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에서 피어나는 시

모두의 예술교육② 느린학습자와 함께하는 시 창작

시는 인칭의 장르다. 정확히는 인칭의 범위를 새롭게 재고하는 장르다. 직접 선택한 낱말들과 그 배치를 활용해 ‘나’의 마음을 설명하고, ‘너’와 닮아 있는 것을 찾고, ‘우리’라고 불러보고 싶은 공동체의 범위를 새롭게 모색해 보는 일. 그렇게 인칭과 명사를 탐구하고, 우리를 부르는 이름 안에서 우리가 어떻게 정의될 수 있는지 묻는 일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존재할 수 있는 방식을 새롭게 배치하는 과정과도 분명 맞물릴 것이다. 결국 시 쓰기는 호명의 역학 안에서 주체성을 새롭게 고민할 수 있는 굉장히 정치적인 수행이 될 것이다.
과연 그렇다면, 우리 중에서는 누가 시인일까? 누가 예술을 할 수 있는가? 아울러 예술은 어떻게 시작되는가? 이런 질문들도 병행해 보자. 어찌 보면 문화예술교육의 현장을 구성하는 가장 근원적인 질문들이다. 나 역시 이런 것들을 오랫동안 고민하며 시를 써왔고, 나름대로 규정해 본 문학, 혹은 시 창작의 의미를 공유하거나, 혹은 여전히 헤매고 있는 답보 상태를 교육현장에서 (의도치 않게) 고스란히 노출하는 방식으로 시 창작 수업을 진행해 왔다. 그런데 작년 여름, 이런 질문들 안에서 특별한 각성을 넘어 전반적인 체험의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바로 느린학습자와 함께하는 문예 창작 프로젝트 <시작(詩作)에 자격이 필요해?>를 만나게 된 것이다.
시와 조응하는 고유한 리듬, 감각, 언어
<시작(詩作)에 자격이 필요해?>는 이름에서부터 프로그램이 지향하는 바와 세상을 향해 질문하고자 하는 내용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2024년 7, 8월에 진행한 3회차의 수업에서 시작하여 11월 낭독과 전시, 결과공유회에 이르기까지 하반기의 계절들을 함께 통과해 나가는 여정이었다. 아울러 다양한 교육 주체들이 “우리”라는 명사 안에서 함께 할 수 있는 방식을 탐구해 나가는 일이기도 했다. ‘모두에게 다른 방식의 교육’을 실천하며 다양한 이들과의 소통을 지향하고, 각기 다른 속도를 존중하기 위한 학습을 제공해온 ‘라이브러리 피치’, 문학으로 가능한 공존과 상생을 도모하며 시 창작을 지속해 온 문학동인 ‘공통점’, 조선대학교 문예창작학과가 함께 기획과 연구를 진행하였으며, 광주광역시 동구에 있는 예술기관 ‘미로센터’가 협력함으로써 지역사회 안에서 함께 시도해 볼 수 있는 혁신적인 학습 지원을 모색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이 프로그램의 주체는 광주, 전남권에 거주하는, 통상적으로 ‘느린학습자’라고 불리는 열 명 남짓한 학생들이었다. 우리는 서로를 시인이라고 칭하는 것을 첫 번째 규칙으로 삼았다. 느린학습자는 이해하기 쉬운 글과 정보가 필요한 이들을 지칭하는 용어다. 평균적인 발달 속도에서 벗어났다는 이유만으로, 흔히 느린학습자를 학습에 있어 ‘결핍된 주체’로 이해한다. 또는 도움이 필요한 존재로 분류하거나 간주한다. 하지만 모두와 함께 시 창작을 도모해 보는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서 그들이 보여주는 인지 리듬, 감각의 밀도, 고유한 언어 방식이야말로 오히려 시와 조응하는 근원적인 에너지임을 알 수 있었다. 적어도 시를 쓰는 일에 있어서만큼은, 내 눈 앞에 펼쳐지는 세계에 대한 진솔한 반응이 중요하다. 그 반응이 문학적 응답이 되기 위해서는 특정한 속력이나 ‘정상성’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 진솔함이 관건일 것이다. 진솔한 반응 안에서 이 세계는 상투성에서 벗어나 우리에게 생경한 것으로 다가오고, 그러한 움직임 안에서 새롭게 태어나는 감각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진행하였던 시 수업의 목표는 명확하게 고정되어있는 것은 아니었다. 누구든지 쉽게 참여할 수 있는 문학 수업에 어울리는 커리큘럼을 만들고 시행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긴 했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이 수업의 명료한 목표를 설정하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우리가 흔히 규정해 왔던 ‘좋은 시’ ‘잘 쓴 시’의 기준을 새롭게 되묻고 싶었다. 문학, 특히 시를 자신만의 감각으로 받아들이고 표현해보는 경험이 이 수업의 핵심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느린학습자와 함께하는 시 쓰기란 기존에 있었던 문학론의 의미를 새롭게 재해석하고, 말들의 배치 이전의 감각을 회복하는 일이었다.
두 명사를 매개하는 공동체 예술
나는 이번 수업에서 ‘매개’의 의미를 되짚었다. 매개의 사전적 의미는 서로 떨어져 있는 둘(혹은 두 명사) 사이에서 양편의 관계를 맺어주는 일, 즉 연결하는 일이다. 시에서의 매개는 두 명사 사이, 그 간극 안에 존재할 수 있는 무수한 “중간 항”을 부여하는 작용을 염두에 두는 일이겠다. 결국 시는 “나”라고 부를 수 있는 것들의 저변을 무한히 확장하는 장르로서, 이 세상에 혼자 있지 않음을 곱씹게 하는 공동체의 예술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말들의 다리를 이어보는 과정이 이번 커리큘럼의 중심이었던 것은 당연하다. 총 3회차의 수업에 걸쳐 “나”(1인칭)와 닮아 있는 것, “너”(2인칭)와 닮아 있는 것, “우리(3인칭)”라고 부르고 싶은 것들을 모색하는 일은 학습자들이 가진 감수성의 저변을 넓히는 일이기도 하였으나, 세상과의 관계 맺기를 새롭게 탐색하는 작업이기도 했다. 수업에서는 손글씨로 쓴 낱말카드와 계절감을 직관적으로 제시하는 사진 이미지, 가령 수박, 바다와 같이 명료하게 눈에 들어오는 사진을 활용했다. 또한 “단어기차”라는 개념을 만들어 말들 간의 인접성을 활용해 나만의 시적 문장을 구성해 보는 활동을 진행하였으며, “모두의 여름 단어장”을 만들어 각자가 제안하는 키워드와 이미지를 취합하여 구성하는 시간도 가져보았다.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우리와 닮아 있는 언어와 풍경을 찾아볼 수 있었고, 그 범위를 머나먼 곳까지 함께 넓힐 수 있었다.
