비문해자의 그림 언어 등은 세계와 관계 맺는 방식이자 하나의 구조화된 지식 체계이다. 참여자 중심 교육은 바로 이 야생의 사고를 하찮게 보지 않고, 존중하며, 그것을 중심 언어로 삼는 실천이다.
이반 일리치 또한 『그림자 노동』(사월의 책, 2015)에서 한 지역에서 태어나고, 그 지역의 언어와 도구,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 무엇이든 스스로 해내는 삶의 지혜를 가진 사람, 자신의 땅에 뿌리내린 삶의 주체를 ‘토박이(verna)’라고 정의한다. 토박이의 삶은 누군가 가르쳐준 것이 아니라, 몸으로 배운 것, 관계 속에서 길러진 것, 이웃과 나눈 기억 속에 자리한 것으로 문화예술교육이 이 ‘토박이의 지혜’를 중심에 놓을 때, 더 이상 참여자를 대상으로 삼지 않을 수 있다.
일리치가 말했듯 ‘진짜 교육은, 만남 속에서 일어난다. 그것은 구조가 아니라, 사건이다.’ 참여자의 삶의 논리를 읽어주는 교육, 감각과 기억의 구조를 표현의 출발점으로 삼는 교육, 서툴고 거친 표현 속에서 고유한 세계관을 포착하는 교육이어야 한다. 참여자의 생활세계와 생활 감각을 기반으로 교육자는 가르치기보다 질문하고, 듣고, 연결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참여자가 직접 프로그램을 설계하고 운영하는 주민자치형 예술교육으로 나아가기를 기대해 본다.
신동호
신동호
도시·마을·공간계획, 문화정책연구·평가, 농업농촌연구 등을 주로 하는 연구소 ‘코뮤니타스’와 27년째 함께 하고 있다. 좀 더 의미 있는 일을 해보고자 지인들과 함께 설립한 (사)인문사회연구소의 소장으로서 로컬리티의 디아스포라 연구, 지역 재생, 스토리/콘텐츠, 사회연대경제 등에 관심을 두고 있다. 2년간 제주에서 관성적인 삶을 멈추고, 읽고, 걷고, 텃밭을 가꾸는 일상을 지내다 왔으며, 육지 생활에 적응 중이다.
isle@communitas.kr
이미지 제공_김영사, 코뮤니타스
4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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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utian 2025년 07월 30일 at 5:30 PM

    개인적으로 아이들을 키우며 늘 삶가운데 맥락의 이해를 강조했었는데 필자의 글을 보며 때로는 하나의 이벤트나 스팟으로 현상이나 사건 삶을 온전히 인정하고 몸을 물리고 그 한 순간을 지켜보는 것을 선행하는 것이 관계간의 시너지 혹은 창의적 케미스트리로 어떻게 효과적인 작동하는 지 알게 되었습니다. 흡수가 되어 희석되는 것이 아닌 화합의 사건을 통해 또 다른 맥락의 장을 함께 열어 가는 것이 얼마나 흥미롭고 설레는 일인가를 알게 되었고, 정보나 경험에 대해 전달하거나 이해할 때 습관적으로 과도하게 구조화, 맥락화를 하려는 제 인지에 대해서도 생각 해보게 되었습니다. 미국의 나이가 지긋한 어느 재즈의 대가께서 \’어떤 화성학 음계 모드도 본인은 평생 들어본 적이 없다. 그저 레슨으로 돈벌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어러쿵 저러쿵 하는 얘기다.\’라는 말씀을 하신 것이 기억납니다. 각자의 감정의 주체적 참여가 전제 되지 않는 다면 재즈 또한 복잡한 화성학의 나열로만 \’설명\’될 순 있어도 적어도 그 재즈의 대가의 기준에선 오히려 부족한 재즈가 되어 버린 것이 아닐까 생각 합니다. 전혀 기대치 않은 곳에서 표현할 수 없는 새로운 것 들이 주는 아름다움과 마음의 환기, 우리가 예술을 사랑하는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가 아닐까 다시 되뇌여 보는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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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양남 2025년 08월 04일 at 1:18 PM

    참여자의 세계와 함께하는 예술교육
    책으로 읽는 문화예술교육
    공감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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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기현 2025년 08월 04일 at 2:41 PM

    참여자의 세계와 함께하는 예술교육
    책으로 읽는 문화예술교육

    기대만점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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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훈 2025년 08월 17일 at 9:02 PM

    예술교육자가 단순히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배우고 해석하는 ‘동행자’가 되어야 한다는 관점이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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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utian 2025년 07월 30일 at 5:30 PM

    개인적으로 아이들을 키우며 늘 삶가운데 맥락의 이해를 강조했었는데 필자의 글을 보며 때로는 하나의 이벤트나 스팟으로 현상이나 사건 삶을 온전히 인정하고 몸을 물리고 그 한 순간을 지켜보는 것을 선행하는 것이 관계간의 시너지 혹은 창의적 케미스트리로 어떻게 효과적인 작동하는 지 알게 되었습니다. 흡수가 되어 희석되는 것이 아닌 화합의 사건을 통해 또 다른 맥락의 장을 함께 열어 가는 것이 얼마나 흥미롭고 설레는 일인가를 알게 되었고, 정보나 경험에 대해 전달하거나 이해할 때 습관적으로 과도하게 구조화, 맥락화를 하려는 제 인지에 대해서도 생각 해보게 되었습니다. 미국의 나이가 지긋한 어느 재즈의 대가께서 \’어떤 화성학 음계 모드도 본인은 평생 들어본 적이 없다. 그저 레슨으로 돈벌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어러쿵 저러쿵 하는 얘기다.\’라는 말씀을 하신 것이 기억납니다. 각자의 감정의 주체적 참여가 전제 되지 않는 다면 재즈 또한 복잡한 화성학의 나열로만 \’설명\’될 순 있어도 적어도 그 재즈의 대가의 기준에선 오히려 부족한 재즈가 되어 버린 것이 아닐까 생각 합니다. 전혀 기대치 않은 곳에서 표현할 수 없는 새로운 것 들이 주는 아름다움과 마음의 환기, 우리가 예술을 사랑하는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가 아닐까 다시 되뇌여 보는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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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양남 2025년 08월 04일 at 1:18 PM

    참여자의 세계와 함께하는 예술교육
    책으로 읽는 문화예술교육
    공감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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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기현 2025년 08월 04일 at 2:41 PM

    참여자의 세계와 함께하는 예술교육
    책으로 읽는 문화예술교육

    기대만점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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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훈 2025년 08월 17일 at 9:02 PM

    예술교육자가 단순히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배우고 해석하는 ‘동행자’가 되어야 한다는 관점이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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