사실 느린학습자와의 시 쓰기는 단순한 창작 활동 수업과는 조금 다르고, 그것은 학습자와 강사가 서로 기꺼이 조응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통상적인 글쓰기 수업은 습작과 독서, 피드백을 중심으로 이루어지지만, 이 수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방식과 리듬으로 만날 것인가 하는 문제다. 그것은 현장에서의 자연스러운 조응을 더욱 필요로 하는 것이며, 조급함을 내려놓고 기다리는 시간도 필요할 것이다.
빈 종이를 가만히 들여다보는 시간
그런 의미에서 느린학습자와 함께하는 문학 수업에서의 팁을 전해보자면, 시 창작에 있어 가장 존중해야 할 부분이 기다림, 그리고 독창성이라는 것을 강사가 먼저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비어 있는 종이를 ‘올바른’ 방식으로 채워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시간을 존중하고, 새롭게 접근하는 방식을 함께 시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실 이런 것은 기술이나 팁이라기보다는 문학을 기다리는 태도에 가까운 일이 되겠다. 분명한 것은 이러한 시간이 지나고 나면 천천히, 그러나 깊고 단단하게 자라는 시를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이러한 과정은 “우리”라고 부를 수 있는 범주 안에서, 나와 타인이 함께 존재할 수 있는 방식을 새롭게 고안할 수 있겠다. 발달의 속도, 혹은 인지의 방식이 평균에서 벗어나 있다고 칭해지는 느린학습자를 다른 의미로 받아들이는 일은 사실 나와 세계의 새로운 관계 맺기이기도 할 것이다. 분명한 것은 그들이 ‘느리다’기보다는, 자신만의 고유한, 독창적인 시간의 리듬을 갖고 있음을 수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술은 분명 그러한 리듬에 귀 기울이거나 그것을 새롭게 형성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그중에서도 시는 정답을 규정하는 일보다 감각을 드러내는 일에 가깝고, 온전한 완성을 도모한다기보다는 이 세상에 관한 반응의 과정을 드러내는 예술이다. 이것이 내가 작년에 새롭게 얻게 된 시작(詩作)의 기술이었다.
이서영
이서영
문학 텍스트를 기반으로 창작과 기획을 진행하고 있다. 문학동인 ‘공통점’과 2017년부터 함께하며 공통점이 발행한 동명의 문예지 『공통점』 창간호에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광주에서 태어나 거주하고 있고, 개관 이후 100년이 다 되어가는 예술영화전용관인 광주극장에서 근무하고 있다. 시산문집으로 『네가 이 세상의 후렴이 될 때』 (유미주의, 2023)가 있다.
tjdud3123@naver.com
사진제공_이서영 시인
2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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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양남 2025년 07월 26일 at 11:23 AM

    기다림에서 피어나는 시
    모두의 예술교육② 느린학습자와 함께하는 시 창작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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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기현 2025년 07월 26일 at 12:14 PM

    기다림에서 피어나는 시
    모두의 예술교육② 느린학습자와 함께하는 시 창작
    기대만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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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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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양남 2025년 07월 26일 at 11:23 AM

    기다림에서 피어나는 시
    모두의 예술교육② 느린학습자와 함께하는 시 창작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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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기현 2025년 07월 26일 at 12:14 PM

    기다림에서 피어나는 시
    모두의 예술교육② 느린학습자와 함께하는 시 창작
    기대만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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